퀵바

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최근연재일 :
2020.08.12 10:30
연재수 :
276 회
조회수 :
21,376
추천수 :
410
글자수 :
1,705,606

작성
20.03.24 13:49
조회
25
추천
0
글자
13쪽

194화. 밝혀지는 정체들(2)

DUMMY

일 대 일, 혹은 일 대 소수 등의 도제관계로 구성되는 마법학파의 시류는 같은 뜻을 품은 무리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마탑, 이백여 년 전의 전쟁 이후 전국의 마법사들과 전도유망한 인재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대학의 개념으로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승과 제자의 엄격한 관계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 내려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마드라드를 졸업한 이후나 학생으로 각 교수들의 공방에서 관련 연구에 종사하는 마법사들의 경우에는 사실상 예전의 도제관계로 구성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며, 실제로도 수제자나 자신의 비전 마법 등을 쉽게 전해주는 등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탑에서도 위대한 마법사들로부터 시작되는, 그리고 역시나 위대한 마법사들로 이어지던 몇 가지의 '마법사의 맥(脈)'이 존재했는데, 당대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학류를 꼽으라면 역시 전 마드라드 백작이자 바람의 마탑주였던 시어도어 볼티모어와 그의 제자들을 꼽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미 자리에서 물러나 장로의 위로 내려갔어도 그의 업적이나 마법 전반에 관한 학식은 여전히 그를 특별하게 했으며, 현재 마드라드의 수장을 노리는 두 명의 결선 후보인 니암 콜과 루크 역시 그의 첫 번째와 세 번째 제자였다.

두 번째 제자인 메를린 역시 대학의 행정과 재무를 담당하는 마법사이자 이번 선거의 위원장으로 활동했지 않았던가.


더불어 그의 제자라던 에블린 디어가 대학에 큰 상흔을 입히고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음지의 역사를 상기시켰던 존재였던 등 어쨌든 제자들 모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하나같이 마드라드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마법사의 수준을 나타내는 층수의 구분과 더불어, 누구누구의 제자나 스승이라는 말 또한 어느 정도의 위계를 가지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겉으로는 이오니아의 모든 유망한 이들에게 열려있는 배움의 장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아옴(AoM)의 상위 학술기관이자 수많은 마법학파가 모인 곳으로서 마드라드는 치열한 경쟁의 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고로.


"슈테판, 지금 당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아, 아니... 저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데, 이건 아마 다른 마법사 분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하거든요? 이미 수많은 발언으로 부탑주님과 날개의 마법사 역시 사제관계인 것을 많이 밝히지 않았던가요?"

"그러니 저를, 그리고 우리를 여태껏 기만하고 있던 게 아니겠습니까."


슈테판의 입에서 흘러나온 저 발언은 니암과 루크의 결선, 그리고 그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치열한 토론회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고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울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증거는요? 당신이 그렇게나 울부짖던 구체적인 물증이 있어야지만 그 합리적이라는 추론이 성립하지 않을까요?"


현우의 날카로운 물음에 슈테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가지고 있으니까, 아니죠, 데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비록 말에 불과하지만, 그 말은 더할 나위 없이 높은 신뢰성을 가지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장."

"뭐, 뭐라고요?"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이자 장현우의 숨겨진 위치를 증언해줄 마드라드의 학생을 여러분들께 소개합니다. 제 친구이자 동지인 에릭 피터슨을 말이지요."


그 말이 들리기 무섭게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 경기장의 무대로 올라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현우의 귓가를 자극했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린 현우에게 오른손을 슬쩍 들어 손가락을 까딱이는 능글능글한 인상의 마법사, 슈테판의 말대로 에릭이 맞았다.


"안녕하세요, 마드라드에 같이 다니는 학생들은 저를 모르는 이가 오히려 적겠지만, 아마도 마탑에 계신 다른 마법사 분들이나 선생님들은 저를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인사를 드립니다."


몸의 절반을 숙이며 격식있는 자세로 자신을 소개한 마법사는 다시금 제 이름을 관중들의 머리 속에 새겨 넣었다.


"마탑 5층의 마법사이자 슈테판의 동지 중 한 명인 에릭 피터슨이라 합니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일들의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새로운 마법사의 존재.

마치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전개에 현우는 그저 새로이 무대에 오른 한 배우의 신형을 고요히 응시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에릭은 완드에 마력을 집중한 채로 입을 열었다.

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마력을 타고 증폭되어 대경기장의 관중들에게 울려 퍼졌다.


"저는 누구의 제자까지는 아닙니다. 물론 저를 지도해주시는 교수님이 계시지만, 진정으로 사제의 연을 맺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다른 이의 부하였기는 했습니다. 아니, 그 사실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네, 저는 소위 말하는 사냥개 역을 맡았죠."


"그래도 제 전임보다는 사정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시어도어 볼티모어 전 총장님. 그리고 그 옆에 계신 아리따운 여성분?"


에릭은 그 말과 동시에 팔을 힘차게 휘둘렀다. 그의 완드에 겹치던 별빛이 긴 꼬리를 그리며 그대로 관중석의 누군가를 향해 쏘아졌다.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감고 번쩍이는 충격에 대비했으나, 그 빛은 누군가의 손에 가로막혀 사그라졌다.


허나 그것을 막았던 손의 주인은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빛은 결코 제 일을 마치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 아닌 탓이라. 구겨진 얼굴을 바로 핀 그녀는 옆의 자리에 앉아있던 노인에게 툭, 하고 말을 던졌다.


"나 참, 이거... 그럼 시어도어."


이미 파헤쳐진 변장을 벗어 던진 그녀는 눈으로 자신이 갈 곳을 정했다. 지정된 곳은 무대 위의 빈 공간, 이윽고 그녀는 자신과 그 공간 사이의 거리를 가늠했다.

떨어진 거리와 위치를 좌표로 계산한 후 전신에 다시금 마력을 두르며 그녀는 선언했다.


"바람이 인도하는 길에 나아가는 번개. 나는 거기에 혼을 실었으니, 나는 이미 그곳에 있노라."


이미 사라지고 없는 자리에는 일렁이는 바람만이 남았고, 저 멀리 출발한 번개는 조용한 파열음과 함께 무대 한 켠에 내리꽂혔다. 서서히 나타나는 신형이


"에릭이라고 했던가, 애송아? 편히 쉬고 있는 사람을 이리 불러내다니 각오해야 할 거다."

"그렇게 마드라드에 불을 질러가며 피해를 끼쳐놓고 팔자 좋게 쉬고 있다니요, 그럴 수는 없지요. 오랜만입니다, 에블린 디어."


* * *


"아직 장현우, 저 마법사에 대한 의심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무엇을 위해 나까지 이 자리에 부른 건지 설명을 해주겠어, 에릭 피터슨?"


마드라드 테러와 폭풍의 겨룸 당시 그녀의 얼굴을 보았던 이의 수는 결코 적지 않았다. 특히 대학의 경비단원들의 경우에는 이미 손을 부들거리며 화를 죽이는 이들도 더러 나왔다.

사망자는 없었다곤 하지만 어찌 되었든 피해자들은 존재했고 부서진 건물의 복구를 위해 상당한 시간과 자원이 소요되었다.

원흉인 그녀에 대한 처벌을 제창하는 이들이 대다수였으나 여태껏 확실한 답변이 대학 상부에서 나오지 않더니만 결국 이런 것이었나.

그녀가 감옥도 아니라 이토록 벌건 대낮에 대학을 활보하고 다닐 줄은 몰랐던 대학의 일원들은 굳은 얼굴로 화를 쌓고 있었다.


그 순간, 노인의 목소리가 그들의 대화를 끊고 들려왔다.


"전 마탑주의 권리를 지금 이 자리에서 사용하겠네."

"거부권을 여기서 행사하신다고요?"


사회자의 물음에 시어도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계속되는 폭로에 달궈지던 좌중의 분위기가 단번에 숙연해졌다.


"마탑의 규약에 따라 탑주들에게 주어지던 한 번의 거부권은 단 하나의 사항에 대해서만 적용이 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어도어 님."

"..."

"당신은 무엇을 거부하려고 하십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은 확성 마법도 사용하지 않은 채, 본연의 목소리로 목대에 핏줄을 세워가며 외쳤다.


"전 탑주이자 바람의 마법사 시어도어 볼티모어는 이곳에 선언하겠네. 에블린 디어에 대해 어째서 그녀를 살려두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추궁을 거부(Veto)하겠다고."

"좋았어."


시어도어의 말에 뒤따른 슈테판의 말은 작은 독백에 불과하여 다른 이들은 들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에릭은 현우를 가리키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마드라드 테러 당시까지만 하여도 저는 볼티모어 님께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제게는 다른 임무가 하달되었지요."

"그게 뭡니까?"

"마드라드 테러 당시, 그 테러의 주동자였던 에블린 디어는 한 마법사를 납치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이제야 막 대학에 발을 디딘 신입생이었고, 테러가 벌어진 때는 동아리 소개제 때로 기억하고 있으니 거진 두 달도 되지 않았었죠."


현우는 자신에게 향하는 에릭의 손가락을 잠자코 받았다.


"바로 날개의 마법사, 그가 에블린 디어가 납치하려고 했던 이였습니다. 왜 그를 납치하려고 했을까. 저는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곧 해결이 되었지요."

"이미 그 때 내가 시어도어와 그를 연관시켜 말했던 것을 기억하는 거겠지. 어째서 장현우를 납치하는 것이 시어도어에게 큰 타격이 되느냐, 거기서 시작한 물음이라고 생각해. 잘 짚었네."


무대 위에 올라온 이들 중 유일한 여성 마법사가 에릭의 말을 잘랐다.


"그 뒤로 시어도어가 네게 따로 임무를 내린 모양이지? 현우를 잘 지켜보고 있다가 위험한 부분이 보이면 따로 보고를 하라던가 하는."

"역시 전직 사냥개로서 정확한 눈썰미를 가지고 계시네요. 아니면 이미 쌓아온 지식을 십분 활용하신 건가요?"


에릭 피터슨은 쉽게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더불어 그는 한 가지를 더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거기에 하나를 더 얹죠. 제 아끼는 후배이기도 한 녀석이 위험에 처했을 때에는 네 녀석이 그를 지켜줬으면 좋겠구나 하는, 혹은 대신 그 위협을 받으란 부탁 내지 명령이 있었습니다."

"역시 너는 미쳤어, 시어도어. 아직도 그런 것들을 버리지 못하다니. 그것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던 거야? 이미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 놓고도?"


사회자는 혼란스러웠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두 명의 새로운 인물의 대화도 그렇고, 특히 그들이 있음으로 인해 점점 걷혀지는 시어도어에 대한 흠모와 긍정적인 인상들에 말이다.

거부권이 행사되었기에 그것에 대한 질문을 그에게 직접 던질 수는 없었으나, 반대로 그것은 노인의 아픈 부분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는 역설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저는 알았습니다. 제 후배인 장현우가 볼티모어 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맞아. 장현우, 저 날개의 마법사는 시어도어의 막내 제자이자, 내 유일한 사제이기도 해."

"...에블린 씨."


현우가 미처 팔을 뻗어 그녀를 건드리기도 전에, 이미 에블린의 입은 여태껏 숨겨두었던 사실을 세상에 터트려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입이 그것만을 쏟아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시어도어는... 아, 이건 비토를 사용했으니 넘어갈게. 자, 그는 루크 오라버니에게 부탁했지. 저 녀석을 너의 제자로 삼아달라고. 단, 이것은 외부에 겉으로 드러나는 선에서 말이야."

"그 이유가 뭘까요? 제 머리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은데요, 사냥개 선배님?"

"삶아서 먹혀지거나 버림 당하고 싶지 않다면 좀 더 머리를 키우는 게 좋을 거야, 사냥개 후배님."


그녀는 생긋 눈웃음을 지어가며 손바닥을 펼쳤다. 마력으로 끓어오르던 손길에서 점차 푸르스름한 마력이 걷혀져 가고, 이윽고 그녀의 손바닥을 차지한 녀석은 하얗게 자신을 치장한 모종의 기운이었다.


마치 아무도 밟지 않은 들판에 내려앉은 순백의 옷자락처럼, 오히려 이질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그 기운을 유지시키며 에블린은 말을 이었다.

이미 그녀의 입가에는 한줄기 선홍색의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젠장, 이미 막혀서 한줌도 남지 않은 기운을 사용하려니 몸이 뒤틀려버리네."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겁니까?"

"왜 장현우를 다른 이들의 눈에 숨겨야 했는가. 뻔하지, 다시 약점을 잡힐 수는 없었을 테니. 이미 모종의 세력은 그를 포착하는 데 성공한 데다가 마드라드 안에선 여전히 위협이 남아있었거든."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억누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실종된 이후에도 이토록 마드라드의 사정을 파악하고 취약점을 짚어 공격을 가할 수 있었는지 알아? 사냥개 후배님, 다른 곳의 정보를 알 수 있는 가장 빠르고도 정확한 방법이 뭐였지?"

"...안의 내부자로부터 정보를 취득하는 것."

"맞아."


이윽고 에블린은 손으로 입가와 턱에 묻은 피를 훔치며 말했다.

눈은 에릭 너머에서, 여전히 앉아있는 채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한 인물에게 고정한 채로.


"그리고 그 내부자가 사실 우리 사람이었다면 훨씬 일은 쉬워지지. 그렇지 않아, '이면의 별' 제 3지부의 간부 슈테판 리?"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7 197화. 폭풍은 두 번 몰아치나니(3) 20.03.27 30 0 13쪽
196 196화. 폭풍은 두 번 몰아치나니(2) +2 20.03.26 32 0 14쪽
195 195화. 폭풍은 두 번 몰아치나니(1) 20.03.25 30 0 14쪽
» 194화. 밝혀지는 정체들(2) 20.03.24 26 0 13쪽
193 193화. 밝혀지는 정체들(1) 20.03.23 29 0 14쪽
192 192화. 네거티브, 네거티브(2) 20.03.20 40 0 13쪽
191 191화. 네거티브, 네거티브(1) 20.03.18 36 0 13쪽
190 190화. 드러나는 결과(2) 20.03.17 33 0 14쪽
189 189화. 드러나는 결과(1) 20.03.16 38 0 14쪽
188 188화. 이합집산(3) 20.03.13 34 0 14쪽
187 187화. 이합집산(2) 20.03.12 31 0 13쪽
186 186화. 이합집산(1) 20.03.11 32 0 14쪽
185 185화. 당신을 떨어뜨리려고(2) 20.03.10 35 0 13쪽
184 184화. 당신을 떨어뜨리려고(1) 20.03.09 33 0 14쪽
183 183화. 마탑정쟁의 시작(2) 20.03.06 36 0 14쪽
182 182화. 마탑정쟁의 시작(1) 20.03.05 39 0 13쪽
181 181화. 거울에 비친 꽃, 물에 비친 달(3) 20.03.04 30 0 13쪽
180 180화. 거울에 비친 꽃, 물에 비친 달(2) 20.03.03 45 0 13쪽
179 179화. 거울에 비친 꽃, 물에 비친 달(1) 20.03.02 35 0 14쪽
178 178화. 은인께 드릴 것은(4) 20.02.28 35 0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