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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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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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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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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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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화. 네거티브, 네거티브(2)

DUMMY

"요즘 들려오는 이야기들 하며, 들어오는 제보들까지 전부 엉망이야."


전투학부 건물 1층에 자리잡은 정보 동아리 '이카루스', 그곳은 수많은 잉크와 양피지, 그리고 종이 냄새로 가득 찬 곳이다.

책장에 빼곡히 쌓여있는 책들과 서류들은 물론, 새로운 자료들을 기다리는 공간들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가운데, 동아리장인 윤화는 보관할 것들을 고르는 데 꽤나 애를 먹고 있었다.


그들이 학생으로 있는 동안에 대학에 이런 큰 사건이 일어날 줄이야 누가 짐작이라도 했을까.

처음에 윤화를 비롯한 동아리원들은 다들 기뻐했다.

마법사들은 무언가에 자취를 남기는 것을 특히 좋아하는 이들, 오히려 기록하지 않고서는 마법사로서 대성할 수 없다는 말도 흘러나오곤 하는 마당에 후대에 전해줄 수 있는 사건일지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니 어찌 눈을 반짝이며 달려들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 많아, 너무 많다고."


어느 시점까지는 하나같이 귀중하면서도 알짜배기 소식들만 들어왔었다. 후보들의 행동거지나 선호하는 선물들, 그들이 각자 내건 공약에 대한 자투리 이야기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들이 가장 숨기고 싶어하는 비밀까지 털어낼 생각은 아니었다. 적어도 당대의 동아리장인 윤화는 그쪽까지 파고들어 구태여 위험을 불러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쏟아지는 정보의 양도 문제지만, 상대를 비방하려는 의도가 훤히 보이는 저질 이야기들이 훨씬 문젯거리야. 거진 태반이 여관이나 술집에서 테이블 위에 독한 술잔을 놓고 할 법한 이야기들 뿐이라고."


다음 날 아침이면 '내가 그랬나? 미안하이, 너무 취해버려서 술김에 내뱉은 말이니 그만 잊어주게나.'라며 거짓으로 치부할 것들이 오늘만 해도 벌써 댓 건이 넘어갔다.

그것만이었다면 윤화가 지친 동아리 사람들을 억지로 부실 바깥으로 내보낸 다음 굳이 혼자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을 리가 없었으리라.

기존에 대학과 마탑의 사람들끼리 쉬쉬하던 것들까지 꺼내지는 바람에,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구분이 모호해졌다는 게 더 큰 일이었다.


이런 일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계속해서 진전이 없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책임을 지고 일관된 기준으로 정리를 하는 것에 있었다.

몰려드는 일거리를 모두 기존의 방식대로는 정상적인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 사후에 다시 점검을 하여 보완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토론 끝에 내린 그녀였다.


"하아, 이런 뜻 깊은 순간은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게 훨씬 좋을 텐데 말이지."


아무도 대꾸할 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윤화의 혼잣말은 끊어질 줄을 몰랐다.

자신도 바깥으로 나가 다시는 보지 못할 정쟁의 순간을 확인하는 것과, 동아리의 책임자이자 마드라드의 일을 후대에 남기는 기록자로서의 신념의 갈등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입을 쉬지 않고 놀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쌓여가는 짜증을 수월하게 풀어내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오전 중으로는 오겠다 연락을 한 이가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동안은 독백이 지속될 듯 싶었다.


"너도 참 미련하다야. 기어코 혼자서 이 많은 것들을 다 처리하려고 하는 거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삐걱거리는 소리가 윤화의 입을 멈추게 한데 이어, 동아리 방의 나무문은 새로운 인물이 안으로 들어왔음을 고했다.

윤화는 굳이 시선을 돌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일부러 소리와 보폭을 조절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보이려고 행동하는 발걸음만으로도 이미 누군지 능히 짐작이 갔다.

동아리의 문을 자연스럽게 열고 드나들 사람 중에서, 윤화의 머리 속에 걸려든 인물은 단 한 명뿐.


"다 너 때문이잖아, 이 바보 자식아."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아리의 일원인 그는 이 사단을 낸 장본인이 분명했으니.

사중고. 이렇게 짜증이 나는 것도 오랜만일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그에게 퉁명스럽게 구는 것으로 그 책임을 지긋이 물어보았다.

허나 이 정도의 잔소리는 이미 수도 없이 들었다는 듯, 에릭 피터슨은 손가락으로 귀를 파는 시늉을 하며 윤화의 짜증을 휙 하고 흘려 보냈다.


"이게 왜 내 탓이야? 나랑 슈테판은 먼저 맞았으니까 한 대를 갚아준 것 뿐이라고. 그런데 다시 현우 그 자식이 훨씬 거세게 몰아치는 걸 어떻게 해."

"하여간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꼭 무슨 사단을 내리란 건 알았지만, 그게 이렇게나 빨리, 그리고 크게 벌릴 줄은 몰랐지."


윤화는 에릭을 향해 오늘 모아둔 정보들을 적어둔 종이뭉치를 휙 던졌다.

위치와 상황이 많이 변했다고 한들, 어쨌든 에릭은 시어도어의 부탁을 받아 겉으로는 함부로 드러나서는 아니 되는 일들을 수행하는 마법사였다.

에블린의 뒤를 이었다는 것이 허언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의 눈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종이의 검은 글씨를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날개의 마법사의 손끝에서 흔들리는 부탑주, 과연 그는 인형 신세에 불과할 것인가."

"네가 꾸민 거 아니던가, 에릭 피터슨?"

"소공자, 그 뒷면은 협박과 감시로 점철되었다. 미네바에서 묻혀진 진실에 대하여... 참 많긴 많네."


흩날리는 종이들이 네 귀퉁이를 활짝 편 채 활강하는 가운데, 에릭은 잔기침과 함께 눈가를 어루만지며 잠시 뜸을 들였다.

이내 윤화를 꼬나본 그의 눈빛에선 살기와도 같은 불안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네가 현우에 관심이 있다는, 아마도 그 녀석만 모르고 있을 정보... 그 이야기도 퍼트려 줄까? 이야깃거리로는 참 널리 퍼질 것 같은데. 유명인의 여성 편력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지."

"그렇게 선을 넘어서까지 뭘 하고 싶은 거야, 에릭?"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 아닌가? 서로의 목숨을 한번씩 구해준 연인의 이야기, 불과 혈흔으로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꽃피는 사랑..."


그 순간, 한 줄기 마력이 에릭의 귓불을 스치고 벽에 박혔다. 금이 가버린 동아리 방의 벽으로 시선을 돌린 그에게, 윤화는 어느새 손에 쥔 완드에 힘을 주며 한자 한자를 씹으며 말했다.


"그렇게 해봐. 이번에는 귓가가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표적으로 겨누어 질 테니."

"...이카루스는 어떠한 사건에서든지, 그것이 대학 공동체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면 중립을 지키는 게 전 동아리 회장이 우리에게 말해줬던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야. 선대로부터 이어진 규칙을 이번 대의 회장이 위반할 건가?"


그 말을 들은 윤화의 표정은 비교적 평온해 보였다. 에릭의 예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입술이 저절로 비틀어지며 그 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간 에릭에게 그녀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넌 아무 것도 몰라."


과연 날개의 마법사가 오직 에릭에게만 의지를 했을까?

물론 에릭에게 현우가 맡긴 사항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슈테판의 편에 붙은 그를 본 현우의 충격은 상당하기 그지 없었다만.

과연 현우에게 에릭 피터슨 말고 지금과 관련된 것들을 믿고 이야기를 터 놓을 사람이 없었냐 하면은,


"무슨 소리야, 회장 나으리?"

"...부디 내가 생각하는 에릭 피터슨의 성격이 맞아 떨어져서, 나에게까지 그런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네."


그건 또 아니었다.


미네바에서 목숨이 경각까지 달했던 경험이 있어 자연스럽게 '이면의 별'에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인물.

그러면서도 소식을 모으는 데 능하고, 그 비밀을 남에게 털어놓지 않은 확신이 현우에게 들게 하는 사람.

에릭이 현우의 계획에 방점을 찍어줄 인물이라면,


"안 그래, 애송아?"


윤화는 날개의 마법사의 추론을 설득력 있게 구현화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우리 윤화가 현우를 위해 일부러 나를 동요하게 하는 거라면 말이지, 축하해."


그는 빛으로 점철된 완드를 윤화에게 겨누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우리끼리 대련은 오랜만이지?"


* * *


네거티브(Negative).

부정적인 의미. 서로 영향을 받아 동반 성장을 하는 것과 달리, 자신도 손해 내지 아무런 이익을 보지 못하면서 상대방을 깎아 내리고자 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실질적으로 이득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보다 더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쳐 생겨난 그 차이를 이익이라고 취급할 수는 있겠으나, 객관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건 도저히 유익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후우."


현우는 자신의 얼굴에 드리웠던 마력의 흐름을 해제했다.

에블린에게서 속성으로 배웠던 변장 마법이 풀리고 본연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간 교류제와 선거 본선 등을 거치면서 그의 얼굴은 여러 곳에 팔려있었다. 적어도 마드라드 내에서는 최근 그가 거리를 돌아다닐 때면 뒤에서 수군대는 웅성거림이 최소 하나는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터진 모략의 손길.

악의적으로 상대방을 폄하하는 의미가 돋보이는 뜬소문에 그 역시 에블린의 조언에 따라 여러 사람들에게 은밀히 거짓 소문들을 퍼트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짓이라기 보다는 숨겨두었던 의문을 조용히 풀어헤친 것에 불과하나, 어찌 되었든 슈테판과 그가 퍼트리는 이야기들은 나름대로의 논리와 근거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것들이 하나같이 구미가 당길만한 것들이었기에, 자칭 호사가라 하는 이들은 셋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다 싶으면 으레 그 주제로 이야기판을 벌였다.


사실 확인과 당사자의 반응을 보고자 소문의 대상에게 몰려드는 인파가 늘었다.

처음에 현우는 그에게 쏟아지는 의문에 단호히 선을 그으면서도 말끝을 오묘하게 흐렸다.

허나 반복되는 흐름에 얼굴 근육은 그대로 지쳐갔고, 결국 그는 슬쩍 몸을 숨기는 것을 선택했다.


'확실히 콧수염이나 상처 등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확 바뀐단 말이지.'


용에 대해 탐구하는 마법사들의 자리에 초청되었던 현우는 자리를 파하고 나오며 얼굴에 유형화된 마력을 덕지덕지 발랐다.

그의 손이 스쳐가는 대로 피부색이 슬쩍 바뀌고 거뭇거뭇한 털이 자라났다.

다행히도 눈에 딱 기억에 드는 특징이라곤 그리 보이지 않는 본판이었기 때문에, 잠입에 능한 이들의 조언을 받은 현우의 얼굴은 가까이서 보지 않는 한 그것이 날개의 마법사라고 판단할 수 없을 정도였다.


부양장치 위로 올라가 마탑을 서서히 올라갈 때도, 마법사들은 누군가 지나간다는 사실에 눈만 슬쩍 마주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 놈의 보호 마법 때문이지, 뭐."


이번에도 루크의 방에 모인 자리에서, 에블린은 단 한 마디로 마탑에 펼쳐진 수많은 보호 마법과 결계를 격하시켰다.


"대학이나 마탑의 소속만 들어올 수 있도록 마법이 짜여져 있으니까 그걸 너무 믿는단 말이야, 사람들은. 봐봐."


이미 실종된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이렇게 자신의 연구실과 신분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면서 그녀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로드, 그 자가 너무 직무태만이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크흠. 그건 좀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새는 것 같아요."

"그런가? 아무튼, 요즘 별 이야기가 다 나오고 있던데 당사자가 된 기분은 어때?"


목을 가다듬는 현우에게 에블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완전히 진흙탕이네요. 느닷없이 질문을 던지는데 그게 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과거 이야기를 꼬치꼬치 캐묻는다거나 하는... 이제는 부정입학 의혹까지 나돌고 있는 거 아세요?"


정식으로 입학 시험을 치른 것이 아니라 시어도어의 추천장에 힘입어 마드라드에 들어오게 된 만큼, 무언가 물밑에서 담합이나 모종의 조치가 있었지 않았냐 하는 소리였다.

이미 날개의 마법사란 이명을 얻은 지라 실력에는 이견이 없었으나, 어떻게 별 다른 말도 나돌지 않던 일개 학생이 어떻게 부탑주, 그것도 마드라드의 일에는 관심을 별로 보이지 않던 이의 눈에 들어 제자로 들어갔냐는 것이었다.


"괜히 여기서 말을 더 꺼내봤자 속 시원하게 의혹이 풀리는 것도 아닐 뿐더러, 제 말의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자들이 분명히 생길 겁니다. 제가 겪어본 슈테판과 에릭 형이라면 필시 그런 전략을 마련해뒀을 것이 뻔히 보이니까요."

"조금만 더 참아봐. 이제 곧 있으면..."


덜커덕. 문이 열리고 이 방의 진실된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 자신보다 오히려 저 두 사람이 이 방을 더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잠시 뒤로 미룬 루크는 현우와 에블린에게 가지고 온 종이 두루마리를 펼쳐 보았다.


"잠시 일이 있어서 나갔다 왔더니만, 마법학부의 로비에서 메를린이 이걸 건네 주더군."


4개의 눈이 진한 황금색 글씨로 쓰여진 문장으로 향했다.


"그 동안 쌓인 채로 오해만 불러일으키는 헛소문들을 해결하고 깨끗한 결선을 위한 공개 토론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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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197화. 폭풍은 두 번 몰아치나니(3) 20.03.27 30 0 13쪽
196 196화. 폭풍은 두 번 몰아치나니(2) +2 20.03.26 3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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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194화. 밝혀지는 정체들(2) 20.03.24 26 0 13쪽
193 193화. 밝혀지는 정체들(1) 20.03.23 29 0 14쪽
» 192화. 네거티브, 네거티브(2) 20.03.20 41 0 13쪽
191 191화. 네거티브, 네거티브(1) 20.03.18 36 0 13쪽
190 190화. 드러나는 결과(2) 20.03.17 33 0 14쪽
189 189화. 드러나는 결과(1) 20.03.16 38 0 14쪽
188 188화. 이합집산(3) 20.03.13 35 0 14쪽
187 187화. 이합집산(2) 20.03.12 31 0 13쪽
186 186화. 이합집산(1) 20.03.11 33 0 14쪽
185 185화. 당신을 떨어뜨리려고(2) 20.03.10 36 0 13쪽
184 184화. 당신을 떨어뜨리려고(1) 20.03.09 33 0 14쪽
183 183화. 마탑정쟁의 시작(2) 20.03.06 36 0 14쪽
182 182화. 마탑정쟁의 시작(1) 20.03.05 40 0 13쪽
181 181화. 거울에 비친 꽃, 물에 비친 달(3) 20.03.04 30 0 13쪽
180 180화. 거울에 비친 꽃, 물에 비친 달(2) 20.03.03 45 0 13쪽
179 179화. 거울에 비친 꽃, 물에 비친 달(1) 20.03.02 36 0 14쪽
178 178화. 은인께 드릴 것은(4) 20.02.28 3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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