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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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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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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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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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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화. 마탑정쟁의 시작(1)

DUMMY

"자네는 누구를 찍을 텐가?"

"그걸 알려주면 쓰나. 다 때가 되면 알게 될 터이니 그만 물어보게. 하여간 만나는 사람마다 자네가 누구를 찍을 건가 물어본다고 요즘 7층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걸 알기나 하나?"


파비앙의 핀잔에 페르만은 입술을 쭉 내밀고 투덜거렸다.

제 나름대로 통계를 내보고자 시작한 조사였는데 벌써부터 이런 방해를 받으면 섭섭했다.

앞으로 3일, 마탑주를 뽑는 정쟁의 본격적인 시작을 눈앞에 두고 마탑 내 분위기를 알아보고 싶은 지식욕은 다들 있을 터.

가려운 데를 긁어주겠다는 데 제 옆에 있는 고지식한 친구는 그게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자네 성격이라면 바깥에 나오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군, 파비앙."

"내게 주워진 일종의 권리지 않나. 우리를 이끌 다음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얼굴과 약속 정도는 들어보아야겠다는 계산이 서서 그렇네. 그리고."


파비앙을 쫓아 걸음을 옮긴 페르만은 마탑 7층에 유일하게 개방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구석에 쌓여있는 잡동사니들. 사실 버리는 쓰레기까지는 아니어서 나름대로 7층에 거주하는 마법사들의 합의 하에 꽤나 질서정연하게 물품이 놓여져 있었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나무 선반에 하나씩 턱, 턱 올려놓은 게 다였지만.


"알고 보니 내 연구에 이게 필요하더군. 그래서 나온 것이야. 그러다가 왠 진득한 것에 걸릴 줄은 몰랐지."

"그런 진득한 게 앞으로도 계속 붙어있을 거라면 어쩌겠나."

"재빨리 내 연구실로 돌아갈 걸세. 마법사의 공방은 다른 이의 출입을 원치 않아."


페르만은 그 말에 곧바로 응수했다. 누구 하나가 들으라는 듯이 이 사이로 새어나가는 바람결에 목소리를 천천히 흘리면서.


"아, 그래도 뚫리는 건 다 본인 책임 아니었던가. 갑자기 파비앙, 자네의 연구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걸. 연구실에 잠입을 해도 괜찮겠나?"

"공방을 뚫어보겠다면 얼마든지. 마법사가 번개에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지를 알아볼 좋은 기회가 되겠어."

"그거... 정말로 바라는 건 아니지? 벌써 그걸 완성했단 말이야? 자네는 어째 실력이 점점 더 느는구먼. 곧 8층으로 올라갈지도 모르겠어."


그가 왜 파비앙의 곁에 계속해서 달라붙어 있겠나. 그가 적어도 7층에서는 제일가는 실력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다시 이 방의 주인과 겨뤄볼 자신이 생겼을 만큼."


단, 전에 있었던 장과의 대련을 제외한다면.


"하기야, 요 근래 들어서는 날개의 마법사와의 대련에서밖에 지지 않았던가. 전투 마법사 파비앙이 아쉽게 졌지."

"아니, 그건 오히려 내 이름에도 검은 칠을 하는 거네. 그 때부터 유형화된 마력의 날개를 꺼낼 줄은 누가 알았을까."

"귀가 두 개나 되니 들려오는 소문도 2배던데 말이지, 내 듣자 하니 이번에 루크 부탑주를 마탑주로 올리기 위해 학기 수업까지 전부 포기했다 하더군."

"...설마."

"곰도 설마 하다 꿀덫에 걸린다는 거 모르나? 본격적으로 마탑 정치에 끼어들려고 하는 건지... 아직 슈테판 리 선생처럼 제대로 학부를 졸업한 것도 아니면서 말이야."

"웬만한 건 참으려고 했는데 그건 모함 수준이네요, 페르만 씨."


파비앙과 페르만의 것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뒤를 돌아보니 있는 것은 이 방의 원래 주인. 그 뒤에는 페르만은 모르는 한 젊은이가 삐딱하게 서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일세, 장."

"파비앙 씨였죠? 죄송해요. 제가 사람 이름은 잘 기억을 못하는지라."

"아니야, 맞네. 날개의 마법사께서 내 이름을 기억해줘서 고맙구만. 보아하니 데려온 손님과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으니 불청객은 빠져주도록 하겠네."

"파비앙?"

"페르만, 자네는 뭐, 맘대로 하게나. 하지만 내 공방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 말게. 중요한 연구가 있어서 말이야."


파비앙이 먼저 자리를 뜨고 난 뒤, 현우와 그가 데리고 온 손님의 시선은 하나같이 남아있는 페르만에게 꽂혔다.

자꾸 시선을 회피하는 마법사는 결국 사과의 의미로 꾸벅 고개를 한 차례 숙이곤 자리를 떴다. 아마 아직 제 공방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파비앙에게 좀 더 물어볼 건덕지가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리라.

물론, 일단은 거북해진 현우와의 사이를 시간으로 때워보자는 심산이 먼저였겠지만.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영 별로네, 현우야?"

"원래는 공방을 거의 쓰지 않을 줄 알고서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했었거든요."


방의 주인은 바깥으로 나가 나무 팻말을 걸어놓았다.


[안에 방의 주인장 있음. 열지 말 것을 강력히 경고함. 경고를 무시할 경우 즉각적으로 보복하겠음.]


"그렇게 써 놓는다고 나 같은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에릭 형처럼 사고를 칠만한 마법사가 몇이나 되겠어요. 저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을 발칵 열고 들어올 리가 없을 텐데."


다행히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 염치가 없지는 않아서, 방의 모든 물품들은 먼지 하나 쌓이지 않고 깔끔한 편이었다.

아마 이곳에 물건들을 보관하는 그들로서도 청소는 해야겠다 싶었나 본지, 현우가 몇 번밖에 쓰지 않은 책상에는 청소 일지 같은 게 놓여있었다.


그것을 대강 치운 마법사는 손님에게 앉을 것을 권했고, 테이블 모서리에 엉덩이를 대고 삐딱하니 앉은 에릭은 현우에게 용건을 물었다.


"오자마자 루크 선생님께 가지 않고 따로 나를 부른 걸 보면, 뭔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숨기고 싶은 일이 있는 거지?"

"아마 형 밖에 할 수 없는 일일 거에요. 형도 인정하시죠? 자기처럼 사고를 칠만한 마법사는."

"손에 꼽을걸."


그 말을 듣자마자 현우는 웃음을 만연하게 띠며 목에 걸고 있던 주머니를 휙 하고 에릭에게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마수 가죽 주머니는 에릭의 손에 턱 하고 잡혔다.

주머니 안에 느껴지는 제법 묵직한 감촉에 에릭은 현우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야?"

"형이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줄 도구에요."

"이걸로 뭘 하면 되는 건데?"

"형이라면 쉬운 거에요. 원래는 스승님께 허락을 받아도 될지 모르지만."


현우는 명목상의 스승이 아닌, 실제로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이를 떠올리며 말했다.


"잠입, 한 번 해보실래요?"


* * *


"확실히 난 사람은 난 사람이네. 깡 실력만으로 부탑주 자리를 꿰찬 것은 아닌 가봐?"

"장이 틈틈이 사람들을 끌어 모아 대련을 벌인 덕분이다."


그 덕에 빌 에반스를 비롯하여 마탑 하부의 층에 거주하는 마법사들 몇몇을 세력권으로 모을 수 있었다.

보기보다 빌 에반스는 명석했다. 5층에서 어느새 6층의 자격을 획득한 그는 마법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에게서 호감을 끌어내는 데에 능숙한 면을 보였다.

하기야, 그런 쪽으로 머리가 돌아갔으니 루크와 현우의 이름값이 높아지는 순간 바로 파벌을 정해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하기야 에반스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야. 그 덕분에 어느 정도, 니암 오라버니의 파벌에 대항은 해 볼만 해졌으니까."

"그쪽도 이제는 건들면 적잖은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니 그런 게 아니겠느냐."

"그래도 학생들의 지지만 확보하면 수월해질 줄 알았는데, 마탑 사람들에게도 여간 쌀쌀하게 군 게 아니었나 봐?"


에블린의 말대로 루크는 학생 수십의 지지를 충족하여 대학의 장이 되기 위한 1차 조건을 만족하였다.

굳이 마탑에는 소속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생각하여 제정되었던 규칙이었다. 완드와 스태프에 대한 무료 점검과 더불어, 마석등을 확충하고 또 다른 테러가 발생할까 두려워하는 학생들을 위해 보호 마법의 강화와 갱신까지 약속했다.


허나 이제는 다른 약속을 공표할 때였고, 그 대상도 학생들이 아닌 전혀 다른 자들이었다.

마드라드의 총장은 또한 바람의 마탑의 주인이기도 하니, 본선의 표를 쥐고 있는 자들은 다름아닌 마탑에 거주하는 마법사들이었다.


15층까지 이어지는 이 거대한 탑, 수십 년을 이곳에 머무른 마법사조차도 어디까지가 공간의 끝인지를 모르는 이 신비한 터 안에만 천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마탑의 소속이나 다름없는 외부 교수들과 연구원들, 그리고 임시이긴 하나 어쨌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들에게도 표를 던질 권리가 주어졌으니, 그 많은 사람들 중 적어도 삼분지 일은 지지를 확보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무리들의 이합집산이 벌어짐은 예사요, 때로는 끈끈하게 뭉쳐졌던 무리에 배신과 모략이 더해져 아예 파멸의 끝으로 달려버리는 경우도 있었노라 마탑의 기록에는 남아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드는군."

"이미 이름까지 빌려준다고 확언한 순간부터, 오라버니는 이미 같은 배를 타고 저 멀리 원양까지 항해를 시작한 거야. 다시 항구로 돌아가고 싶으면 알아서 헤엄쳐서 가던가."

"...그래도 되나."

"정말로 가면, 다시는 오라버니를 안볼 줄 알고 그렇게 해보든지."


으름장을 놓는 에블린의 말에 루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내일 발표할 연설문을 검토하는 데에 열중했다.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이 완드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빼고 다시 꼽혀짐을 반복한다.

사람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오죽하면 그런 사용법만을 연구하는 수사학이란 학문이 새로 정립되었겠는가.


연설문의 문장 하나하나마다 상대방에게 책을 잡히지 않도록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문장을 고쳐나갔다.

깃펜으로 죽죽 그어 양피지에 검은 물을 왈칵 들이는, 날카로운 금속이 거친 표면에 긁히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루크의 코 끝에 걸린 안경의 알에 튕겨져 나온다.


"그래서, 오라버니가 내일 말할 연설문은 알아서 되었다고 치고, 지지연설은 누가 할 거야? 빌 에반스? 물론 니암 오라버니 쪽에서는 슈테판이 나올 게 분명하고, 루아 메트리 교수님 쪽은 잘 모르겠네. 누가 나오게 될지..."

"메트리는 우리보다도 세가 적은 편이 아니더냐. 너와 장현우의 목표 또한 슈테판 리였으니까, 그곳에만 집중하는 쪽으로 해도 되겠지. 어차피 나는 너희들의 그 목적만 이루어지면 곧바로."

"곧바로 뭐? 하아... 정말, 아무리 몇 년을 부대끼며 지냈어도 아직도 저렇게 권력욕이 없는 인간은 처음 본다니까."


책상을 탕! 하고 치는 소리와 함께, 에블린은 루크의 안경을 벗겨버린 뒤 눈을 맞추며 소리쳤다.


"그 동안 군말 없이 잘 했었잖아. 곧 있으면 현우가 돌아오니까 괜히 말을 꺼내는 거지? 니암 오라버니가 그 녀석과 결탁했을 수도 있고."

"그건 절대로 그렇지가 않을 거다. 이미 내가 현우와 확인을 마친 상황이니까."

"어떻게든 공약을 마련하기 위해 저기 먼 곳으로 떠난 막내 사제는 생각지도 않아?"

"그가 아직 계약을 마치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나. 그렇게 되면 차라리 포기를 하는 것이."

"괜한 투정은 이제 그만해, 오라버니. 당연히 그 녀석이면 뭔가 걸리는 게 있었어도 이미 과실을 충분히 따고도 남았겠지."


루크는 말없이 에블린에 손에서 안경을 빼앗아 다시 코에 걸쳤다. 그는 그녀에게 눈을 한 번 흘기고선 깃펜을 집어 연설문을 고쳐나갔다.


"아무튼 이 시간까지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지지연설은 네가 해야겠지."


에블린은 그것을 어쨌든 지금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머리를 부여잡고 두통을 호소하며, 그녀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정말로 하기 싫은 건 또 아닌가 보네."

"그렇게까지 설득을 했고 내가 넘어갔으니, 스스로 생각하여 적당한 선까지는 어울려 주는 것이다. 그나저나 네 연설문은 어떻게 할 생각이더냐."

"내가 나가도 괜찮아? 애초에 내 정체가 들어나면 오라버니는 물론, 시어도어도 무사하지 못할걸? 아니, 이건 니암 오라버니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모두가 타격을 입는 것일까."


연설에 따라오는 지지자의 호소. 어차피 니암과 루크, 메트리까지 후보들의 능력은 검증이 되고도 남았다. 학생들의 지지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마탑의 마법사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나머지 요소는 단 하나, 지지연설의 효력에 있었다.

어째서 후보를 지지하는가. 진솔한 호소는 공감대를 야기하고, 그 흐름은 수많은 표의 결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미 마드라드 테러를 벌인 바 있는 에블린이 나타난다면 그 파급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겠으나, 과연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지는 상당히 전망이 어두웠다.

그 자리에서 피습이나 당하지 않으면 상당히 결과가 괜찮은 것이라.

그러나 다행히, 에블린이 지지연설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을 듯 했다.


"미안해요. 제가 많이 늦었죠?"


연설을 하게 될 주인공이 지금, 루크의 방에 도달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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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197화. 폭풍은 두 번 몰아치나니(3) 20.03.27 30 0 13쪽
196 196화. 폭풍은 두 번 몰아치나니(2) +2 20.03.26 3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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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194화. 밝혀지는 정체들(2) 20.03.24 26 0 13쪽
193 193화. 밝혀지는 정체들(1) 20.03.23 29 0 14쪽
192 192화. 네거티브, 네거티브(2) 20.03.20 40 0 13쪽
191 191화. 네거티브, 네거티브(1) 20.03.18 36 0 13쪽
190 190화. 드러나는 결과(2) 20.03.17 33 0 14쪽
189 189화. 드러나는 결과(1) 20.03.16 38 0 14쪽
188 188화. 이합집산(3) 20.03.13 34 0 14쪽
187 187화. 이합집산(2) 20.03.12 31 0 13쪽
186 186화. 이합집산(1) 20.03.11 32 0 14쪽
185 185화. 당신을 떨어뜨리려고(2) 20.03.10 35 0 13쪽
184 184화. 당신을 떨어뜨리려고(1) 20.03.09 33 0 14쪽
183 183화. 마탑정쟁의 시작(2) 20.03.06 36 0 14쪽
» 182화. 마탑정쟁의 시작(1) 20.03.05 40 0 13쪽
181 181화. 거울에 비친 꽃, 물에 비친 달(3) 20.03.04 30 0 13쪽
180 180화. 거울에 비친 꽃, 물에 비친 달(2) 20.03.03 45 0 13쪽
179 179화. 거울에 비친 꽃, 물에 비친 달(1) 20.03.02 35 0 14쪽
178 178화. 은인께 드릴 것은(4) 20.02.28 3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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