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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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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20.04.05 18:41
조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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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10화 - 6

DUMMY

“물회도 나왔는데, 한 잔 마실까?”

“응.”



그렇게 말하는 나는 뭔가 되게 아저씨 같은 느낌이다. 스무 살인데. 근데 남자는, 원래 좀 아저씨 같은 거야. 그럼 이런 때에 개씹핵인싸는 뭐라고 하면서 술을 마시나. 어쨌든.



‘짠!’



가게에 들어온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우리. 분위기 자체가,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니다. 하린이는 어째서인지 화가 나 있는 듯하고, 희세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뭔가 내가 중간에서 분위기를 살려야 할 것 같은 상황인데. 아시다시피 나는 이런 건 전혀 못 하는 성격이니.



“잘 사귀고 있어?”

“어?”

“두 사람, 잘 사귀고 있냐구.”

“어 뭐······ 그런대로?”



어떻게 해야 이 분위기를 잘 진행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희세가 먼저 나에게 묻는다. 벙쪄 있는 나에게, 싱긋 웃으며 말하는 희세. 전 여친이 현 여친과 있는 나에게 잘 지내냐고 물어보면, 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지.



“나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어······ 그러니까 이름이 뭐였더라.”

“하린이요 안하린! 제 이름도 모르시나요! 전 언니 이름 아는데!”

“미안.”



대놓고 적대적인 눈길을 보내는 하린이에게 한 마디 하는 희세. 이름 때문에 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아 근데 이건 압도적으로 하린이가 유리하지 않냐. 하린이는 솔직히 희세 이름 몰라도 그냥 ‘언니’라고 부르면 되잖아. 반면에 희세는, 굳이 전 남친 현 여친 이름을 외울 필요가 없잖아. 상식적으로. 어쨌든 희세는 사과한다.



“우리 헤어진지 벌써 한 달 됐어. 이제 다 잊혀져 가는 단계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슨 연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 대하는 거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

“······흥!”



돌려 말하기 그런 것은 전혀 모르는 희세. 그렇다고 무례하게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다. 정론적이면서도 듣는 쪽에서 별다른 변명을 할 수 없게, 딱 사실만을 전하는 말투인지라, 하린이는 별달리 꼬투리를 잡지 못 한다.



“저는 상관 없어요, 저는. 오빠가 문제지.”

“나? 내가 왜.”

“오빠 언니를 못 잊어서 늘 저한테 언니를 겹쳐 생각하고 그러잖아요. 아닌가요?”

“······아닌데?”

“그 미묘한 1초간의 정적은 뭔데요?!”



하린이는 정말, 눈치가 빠르다. 너무 눈치가 빠르니까 꼭 내 생각을 읽는 것 같잖아. 너 같이 눈치 빠른 녀석들은 싫다니깐. 어쨌든 아니라고 부정한다. 초기에는 그랬을지언정 이제는 웬만하면 희세 생각 안 하려고 노력하니까. 관성 같은 거잖아, 그건. 희세랑은 1년 넘게 사귀었었고, 하린이랑은 이제 한 달 조금 안 되었는걸.



“웅도야.”

“어.”



다정하면서 따뜻한 희세의 목소리. 나는 또 마음이 아련해지려고 한다. 마음이 아주 못 됐네. 얼른 다잡고 희세를 쳐다본다. 싱긋 쓸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희세.



“나, 이번에 처음으로 혼자 여행 왔거든.”

“······.”



꼭 나한테만 들으라고 하는 것 같지는 않은 희세의 말. 하린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물회를 한 점 집어 먹으며 희세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희세는 우리 두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한 마디씩 말을 꺼낸다.



“힘들어서. 솔직히 나도, 헤어지고 힘들었으니까.”

“봐요, 언니도 아직 못 잊고 있잖아요?!”



촐싹대는 하린이. 상 밑으로 하린이 손을 꼭 잡으며 주의를 준다. 말하고 있잖아. 하린이는 도리어 자신이 억울하다는 듯 나에게 눈을 부라린다. 전 여친이라고 감싸주는 게 아니야. 지금 뭐 말하고 있잖아. 말은 들어보고 생각 해야지, 그렇게 계속 한 마디 마디마다 어깃장 놓으면 희세가 어떻게 말해.



“내가 헤어지자고 했으니까. 내 욕심에, 헤어지자고 하는 것도 내 욕심 채우려고 헤어진 거니까. 그래서 미안하고, 일상이 된 일들이 한순간에 없어지니까 그 빈 공간이 되게 크게 느껴지고. 그래서, 친구들하고 얘기하다보니까 혼자 여행 갔다오라고, 그럼 좀 나아질 거라고 얘기하더라구.”

“······.”



희세는 헤어지고도 자기 탓이라고 말하는구나. 처음엔 나도, 내 탓이라고 자책하고 그랬다. 내가 못 해줘서, 내가 못나서 희세가 나를 떠난 거라고. 그치만 지금은. 하린이랑 사귀고, 하린이 덕에 조금 정신 차리고, 예전처럼 마냥 감정적으로 우리 헤어짐을 보는 시선이 아니게 되니까.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희세는 명확하게 하고 싶은 게 있잖아? 자기 하고 싶은 것은 꼭 하고, 자기가 내뱉은 말은 꼭 지켜야 하는 자존심 강한 희세이니, 누가 뭐래도 그녀는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녀 사전에 포기라는 건 없는데. 학업과 아르바이트, 두 가지 일만으로 시간은 너무 부족하고. 그런 와중에,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로서 충실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희세는 선택한 거야. 내가 싫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면, 지금 이렇게 말할 리도 없지. 괴로워할 것도 아니고. 내가 싫어서 헤어졌다면.



“막상 혼자 여행해보니까, 오히려 더 생각나더라. 웅도랑 같이 왔다면 어땠을까. 나는 내가 독립적인 사람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웅도한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었더라. 그래서 힘들었는데. 혼자. 근데, 어떻게 딱. 만나버렸네. 그것도 지금 여자친구랑 같이.”

“······.”



희세의 쓸쓸한 목소리는 이제는 살짝 슬픈 느낌으로 바뀌었다. 체념과 어쩔 수 없음에 대한 감정이 담겨 있는 듯하다. 나도 하린이도 지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한 잔 하죠. 분위기도 안 좋은데.”

“그래.”



건배 제의하는 여고생 하린이. 잠자코 받아 들이는 나.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거구나. 지금은 분위기가 너무 안 좋으니까. 희세는 말없이 잔을 부딪히고 무서운 기세로 한 잔 순식간에 마셔버린다. 기분 안 좋구나.



“아 뭐, 그럴 수 있죠. 그럴 수 있어요. 언니가 그 정도까지 힘들어 하는 줄 몰랐는데. 전 언니가, 콧대 쎄고 자존심 높아서 오빠 차버린 줄 알고, 그래서 막 시비 걸고 그랬던 건데.”

하린이는 그래도 또 착해서, 희세가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미안한 모양이다. 오해가 있었다는 걸 에둘러 말하는 하린이. 희세는 피식 웃는다.

“근데 하린이 너. 미성년자 아니었어?”

“아 네, 어떻게 아세요?”

“아직 웅도랑 사귈 때, 웅도가 말해줬었지.”

“아 그렇겠구나.”



그치, 대학교 입학하고 한 달 정도는 희세랑 사귀는 상태였으니까. 희세가 바빠서 전화하고 아침에 보는 정도밖에 못 했지만.



“근데 술 먹어도 돼? 아직 미성년자인데.”

“쉿. 조용히 해주세요. 안 그럼 저희 쫓겨나요. 지금 막 분위기 좋은데 저 때문에 쫓겨나면 좋겠어요? 저희는 공범이에요. 한 배를 탄 상태라구요.”

“아이구······ 웅도 너도 힘들겠다.”



마약 거래라도 하는 것처럼 조용하고 은밀하게 말하는 하린이. 희세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측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그저 웃지요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익숙하지.






그 뒤로는, 분위기가 꽤 풀려서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게 되었다. 하린이도 희세에 대한 적개심을 풀었고, 희세 또한 아까처럼 껄끄러워하는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



“이 오빠 진짜 웃기다니까요? 안 그런 척 하면서 막 실제로는 야한 생각 잔뜩 하고 있구~”

“아, 알지알지 그거. 예전부터 그랬어. 안 사귈 때부터.”

“아하하핫!”



결국엔 둘이서 나를 까는 것으로 대동단결 되는 건가. 이럴 줄은 알았어, 이럴 줄은 알았는데······ 하아. 그래,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면. 나를 희생하시오! 얼마든지 비웃어도 되니! 그보다 남자가 변태인 게 뭐가 나쁘냐! 이 정웅도, 한 점 후회따위 없다! 고자라고 놀림 받아도, 나는 하린이를 아껴준 거야!



“근데 얘기 들어보니까 하린이 너도 꽤 변태 같은데.”

“아핫☆ 들켰군요. 저 섹X 해보고 싶어서 대학교 일찍 왔거든요!”



통찰력 있는 희세. 네 맞아요 그 애 변태예요! 하린이는 일상적으로 치는 섹드립을 여과 없이 던진다. 그것도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꽤 큰 목소리로. 상식 밖의 ‘X스’라는 단어에, 주위 테이블 사람들 몇 명이 힐끔 우리를 바라본다.



“와. 정웅도. 얘 뭐냐. 또라이야?”

“뭐······ 약간 미쳐 있죠.”

“우헤헤헤헷♪”



어안이 벙벙한 느낌으로, 희세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묻는다. 나도······ 나도 몰라. 내 여자친구는 좀 정상이 아니야. 하린이는 그저 즐겁다고 마구 웃어댈 뿐이다.








//








“우웨에에엑─”

“어이구.”



술집 앞에서 거나하게 토하는 하린이. 나는 무표정한 돌 같은 표정으로 등을 두드려주고, 희세는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다. 하린이가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닌데. 너무 많이 마셨어. 잘 마신다고 막 주량 4병 5병 그런 엄청난 주량은 아니니까. 나랑 희세는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물회집 나와서 또 맥주집도 가서 한창 마셨다. 그래서 이렇게 됐다.



“재미있게 사네.”

“이게······ 재미있어 보여?”

“아니 그냥.”



하린이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희세는 밝게 웃으며 말한다. 희세도 술이 적당히 취해서 텐션이 꽤 올라 있는 상태이다. 재미있게 산다니. 아 뭐, 희세는 바쁘겠지. 알바도 많이 하고 나와는 다르게 공부도 열심히 하니까. ······나는 뭐하는 쓰레기냐. 알바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고.



“혼자 여행 왔는데. 이렇게 만나니까 좋다.”

“그러게.”



나도, 막상 이렇게 만나서 삼자대면으로 풀으니까. 뭔가 마음이 후련해진 기분이다. 솔직히 나도, 어느 정도는 희세 걱정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좀, 마음의 정리가 되는 것 같아.”

“마음의 정리?”

“응. 웅도 너 이렇게 하린이랑 잘 지내는 거 보니까. 이제 나 없어도, 잘 사는구나. 홀가분해졌어.”

“신세 많이 졌지. 희세 너한테.”

“응응.”



뭔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네. 하지만 처음 헤어졌을 때처럼 질척질척한 느낌이 아니다. 오히려 산뜻한 청량감마저 느껴지는 담백한 대화.



“가끔 같이 놀아도 됩니까?”

“염치도 없네, 전 여친한테 같이 놀자고 하고?”

“우리 미국식으로 쿨하게 헤어진 거 아닙니까.”

“아핫. 그렇지. 난 지금도 웅도 너랑 노는 거 좋아.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으응.”

“하린이도 재미있고 좋은 아이인 것 같고. 질투하는 것도 귀엽고.”

“아핳. 그런 거 있지.”



꽐라가 되어 비틀비틀 휘청휘청 걷는 하린이를 붙잡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내가 한 손, 희세가 반대편 손 잡고 같이 걷는다. 아예 몸을 못 가누는 건 아닌데 상태가 많이 안 좋은 하린이. 조만간 업고 가야할 거 같은데.



“어쨌든 다들 살아가는구나.”

“그렇지.”



서로 성장했음을, 시간이 흘렀음을 실감하며, 숙소로 숙소로 걸어간다. 그래. 뭐가 어찌됐든, 시간은 흐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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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23.04.19 16:56
    No. 1

    이제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고 같은 방으로 들어가는 그런 막장스러운 전개로 흘러가지 마!!!!!!!!!!!!!!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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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12화.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1 20.04.16 4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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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11화 - 4 +5 20.04.11 55 5 15쪽
328 11화 - 3 +1 20.04.09 56 5 11쪽
327 11화 - 2 20.04.07 57 5 12쪽
326 11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벌써 이렇게 돼 버렸어. +1 20.04.06 54 5 13쪽
» 10화 - 6 +1 20.04.05 45 5 11쪽
324 10화 - 5 +3 20.04.03 49 5 13쪽
323 10화 - 4 +1 20.04.02 43 5 13쪽
322 10화 - 3 +3 20.03.31 54 5 14쪽
321 10화 - 2 20.03.26 58 4 15쪽
320 10화. 나 이제 괜찮아 +3 20.03.20 59 5 13쪽
319 09화 - 5 +3 20.03.16 45 5 11쪽
318 09화 - 4 +1 20.03.14 49 5 13쪽
317 09화 - 3 +1 20.03.12 68 5 16쪽
316 09화 - 2 +1 20.03.10 49 5 12쪽
315 09화. 난 괜찮은걸까. +7 20.03.07 52 5 12쪽
314 08화 - 5 +2 20.03.06 47 4 16쪽
313 08화 - 4 20.02.25 41 3 13쪽
312 08화 - 3 20.02.24 42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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