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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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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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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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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반사 굴절 회절 3

DUMMY

다시 대기.


말짱했던 정신은 다시 무전기 혼탁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교신표를 본다. 30분 후에 3대대. 3대대라는 글자만 봐도 피부로 확 와 닿는다. 그때, 상병 누구누구 입장합니다 하더니 상황병이 들어왔다.


“하달 전문입니다.”

“어디 건데?”

“3대대 전 지역대요.”

“뭐 이렇게 길어.”

“모릅니다. 해조실(해역조립실)서 하달만.”

“상당히 기네...”

“디지털로는 정시에 송신하는데 워낙 안 들어가서.”

“안 들어가는 게 아니라, 받을 상황이 아닌 거야.”

“알겠습니다. 수동 송신 성공하면 반드시 보고해야 합니다.”

“알았어.”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켜 좋은 무전기에선 지독한 잡음만 들린다. 주파수 니미 씹이다 소리가 정병장 목구멍에서 나올 뻔했다. 기다림은 이제 좌절을 위한 준비다. 제 시간에 등장하는 통사는 거의 없다. 무전기가 파손되거나, 이동 중이거나, 수동발전기나 솔라 셀이 나갔거나, 통사가 전사해 보낼 사람이 없다 자체 통신주특기 교환교육으로 장교들이 받기는 하나 워낙 속도도 느리고 장비를 잘 다룰 줄 모른다.


가끔 그런 송신이 들어오곤 하는데, 통신단 무선병들은 금방 느낀다. 처음에 그런 상황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 제대 통신주특기가 모두 전사/실종되었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대타로 나온 장교들은 통신 기초반 뚜드려 맞는 수준으로 들어온다. 마음이 정말 씁쓸하다. 그래도 교신국은 중사 단 통사들이다.


치지지지. 까르릉까르릉. 푹푹푹. 거기에 가끔 보이스 통신까지 간헐적으로 섞인다.


‘어떤 놈들이 이 주파수로 팩스를 보내냐. 어디 노르웨이냐? 빨리 사라져라. 우리 교신시간 오기 전에...’


그 똑같은 주파수를 쓰는 세계 모든 무전기 잡음이 모인다. 선박, 상업통신사 내부 통신도 있다. 많은 분량의 강한 디지털 송신이 같은 주파수에서 일어나면 저출력 모오스 신호 같은 건 금방 잡아먹는다. 모오스가 실을 푸는 거라면 디지털 대용량 송신은 폭 20미터짜리 도로를 공중에 까는 것과 같다.


그로 인해 고통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세계는 이 전쟁과 상관없이 지들 먹고살고 돈 벌기 위해 이것저것 서로 송수신한다. 그래도 가난한 놈들이다. 좀 있는 놈들은 다 극초단파 이상이다. 군대도 아닌 상업회사들도 보안 때문에 파형과 위상을 일그러트리거나 파형을 수학적으로 나누거나 깨트려 섞은 다음 날린다. 둥기화 된 같은 장비가 아니면 위상각이 깨진 신호는 잡음으로 밖에 안 들린다.


북은 우리를 감시하기 위해 밤에 모든 주파수를 돌리며 교신을 캐치하려 하고, 가끔은 위장 통사가 우리 무선병에게 교신을 걸어온다. 미군 특수전은 이미 호환통신기 아니면 수신도 안 되도록 다 바뀌었고 그마저도 위성을 이용한다.


교신 5분전. 정병장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눈 감고 귀만 연다. 3대대. 상황 어떤 건가. 오늘도 혹시나 하다가 역시나...로 끝나는 건 아닌가. 윤상사는 살아 있는가? 김하사는 받아야할 중사도 못 달고 넘어갔을 거다.


얼굴이 낯익게 떠오르는 네 중대 통사들. 또 기억나는 것은 같이 넘어간 지역대 행정병. 여단을 떠나기 전에 7지역대 통사들과 부대 밖에서 오리탕에 소주 한잔 할 때 만났던 정병장보다 1년 느린 짬밥의 행정병. 사령부 상병 얼굴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찌 되었는가. 눈으로 보고 말로 나누고 감정으로 와 닿는 그들. 모두 살아 있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불편하다.


1분 전. 기지무전기라고 전원 빵빵하게 먼저 마구 때릴 수도 없다. 기지국도 이미 저들에게 위치가 일정하게 노출되어 있고, 교신은 최대한 시간을 줄어야 한다. 만약 제공권이 저쪽과 이쪽이 균등하다면 이렇게 산에서 대놓고 고출력 무전기를 쓸 수도 없다. 곧바로 폭격 맞는다. 하늘은 이쪽이 지배하고 있어 이것이 가능하다. 낮에 막사 밖에 나가면 동영상으로나 봤던 한국과 미국 최신형 전투기들을 택배차량처럼 쉽게 볼 수 있다.


30초 전. 역시나로 끝날 마음에 준비를 한다. 슬퍼하지 말자. 너무 기대하지 말자. 하지만 등장했으면 좋겠다. 7지역대가 아니라도 좋다. 제발 나타나라. 3대대 전력이 1/4로 하강했다는 건 안다. 그래도 머나먼 외계와 같은 이 밤하늘 전파로 만나 안부를 묻고 싶다. 그들의 숨소리를 듣고 싶다. 우리가 여기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포기하지 말라고. 곧 아군이 밀고 올라가 당신들은 영웅이 될 거라고 거짓말이라도 하고 싶다. 조금만 더 버티라고.


전건을 잡은 일병이 정병장을 본다. 눈빛은 이미 포기하는 것 같은. 정병장은 주먹으로 면상을 갈기고 싶다. 너 이 녀석아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린 온다고 생각하는 거야. 온다고 믿어야 돼. 이건 피의 절규야. 북한 어느 산골 능선에서 급하게 안테나를 펴고 교신시간에 맞추려는 땀과 피를 생각해라. 그들은 먹지도 못하고 한 손에 총을 잡고 무전기를 조작하고 있다...


교신자가 줄어들어 점차 북한 감청반의 표적이 되는 것 같다. 듣기에 북한에도 차량이 아닌 도수용 감도 좋은 전파 방향탐지기를 가지고 있다는 설을 들었다. 정말 무서운 말이었다. 그 설은 몇 번, 교신 중 갑자기 사라진 통사들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루머일 수도 있다.


정시. 정병장은 시간이 정확한지 시계 초심을 본다. 물론 서로 초까지 정확하지는 않겠지. 침이 넘어간다.


그때였다.

저 혼탁한 잡음 속에서 무언가 정병장 귀를 자극한다.


“스켈치 꺼!”

“들리십니까?”

“꺼보라고. 스피커에 테이프 반만 떼 봐.”

“전 안 들립니다.”

"이 샛끼가 진짜..."


정병장 귀에는 뭔가 감으로 온다. 눈을 감는다.

“있어. 떴어. 잘 들어봐.”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우리 호출부호 날려.”

“안 들립니다."

“일단 날리라고 이 임마. 토 달지 말고.”

일병이 통신단 호출부호를 때린다.


그때였다. 정확한 숫자 호출부호. 정병장은 흥분했다. 일병도 들었다. 호출표를 본다.


“어디야!”

“......”

“어디냐고!”

“7지역대! 지정 통사 정시 등장!”

정병장이 일어섰다.

“비켜! 니가 옆으로 와!”


포커에서 에이스 포커를 잡았을 때? 잭팟이 터졌을 때?


정병장 몸이 떨린다. 숨을 참으면서 타전기로 호출부호를 그쪽에 인식시키고 전문이 있다고 알린다. 정병장은 탁자의 타전기를 잡고 머리는 스피커에 바짝 붙이고 그대로 멈춰 손만 움직인다. 감도는 역시 하나 제로. 들렸다 안 들렸다 한다. 그러나 고참은 그 중간 끊긴 부분을 감으로 부호를 넣어 말을 알아듣는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일병이 정병장 앞에 하달전문을 넣는다.


“안 돼. 보고전문부터 받아야겠어. 언제 끊길지 몰라.”

“하달부터 해야 올바릅니다.”

“아가리 닥쳐. 언제 끊길지 모른다니까.”


정병장은 전문을 보내라는 부호를 재차 송신했다. 그쪽에서는 하달부터 받으려고 생각했다가 그렇게 나오자 잠시 당황한 듯 보였다. 곧 전문을 송신하기 시작했다.


“너 씨발 똑바로 받어.”


정병장도 중간에 타전기로 줄바꿈 신호를 날리면서 똑같이 수신하며 종이에 받아쓴다.


“1열 오탈자?”

“없습니다. 계속... 계속...”

“나도 없다. 계속 간다.”


긴장. 소리는 나지만 나머지는 완전한 적막. 다른 방의 잡음이 전혀 안 들린다. 오직 저 멀리 북에서 날아오는 미약한 신호 하나에 집중. 점차 끊어져 재송이 반복된다.


“3열! 완벽하냐?”

“3열 중간 ㅁㅁㅁ 오탈자 둘! 재송바람!”

“난 하나. 하여간 재송 요청한다!”


전문이 거의 들어왔다. 길지 않다.

“수신 끝! 오탈자?”

“없음.”

“1번 수신자 수신 끝!”

“2번 수신자 수신 끝!”

“어서 하달 날리십쇼!!!”


송신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워낙 기지무전기 출력이 강해서 그쪽에서는 또렷하게 들어간다. 중간에 잘 못 받았으니 거기 다시 보내라는 신호만 들으면 된다. 집중해서 정확히 타전만 하면 된다. 중간에 까르르르... 디지털도 송신이 구름처럼 날아간다. 송신하는 정병장의 눈은 상기되어 번뜩이고 숨은 누르고 눌러서 터질 듯하고, 팔은 정확히 날리려고 힘을 주다보니 평상시보다 속도가 좀 떨어진다.


“송신 끝! 씨벌!”

“하달 송신 끝!”


정병장이 의자 뒤로 몸을 젖히고 숨을 몰아쉰다. 땀이 흘렀다. 땀이. 그 짧은 순간에. 그리고 안도감. 만족감.


“야, 해역실로 바로 전달해.”

“수신전문 해역실로 전달! 긴급 아니었죠?“

“아니라도 그냥 가서 바로 해역 넣으라니까.”

“알았습니다.”

“.... 수고했다. 욕해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정병장님. 기쁩니다.”


아련하다. 담배 피우고 싶다. 그러나 곧 다른 지역대 등장을 기다려야 한다. 7지역대는 대대장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대대 보고가 포함되어 있다. 대대 반은 먹은 거다. 물을 잡아 벌컥 벌컥 들이마시고 다시 시계를 본 뒤에 눈 감고 귀를 연다. 조금 일찍 등장할 수도 있으니 마음 놓으면 안 된다.


그러나... 다른 지역대는 등장하지 않았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혹시나 몰라 계속 대기하다 동이 텄다. 동 튼 것은 명도가 아니라 시계로 안다. 나갈 때 말대로 상병은 동이 틀 무렵 일찍 돌아왔다. 뭐 이렇게 빨리 나오냐고 했지만 정병장은 담배가 땡겨 고마웠다. 정병장은 나오자마자 24시간 비상망으로 갔다.


“X3대대 뜬 거 있냐?”

“X3이요?”

“보라고.”

“하도 복잡하게 여기저기 들어와서.”

“줘봐.”


교신 후 곧바로 기입하는 저쪽 송신자 명단을 본다. 없다. 정병장이 받은 게 유일했다.


‘왜 이러냐. 왜 이러는 거야... 왜...’


정병장은 밖으로 나와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며 담배를 물었다. 그래도 성과가 있어 마음이 들뜬다. 문득... 정병장은, 몇 모금 빨지도 않은 담배를 땅에 던지고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해역실로 향했다. 통신장교가 피곤한 얼굴로 쳐다본다.


“정병장. 여기 들어오면 안 돼.”

“압니다. 그게...”

“나 없을 때 여기 들어왔었지!”

‘네, 죄송합니다.“

“아는 사람이 왜 그래.”

“......”


“정병장... 넘어간 여단에 아는 사람 있어?”

정병장은 말 할 수 없었다.

“그런 거야?”


정병장은 결국 입을 열었다.

“아는 형님이 있습니다. X3에...”

“이거 누설하면 총살이야... 알지?”

“벌을 받아도 그 형님이 너무 궁금합니다.”

“보고 나서 바로 잊어야 돼. 발설하면 진짜로 처벌된다.”

“죄송합니다.”

“나도 알어. 내 임관 동기들 저 위에 한둘이 아냐.”

“보고 나서 바로 잊겠습니다.”

“내 동기 벌써 네 명 죽었다. 니미 울화가 치밀어서.”

"......"


“정병장. 내용 다 그렇고 그런데 그냥 보지 말지.”

“부탁합니다.”

“다 비슷비슷... 해. 힘들어.”

“......”


"지금 교신한 거 알고 싶은 거지?“

“네, 제가 직접 받았습니다.”

“아 그런 거야?”

“이 여단 담당하고 있습니다.”

“휴... 그럼, 그 대대 것만 딱 보고 나가.”

“알겠습니다.”

“상병. 그거 해역 끝났지?”

“... 끝났습니다.”


통신장교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정병장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빨리 보고 나가.”


정병장은 결국 허락을 얻어냈다. 해역병은 정병장이 예전에 부사수로 키우던 전상병이었다. 정병장은 전문을 가진 전상병을 본다. 그런데, 전상병은 마음 급한 병장에게 매우 느린 행동을 취했다.


주기 싫은 것 억지로 주는 것처럼 여러 장의 전문 중에서 하나를 천천히 뺀다. 화가 날 뻔도 했지만, 정병장은 화내지 않고 눈빛으로 어서 달라고 했다. 그런데도 행동이 느리다.


이상한 침묵이 흐른다. 어느 순간, 상병과 병장의 눈이 정면으로 아주 또렷하게 마주쳤다. 상병은 말하고 있었다. 거부의사를. 상병은 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주 미세하게 상병이 머리를 가로 젓고 있었다. 정병장은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세상이 바닥으로 쿵 내려앉는 기분이다.


전상병은 이 여단에 다녀온 얘기를 정병장에게 다 들었다. 상병 눈은 말하고 있었다. 정뱀 보지 마십쇼. 보지 마십쇼. 그냥 가십쇼. 상병 손은 종이를 잡은 채 탁상에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다. 상병의 눈은 부탁이 아니라 인간적인 어떤 애원조에 가까웠다. 해역실 전상병 얼굴은 지난 몇 주 내내 어두웠고, 힘드냐고 누가 물어도 아무 말 하지 않았었다.


정병장은 협박이라도 하듯이 전상병에게 더 가까이 섰다. 통신장교는 이미 읽고도 모르는 척 한 거였다. 결국 종이 든 손을 내미는데, 상병은 탁상에 시선을 떨어트리고 들지 않았다. 방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정병장이 다 읽고, 초점 잃은 눈으로 아주 천천히 돌려줄 때까지도... 발길을 돌려 문 열고 나갈 때까지도...


오전 7시 반. 밖은 여전히 쌀쌀했다.


저 멀리 북쪽을 바라보며 동상처럼 서 있는 정병장을,


누군가 건드렸다.


“정뱀. 식사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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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어떤 이의 꿈 2 20.09.11 668 2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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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사 굴절 회절 3 +1 20.09.09 674 21 14쪽
67 반사 굴절 회절 2 20.09.08 674 22 15쪽
66 반사 굴절 회절 1 +1 20.09.07 739 22 14쪽
65 후미경계조 5 20.09.04 704 28 11쪽
64 후미경계조 4 20.09.03 689 24 9쪽
63 후미경계조 3 20.09.02 701 23 13쪽
62 후미경계조 2 20.09.01 715 22 13쪽
61 후미경계조 1 +5 20.08.31 784 24 11쪽
60 선처럼 가만히 누워 5 +3 20.08.28 798 24 12쪽
59 선처럼 가만히 누워 4 20.08.27 729 24 11쪽
58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20.08.26 732 24 11쪽
57 선처럼 가만히 누워 2 20.08.25 791 20 12쪽
56 선처럼 가만히 누워 1 20.08.24 866 27 11쪽
55 Rain 6 20.08.21 813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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