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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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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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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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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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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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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선처럼 가만히 누워 2

DUMMY

결국 교신은 지령만 받는 형식이 되어버렸다.


지역대 생존자들이 통합되면서 나도 이제 특수전통신의 굴레를 벗어난다고 생각했으나, 본부중대 통신 사수가 퇴출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지역대장은 나에게 지역대 통신을 임시 맡으라고 했다.


나는 ‘생존한’ 각 팀 무전기와 부수지대를 모아 1기는 방수포로 싸서 묻고, 상태 좋은 1.5 세트를 만들어 사령부와 교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역대 역시도 사령부에서는 관심을 기울일 제대 크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의 전과보고는 여단 열 개가 넘는 지역대의 낱개 퍼즐식 전황이었고, 날아오는 전문은 주로 [X2대대 모든 지역대] 수신으로 내려왔다.


우리와 섹터가 붙은 지역대와 연계할 일이 있어 물었다가 충격을 받았다. 자세하게 쓰지 않았으나 옆 지역대는 사령부와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던 것이다. 대대 단위 작계는 물 건너 간 것 같았다. 모두 다 죽었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아무도’는 아니다. 지역대장은 이 사실을 전파하지 말고 보안을 지키라고 했고, 지역대본부만 알고 입을 다물었다.


버릇이 든 대로, 대열 중에 말하는 사람 없고, 말 하고 싶으면 다가가 귓속말로 의사를 전달한다. 모두에게 같았다. 하사도 지역대장 귀에 대고 보고할 수 있었다. 대낮에 아무도 없는데 수기로 대화하는 일이 많아졌다.


작전 초기에 이런 산을 무거운 걸 지고 오를 때는, 거친 호흡의 크기가 화려한 음향 효과처럼 넓었으나 이제는 거친 호흡도 최소한의 엷은 크기로만 나온다. 첫 타격작전에서는 작전 내내, 그리고 은거지로 퇴출해 누워도 숨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것이 반복되자 호흡을 누르는 것이, 호흡이 가빠도 티내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나 전체에게나 좋다는 것을 체감했다. 특히나 팀장급 장교들이 MSS에서 거친 호흡으로 전달사항을 말하는 것은 분명 좋은 것이 아니다. 지휘관이 차분해야 밑에도 그렇게 전파되어 행동한다. 포위된 상황에서도 탈출이 가능할 때는, 지휘관이 흥분하지 않고 탈출이 이미 가능한 기정사실처럼 대범하게 행동할 때다.


휴식은 없다. 적을 완전히 따돌렸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적은 단독군장으로 따라온다. 특수전부대라도 떼로 달려드는 보병은 승패를 떠나 장담할 수 없는 존재다. 추적부대는 둘로 나뉜다. 그냥 힘들거나 시간 지체되면 포기하는 것이 하나이고, 두 번째는 무섭다.


도망치는 입장에서 적이 훈련 잘 되었고 경험 있는 사람들이 거기 섞였거나, 차분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지휘관이 몰고 올 때 많이 다르다. 이 세 가지가 조합으로 갖춰지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성능과 배율 좋은 조준경으로 정확히 쏘는 것을 그들도 두려워한다. 화기 주특기 저격수가 적외선으로 야간에도 정확히 적중시키자, 은연중에 밤에 따라오다 총소리가 나면 은폐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들도 우리에게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냉정하게 표현해서 그저 말뿐이다. 사비로 급하게 구입한 광학장비들은 생각보다 중저가 카피 판이 많았고, 100만원 넘어가는 것이 진짜라는 걸 알게 해준다. 리플리카 제품들은 금방 고장 나고 사소한 충격에 부서지고 거리에 따라 오차가 있었다.


전선의 전체 전황이 적에게 유리해지면 우린 더욱 위험해진다. 정예부대를 투입해 게릴라를 아작 내고 싶어 하니까. 대치 전황이 길어지면 우리도 힘들어진다. 보급은 바닥을 드러내고 적성화기와 병기 탄약에 점차 의존하게 되고, 전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탈해 저하된다. 이 전쟁에서, 이 시간이 지나도록 이곳까지 아군이 아직도 올라오지 않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런 산악에서 전근대식 게릴라전을 펼칠 거라고 예상도 못했고, 지역대 통합작전이 시작될 즈음 전황의 승부는 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좁은 나라에서 전쟁 한 달 추가는 황폐화 그 자체다.


갑자기 대열이 멈춘다. 이유가 뭔지 궁금도 하지만, 나는 비탈길에서 손을 앞으로 뻗어 네 발 달린 짐승처럼 헐떡인다. 만약 이것이 훈련이었다면 나는 이미 퍼졌다.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는 이놈의 무전기와 부수기재. 통신장비 부수기재를 다른 팀원 군장에 맡겼다가, 그 대원에 문제가 생기면서 통신이 불가능해지곤 했다. 한 대원에게 솔라 셀 하나 맡겼다가 교신이 불가능해진 팀도 있었다. 각자 개인 생존에 필요한 실탄과 식량은 훈련처럼 몰아줄 수 없다. 식량이나 실탄을 한 대원에게 몰아주었다가는 통째로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기고, 군장 분배할 때 개인 식량과 탄약은 주지 않아도 챙겨야 한다.


누군가 내 귀에 붙는다.

“루트 변경. 산 반대편에서도 적 징후.”


폭파 사수 오중사였다. 나도 귀로 붙는다.


“후미 경계조가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글쎄요. 좀 떨어진 것 같은데,”

“정수가 있잖아 마.”

“표식을 확실히 하던가, 연락조원이 하나 남아서 끌고 와야죠.”

“지금 작전 무전기도 못 쓰는데...”

“총 쏠 수도 없고.”


[후미가 본대와 떨어졌을 때, 본대는 신호로 총 한 방은 직진, 두 방은 좌회전. 세 방은 우회전 신호다. 총을 쏠 수 있는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진규야...”

“네.”


“너, 본대 후미로 슬슬 밀려서 간 다음에, 본대 마지막이 만약 후미경계조를 신경 안 쓰고 너무 빨리 떠난다고 생각하면, 잠깐이라도 남아서 후미경계조 접촉하던가 좀 그렇게 하고 붙을래?”


“...... 해보겠습니다.”


내 조수는 크게 넘어지면서 어깨가 안 좋은 상태다. 다행히 발이나 다리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괜히 걱정된다. 게릴라는 다리 다치면 죽은 거다.


지역대 내습 직전에 은폐호 첨병 두 명이 정말 길게 잘 끌어 주었다. 둘이 벌어준 3분 정도가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그때 다른 중대장이 급하게 결정했다.


“지금 경계첨병이 올라오면 자연적으로 후미경계가 된다. 보강 2명이 필요하다. 둘이 올라오면 먼저 올려 보내고, 보강 2명이 엄호사격 2분 하고 축차로 서로 엄호하며 올라온다. 그리고 그 넷은 별도 지시 있을 때까지 후미경계다. 이정수! 이수호! 군장 가볍게 하고 저 앞에서 거총하고, 올라오는 경계첨병 엄호사격하고 위로! 쟤들에게 실탄 좀 넘겨! 모두 빨리 움직여!”


내 조수(이정수)가 지명되었다. 토를 달 수 없는 상황이다. 난 조수를 도우려고 군장의 통신기자재를 빼내어 내 것에 넣고 내 실탄 40발을 주었다. 말없이 1~2초 눈을 응시한 것이 전부다. 말할 시간도 없다.


“진규야. 너 정수 꼭 데려온다고 생각해야 돼. 잠시 뒤부터 정상 능선을 무자게 뺄 거 같은데 거리 많이 멀어질 거야. 본대는 능선 빼다가 이때다 싶으면 순간 다른 계곡으로 다이빙한다. 그거 놓치면 후미 못 따라와. 정수는 전술종합 안 해봐서 잘 몰라. 낙오되면 애꿎은 놈 죽는다. 정수가 자대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후미경계조 할 짬밥도 아니야.”


“요해. 알았쓰...”


진규는 군살 하나 없이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인상에 믿음직스럽다. 나와 8개월 정도 차이 나지만 꼬박꼬박 예우를 갖춰주는 후임이다. 뭐 맡겼을 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스타일. 아래위 안중에도 없을 것 같은 건달 행동대장 같이 생긴 녀석이 참 믿을만 하게 정말 잘한다. 이름만 그런 게 아니라 축구선수 김진규랑 정말 똑같이 생겼다. 싸움 나면 절대로 겁 먹는 일 없는 애다.


내가 이렇게 당부하는 이유는, 그동안, 특히 퇴출에서 후미경계조가 가장 많이 피해를 입고 전사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후미경계에서 실종도 많이 나왔다. 후미경계 조장은 유능해야 하나, 전장에서 유능하다고 늦게 죽는 것도 아니다. 총알은 고참 졸병 안 가린다. 후미-경계조장은 본대와의 거리가 얼마나 벌어질지 가늠하고 추격하는 적과 교전하며 시간을 얼마나 끌어야 하는지 감이 있어야 한다.


엄호사격하다 너무 일찍 쫓아가면 본대가 안전하게 거리를 못 벌리고, 너무 늦게 따라가면 본대를 놓치기 쉽다. 보통의 작전에서는 후미가 본대를 잃어도 이미 약정한 장소로 가면 된다. 산에서 작전 내려가기 전에 항상 중대장들이 숙지시킨다. 팀이 분산될 경우, 단독으로 낙오될 경우, 다쳤을 경우 등등의 1-2차 재집결지와 재집결지 암구어, 기다리는 시간 등을 팀원들에게 직접 입으로 반복해 숙지시킨 다음 작전 내려간다.


그러나 지금은 최종 재집결지 격인 은거지가 공격당해 도피탈출 중이다. 모든 지역대원은 작계지역 일대 지도를 거의 암기하고, (실전인 이번에는 거꾸로 그러지 못했으나) 백지를 주어 주요 지형과 작계 목표와 재집결지 등을 그려서 설명하는 시험을 봐서 합격해야 한다. 합격하지 못하면 합격할 때까지 밤새워 외워야 한다. 단독이든 몇 명이든 낙오한 경우는 현 상황을 정확히 보고 판단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본대와 합류할 것인가.


어떤 경우, 한 대원이 지역대를 놓쳤는데, 잠시 판단해 낙오된 장소에서 철저한 위장으로 낮을 맞은 다음, 해 질 무렵 다시 내려가 마지막으로 지역대를 목격한 지점에서 육안으로 찾아가다 나무 표식을 찾아 합류한 경우도 있었다. 그건 똑똑한 거다. 그 대원은 가지를 꺾어 걸어놓은 표식을 하나하나 흔적 제거하면서까지 하면서 따라왔다.


적 입장에서 도망치는 우리 부대는 대단해 보일지 모른다. 게릴라부대가 꼭 훌륭해서는 아니다. 추격하는 쪽이 서너 배는 힘겨운 것이 사실이다.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훨씬 힘들다. 추격하는 쪽은 힘겹게 따라가다 급작스런 매복이나 역공이 공포다. 그걸 후위가 하는 거다.


예전에 보병부대와 대항군으로 점프 후에 추격하고 도피탈출하는 훈련에서 우리는 사실상 잡히게 되어 있었다. 우리 훈련이 아니라 그들의 훈련이고 우린 대항군으로 하달한 작전계획 그대로 수행했다. 그런데 한 중대원이 낙오되면서 (잡혀야 할 걸) 잡히지 않았는데, 결국 최후까지 잡히지 않아 확성기 켜고 나오게 했다.


적당한 크기 산에 동그랗게 보병대대가 포위해서 시작한 훈련인데, 낙오한 대원이 위장을 잘 해서 발견되지 않았고, 특수전 교리에 충실하게 보병의 수색을 관측하면서 - 수색이 끝난 곳만 계속 따라가면서 회피했다. 그럼, 왜 ‘강강술래 손잡고 그물식 수색’에는 걸리지 않았을까.


그건 우리 방식을 몰라서다. 저 길도 없는 저기는 뭐 그냥 가도 괜찮겠지. 저 가기도 불편한 10미터 구간 대충 지나간다고 저기 있겠어? 우린 바로 그런 곳에 숨는다. 대신, 우리더러 다른 여단 추격하라 그러면 쉽게 잡을 것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최근 적의 추격이 매우 끈질기고 예상치 못한 기동으로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북한군 지휘관이 비정규전부대를 경험한 사람이 아닌가 추정했다. 지역대장도 최근 우리를 상대하는 북한군이 상당히 고도화되고 있으니 조심하라 했다.


[절차를 적당히 넘어가지 마라. 피곤하다고 대충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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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반사 굴절 회절 1 +1 20.09.07 738 22 14쪽
65 후미경계조 5 20.09.04 703 28 11쪽
64 후미경계조 4 20.09.03 686 24 9쪽
63 후미경계조 3 20.09.02 699 23 13쪽
62 후미경계조 2 20.09.01 713 22 13쪽
61 후미경계조 1 +5 20.08.31 783 24 11쪽
60 선처럼 가만히 누워 5 +3 20.08.28 794 24 12쪽
59 선처럼 가만히 누워 4 20.08.27 725 24 11쪽
58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20.08.26 728 24 11쪽
» 선처럼 가만히 누워 2 20.08.25 789 20 12쪽
56 선처럼 가만히 누워 1 20.08.24 863 27 11쪽
55 Rain 6 20.08.21 809 24 14쪽
54 Rain 5 20.08.20 755 24 11쪽
53 Rain 4 20.08.19 754 25 12쪽
52 Rain 3 +3 20.08.18 802 26 14쪽
51 Rain 2 20.08.17 861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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