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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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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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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후미경계조 1

DUMMY

대열의 끝에서 선


후미경계조




북한군모를 쓴 사람이 등을 뒤로 기대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러자 디지털 픽셀무늬 벙거지를 쓴 사람도 다른 노래를 흥얼거리다 입을 연다.


“생각해보니까 말야. 가요는 사랑 빼고 대체 뭐 있냐?”

“그럼, 아닌 노래는 서양에 많아.”

“예를 들어봐.”


“영국인가 펑크그룹 중에 Misfits란 밴드의 Brain-eaters란 곡이 있지.”

“그래서 가사가 어떻다는 거야?”


“뇌는 저녁밥을 생각한다, 뇌는 점심 먹을 걸 생각한다. 뇌는 아침밥을 생각한다. 뇌는 브런치도 생각한다. 매 끼니마다 뇌는 먹을 것만 생각한다. 왜 우리 내장은 이보다 좀 작을 수 없는 걸까. 뇌가 아무리 신경 써 봤자 먹은 건 내장에서 썩고 부패한다. 왜 우린 하루에 세 번이나 부패할 염병 먹는 걸 신경 써야 하나. 이 부패의 원흉 내장을 위해 우리 뇌는 복종해야만 하나...... 결국, 먹을 생각에 뇌를 낭비하고 파먹는다는 뜻이야.”


“너 지금 그게 정말로 가사라는 거냐?”

“진짜야. 검색해봐.”

“이 미친. 어디 피씨방 있는 것처럼 말하네.”

“자고로, 노벨상까지 수상하신 밥 딜런은 또 이렇게 말했어.”

“어디서 들어본 새낀데?”

“가수가 부를 것이 결국 사랑 나부랭이 밖에 없는 거냐고.”

“하여간 그 밴드 가사가 틀린 건 아니네.”

“우린 하루 세 끼는커녕. 한 끼라도 배불리 먹고 싶지.”

“많이 줘봤자 곱창에 들어갈 것 같지도 않아.”


“펑크고 좆이고, 넌 뭐 먹고 싶냐?”

“선지 듬뿍 들어간 해장국에 소주, 아, 푹 익은 깍두기.”

“차암 너도 애늙은이야. 난 피자. 양념치킨. 불고기버거.”

“춘천닭갈비에 앙배추 더 넣고 밥 비벼서 그냥...”

“아 진짜 아저씨다 아저씨야. 와 토 나와.”

“그냥 물냉면이나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다.”

“얼음 넣어서 시원하지. 갈증 난다. 진짜.”

“냉면은 영점이 같구나. 특전식량이라도 있었으면.”

“그래 강정 씹고 초콜릿 녹여 먹고 전분 덩어리도.”

“전쟁은 특전식량 전분 덩어리도 야금야금 먹게 하는 거지.”

“신형 전투식량 죽이지. 우린 받도 않했지만.”

“이렇게 높은 산에 뱀도 없다니.”

“뱀이 문제냐. 물이 없어. 산이 머금고 흘리는.”


10월의 마지막 주, 야상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 저물어가는 석양. Y-자로 여러 갈래 가라진 가지 굵은 수풀 중간을 삽으로 파서 만든 잠복호. 둘은 그 갈라진 수풀 사이로 그곳에 오르는 길과 능선을 계속 주시하며 대화한다.


남들이 보면 얼굴 보고 싶지 않은 놈과 억지로 대화하는 것 같지만, 둘은 지역대 은거지를 보호하는 잠복참호에 있다. 대화에 집중하면서도 사방을 계속 훑고 경계한다. 그들만이 그런 게 아니라 대원들 모두 그렇다. 이동하다 정지하면 선두는 30미터 정도 더 나가 앞을 경계하고 후미는 30미터 빽도 해서 엄폐해 경계하고, 본대는 좌우를 경계하며 모든 일을 한다. 원래는 본대도 경계를 좌우측으로 몇 십 미터 내보내는 게 원칙이다.


곧 어둠이 내리면 더 이상은 이렇게 편하게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밤에는 소리가 너무 잘 들린다. 어쩌면 시각이 제 역할을 못하니 소리나 냄새가 더 강하게 접촉되는 걸까? 꽤 강한 바람이 몰아치면서 수풀이 흔들린다. 그러자 둘은 손을 천천히 들어 밖이 수풀을 잘 보이도록 좌우로 헤집는다. 낮에는 태양이 약간 따갑고 밤이면 추운 계절이 왔다. 교대한 직후, 교대절차를 마치고 기본 점검을 끝냈다.


이제 말을 삼가고 수기로 대화해야 한다. 완전히 컴컴해지면 말도 귓속말로 해야 한다. 둘은 완전히 어두워져 벙어리 삼룡이가 되기 전에 시원하게 말을 하고 싶어졌다.


“3중대장 부상 괜찮은 거야?”

“모르겠어. 의무도 뭐가 있어야지. 의무낭 텅텅 비었던데.”

“그 강하던 사람이 대책 없이 누워 신음하는 거 보니 참.”

“바로 후송해야 살었지. 상태가.”

“어디로 후송하냐...”

“게릴라는 그냥 산에서 썩어 자양분으로 돌아가나 봐.”

“그게 타격이 무리였던 거지.”

“난 죽었다고 생각했어. 퇴출 직전에.”

“나도 그래. 언제까지 이러는 거.”

“평양 점령할 때까지 정말 다 끝난 줄 알았는데.”

“팔은 괜찮아?”


“뻐근해. 우리 훈련 때 많이 다치잖아. 사람들은 잘 모르지. 뽀대만 보니까. 제대한 선배들 보면 허리랑 무릎 안 좋은 사람 많더라고. 체력단련하다가도 다치고. 너도 윗몸일으키기 무리하다가 무릎 인대 고생했잖아. 잘 못 먹어서 그런지 이 뻐근한 거 보통 일주일이면 풀리는데, 안 풀려. 역시 잘 먹고 쉬어야 낫는 거야.”


“이팝에 염장무라도 터지도록 먹었으면 좋겠다.”


"6시 정각, 계곡 등반로 이상 무."

"동, 능선로 이상 무."


북한모가 워키토키형 무전기 스켈치를 한 번 길게 누른다. 잠시 후 무전기에서 역시 길게 누르는 잡음이 응답으로 온다.


“오늘은 터지지 마라. 증말.”


벙거지 정찰모가 다소 신중하게 말을 꺼낸다.

“넌 몇 개냐?”

“몇 개라니?”

“그거 말야 새꺄.”

“조준경 고장 나기 전까진 농담이 아니라 18까지 셋는대.”

“난 스물 넘어.”

“무성은?”

“둘.”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어이 신자, 사람 이렇게 죽여도 되는 거야?”

“그럼 니가 죽어. 답이다. 뭔 고민할 꺼리도 아닌 거.”

“......”

“넌 칼로 몇인대?”

손가락 넷을 편다.

“전쟁터에서 사람 죽인 군인은 다 지옥 가냐?”

“뭐 그런 거 물어봐.”

“너 지금 신자니까 그런 거 물어보고, 맘 찜찜하고 그런 거잖아.”

“신자건 아니건 그게 뭐가 달라.”

“다르지 병신아. 난 천당 지옥 안 믿어. 여기가 지옥이야.”

“......”

“너, 교회 다시 갈 수 있겠어? 안 부딛치냐?”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여기서 한 모든 걸 내 지인들이 안다면 난 안 돌아가. 가족도. 그냥 날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싶을 거야. 그래서 미국에 참전자 노숙자들이 많은 거얏 마. 이건 넘어섰어. 내가 예상했던 그 모든 걸 넘어섰어.”


점차 그림자들이 길어지고 어둠이 내린다. 시원한 바람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 차가워진다. 박모가 오는 소리, 익숙하고 차분해진다. 그 차분하고 쌀쌀한 밤이 그들에게 가장 안전한 보호막이다. 그러나 실상 차분하지만은 않다.


그 밤들이 피로 얼룩졌고 내장이 흘렀으며 두개골이 깨졌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다시 그것과 마주한다. 풀고 싶어도 풀리지 않는다. 밤들에 야만과 총질과 칼부림이 있었다. 원시 흉기와 같은 칼을 사람에게 쓰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으나, 이 밤을 벚 삼은 부대는 가장 기본과 같이 그 병기가 쓰이고 있다.


사실, 다수가 하고 싶지 않았다. 쿨러가 팍팍 돌아가는 다연장로켓 부대의 차량 안이라고 해도, 그 로켓의 파괴력으로 사람이 죽는 걸 직접 보면 칼을 쓴 것과 똑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어쩌면 칼로 죽은 시신이 가장 온전하다. 회사가 파산해 가장이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누군가의 간접적인 살인 맞다. 그 인과가 길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가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둘은 그런 인과가 아예 없고 그냥 붙어 있다. 눈을 보고 죽인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고 죄책감도 느끼지만, 상황이 오면 바로 전형적인 말 ‘이 놈이...’를 내뱉으면서, 한다. 하게 된다. 그 말은 ‘내가 너한테 질 것 같냐?’ 그런 뜻도 되고, ‘니가 먼저 죽어라.’ 그런 뜻도 된다. 다른 뜻으로 하면 ‘왜 내 앞에 이렇게 나타나고 지랄이야...’


K-7 실탄이 있을 때는 고민 안 했다. 무선조종 화살촉을 쏜 것처럼 별로 마음에 안 남았다.


총만 해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쏘는 일은 누구나 경험하고, 그 위력과 효과를 보면 인간은 파리 목숨이었다. 그냥 푹푹 쓰러진다. 영화에서는 그렇게 맞고도 몇 시간이면 힘겹게 깨어나는 주인공이 있지만, 전투를 경험하니 주인공은 허상이었다.


총 맞아 죽는 차례도 없고 인과도 없고 보통은 총을 예상하지 못하다 맞고, 완전히 놀라기도 전에 죽는다. 세상의 중심을 자기로 맞춰두었던 사람들이 어이없게 쓰러져 죽는다. 모두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었지만 이 세상이라는 커다란 무대에서는 좆도 아니었던 것이다.


파리였다. 인과도 순서도 없이 순간순간 세상을 하직한다. 총 맞고 박격포탄 맞고, 기관총과 RPG에 맞아 그대로 숨이 멈춘다. 세상의 주인공인 날 보호하려고 발버둥치지만, 시간이 지나자 별로 생각할 가치도 없어 보였고, 상황이 벌어지면 몸은 생각보다 더 빨리 살기 위해 반응했다.


이런 이야기 자체가 동기니까 가능한 것이지, 팀원들과 대화할 때 나약한 말을 하면 불안감만 높아진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오직 작전만 말해야 한다. 언제나 너를 지켜주고, 널 죽이면 싸그리 다 보복해 죽여버리겠다고 말해야 한다. 모두 작건 크건 공포와 불안을 가지고 있다. 신경쇠약증처럼 날카로운 사람도 있다. 그런 불안을 조금씩 동료들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도와주면서 극복하고 하는 거다.


둘은 마지막 박모의 빛을 벚 삼아 천천히 매복 점검을 시작한다. 총. 약실의 총알을 노리쇠 약간 후퇴해 주황색 확인하고 다시 노리쇠 요철이 정확히 물릴 때까지 밀어 넣고, 가진 모든 탄창을 손으로 정확히 짚으면 숫자를 센다.


탄창 1, 탄창 2, 탄창 3...


수류탄 위치를 더듬으며 또한 숫자 세고, 마지막에 대검 위치를 짚어본다. 이러한 예행연습은 위급한 상황에서 놀라온 효과를 발휘한다. 아무리 겁을 먹어도 할 건 하게 된다. 그 널리고 널리던 탄창은 이제 보석과 같다. 작전 중 잃어버린 개수가 계속 늘어나고, 위급한 순간에 교환하다 그냥 바닥으로 제거해 떨어트리면서 까먹어 그냥 사라지곤 했다.


“오늘 밤 올 가능성 몇 %?”

“글쎄. 이틀 전에 우리가 조졌으니 주러 올 때도 됐지. 65%.”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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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반사 굴절 회절 3 +1 20.09.09 675 21 14쪽
67 반사 굴절 회절 2 20.09.08 675 22 15쪽
66 반사 굴절 회절 1 +1 20.09.07 743 22 14쪽
65 후미경계조 5 20.09.04 705 28 11쪽
64 후미경계조 4 20.09.03 691 24 9쪽
63 후미경계조 3 20.09.02 702 23 13쪽
62 후미경계조 2 20.09.01 716 22 13쪽
» 후미경계조 1 +5 20.08.31 786 24 11쪽
60 선처럼 가만히 누워 5 +3 20.08.28 799 24 12쪽
59 선처럼 가만히 누워 4 20.08.27 730 24 11쪽
58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20.08.26 733 24 11쪽
57 선처럼 가만히 누워 2 20.08.25 792 20 12쪽
56 선처럼 가만히 누워 1 20.08.24 869 27 11쪽
55 Rain 6 20.08.21 815 24 14쪽
54 Rain 5 20.08.20 760 24 11쪽
53 Rain 4 20.08.19 759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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