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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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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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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후미경계조 3

DUMMY

밤 10시.

이제 곧 교대자가 올 시간. 둘은 수통 물도 다 마시고 마른 혀를 빨래 비틀 듯 억지로 침을 뽑아 삼키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훈련은 껌이었다. 좀 졸아도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여긴 졸면 죽는다.


침투 한 달. 전술종합으로 숙달된 몸도 체력 바닥을 드러낸다. 모두 10kg은 빠졌다. 이때 쯤 천리행군 남하 들어가나? 그런 건 없다. 전선을 남쪽으로 돌파하는 건 죽음 그 자체다. 차라리 천리행군 복귀라 말하지 말고 적 최전선 후방을 치라는 말이 올바르다.


사령부는 (자력) 복귀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진짜 농담처럼 천리행군으로 복귀하라면 다 죽으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령부에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앉아 있지는 않다. 전선을 관통해 힘을 발휘하려면 적어도 2개 여단 생존자들이 모여 숫자는 되어야 한다. 돌파하다 2/3는 죽을 거다. 태백산 준령 타고 채명신 유격대처럼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군대는 세뇌다. 그리고 세뇌가 군대의 맛이다. 대원들이 버티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그 공포와 죽음을 무릅쓴 역사들이다. 채명신 유격대, Y-유격대, 켈로부대, 북한산 첩보대, 구월산 유격대, 대원들은 그런 걸 읽고 감동 받고 심리적으로 추구한다. 왜? 이유 별 거 없다. 멋있으니까.


고립무원의 적지에서 쌈빡하게 싸우고 먼지처럼 흩어지는 그 명료함. 심지어 빨치산 소설 남부군을 읽어도 카타르시스 쩐다. 그렇게 남들 보기에 자기가 아는 걸 무식하게 추구한다. 평안도 산악에 점프해 들어간 Y-유격대 지대가 로망인 걸 어쩌랴. 그게 진짜 뭔지 모르면서 추구했던 거다. 그리고 ‘추구’는 신이 허락한 그 사람의 방향이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림자. 보이지 않는 움직임. 언제부턴가 숙달된 적. 조용한 그림자.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이상을 느낀 것은 북한군모였다. 아무런 징후도 외관상 음향상 없었다. 그런데 북한모는 느꼈다. 뭔가 있다. 아래는 Y자 형 계곡이 두 개 위로 올라오는데, 나무가 별로 없고 수풀만 무성했다. 그래서 산 생활은 힘들었지만, 적을 간파하는 건 항상 이쪽이었다. 특히 대낮에 올라오는 건 저격을 자처하는 행위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며 다가오는 적이 생겼다. 그때부터 지역대원들은 상대하는 적이 달라졌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틀 전에 추격을 받다 사살한 적을 보고 알았다. 온 몸이 무성처리가 되고 야간정숙보행을 위해 준비된 상태를. 느낌이 전혀 다른 부대였다. 그들은 마크가 딱히 없어 어느 부대인지 몰랐다. 골격이나 몸도 상당히 우수해보였다. 어깨 떡살과 손목을 보면 안다. 마른 몸에 손목이 두터웠다.


북한군모가 벙거지 어깨를 톡톡 친다. 벙거지가 돌아보자 계곡 중 하나를 조용히 손가락으로 지시한다. 벙거지가 으쓱하자, 북한모가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다시 톡톡 쳤다. 소리를 들어봐. 벙거지 표정이 일그러진다. 진짜로, 가을벌레 소리가 사라졌다. 주변을 냉랭하게 만드는 고요. 차디 찬 칼이 뒷목에 다가오는 기분. 소름.


다시 북한모가 다른 계곡의 능선도 지시한다. 뭔가 오고 있다. 도인은 산에 산다. 버스와 자가용과 매장의 큰 댄스곡과 공사장의 굉음을 멀리하면, 자기 핸드폰의 벨 소리조차 멀리하면 귀와 코가 열린다. 그리고 요가로 말해 두정안이 열린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다른 동물이 피부로 와 닿는다. 모든 동물들은 그것이 발달해 목숨을 부지하고 먹이를 찾는다. 안 봐도 죽을 공포와 잡아먹을 군침을 느낀다.


북한모가 20미터 떨어진 자리를 지시한다. 같은 참호에 모여 있으면 둘 다 금방 죽는다. 2차대전 영화의 벙커는 죽음의 관이다. 은폐 엄폐한 호는 시각이 좁아지고 결국 옆통수 뒤통수 맞아 죽는다. 화력이 정말 우세하지 않으면 쏘고 이동하고를 섞어야 한다.


북한모는 20미터 떨어진 곳으로 자기가 가서 동시에 공격한다 말하고 있었다. 한번 쏘면 바로 기동인데, 그때부터 생과 사는 갈린다. 말대로 되지 않는다. 공포로 몸이 얼어버리면 그 자리에서 못 벗어난다. 죽을 줄 알면서 못 벗어난다. 총알을 맞을 수 있다는 공포가 과중되면 손가락만 내밀어도 맞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점차 몸이 움츠러들어 작아진다. 움직이면 죽을 것 같다. 그걸 이겨내야 한다. 뛸 때 뛸 줄 알아야 한다. 맞을 때 맞더라도 과감할 때는 과감해야 한다.


벙거지가 끄덕였다. 단 둘이지만 화점이 두 개가 된다. 그 화점은 이동해야 하고, 올라오는 선두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혀 일단 엄폐하게 해야 한다. 시간을 끌어야 한다. 북한모가 이어폰을 낀 무전기에 스켈치 신호 네 번 연속해서 천천히 누른다. 그러자 곧 위에서 스켈치로 똑같이 네 번 누른다. 칙~~ 칙~~ 칙~~ 칙~~! 죽을 사(死)... 본대는 알아들었다.


북한모가 천천히 일어선다. 그때 벙거지가 북한모의 손을 덥석 잡았다. 벙거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어둠 속 눈. 둘은 이미 알았다. 죽음이 목전에 다달았음을. 이 자리는 적을 간파하고 공격하기는 쉬우나 후퇴기동이 너무 어려운 곳이다. 기동은 등을 적에게 드러내야 한다. 도망가는 대신 위쪽 지역대 본대를 살려야 한다.


자신들이 아닌 다른 지역대원이라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북한모가 보는 벙거지의 눈은 이혼하고 떠나는 어머니를 잡는 세 살 배기 어린애 같다. 혼자는 무섭다. 북한모도 무섭고 벙거지도 무섭다. 죽는 것 이전에 혼자가 무섭다. 꼭 죽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조여 온다. 벙거지가 눈을 떼지 못한다. 어미를 잃고 온 몸이 부러지고 생채기를 입은 시라소니의 눈. 어디라도 기대고 싶은 눈. 세상의 마지막을 보는 듯한 눈.


북한모가 성호를 그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벙거지 이마에 십자가를 눌러 그렸다. 천주교 식으로 십자가 수직선이 길다. 북한모는 벙거지의 손을 잡아 자기 이마로 가져간다. 벙거지의 떨리는 손은 결국 북한모 이마에 십자가를 그었다. 북한모가 동공을 얼음처럼 차갑게 응시하며 손바닥을 선서하듯 든다.


‘우리는 손을 들고 앞으로 나온 사람....’


눈을 고정한 상태로 저 위를 향해 손을 뻗는다.


‘지역대를 살려야 한다...’


엄동설한의 호흡소리가 들린다.


마지막으로 전술을 주고받아 확인한다. 북한모가 왼손 주먹 쥐고 오른손으로 검지와 중지를 구부려 빼는 시늉을 한다. ‘수류탄. 먼저.’ 북한모가 자기 가슴을 치고 방아쇠 당기는 시늉을 한다. ‘내가 먼저 쏜다.’ 손바닥을 땅으로 누른다.


‘기다렸다가, 적이 나에게 집중하면...’

벙거지를 손가락으로 지시하며 방아쇠 당기는 시늉을 한다. ‘나에게 집중될 거야, 그러면 놈들 측면이 들어나기 시작해. 그때 네가 쏴~!’ 다시 방아쇠 당기는 시늉 후에 저 위쪽 나무들을 지시한다. ‘한번 존나 갈기고, 저 위로 기동!’


벙거지가 끄덕였다. 다시 북한모의 손을 잡아 꽉 움켜쥔다. 좀 더 차분해진 벙거지가 북한모를 따라 성호를 그었다. 어깨를 오른쪽부터 대고 잘못 그었다. 북한모가 애처롭게 잡지 말라고 손을 뿌리치고 정식 악수를 내민다. 벙거지는 잡았고 이번에는 북한모가 꽉 움켜쥐었다 논다. 돌아선다.


북한모가 천천히 20미터 거리 튀어나온 곳으로 이동해 거총했다. 올라오는 계곡 길에서 보면 벙거지의 반대편처럼 보인다.


기다린다. 미세하게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정말 왔다. 두정안은 거짓말 안 했다. 북한모가 거총하고 고장 나 떼어버린 조준경 대신 가늠쇠 가늠자를 본다. 반대편 벙거지는 조준경으로 본다. 북한모는 생각한다.


‘첫 탄창은 자동으로 땡겨. 고요를 깨고 완전히 놀라고 압도해야 한다. 똥을 싸게 해야 돼. 세 번에 나눠 자동으로 땡겨. 대신 총구가 안 들리게 가늠자 가늠쇠가 턱에 붙어 고정된 상태에서 양 눈으로 최대한 보면서 갈겨! 자물쇠 자동!’


북한모는 가진 네 개 중에서 남조선제 수류탄 두 개를 앞에 놓고, 하나는 총 밑으로 왼손으로 쥐고 뽑을 준비를 한다. 북조선제는 불안해서 맨 마지막. 좀 더 소음이 들린다. 정말 차분하게 온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의 적이 아니다. 노출된 것도 모르고 오던 놈들이 아니다.


첨병조가 수풀을 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안 보인다. 조준경만 있으면 수풀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단거리 피아 교전에서 조준경은 어느 순간 아무 쓸모 없어진다. 조준이 안 된다. 단거리에서 목표를 찾다보면 식물도감처럼 수풀만 존나게 확대되어 보이고 적을 찾는 게 더 힘들어진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도 까먹고 조준경이 수풀 속에서 헤매다 눈을 떼서 적을 다시 찾아야 한다.


기다린다. 첨병조는 단번에 처리해야 한다. 숙달된 놈들이라면 첨병조와 본대는 좀 떨어져 있다. 그들은 둘을 목격하고 저러는 것이 아니다. 여러 번 당해서 그렇다. 어떤 곳은 그냥 걸어도 된다. 기어야 할 곳을 깨닫지 못하면 죽는다. 올라가는 놈이 상향 등재선이 뚜렷하게 보이면 상대도 하향으로 잘 보인다는 말이다. 여기가 그런 장소다.


준비하던 북한모는 옆이 뜨끔했다. 역시 한 방향이 아니다. 왼쪽 능선에서도 오고 있었다. 살려고 기고 있었다. 근처까지 와서 대기하다 어둠이 내리자 놈들은 기도비닉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상대가 볼까봐, 산 밑에서 꼭꼭 숨어 있었을 거다. 지형이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방자가 전적으로 유리한 지형이다. 그리고 이 산을 더 오르려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아니면 한 시간을 더 투자해 저 능선 아래로 돌아야 한다. 정확한 목진지다.


북한모는 능선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고 있다. 소음이 정확히 들린다. 문제는 시간. 무전기 스켈치로 통보하고 1분 30초는 지났다. 저 위에서는 말없이 난리가 난 것이 눈에 선하다.


벌써 군장은 꾸렸고 선두는 출발하고 있을 거다. 문제는 언제 수류탄을 던지는가. 그 결정. 북한모는 당장 던지고 싶다. 잘못하면 적과 거리가 이격된 상황이 일찍 온다. 그러나 나 살자고 급하게 했다가 상대에게 수류탄과 사격이 아무런 피해도 못 끼치면 어차피 죽어도 결과는 많이 달라진다. 피해를 안 입으면 겁을 덜 먹는다. 어떤 놈이 맞아서 비명을 질러야 효과가 좋다.


‘양쪽에 수류탄 하나씩.’


북한모는 저기 벙거지 쪽을 본다. 녀석도 종종 그를 볼 것 같다. 돌아보는 서로의 두정안은 종종 일치한다. 눈에는 안 보인다. 존재감의 파도만 온다. 서로를 볼 수 있는 건 총구화염 밖에 없다. 북한모가 던지면 벙거지도 곧바로 수류탄을 던진다. 북한모는 엎드려쏴에서 총을 놓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다.

‘제대로 던져야지. 대충 굴리다간 어디 정지한다...’


북한모는 안전핀에 손가락 걸고, 최대한 참으려고 열을 세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넷.... 자신도 모르게 숫자를 천천히 한다.


그리고 열. 안전핀을 뽑고 몸을 최대한 일으켜 능선 쪽으로 던진다. 그리고 재빨리 두 번째 수류탄을 잡고 바로 뽑아 저 밑으로 던지고, 총을 잡았다.


고요 속에 남모를 동요. 그 동요는 상대 단 몇 명만 알았다. 소음이 심해진다. 그리고 기다리던 산천을 뒤흔드는 소리 꽈릉~!! 꽈릉~~!!


적 선두가 있을 거라고 주시하던 방향, 생각하지 않아도 당기는 방아쇠. 세상이 흔들린다. 함마드릴 잡은 것처럼 온통 흔들린다. 질주하는 열차 엔진을 부둥켜안고 있는 것 같다. 빠르게 덜덜덜덜덜. 화약연기가 눈앞에 날리고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깨가 자동으로 덜덜덜. 총이 무한운동 기계처럼 덜덜더리며 잘 나간다. 참고 참으며 검지 감각으로 세 번으로 나누었다. 북한군모는 참고 참았던 입을 드디어 열었다.


“이 새끼들아.... 응? 새끼들아...”


곧 탄창이 끝나고 곧바로 새 걸 결합한다. 공포는 그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이 새끼들... 좆으로 보이냐? 내가 졸로 보이냐? 뒤져라 이것들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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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후미경계조 5 20.09.04 703 28 11쪽
64 후미경계조 4 20.09.03 687 24 9쪽
» 후미경계조 3 20.09.02 700 23 13쪽
62 후미경계조 2 20.09.01 714 22 13쪽
61 후미경계조 1 +5 20.08.31 783 24 11쪽
60 선처럼 가만히 누워 5 +3 20.08.28 795 24 12쪽
59 선처럼 가만히 누워 4 20.08.27 725 24 11쪽
58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20.08.26 728 24 11쪽
57 선처럼 가만히 누워 2 20.08.25 789 20 12쪽
56 선처럼 가만히 누워 1 20.08.24 863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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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Rain 4 20.08.19 754 25 12쪽
52 Rain 3 +3 20.08.18 802 26 14쪽
51 Rain 2 20.08.17 861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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