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새글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03 12:00
연재수 :
369 회
조회수 :
221,266
추천수 :
6,907
글자수 :
2,019,328

작성
20.08.26 12:00
조회
727
추천
24
글자
11쪽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DUMMY

예상대로 능선에 오르자 굉장히 빠른 속도로 빼기 시작한다. 종종 뒤를 돌아보면서 정수가 걱정된다. 정수는 다른 전입하사들에 비해 키가 작고 상체가 부실했다. 다리는 뭐 탄탄한 편이었으나 무언가 조금 부족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도와주었고 1년 고참 오진규는 휴일 날에도 턱걸이 시키고 여단 아무데나 계속 뛰면서 3미터 이상 떨어지면 죽인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훈련시켰다. 정수가 전입 와서 신상을 묻다가 우린 놀랐다. 집이 강남구 서초동이고 아버지는 언론사 부장이었다. 엄마는 놀랍게도 이화여대. 환호성을 지르며 신삥들을 놀리던 지역대 하사들이 갑자기 침묵했다. 한 하사 고참이 ‘차암 이제 우리 엘리트 부대 되어간다 니미 씨펄.’ 중얼거렸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키 작고 평범하고 착한 애였다. 내 통신 부사수.


운동한 거 / 없습니다

태권도 1단도 없어? / 없습니다

아니 뭐 축구라도 / 별로 안 해봤습니다

수영 해? / 못 합니다

강남 애들 수영 안 배워? / 저는 그냥...

뭐 마라톤이나 교내 달리기 선수나... / 없습니다

대학 안 갔어? / 재수하다 들어왔습니다

집은 부자냐? / 좀 그런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매일 우유도 먹었겠네 / 네

떡 많이 치고 놀았냐? / 일진 아닙니다

총각야? / .... 그런 것 같습니다

우유 매일 처먹어서 뼈는 부실하지 않겠다 이 총각귀신 신삥아... 휴.


군대 말로 캄푸라치는 했다.


형제는 / 누나 하나 있습니다

사진 있냐? / 네 있습니다

줘봐 / 지금 드리라는 겁니까?

주기 싫으냐? / 아닙니다


준다고 서초동 가서 니 누나 덮치냐! 이 씨... / 여기 있습니다


이거 하나는 제대로 갖췄네 / 감사합니다

너 일단 지옥에서는 구출되었다 / 감사합니다

하사1 : 아니 내가 감사하다. 서초동 가서 니 누나와 연애할 거니까.

하사2 : 사진 좀 넘겨봐. 이 스크루지 같은 녀석아.


부사관 3년 후배면서 주특기 때문에 갈구고 도와도 주고 했는데, 사람은 괜찮아서 정말 화가 나지는 않는 놈이다. 그러다 이제 실전에 들어왔고, 나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장거리교신하면 옆에서 지켜보게 하고 설명했다. 다마는 잘 돌아가는 편이다.


25명 남은 지역대에서 통신주특기들이 이상하게 피해가 컸다. 타격작전에서 일부러 통신에게 위험한 역할을 한 것도 아니지만 줄어갔다. 무전기는 1.5 세트로 상태가 좋은데,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지역대 통신교관 임중사님은 이미 전사하셨고, 이제 내가 통신 가장 고참이라 일단 지역대 통신을 잡았고, 이정수 하사를 빼면 정수 1년 선배인 하사가 남았으나 1년 지나도 통신에 별로 능통하지 못하다.


교범보다 현지에서 교신하면서 가르치는 것이 최고기에, 여러 모로, 내가 받은 전입하사면서 팀 주특기 조수로 조금 각별했다. 말 금방 알아듣고 기억력도 좋다.


능선이 되자 상하 굴곡은 있지만 수평 길이 상당히 이어지자 나도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무게가 있어 모양은 뛰는 것이지만 한쪽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경보 달리기 속도를 낸다. 힘겨워 총구를 잡고 총을 어깨에 수평으로 걸치고 뛰었다. 거친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산을 수직으로 올라 만난 능선을 우린 이때다 싶어 빼기 시작했다. 능선길 15분이 지나자 고바위에서 거칠어진 호흡이 조금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능선에 도달해 우로 꺾은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빵 빠바방 빵! 총소리가 난다.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본다. 총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순간 뒤에서 뛰던 누군가 날 휙 지나친다. 다시 한 명이 훅 지나쳐 가자 나도 다시 뛴다. 총소리 나자 더 빨리 달린다. 다시 밑으로 푹 빠지는 곳에서 밤눈으로 발 밟을 위치를 빨리 캐치하며 내려가고, 그러다 또 훅 올라간다. 올라가는 발은 그렇게 많이 신경 쓰지 않아도 부상 잘 안 당한다. 내리막이 쥐약이다. 특히 몸이 퍼져서 힘이 널브러져 몸이 출렁거릴 때. 발목 하나 삐끗하면 이 상황에서 상상이 안 온다.


내장이 한줌으로 움츠러들고 속에서 나오는 타액 맛을 오랜만에 씁쓸하게 맛보는데, 그때 갑자기 대열이 능선길 우측 하산으로 들어선다. 기억에, 능선 길을 뛰면서 우측을 내리 뻗은 산줄기 두세 개는 지난 것 같았다. 대표적인 도피전술이다. 내려가는 산줄기 한 다섯 개 지나가면 전혀 다른 명칭의 산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시 그 꺾이는 부분에 서서 잠시 대기했다. 누군가 나타나 툭 치면서 입을 열어 거친 숨과 함께 속삭인다.


“후..... 야, 내가 본대 마지막일 걸. 니가 표식 좀 해.”


듣고 보니 6중대 담당관님이다. 아니, 목소리를 듣기 전에 그림자만 보고도 무의식적으로 깨닫는데 말까지 들린 것이다. 난 눈으로 나무들을 훑어 90도 이하 각이 좁은 가지를 두 개 꺾어 내려가는 곳 능선길 반대편 바닥에 화살표 형식으로 하나 놓고, 다시 능선을 되돌아가 꺾이기 30미터 부근 잘 보이는 나무에 걸고 돌아왔다.


이건 마지막 대원이 뽑아 던지면서 흔적제거하고 와야 한다. 남들은 봐도 아무 의미를 못 느끼겠지만, 이런 짓?을 해 본 놈들은 수상하게 여길 거다. 예전에 보이 스카우트에서 가르치던 것이 게릴라 전술과 정말 똑같다.


분명히 진규는 아직 안 지나갔다. 일단 거총해서 자물쇠 확인하고 조준경으로 산길 멀리부터 훑었다. 아무 움직임이 없다. 좀 기다려야 하나? 저 멀리서 꽈르릉! 큰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큰 폭발이 멀리서 일어난다. 여러 개가 터지기에 소리 하나를 잡고, 숫자를 세서 섬광까지 판단해보니 무척 멀다. 포격이 아니라 야간폭격이다. 대단하다. 이런 컴컴한 밤에 어떤 걸로 때리는 거지? 잘은 모르지만 스마트 폭탄 종류인가 보다.


‘저런 거 하나 하나가 다 억이야. 억. 쩐의 전쟁이지.’


미숙한 정수를 데리고 가고 싶은 이유는 정수가 모르는 전술 때문에 낙오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중대장이 지명할 때 말릴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온다. 은거지에서 교전하며 상향으로 산을 올랐고 오른쪽으로 꺾어 능선길을 탔다.


그리고 다시 계곡을 하나 골라 우로 내려가는데, 그냥 끝까지 하산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하산하다 숨는 게 아니다. 내려다가 다시 결정의 순간이 온다. 지역대장이 결정하는데, 거기서 좌측이나 우측으로 가던 다시 90도를 꺾어 6-8부로 능선을 횡단할 것이 분명했다. 우로 가면 은거지에서 시작해 네모 형태 회귀 기동이 되고, 좌로 넘어가면 기존 은거지에서 점차 멀어지는 기동이 된다. 결론은 지그재그인데 그 선들 중간에 능선을 넣는 거다.


후미경계조의 총소리가 현재 가장 큰 기준이다. 또 다른 기준은 사람이 보기에 저 쪽으로 가면 더 어렵다 힘들다 그것을 택하는 것. 힘들지만 사람이 안 다닌 곳이 더 안전하다.


그런데 하산 길에서 본대가 다시 좌우 90도를 꺾으면 놓치기가 쉽다. 산 밑에서 올라가는 길들은 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르면서 본대를 찾아가기는 쉬운 편이다. 그리고 아래서 시작한 길들은 산 정상이 가까워 옴에 따라 거의 모인다. 대신 위에서 밑으로 내려갈 때는 작아 보이는 길 하나 잘못 들어서면 방향이 마구 갈린다.


어둠 속에서 엄청난 체력소모로 순간 갈라지는 길을 자세히 못 보거나, 혹은 본대와 다른 길로 살짝 갈라질 확률이 높아진다. 산길은 두 개가 갈라질 경우 보통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작다. 그럴 경우 빨리 가다보면 큰길만 보이고 작은 길이 순간 안 보일 수도 있다. 그 살짝 벌어진 것은 내려가면 갈수록 점점 더 벌어지고 다른 계곡으로 내려간다. 그렇다고 모든 방향전환에 완전한 표식을 하는 건 훈련 때나 가능하다.


능선에서 하강길 표식을 본다고 해도 하산 길에서 좌나 우로 넘어갈 때 고참이 아니면 혼동할 가능성이 있었다. 후미경계조에서 정수 혼자 떨어지면 낙오될 확률 80%. 그게 불안하다. 고참이면 아무런 표식이 없어도 갈라지는 길에서 지역대가 어디로 갔을 때 한 60% 정도는 직감으로 맞춘다. 훈련 하다보면 버릇도 이상한 짓거리도 지역대가 좀 비슷해진다. 그리고, 지금 왜 도망가는가 생각하면 기로에서 선택이 좀 분명해진다.


지역대장은 아마도 하산 길에서 어디선가 잠시 멈춰, 후미경계조 상황과 그 아래쪽에서 혹시 올라오는 적 부대 징후를 확인한 후에 결정할 것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만약 저 아래에서까지 적 부대가 올라온다면 그건, 아는 놈이다. 지휘관이 아는 놈이다. 예상진로와 목진지 개념을 대-비정규전에서 설정할 줄 아는...


숨을 고르고 군장을 추스르고 머리 흔들고 최대한 다시 차분히 총을 잡는다.


다시... 능선 저 멀리서 따다당! 총소리. 바로 조준경 돌린다. 이후 몇 번 총소리와 섬광 번쩍. 거리는 모르겠다. 불안하다. 저기서 와야 할 사람이 안 오는 것도 불안하고, 밑에서 멀어지는 지역대 본대도 불안하다. 나 자신의 낙오 확률까지 불안하다. 잠시 호흡 가다듬으면서 지금까지 뛰어온 길과, 머릿속에 암기하고 있는 이 작계 산악의 구조를 떠올린다. 백지 시험 때 그렸던 걸 떠올린다.


‘거기서 올랐고, 우리가 능선을 적어도 35~40분 뛰었고. 그러면 그 산악에서... 어? 다른 면인가? 지역대 작전섹터를 벗어나는 거 같은데?‘


그때였다. 능선 길에서 움직임이 보인다. 거총하고 자물쇠를 푼다. 봐도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르겠다. 잽싸게 길가 나무 옆으로 의탁해 무릎쏴 자세로 기다린다. 군장 때문에 무릎쏴 자세 유지하기도 힘 무척 든다. 거의 나무를 미는 것 같다. 빠르게 기동할 때는 종종 군장을 그냥 그렇게 여기다가, 정지하면 군장을 새삼 느끼면 나를 찍어 누른다.


움직임은 둘. 수풀이 물체와 어우러져 전체 윤곽이 안 보이니 판단이 안 선다. 갑자기 얼굴에서 따뜻하지 않은 땀이 줄줄 흐른다. 땀 터졌네 씨... 이러면 계속 나는데. 힘 떨어지는데.... 물도 없는데.


입을 다물고 코로 호흡하면서 숨을 잡으려 노력한다. 전투 안정호흡이 잘 안 된다. 니미 그건 교실에서나 그렇지.


거리가 가까워진다.


나는 방아쇠에 손을 넣고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거리를 판정하려고 노력한다. 타이밍 잘못되면 아군까리 북한 땅에서 총질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함경도의 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0 어떤 이의 꿈 2 20.09.11 666 23 17쪽
69 어떤 이의 꿈 1 20.09.10 699 27 13쪽
68 반사 굴절 회절 3 +1 20.09.09 672 21 14쪽
67 반사 굴절 회절 2 20.09.08 673 22 15쪽
66 반사 굴절 회절 1 +1 20.09.07 738 22 14쪽
65 후미경계조 5 20.09.04 703 28 11쪽
64 후미경계조 4 20.09.03 686 24 9쪽
63 후미경계조 3 20.09.02 699 23 13쪽
62 후미경계조 2 20.09.01 713 22 13쪽
61 후미경계조 1 +5 20.08.31 783 24 11쪽
60 선처럼 가만히 누워 5 +3 20.08.28 794 24 12쪽
59 선처럼 가만히 누워 4 20.08.27 725 24 11쪽
»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20.08.26 728 24 11쪽
57 선처럼 가만히 누워 2 20.08.25 788 20 12쪽
56 선처럼 가만히 누워 1 20.08.24 863 27 11쪽
55 Rain 6 20.08.21 809 24 14쪽
54 Rain 5 20.08.20 755 24 11쪽
53 Rain 4 20.08.19 754 25 12쪽
52 Rain 3 +3 20.08.18 802 26 14쪽
51 Rain 2 20.08.17 861 24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