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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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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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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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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
13쪽

후미경계조 2

DUMMY

조준경을 가진 벙거지가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 일대를 천천히 스캔한다. 이 장소에서 상대 대비 우선권을 가지려면 나무 하나도 눈에 익혀놔야 한다. 밤에 거기서 누가 시커멓게 서서쏴로 붙으면 두께만 보고도 금방 알아보고 당길 수 있도록. 꼼꼼히 점검을 하고 나서 둘은 또 생각한다.


‘1차 교전, 사격, 기동, 나는 저 나무로, 넘들이 더 올라오면 나무에서 쏘고, 그 다음은 저 둔덕 등재선 옆의 큰 바위 오른쪽으로 뛰어 엎드려 쏴. 그 다음 위로 튄다. 최소 2분 길면 5분. 그 전에 후미경계조가 엄호로 내려와서 사격 시작하면, 우리가 먼저 축차로 위로 뛰고, 우리 군장 찾아서 메고 엄폐한 다음 후미 경계조 올라오는 거 확인하거나 엄호사격하고 나서 후미와 같이 뛴다.’


이 지역대 경계(잠복)참호에서 본진까지는 걸어서 10분 뛰면 5분. 경계초는 적 출현만 없으면 잠만 못 자는 휴식 정도지만, 상황 벌어지면 이 경계참호 둘은 지역대 퇴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모든 기본 점검이 끝나자 총을 거총으로 앞에 눕혀 놓고 다시 등을 기댄다. 혀가 쩍쩍 갈라진다. 북한군모가 마른 침 삼키는 소리를 내자 옆의 벙거지 위장모가 수통을 내밀어 몸을 툭툭 친다. 물이 있었다! 받은 북한군모는 1/3 남은 수통의 물을 딱 두 모금 마시고 돌려준다. 물을 구하기 힘들었던 여러 상황을 남쪽에서도 훈련 때 맞았었고.


어떤 담당관은 그 조그만 수통 마개에 딱 두 번 따라 마시는 걸 봤다. 물이 귀했던 월남 갔다 온 노땅들이 가르쳐준 거란다. 물은 너무 많이 먹어도 탈이고 너무 없어도 탈이다. 특히 여름에 마구 마시면 행군하다 퍼진다. 몸에 염도가 떨어지면서 급격하게 몸이 미친년 치마처럼 몸이 풀어헤쳐져 버리는 건 군인이 되어 한두 번 씩 경험을 했다.


“앞에 하던 말 말야...”

“뭐를...”

“사람이 죄를 짓고 지옥에 가는 거.”

“그만 생각해.”

“아니 이상하게, 나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내 생각에는 말야. 다 그런 생각하는 것 같다.”

“아침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마음이 불안하면 그 마음이 불안한 쪽으로 더 따라가는 거야. 그만해.”

“자꾸 마음이 안 잊혀지고 옛 생각 나고 그러네.”


“준호야. 교회 교회 그러는데, 아무리 그래도 가톨릭 개신교 구분도 안 되냐?”

“구분해서 뭔 차인데? 진규 형은 불교잖아. 잘 지내잖아.”


“차이는 뭐랄까 가톨릭은 좀 지루한 거 맞아. 하여간 말야. 그런 생각 많이 해 나도.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 죽이는 게 나라고 마음에 안 걸리는 줄 아냐? 처음 사람에게 줬을 때, 그 사람이 죽어가는 것까지 느꼈을 때, 난 이틀 동안 뭐가 떠올라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어... 성경과 당연히 충돌하지. 하지만 모든 율법도 사람이 쓴 거야. 우린 그 율법의 서가 없었다면 천국 지옥이라는 개념도 없었어. 율법도 신의 음성을 들었다지만 완벽하게 옮기지 못해. 그러나 많은 진리가 들어 있어. 그래서 난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어. 성경의.”


“뭔데?”

“... 누군가 필요할 때, 제가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가겠습니다.”

“성경에 후미경계조 자원하는 게 나오는 거야?”


“우리가 처한 입장만 생각하면 우리만 이상한 거 맞아. 하지만 이 전쟁은 사사로운 우리 걸 파괴하려는 거였어. 예를 들면 니 어머니가 즐겁게 시장에 가서 무도 사고 파도 사고 저녁에는 너에게 맛있는 된장국을 끓여주시는 거. 그 시장과 집에 포탄이 떨어진다고 생각해봐."


"포탄이 터져서 다 깨진 냄비에서 된장국물이 땅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해보라고. 기분 좆같고 곧바로 대검에 손이 가지? 선하고 열심히 산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거야. 우린 그걸 막으러 온 거고. 전선의 보병들도 그걸 막기 위해 싸우며 죽어가는 것이고. 전선에 포탄 떨어져봐."


"우리보다 덜 끔찍할 것 같아? 보병은 칼로 사람 안 죽여? 우리 상황만 생각하지 말고 왜 우리가 이걸 하는지 한 세 번만 뜻을 깊게 들어가 봐. 답이 있어. 우리는 보다 먼 곳에 손을 들고 앞으로 나온 사람들이야. 입대 전에 사실 누가 군대를 알아? 하지만, 우린 알았든 몰랐든 손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야. 앞서서 막는 사람들이야. 내 말을 믿어볼래?”


“믿겠다.”

“아니 내가 지금 할 말을 믿을 수 있겠냐고.”

“말해 봐.”

“우린 신이 여기 있으라 해서 앞에 선 사람들이야.”

“말이 좋다. 그거 기분도 좋네.”

“그래. 준호야. 오늘 밤 넌 죽지 않아. 내가 알아.”

"그래 좋은 말 들으니 좋구나. 지금 우린 뭐하냐?"

"사람들 끝에서 뒤돌아 막는 사람들. 좋지?"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할게.”

“뭐를?”

“교회나 성당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뭐 해주지 않냐?”

“개신교는 모르겠는데, 종부성사라고 있어.”

“나 죽을 때 그거 해줘.”

“안 죽는다니까. 그리고 그건 성직자가 하는 거야. 난 안 돼.”

“왜 안 돼? 너는 신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이잖아.”

“그게, 규칙... 아니 뭐지? 하여간 신부님만 할 수 있어.”

“신부님이 없는데 숟가락 놓는 사람이 원한다면?”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벗어나는 거야.”

“신부도 신의 대리인이잖아. 너는 신부의 대리인도 안 돼?”

“안 돼.”


“왜?”

“난 씻지 못할 죄가 있어. 나는 냉담 배교도야. 정확히 말해서.”

“무슨 청교도 같은 놈이 배교도 지랄하고 있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무언가 찜찜하게 해결되지 않는 게 있으나, 둘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북한군모가 벙거지 준호를 쳐다본다. 눈빛이 서로 갈등한다. 말을 잘못하면 서로의 고통을 건드리고 상처에 소금을 뿌릴 것 같다. 그래도 말을 해서 조금 편해졌다. 동기. 믿을 사람. 그래도 이런 말이 가능하다. 그러나 오늘 밤을 온전히 넘길지 모를 불안. 하루이틀이 아닌데 벙거지가 자꾸 그런다. 북한모가 하늘을 보다 다시 쳐다본다.


“그럼 너 내 제안을 하나 받을래?”

“너라면 무엇이든 믿고 받겠다.”

“천주교에 고해성사라는 거 알지?”

“죄 고백하는 거?”


“그래. 내가 널 신의 대리인으로 생각하고 너에게 죄를 고백할 테니, 그걸 네가 듣고 받아줘. 그럼 내가 신부님의 대리인이 될게. 네가 죽든 내가 죽든 서로 종부성사를 서로 해주자. 별 거 없어. 그 사람 이마에 십자가 긋고 기도하면 되는 거야. 이 불쌍한 사람을 신이여 받아주소서... 이렇게.”


“내가 너의 비밀을 발설할 일은 없지만, 난 그럴 자격이 없어.”

“니가 좀 전에 왜 안 되냐고 물었잖아.”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난 성경 첫 장 딱 반 읽어봤다. 아직 창조도 안 끝난 상태에서 재미 없다고 덮었어.”


“아니 그렇지 않아. 넌 좀 멍청하지만 나보다 순진무구해.”

“무슨 니미 개구라냐. 내가 순진무구하다구?.”

“그래.”

“이게 욕이야 칭찬이야?”

“어떻게? 해 말어?”

“그럼 해.”


북한군모는 조용히 벙거지 모자의 귀에 대고 약간 길게 속삭였다. 처음에 들린 말은 성사본지 몇 달 되었고 어쩌고 시작했다. 말을 듣던 벙거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북한군모의 말이 끝났다.


“미안하지만 말이야... 넌 그 정도도 죽을죄라고 생각해?”

“큰 죄지. 대죄야. 시달려.”

“죄는 맞을 거야. 헌데 좀 그렇다.”

“받어 말어.”


“받아. 너의 죄를 너의 마음속에서 겁나게 사하노라. 완전히 삭제하는 건 하느님 레벨 같아서 말 못하고. 난 하느님 존안 뵌 적도 없어서. 하여간 뚜까 패기 전에 다시는 그러지는 말지어다.”


“그래. 준호야. 고맙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

“해 봐.”


“그런데 그 종부성사라는 건 신자한테만 할 수 있는 거 아냐? 난 개종까지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아니야.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넌 그 길을 가기 시작하는 거야.”

“무슨 말이야...”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너, 이미, 하느님의 자식이 되었어.”


밀란 쿤테라는 자기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그랬다. 죽음까지 포함하는 어떤 위급한 순간에도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낭만적인 것으로 자기 인생을 미화하며 진짜 믿는다고. 지식인의 한계다. 맞는 말하지만 지식인들은 그런 건가 고백한 꼴이 되었다. 길게 생각하지 않고 앞장 서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목숨도 던졌다. 무식해야 용감하다는 말은 사실 맞다.


그럼, 거꾸로 똑같은 상황에서 안 무식한 놈들을 뭔데? 대가리 써서 살아남았다는 것인가? 인간은 신념을 위해 무식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역사에서 무얼 만들고 깨고 또 만들었다. 밀란 쿤테라는 유식한 노예다. 채찍으로 쳐맞으면서 밤에 여자노예나 건드리는 유식하고 지혜로운 노예다.


지식인이란 자기가 아는 것이 포괄적일 거라는 미명 하에 당당하게 서술하고 권유하는 사람들로, 그 그물에 안 걸리는 사람이 독서하는 사람보다 더 많다는 걸 모른다. 사람은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고, 어느 것이 의미가 있다 없다 판단하는 놈부터 독선이다.


이 총대를 메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더 말하면, 서양은 그래도 갑바가 있다. 귀족 갑부도 자식들을 전쟁터에 내보낸다. 영국 같은 나라는 온 세계를 침략하고 사람들을 죽이고도 신사 어쩌고 포장을 하지만, 그래도, 전쟁이 터졌는데 귀족 젊은이가 입대하지 않으면 어디 비교할 수 없는 수치라고 생각하고, 그 부모부터 어서 나가라고 했다. 귀족이나 귀한 자재들 다니는 유명 사립학교에는 전사한 졸업생들을 돌에 새겨놓았다. 1-2차대전에서 그렇게 서양의 귀족 자제들은 엄청나게 전사했다.


둘은 말단에서 기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고귀하다는 것은 말단에서 기는 사람만 안다. 영국여왕도 똥 산다. 똥은 누가 싸나 더럽다. 밑바닥에서 기었던 사람들의 상아탑 해골탑 위에서 안전하게 비싼 잔을 드는 사람들을 무조건 욕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그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가정이 있어야 강한 토대가 되니까. 억지로 뺏을 수는 없는 게 민주주의고 법이니까.


대신, 흘러가는 돈을 움켜만 쥐지 말고 기부하며 선하고 ‘무식하고 용감했던’ 사람들에게 풀어야 한다. 그 좋다는 미국은 기부가 GNP의 2.2%. 대한민국은 0.16% 대략 열다섯 배 차이. 미국의 한 해 3천 억 달러가 넘는 기부는 80% 정도가 법인이 아닌 개인 기부자들이다.


“난 이정수 그 녀석 마음에 들어.”

“누나가 이뻐서?”

“아니, 집이 부자인 특전용사가 있어야 사회가 균형 있는 거 아냐?”

“좀 특이한 케이스지. 가가.”

“그냥 무사히 제대하고 강남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

“하긴, 사회 선배들 보면 힘들게 살고 깡패 같은 사람도 많아.”

“벤츠에 부대 마크 붙으면 얼마나 멋있냐. 개털 아닌 사람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이쁜 누나는 이정수 통신 사수한테 갈 거다.”

“그래도 난 통신이 아닌 게 다행이다. 빌어먹을 놈아.”

“니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걔 누나는 사수나 오진규 중사한테 간다.”

“이게 종교 철학 이야기하다 날 존나 헐벗게 만드네.”

“그리고 정수는 우직한 오중사님을 더 따른다.”

“병신아, 사수랑 더 친하지. 조중사 캄푸라치 쩔어!”

“아니, 정수는 오중사님에게서 자기에게 없는 걸 보는 거 같애.”

“그게 뭔데.”

“오중사님, 그냥 고잖아. 믿으면 바로 고. 완빤찌 몬스터.”

“하여간 니미 여자도 짬밥 순이야... 짜증 나.”


마지막에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무식하고 용감한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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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반사 굴절 회절 1 +1 20.09.07 738 22 14쪽
65 후미경계조 5 20.09.04 703 28 11쪽
64 후미경계조 4 20.09.03 686 24 9쪽
63 후미경계조 3 20.09.02 699 23 13쪽
» 후미경계조 2 20.09.01 714 22 13쪽
61 후미경계조 1 +5 20.08.31 783 24 11쪽
60 선처럼 가만히 누워 5 +3 20.08.28 795 24 12쪽
59 선처럼 가만히 누워 4 20.08.27 725 24 11쪽
58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20.08.26 728 2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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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선처럼 가만히 누워 1 20.08.24 863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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