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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03 12:00
연재수 :
369 회
조회수 :
221,320
추천수 :
6,907
글자수 :
2,019,328

작성
20.08.27 12:00
조회
725
추천
24
글자
11쪽

선처럼 가만히 누워 4

DUMMY

참고 참다 결국 내 입을 열었다.


“악어! 넷!”


두 번째로 뛰어오던 물체가 뒤에서 약간 큰 소리를 냈다.


“적토마! 여섯이다...”


나는 일어섰고, 손짓을 내리막길로 지시했다. 응답한 놈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 동기 후미경계조장. 난 앞에 오는 놈을 보려고 했다. 허, 정수다. 이 미친놈. 둘은 속도를 늦췄다. 동기 현호가 다시 입을 연다.


“표식 봤어 이 새끼야. 지랄 암구어.”

“이정수 괜찮냐?”

“허... 허... 허... 괜찮습니다.”

“야, 둘 다 숨 좀 고라. 내리막 각도 커.”


문득 이게 무슨 일인가 뒤통수를 친다.

“야, 야! 나머지는?”

“허...... 묻지 마라. 씹새끼들 어떻게 저렇게 쫓아오지?”

“후미경계 둘만 남은 거냐고?”


“개새꺄 어떻게 해. 본대 벌리려고 존나게 버텼다. 목숨 걸고. 우리 중대 이수호 죽었어. 준호는 맞은 거 끌다가... 결국 놓고 왔다. 으이구 니미 진짜. 맘 같아서는 내가 뒤지더라도 돌아가서 확 다 죽여버릴까! 새끼들 정말 악~~착 같이 쫓아와.”


“수호...... 준호......”


“야, 너.... 오진규 못 봤어?”

“진규가 왜!”

“루트 변경되는 거 지나칠까봐 잠시 보고 오라고 했어 내가.”


“어? 못 봤는데?”

“정수, 너도 못 봤어?”

“허... 허.... 못.... 봤습니다.”


고개를 돌려 지나온 저쪽 능선을 바라본다. 어찌 된 거냐 니미. 이게 어디로 간 거야? 짬밥도 되는 놈이 무슨 짓을 한 거야?


“현호, 일단 내려가.”


“너도 내려가. 우리가 마지막이야. 내 뒤에 없어, 없다니까. 진규 내려간 거 착각한 거 아냐?”


염병, 내가 못 본 건가? 아무리 그래도 통과하는 놈이 진규가 아닌지 내가 모르지는 않아! 팀원은 물론 지역대원도 어둠 속에서 윤곽 보면 금방 안다.


“야 너, 능선 올라설 때 표식 봤어?”


“못 봤어. 있어도 못 봤을 거야. 우리 지금 본진이 일루 온지 모르고 여기로 온 거니라니까. 적이 너무 가까워서 일단 피하려고 뛴 거라고.”


“그럼 너 능선 길 만날 때 직각으로 만난 거 아냐?”


“직각 아냐. 지역대 따라 올라오다가, 일단 능선으로 빨리 들어가 거리 벌리려고, 오른쪽에 작은 샛길이 있길래 그리고 올라왔어. 이쪽 방향도 자연적으로 그냥 흘러서 선택한 거고.”


골이 띵했다. 그 꺾이는 곳에서 오진규가.... 오중사가.... 무서운 책임감이 몰려온다.


‘내가 뭔 짓을 한 거냐.’


둘은 급하게 내려가기 시작했고 정수가 사수님 빨리 같이 내려가시죠 했지만 먼저 가라고 했다.


‘저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저지른 일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냐? 진규가 거기서 어느 정도 기다리다가 일단 이리로 오고 있겠지? 아까 총소리 진규 아냐? 시간 흘렀으면... 말이 안 나오네... 5분 이상 흘렀으면.... 포기... 포기하고 그냥 와야지 병신아... 뭐야. 빨리 나타나! 어서! 이 새끼야!!!'


내 마음과 몸은 갈등하고 있었다. 몸은 밑으로 내려가려고 하고, 마음은 능선 길을 보려 한다. 이러다 나도 죽을 수 있다. 그 잘 따라오는 넘들은 분명히 능선 길까지 올라와 추격할 게 뻔하다. 나는 나뭇가지 표식이 있는 30미터 앞까지 나가서 계속 조준경으로 안 보일 거 알면서 훑었다. 나도 가야 한다.


지금 안 내려가면 낙오될 수 있다. 작계작전 끝났고, 이제 차후 은거지는 규정된 게 없다. 지역대장도 재집결지 정하지 못하고 은거지 퇴출명령 내렸다. 나 낙오해서 뭐 산삼 캐는 거냐? 니미 가야 한다. 그런데 진규는? 이 녀석 분명히 능선길 뛰어서 오고 있을 거다.


아련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빨이 악물려 다다다닥 떨린다.


나로부터.... 70미터? 갑자기 탕 타다다다 탕탕 총소리와 섬광이 일었다. 금방 알아들었다. 5.56mm. 그리고 AK와 혼합된 섬광과 총소리 난타전. 그리고 어느 순간 5.56밀리가 사라지고 마지막 AK 갈기는 소리가 들리고 고요가 왔다......


곧 이어, 발소리들이 점차 들리기 시작한다.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정지한 호흡이 다시 가동되려하지 않는다.


능선에 올라서고 나서 들린

세 번의 총소리...

모두 진규였다.


결과적으로 나를,

우리를 살린 거다.


나는,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나무에 걸린 표식 가지를 뽑아

능선 너머 공중으로 힘껏 던졌다.



나는 이방인으로 왔다가

다시 이방인으로 떠나네

소녀는 사랑을 이야기했고

어머니는 결혼도 이야기했지만

지금 온 세상은 음울하고

길은 눈으로 덮여있네


가야 할 길조차도

내 자신이 선택할 수 없으나

그래도 이 어둠 속에서

나는 길을 가야만 하네


나는 들짐승의 발자국을 따라가네


-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안녕히’




잠에서 깨니 밤, 눈 뜨니 별. 야전상의 깃 사이로 내가 싫어하는 찬바람이 가슴까지 스며들어와 슬프게 한다. 몸을 비틀고 싶다. 등에 돌이 배겼다. 오실오실 깨어나니 만취했다가 깨어난 것처럼 사방이 낯설다. 가늘게 뜬 눈이 크게 떠지지 않는다. 피로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쏠라 셀! 휴, 충전 된 건가? 눌러보자. 12볼트가 훌쩍 넘어선다. 오호 몇 시간 안 될 텐데 쏠라 셀이 미쳤나. 시계. 10시, 한 시간 남았어... 정수는 여전히 잔다.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착한 녀석! 대학이나 가지 뭔 도전 하겠다고 여기 들어왔냐. 네 누나 아담하니 예쁘던데 말도 못 꺼내 봤네. 하여간 너, 수고했다.


아차 수리학 안 끝났다. 좀 잤다고 어리버리 해. 어디까지 끝냈지? 후레시 켜고. 보자. 어디까지야? 난수표는? 잠들기 전에 분명 확인했어. 그럼 전문 내용. 이미 (수리학으로) 뺀 건 말고, 뒤에 전문만 살짝 고치자. 잠깐 생존을 하나로 해야 하나? 아니다. 정수까지... 둘이다. 뭐 어때. 내용은 이걸로 종료. 자 집중하고 끝까지 전문 조립. 수리학 구구단 시작!


아직 시간 남고... 눕자. 아는 별자리는 군인이라고 북극성과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저게 다냐? 아니지. 십자성이 있구나. 월남에 갔던 부대 이름 십자성. 뭐 우리 Flying Tigers도 뭐 괜찮지.


별이 있어 좋다. 난 왜 이렇게 추억이 없지? 오늘이 교신 끝! 인지도 모르는데 말야. 제길, 디지털 모듈만 멀쩡했으면 이런 교신 안 해도 되는데. 처음부터 안 되더니 결국 모오스야... 하긴, 가장 안전하긴 하다. 내 전파가 저 남쪽 수백 킬로미터까지 도달해 어떤 기지무전기 수신 회로가 잡아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오늘도 포커 좀 쪼아 볼까? 이럴 때 완빵 한 번에 터지면 안 되겠니? 전원 켜고. 주파수. 내 밤눈이 왜 이래? 음어낭에서 완전히 빼 가까이 봐야겠다. 완전 실눈 만드는구나. 오케이. 5373 굿. 단자를 맞춰. 5... 3... 7... 3... 음... 주파수 개 같을 줄 알았는데 혼신 별로네? 저 찌개 끓는 소리 말고. 이북 감청반 자나? 혼신 넣어야지 뭐해? 오늘도 우리 혼신 배틀 한 번 떠야지? 지난번처럼 오시레타 뚜들겨 봐.


스마트폰 시대에 이게 뭔 지랄이냐. 개전 초기에 적이 통신사 기지국들만 때리지 않았어도 그냥 전문 찍어서 사진으로 전송하면 어땠을까? 아예 전투를 facebook으로 중계하는 거야?


타전기 잡고. 찍찍이로 허벅지 고정하고 누워서 칠까?

제발 한번에 끝냈으면...


좋다. 시작하자.

“***---***---***---. * *** * *** *** **.”


뭐하냐. 없냐?

“* *** * *** *** -*.”


오늘도냐? 우릴 잊었냐? 이런 젠장. 신호가 나와야 뭐 소를 삶든 양을 삶든.

‘-*** -*** -***’


허, 이런. 오, 하느님.

“*---- **--- ***-- ****- *****”

“* *** * *** -*** -***”


허, 신호 정말 또렷하다. 쩐다. 감도 다섯이다. 오케이 전문 날려.


손이 떤다. 숫자 백 개 약간 넘게만 치면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배고파도. 힘이 없어도 이걸 못하랴. 죽어가는 놈도 하겠다. 그래 약간 늦더라도 정확하게... 좋아... 아... 아... 중간 왔다.


“**-*-”

“-***”


오케이. 잘나간다. 누군지 꽤 빠르게 쳐도 재송 안 하고 잘 받네. 8109...569...3...409813425...2234.... 그래. 휴... 끝났다. 잘 받았냐? 그래 고맙다. 수고해라.... 응? 수신전문 있다고? 그래 보내라.


뭐 분당 50자 정도? 좀 빨리 쳐도 돼. 그래 계속 보내. 계속. 기레이. 길지는 않네. 마지막에 숫자 칸 맞춰 보자. 어허, 딱이야. 오탈자 없음. 수신 끝. 이거나 먹어.


“* *** * *** *** -*”


크크크. 따라해 봐.

마지막으로 [송신 끝 수신대기] 부호를 넘이 송신.


휴. 또 뭔 소리가 담겨 있을라나. 눈 침침하고 목도 너무 마르다. 입속에 침도 없어. 물도 없는데. 비나 와야 하늘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지. 눈이 안 보여. 일단 수리표 만들고... 전문 넣고... 또 수리야.


자음과 모음은 나오는데 글자 완성이 몽롱하다. 글자는 나오는 거 같다. 다 끝나간다. 아무래도 뭐 때리라는 거 같은데, 보여줄 지역대장님이 없어서. 하여간 끝까지 해역. 마지막 오탈자는 확인 안 해도 될 것 같다.


분명 한글 나온다.

자음 모음이 규칙적이야. 에이 씨. 또 대대통합 전문. 우리 지역대 이름으로 편지 한 통 그렇게 어렵냐? 우린 지역대란 이름답게 이 지역 야수의 왕이었다. 일대가 공포로 떨었고 드디어 적 정규군까지 마주했다. 돌격여단이라나 뭐라나. 내가 죽어가는 놈에게 담배 하나 물려주고 물어봤거든. 갸들은 개전할 때 못 내려가고 우리 잡으러 왔단다. 내려가지는 못했지만 자기들과 똑같은 놈을 만났지.


아, 무전기를 꺼야지. 배터리를 아껴야 돼. 무전기 수고했다. 더 이상은 못 쓸 것 같구나. 자폭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널 누구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아. 교리상으로는 이거 내가 완전히 부숴야하는데... 그게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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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반사 굴절 회절 2 20.09.08 673 22 15쪽
66 반사 굴절 회절 1 +1 20.09.07 738 22 14쪽
65 후미경계조 5 20.09.04 703 28 11쪽
64 후미경계조 4 20.09.03 687 24 9쪽
63 후미경계조 3 20.09.02 700 23 13쪽
62 후미경계조 2 20.09.01 714 22 13쪽
61 후미경계조 1 +5 20.08.31 783 24 11쪽
60 선처럼 가만히 누워 5 +3 20.08.28 795 24 12쪽
» 선처럼 가만히 누워 4 20.08.27 726 24 11쪽
58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20.08.26 728 24 11쪽
57 선처럼 가만히 누워 2 20.08.25 789 20 12쪽
56 선처럼 가만히 누워 1 20.08.24 863 27 11쪽
55 Rain 6 20.08.21 809 24 14쪽
54 Rain 5 20.08.20 755 24 11쪽
53 Rain 4 20.08.19 754 25 12쪽
52 Rain 3 +3 20.08.18 802 26 14쪽
51 Rain 2 20.08.17 861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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