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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5.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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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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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Rain 6

DUMMY

분명 지체되는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세 명은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맨 앞의 한 명은 산길 앞을 보고 서 있었고, 중간에 한 명 역시 앞을 보고 있으나 쪼그려 있고, 맨 뒤의 한 명은 뒤를 보고 그냥 주저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있었다.


문중사는 작은 나무에 몸을 의탁하고 차분하게 바라본다. 저건 벅차다. 조금 기다렸다가 출발할 때 기회를 보는 것이 올바르다. 그러나 이상하다. 물러서고 싶지 않다. 그냥 돌아가거나 기다릴 일이 아니란 생각이 자꾸 든다. 저건 분명 죽음과 가깝다. 아무리 그래도 훈련된 군인들이다. 특히나 재래식 몸싸움에 약한 놈들이 아니고, 군살이 없어 동작도 상당히 민첩하다.


문중사는 상대 몸집을 보통 살피게 되고, 몸집을 보려면 몸에 걸고 있는 AK 크기에 비한 몸의 대비를 본다. AK가 좀 작게 느껴지면 큰 놈이고, 크게 느껴지면 작은 거다. 98보총 약 940mm. 고민한다. 기다릴까? 체구가 작고 그런 것이 조건은 되지만, 저건 전문적으로 추격하는 대비정규전 부대는 아닐 거다.


어디서 총구를 내리고, 총을 무릎에 놓고 그렇게 대충 걸고 있나. 이 컴컴한 산중에서 누군가 수풀 속에서 지켜본다는 생각을 안 하나? 그래도 경계심이 발동한다. 든 총이 88이 아니라 98보총이었다.


남조선에서 온 빨치산 부대도 산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육감이 이상하면 바로 자세를 멈추고 귀와 코를 연다. 최전선을 뜻하는 북한말 전연에서 개전 일주일 안에 예전과 같은 화선침투하다가는 큰일 난다. 올라오기 전에 새터민에게 들은 바로, 남조선 사람들은 몸에서 고기 기름 냄새가 난다고 한다. 상당히 자극적으로 풍긴다고 했다. 그건, 북한사람들이 고기를 많이 못 먹어서 체내의 차이를 느끼는 거다. 우리가 서양인에게서 치즈 썩는 냄새를 맡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시간까지 생존한 문중사는 그런 거 없다. 낮에 봐도, 문중사가 체구는 컸지만 얼굴은 새카맣게 탔고 몸은 삐쩍 말라버렸다. 말 그대로 현지화되었다. 다만 키가 북한사람 속에서 도드라지기는 할 거다. 오랫동안 고기는커녕 저 북한군들보다 더 굶주렸다.


거꾸로 그들에게서는 시골 사는 할아버지들 냄새 같은 게 난다. 쌀과 야채나 나물만 주로 먹는 시골 냄새, 그리고 담배 향이 강하다. 남쪽에 비해 담배 도수가 무척 높다. 필터 없는 남쪽 사람이 한 모금 빨면 목이 턱 막힐 그런 담배를 피운다. 초반에 무성처리할 때 입에서 그 독한 담배 냄새가 확 풍겨왔었다. 결국 그런 담배도 감사히 피우게 되긴 했다...


방법을 생각한다. 본대와는 이 셋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건가? 거리가 좀 있다고 해도 그래도 길이니 도달하는 건 무척 짧을 것이다. 게다가 먼 거리를 위협할 총이 없다. 할까 말까. 문득 허리 뒤쪽의 수류탄이 잡힌다.


하늘을 본다. 자신이 비겁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 자세히 보면 비겁했다. 남쪽에서는 스냅으로 한방 주고 뒤돌아서는 게 대부분이었다. 뭐가 온 건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잠시 뒤돌아보더니 계속 걸어가다 다리가 풀려 쓰러졌다.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행동하는 걸 문중사는 느낀다. 벨트 밑으로 군복을 빼며 편편하게 하고 컬러를 매만지며 세우고, 군모 밑으로 나온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다.


‘저기 길이 있다...’


어느 순간 문중사는 나가고 있었다. 저벅저벅 걸었다. 몇 미터나 갔을까 그들이 자신을 쳐다본다. 마지막 병사가 총을 잡는다. 주춤 일어선다. 당당하게 걸어간다. 중간 병사가 뒤돌아본다. 그러다 주춤 하더니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약간 숙인다. 5미터 이내로 들어왔을 때 마지막 병사는 일어서서 자세를 고쳐 잡는다. 문중사는 당당히 걸으며 왼손 손가락으로 저 앞을 강하게 몇 번 지시했다. 그의 눈에 앞의 산길은 분명히 자신이 가야할 길이었다. 확연하게 들어온다.


계속 손가락으로 지시한다. 그러자 중간의 병사가 손을 들어 모르겠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흔든다. 계속 가까워져 오고 바로 앞 병사는 완전히 일어났다. 3미터. 2미터. 1미터.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를 벌렸고, 걸개가 손가락 사이에 턱 걸렸다.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앞으로 강하게 지시하면서 오른손은 대검을 돌린다. 순간 주 날이 위로 섰다는 걸 알았다. 실수였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맨 앞 사람의 가슴 오른쪽을 향해 대검을 바깥으로 비틀어 수평으로 바로 지른다. 사회에서 찌르는 것을 '준다' '양쪽에 하나씩 주고 나도 하나 받았다' 하는데, 이렇게 칼을 돌려서 찌를 때 문주환은 '준다'는 말이 꽤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지르자, 헉! 소리와 함께, 예상하지 않았던 비명. ‘어, 어, 어!’ 찔린 친구가 양손으로 문중사의 오른손을 움켜잡는다. 당겼지만 안 빠진다. 두 번째는 무슨 일인지 모르는 가운데 하얀 흰자가 크게 확장된다. 번갈아 보며 다시 당기지만 안 빠진다.


두 번째는 총을 들려고 한다. 결국 대검을 손에서 놓았고. 칼이 수평으로 박힌 몸을 오른손으로 훅 밀어버렸고, 왼손으로 북한 총검을 빼서 바로 앞으로 펜싱처럼 쭈욱 밀었다. 왼쪽 발이 앞으로 나가는 스텝이었기 때문에 거리를 좁히려면 어쩔 수 없었고, 바꿔 쥘 시간도 없었다.


그때 펑! 소리가 나면서 눈앞에 총구섬광이 크게 일었고 갑자기 앞이 안 보였다. 무언가 밀어내는 힘이 있어 주춤했다. 그러나 왼팔은 계속 갔고, 결국 터지지 않을 묵직한 풍선 같은 걸 뚫고 들어간다. 그 긴 것이 끝까지 들어가 왼손이 상대 몸에 닿았고, 그때 다시 섬광 두 방. 문중사는 아무 생각 없이 옆으로 구른다. 북한 총검을 한번 비틀고 싶었지만 실패하며 놓쳤다.


자신이 의도해서 구른 것이 아니다. 더 위에서 빠바바방! 총성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한다. 구른 문중사는 몇 바퀴 몸이 회전하다가 바위에 걸려 정지했다. 앞이 안 보인다. 소리가 안 들린다. 얼굴이 축축하다. 손도 축축하다.


코... 탄내... 여전히 눈앞은 반타블랙(Vanta-black). 소리를 줄여놓은 동영상처럼 작은 음향으로 수풀로 뛰어드는 소리와 뛰는 소리, 고함. 계속 되는 총소리. 손을 등으로 돌려 수류탄을 잡았다. 부들부들 떨린다.


가까운 곳에서 더욱 큰 총소리 빵 빠바방! 배가 쇠파이프 같은 걸 맞은 듯 경직되며 뼈 속 깊은 곳에서 둔감하고 깊은 고통이 온다. 둔감하면서도 아픔의 끝이 무척 예리하다. 수류탄 잡은 양손이 떨린다. 문중사는 깨달았다. 흐느끼고 있는 자신을. 자신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흐 흐 흐 멍청이 같은 울음이 나온다.


몸은 생각보다 고통에 직접적이었다. 예전에 접지에서 어디 좆 같은 데 쳐박아서 비슷하게 몸이 자기가 아닌 남처럼 울었던 기억이 있다. 생각했다. 그래, 주고 받는 거지. 나만 주냐. 언제까지 나만 주겠냐? 아무리 침착하려 해도 몸은 계속 흐느끼고 있다.


‘이상하지 않아. 내가 강한 놈이 아니니까...’


오른손 검지는 계속해서 고리를 찾고 있다. 영원히 못할 행동처럼 뭐가 남의 일처럼 멀어 보인다. 또 총소리와 고함. 그러나 고장 난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처럼 모기 소리.


“너 뉘기니!!!”


까먹었다. 여전히 비... 앞이 안 보이는 얼굴에... 우두두둑 떨어진다. 얼굴을 찡그린다.


'개 같은... 어떤 새끼가 나한테 준 거야? 나도 여기저기 많이 줬지만 기분 정말 화 날라 그러네. 이럴 때 엄마 부르고 그러는 거야? 엄마~~~! 이러는 거야? 안 떠오르는 걸 어떻하냐. 안면인식장애냐? 휴. 무념무상, 안전핀이나 빠져라. 엄마는커녕 욕 밖에 안 나오네. 그냥 셋 다 수류탄으로 죽여버릴 걸... 후회는 없다. 천국 지옥 그런 거 없이 여기서 깨끗하게 완전히 끝났으면 좋겠다. 이제 그만하자.'


고리가 잡힌다. 인상 찡그리며 뽑는다. 그런데 던질 기운이 없다. 안전손잡이는 아직 그립에 뭉쳐 있다.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뼛속 깊이 고통이 오는데, 그 고통이 정확히 어느 부위인지 모른다. 저 10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내 몸이 무언가에 찔리는 기분.


“메야!!!”

“뉘기야!!!”


얼마나 날아가건 말건 위로 만세를 부르듯이 던졌다. 얼마 날아갈 것 같지 않다. 중얼거린다.


‘난 이름이 없어... 병신들아.’


성장한 저 남쪽 사회는 이제 남의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조차 멀어졌다. 남쪽도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야 현실감이 온다. 이젠 아니다. 이곳이 현재 삶이다. 여기는 북한 산중. 그 어떤 문명의 징후도 없다. 문명 없는 곳에서는 비문명적인 것도 야만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아프리카 오지에서는 만도로 사람을 쳐 죽인다. 여기 사는 사람들도 기회가 오면 가축을 때려죽여 먹을 준비가 되어 있다. 오랜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들. 반 이데올로기 세뇌보다 돼지고기 몇 근이면 더 효과적일 것 같다. 도구 없어 때려죽이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곳. 여기서 칼 쓰는 것은 남한처럼 잔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때려 죽여 봐라 칼보다 덜 잔인한가.


문중사는 머리를 둔기로 심하게 맞아 해골이 부풀어 금이 간 상태로 죽은 사람을 보았었다. 잘못 조절된 찜통의 열기에 터진 만두 같았다. 그 사람이 문주환과 같은 배속에서 나온 같은 항렬 유일한 혈육이었다. 이제 나이도 찼겠다 손에 피도 듬뿍 묻혔겠다 살아서 돌아가면 꼭 그거 보복하리라 생각했었다.


삶을 지탱한 힘 중 하나다. 친구라고 해봐야 같이 지원하고 입대한 중학교 동창 하나가 전부. 그리고 동기들? 금이 간 머리는 온화한 미소로 가셨다. 참 이상했다. 어떻게 미소를 지으며 갈 수 있지? 유일하게 혈육으로 느낀 사람. 크리스마스를 유일하게 나눈 사람. 그와의 크리스마스는 기억이 왜 이리 슬퍼? 가난한 크리스마스도 크리스마스였나?


머리가 깨진 사람은 문중사와 똑같이 혹은 더 힘들게 산 사람이다. 염하는데 여름이라 냉동칸에서 꺼내져 스테인레스 침상에 뉘였고, 등이 1자로 얼어 굳었으며, 옷 갈아입히는데 몸이 녹으면서 여섯 개의 인체 구멍에서 온갖 누런 체액이 줄줄 흐르고 똥이 한 무더기 나왔다. 뭘 잡순거유. 이 병신 같은 사람아, 때리는 놈 불알이라도 터트리고 눈깔이라도 파고 죽었어야지! 웃기는 왜 웃냔 말야! 웃는 얼굴에 '깨진' 머리. 지진처럼 길게 금이 간 두개골. '때려죽인' 걸 보니 차라리 칼이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정말 뒤집어진다면 압제에서 해방된 그 폭력성은 상상을 초월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공포를 느끼는 식으로 겁주고 생채기를 내주어야 한다. 고난의 행군 당시 수백 수천의 시체들을 봐왔던 사람들. 하루하루 내다 버리는 시신을 보고 자란 사람들. 그리고 도덕성 털끝만큼도 없는 사악한 기업 마인드로 이들을 통솔하는 족속들. 그러니 성분 좋고 편하게 자랐을 것 같은 정치장교는 마피아 식 모욕으로 시신의 뺨을 꼬집고 침을 뱉고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


아무리 문중사가 힘겹게 자라고, 부유하지 않아도 행복한 가정만 바라보면 저급한 질투심을 느꼈지만, 그런 가정을 깨는 종류건 사람이건 돈 안 받고 처리해줄 수 있었다. 자신은 그러하더라도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하고, 행복하게 자라는 어린이는 그게 깨지지 않도록 지켜주고 싶었다.


특히 어린이.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사는 건 결코 바라지 않으니까. 자기가 봤던 걸 아이들이 보지 않고 자라기를 바랐다. 어린이에게 마구 대하는 사람을 보고 살의를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밤에 CCTV 없는 곳이었다면 아마 질렀을 것이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창출되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들은 행복한 것을 보고 행복한 것만 평생 바라보며 살기를 바랐다.


그리고 크게 봐서 적은, 적이란 존재는, 그리고 전쟁은, 그러한 소시민들의 소소한 행복을 깨는 악이었다. 적에게 가차 없이 지르는 마음의 구분선은, 이것, 딱 하나였다. 그게 문주환 중사가 아는 삶의 가치적 현상 유일한 그거였다. 타인의 소중한 삶의 행복을 깨지 마라......


그것에서 연유한 것이 분명한 대상을 문중사가 보면, 벌써 시큼하고 시릿한 냄새가 자신의 코로 날아왔다. 그러면 곧바로 오른손이 반응한다.


이제 문주환의 오른손은 더 이상 반응할 수 없다.

아무도 볼 수 없었지만, 분명히 그의 마지막 얼굴

에는, 보는 사람 누구나 마음이 나쁠 수 없는 어떤

미소가 스쳐가고 있었다. 미소는 분명 진실했다.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설레는 마음과 함께

언제나 크리스마스 돌아오면 지난 추억을 생각해

거리에는 캐롤송이 울리고 괜스레 바빠지는 발걸음

이름 모를 골목에선 슬픔도 많지만, 소리 없이...

사랑은 내리네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사랑의 느낌과 함께

누구나 크리스마스 돌아오면 따스한 사랑을 찾지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들국화. 또 다시 크리스마스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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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후미경계조 4 20.09.03 685 2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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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후미경계조 2 20.09.01 711 22 13쪽
61 후미경계조 1 +5 20.08.31 782 2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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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20.08.26 725 24 11쪽
57 선처럼 가만히 누워 2 20.08.25 786 20 12쪽
56 선처럼 가만히 누워 1 20.08.24 861 27 11쪽
» Rain 6 20.08.21 808 24 14쪽
54 Rain 5 20.08.20 754 24 11쪽
53 Rain 4 20.08.19 753 25 12쪽
52 Rain 3 +3 20.08.18 801 26 14쪽
51 Rain 2 20.08.17 860 24 14쪽
50 Rain 1 20.08.14 1,062 20 15쪽
49 덤블링 나이프 4 20.08.13 828 2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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