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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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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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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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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어떤 이의 꿈 4

DUMMY

현대전의 대대급 지휘관은 총을 들 필요도 없고 자기 권총 한 방 안 쏘고도 전투에 승리할 수 있다. 어쩌면 그걸 더 잘해야 한다.


편중령의 무의식적인 개념은 현대전과 맞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현대전은 과거에 비해 비겁하고 치졸해졌다. 멀리서 총으로 사람을 죽이고, 손 하나 대지 않고 저 멀리 있는 적을 포로 제압한다. 대신, 이 부대는 보다 재래식이며 피부적이고 장교들도 멀리서 구경할 수가 없는 곳이다. 그것이 편중령에게 잘 맞았는지도 모른다.


어려운 작전을 수행하는 대대원 지역대원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 다치기라도 하면 신뢰하는 대대장을 두고 갈 대대원은 없다. ‘그런 상태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대대원 목숨 걸고 날 부축하게 하는 건 바보 같다.’ 자기로 인해 피해를 가중시키거나 기동을 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전투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우연인지 모르나 동행하는 김중사나 이상병이나 마음이 일치했다. 뒷열에서 구경하는 건 못난 놈들이란 부대 문화도 있다. 여기 문화에서 제대로인 놈은 무조건 앞으로 나간다. 이런 문화. 체육대회에서 선수로 선발되지 않은 사람들은 비선수란 명칭으로 ‘비참’이란 단어까지 맛본다. 대대의 반이 선수다. 대대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열흘 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소식만 들어야 했고, 1지역대가 규합했을 때는 더욱 지켜만 봐야 했다.


어둠을 기다리며 작전을 내려오기 전에, 편중령은 혼자 안 보이는 곳으로 갔다. 호주머니에는 챙겨 왔던 금속제 중령 계급장이 있었다.


‘이것도 숨어 있는 내 공명심인가? 부하들은 죽고 실종되는데 무위도식하면서 대대 규합만 기다리고 있다. 게릴라 대장도 근본적으로 게릴라다. 대대 규합 시 얼마나 병력이 남아 있을까. 난 여기 중령으로 온 게 아니라 게릴라 대장으로 왔다. 대장은 생사고락을 같이 해야 한다. 나도 총을 들어야 하고 산에만 있으면 대장이 아니다. 장수는 뒤에 서는 것이 아니고, 부하들만 위험에 내모는 건 장수의 품위가 아니다. 계급은 의미 없다. 난 나의 길을 가려고 왔다. 그건 과거도 관여되지 않고, 미래도 관여할 수 없다. 총 한 자루와 수통 하나. 계급을 꿈꾸느니 산을 지배하는 장수가 되겠다.’


편중령은 금속제 계급장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 독전(獨戰). 배-수-진.”


어느 베트남전 영화에서 병사가 그랬다. 전투가 독립기념일 폭죽놀이 같다고. 또 누구는 크리스마스트리 같다고도 했다. 6,25 당시 야간폭격을 했던 미군 승무원은 지상의 장면이 그토록 아름다웠다고. 터지는 섬광과 여러 색 예광탄들과 형이상학적인 색채를 대지에 아로새기며 부유하는 조명탄. 그런 것들이 최전선을 따라 줄을 그리며 수놓고 있었다고......


저쪽에서 터지는 섬광과 이쪽에서 부정기적으로 터지는 섬광, 섬광이 터질 때 옛날 사진관 마그네슘이 터지듯 정지동작 한 컷 한 컷들이 각인된다. 저쪽에서 호스로 물을 뿌리듯이 비선형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기관총의 녹색 예광탄들. 예광탄의 줄기는 여 무리를 목표로 하며 비비 꼬이고 흐느적거린다.


김중사 장비가 가장 좋았다. 첫 자대였던 대테러지역대에서 여러 광학장비들을 경험했고, 사격은 그 어느 부대보다 많이 하던 곳이다. 김중사는 사비를 들여 고가 적외선 겸용 광학사이트를 K2에 달고 있다. 김중사는 저격에 가깝다.


몸이 보이면 몸통을 쏘고, 몸이 안 보일 때는 총구섬광을 기다렸다가 몇 발 터질 때 포인트를 섬광 중간에 놓고 단발로 당긴다. 효과는 알 수 없지만, 곧 어떤 자리에서 섬광이 사라지는 건 볼 수 있었다. 편중령 역시 똑같은 벙법 단발로 당기고 있다. 어차피 사격은 오래 가지 않는다. 도피탈출이 시작되면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쏘고 뛰어야 한다. 이상병도 역시 정확하게 쏘려고 노력한다.


목표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날 때까지 총소리는 없었다. 그걸 본 편중령은 대단히 자랑스러웠다. ‘은밀’이 통한 거다. 1지역대가 잘한 거다. 그런데 조별로 교신하는 소형 작전무전기 교신음이 들렸다.


[첨병조 1명 부상. 조력하며 가고 있다.]

[타격조 1명 전사. 2명 부상. 조력하며 퇴출 중.]


[여기는 지휘지원조. 각 조, 잠시 멈춰 귀 기울여 들어... 지원조는 뒤로 후진해 산악 쪽 통로 개척해 대기 중이다. 산악 쪽, 마을 북동쪽 끝 방향에 자리 잡았다. 자주색 퇴출 신호탄을 올리겠다. 자주색보다 훨씬 왼쪽에 한 명이 나가서 위장 신호탄을 녹색으로 올릴 거다. 반복한다. 녹색은 구라. 자주색이 퇴출점이다. 자주색에서 엄호사격 대기 중이다. 그 방향으로 퇴출하라. 여기서 산으로 들어간다. 지휘지원조는 넓게 화망을 구성해 엄호사격한다. 접수?]


[접수.]

[완료.]


[신호탄 지점을 기억하고. 대충 그 지점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산으로 들어가면서 점사로 세 발 갈겨라. 그 전에라도 교전 섬광이 보이면 우리가 쏘기 시작한다. 산으로 들어가면 첨병조와 타격조는 무전으로 보고하라. 그 이후는 3분간 엄호사격하고 우리도 뛴다. 듣고 있는 브라보장조는 퇴출 시작해도 좋다.]


이 소리를 듣고, 세 명은 신호탄이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매혹적인 purple이 하늘에 아롱진다. 셋은 그 방향 능선으로 뛰었다. 목표에선 연쇄폭발이 일어나고 화재가 나서 하늘가를 비춘다. 셋은 지휘지원조 부근 능선으로 가서, 나무 없고 시야가 트인 곳을 물색했다. 김중사가 한 지점을 지목하는데 편중령이 봐도 자리가 좋았다. 편중령이 둘을 모았다.


“한두 군데 트인 곳을 더 찾자. 한 곳에서 오래 쏘면 적 사격이 몰린다. 우리가 사격 시작하면 한 탄창 쏘고 나서 자리를 이동해서 계속 쏜다. 김중사 장비가 좋으니까 정확히 쏴서 대상을 완전히 보내. 내일 아침 날이 밝았을 때 쓰러진 적 숫자가 많아야 저들에게 충격을 준다.”


비정규전 원칙 중 하나다. 적을 많이 죽이면 적이 화가 나서 더 병력을 끌어다 추격할 것이고 그럼 편중령의 대대와 1지역대는 더욱 위험해진다. 그러나 교리는 그러라고 하는 것이다. [최대한 적을 우리에게 집중시켜 실 전투병력을 끌어오게 해서 제2전선이 형성되도록 하라.] 그러면 최전선으로 갈 병력이 지체되고 물자도 지체되며 아군에 도움이 된다. 비정규전부대 앞에 대규모 정규 전투부대가 나타나 위험해지면 최전선은 아군에게 약간이라도 유리해진다.


“정리한다. 한 탄창 후 이동. 정확히 단발로 저격. 저 정도 규모면 적도 분명히 조준경 저격수 있다. 적외선은 없을 거야. 지휘지원조 퇴출 징후가 보이면 우리도 2분간 쏘고 퇴출한다. 우리 셋의 퇴출신호는 내가 던지는 수류탄이다. 터진 직후에 (적의 귀가 멍멍할 때) 내가 고함을 지르겠다.”


이렇게 브라보장조의 엄호작전은 시작되었다.


상황은 점차 힘들어지고 복잡해졌다.

[타격조 부상 1명 추가. 합이 2. 퇴출 속도 느림.]

[첨병조 부상 1 추가. 위험하지만 신호탄 다시 한 번만.]

[마을 끝으로 길을 따라 오다 보면, 좆같은 소련 마크 같은 거 그린 큰 창고가 보인다. 거기서 산길을 찾아라. 이상.]


[지휘조 섬광이 가까우면 식별 고함 지른다. 전파하라.]


피아 식별 구령은 지역대의 일반명칭 ‘살모사’. 이걸로 암구어를 당하면 자기 소속중대 일반명칭으로 답하면 되고, 산중 은밀한 곳에 도달하면 숫자 암구어 오늘 밤 8이다.


가장 규모가 큰? 첨병조와 타격조 퇴출이 늦어지고 있다. 3킬로미터를 교전하면서 뛰어야 한다. 무전이 전부가 아니다. 그동안 지역대장이 지켜본 바로 최종 전사나 실종은 무전에서 다 나타나지 않고, 은거지로 복귀한 다음 종합된다.


무전기로 보고한 사람은 대부분 끌고 오지만, 보고가 안 된 것은 그 조 조장과 부조장이 모른다는 뜻이다. 차후가 더 문제다. 조금만 지나면 이제 미군이 경험한 현대전의 가장 큰 문제인 배터리가 떨어져서 소형 작전무전기를 못 쓸 상황이 도래한다.


목표에서 편중령이 있는 쪽으로 선, 그 선 폭이 한 200미터로 총구섬광들이 터지면서 이어지고 있다. 조준경으로 지켜보는 세 명은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저쪽에서 무리의 총구섬광이 점차 다가오고 있고, 그건 적이다.


그 일직선에서 종종 터지면서 중령 쪽으로 다가오는 섬광은 1지역대원들이다. 뛰다가 후미경계 대원들이 쏘고 뛰따라 가고를 반복하고 있다. 두 섬광 무리는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다. 추격하는 적의 섬광은 개수가 아무리 봐도 너무 많다. 기를 쓰고 달려들고 있는 게 느껴진다. 중령이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석환이. 거리 얼마로 보여? 적.”

“현재 보기에 한 600? 지금은 쏴도 안 맞습니다.”

“중현아. 그래도 넌 K2니까 김중사가 쏘면 시작해.”

“네.”


“영점 잡는다고 생각하고 정확히 섬광 중심에 넣어 봐.”

“알겠습니다. 휴.”


“김중사가 200 안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말해. 그때부터 나도 (K1) 쏜다. 그리고 내가 무전기로 지휘지원조에 말을 해야지. 안 그러면 아군끼리 오발한다.”


“지역대원들이 총소리 구경 들으면 알 걸요. 지휘지원조는 놀라겠지만, 퇴출하는 공격조는 우리를 지원조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지. 옳아.”


“퇴출 때는 역입니다. 이상병. 대대장님. 후미가 접니다.”

“오케이.”

“퇴출 너무 늦게 시작하면 쓰리(작전장교)에게 저만 혼납니다. 위험하구요.”

“알았어.”


간헐적으로 터지는 퇴출하는 섬광과 추격하는 다수의 섬광은 다가왔고, 이런 상황에서 쏘지 못하고 기다리는 건 정말 답답했다. 야간에 화점을 노출하는 것은 최대한 참아야 했다. 아마도 이쪽의 첫 총성은 지휘지원조의 화기 저격수일 것 같았다. 북으로 오기 전에 정찰대에서 쓰던 진짜 저격총이 상당히 좋은 광학 사이트가 달린 채로 넘어왔는데, 실탄이 너무 부족하다. 그건 수입해야 할 실탄이었다.


지휘지원조나 대대장조나 모두 불안하다. 지휘지원조는 셋 위치 저 아래 자리를 잡았다. 만약 모든 것이 어그러지면 지역대장은 결정해야 한다. 총체적 위기에 몰리면 지역대장은 빨강과 노란색 신호탄을 연달아 올리게 되고, 그러면 그건 [360도 분산탈출] 선언이다.


그럴 경우, 공격 2개조는 180도 다른 방향으로 도주가 시작되고, 지휘지원조는 적의 시선을 끌기 위해 강력한 자동사격을 퍼붓고 나서 산으로 튈 것이다. 분산탈출은 적의 추격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혼동하도록 하는 것으로, 신호를 본 조장은 무조건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구라’ 기동을 한번 치고 역방향으로 도주하게 되어 있다.


그 빨강 노랑 조합을 지역대원들은 이해하기 쉽게 ‘빨(발)노(러)!’라고 표현한다. 명석한 조장들은, 만약 분산탈출이 선언되었는데 어떤 한 조가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으면 일부러 다가가 총질해서 시선을 유도한 다음 튄다. 이럴 경우 대원들은 1차 재집결지를 생략하고 차후 유보계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일대 지형을 지도가 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암기했다.


옛날, 안기부에 추적당하던 간첩들의 최후의 방법이 북한산이었다. 북한산부터 휴전선까지 이어지는 산과 능선을 모두 암기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만 들어가면 산다고 생각했다. 방송 프로그램에도 나왔지만, 산은 생각보다 판단이 쉽지 않아서, 중간중간 바위에 간첩들이 백묵이나 페인트로 방향을 요상한 암호로 표기해놓았다.


이들에 대한 추격은 야밤에 불가능하다. 김신조 이후로 지휘관은 발견장소를 지도에 찍고, 시간당 최소 12km를 차량으로 달려서 차단해야 한다. 그중에서 고개나 6-8부를 통과하는 도로가 최적이며, 거기까지 달려서 재빨리 하차한 다음 매복을 까는 것이다. 그래도 잡기 힘들다. 그만큼 도주하는 놈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형사가 범인을 추적할 때도 뒤만 쫓아서는, 살고자 하는 주력을 감당하기 힘들다.


셋이 견고한 사격자세로 기다리는데, 무전기는 헐떡이는 아우성이 뒤섞이고, 드디어 지휘지원조 저격수가 쏘기 시작했다. 그 총소리는 아마도 M1 그랜드 정도로 봐야 하는데, 누가 들어도 강하고 AK와는 소리가 다르다. 정확한 조준사격, 15초에 한 발 정도?


[여기 타격. 개가 가까이 붙었다. 조장 피탄.]

[송신자! 조장이야?]

[허... 맞다. 내가 맞았다는 뜻.]

[여기 첨병. 부상자 후송이 지체. 엄호사격 바람.]

[위치!]

[큰 창고 보인다. 그림은 컴컴해서...]

[첨병조, 앞에 보고에서 이상 없나?]


말이 잠시 쉰다...


[... 1명 피탄... 후송 불가능... 몰핀 때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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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어떤 이의 꿈 1 20.09.10 704 27 13쪽
68 반사 굴절 회절 3 +1 20.09.09 677 21 14쪽
67 반사 굴절 회절 2 20.09.08 676 22 15쪽
66 반사 굴절 회절 1 +1 20.09.07 743 22 14쪽
65 후미경계조 5 20.09.04 707 28 11쪽
64 후미경계조 4 20.09.03 691 24 9쪽
63 후미경계조 3 20.09.02 703 23 13쪽
62 후미경계조 2 20.09.01 716 22 13쪽
61 후미경계조 1 +5 20.08.31 786 2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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