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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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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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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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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For Anarchy in DPRK 4

DUMMY

For Anarchy in DPRK





한명구는 멀어진 팀원들을 생각하고, 곧바로 재집결지를 떠올리며 라이자를 잡는다.


누군가 궁금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일까. 몰래 가져온 구형 대검을 본다. 세상 모든 것보다 밝게 빛나도록 공들여 갈았다. 계속 좌우 균형을 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갈았다. 카키색 구명조끼에 대고 몇 번 쓱싹인다. 사람에게 던지면 오물이 묻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티끌 하나 묻는 것이 싫다.


전생이 고대 전사인가? 이 빛나는 걸 빼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자꾸 닦고 싶어진다. 나중에 니뽄도 장검을 하나 구입해 화선지 입에 물며 닦고 싶다. 태평양전쟁을 떠올리면 원하는 건 그거 하나다. 일본제국군 장교가 가진 고가의 니뽄도 장검을 손에 넣고 싶다.


‘단검으로 일본장군을 담그고... 장검을 음...’


궁금하다. 이것이 날아가 사람 몸에 박힐 때 던진 자나 맞은 자나 기분은 어떨까. 던질 기회나 있어? 진짜 사람에게 던져도 돼? 사부는 그랬다. 연습은 나무판에 해서 턱턱 딩딩딩 거리지만, 사람에게 적중되면 두부에 박히듯 아무 소리도 안 나면서 푹 꼽힐 거라고. 늑골에만 안 걸리면 인체가 훨씬 잘 들어간다고. 해골 뒤통수에도 박힐 수 있다고. 지금까지 투검은 난이도 있는 정신일도 스포츠였다.


사부의 사부는 정말 썼다던데, 과연 할 수 있을까. 바다... 육지와 바다의 구분도 없이 컴컴하지만, 흘수선을 찰랑이는 물이 별빛을 반사해 바다는 자기 신분을 밝힌다. 흔들리는 선체와 윙윙거리는 엔진소리. 바닷내... 숨을 깊게 들이킨다.


다시 어두운 바다를 본다. 진수까지 여섯 시간 남았다. 모두 쪽잠을 청하고 있지만 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바다를 본다. 진짜 전쟁? 전투? 내가 총으로 사람 쏴 죽여? 자신에게 약속한다.


‘어설프고 비겁하게 생존하지는 말자. 저 어린 것들에게 미루지 말자. 그 순간 난 그 모든 게 제로로 돌아간다. 존재하나마나한 인간이 되는 거다. 내 인생에 대한 진짜 배신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나. 인생은 뭐야. 인생이란 단어는 어떤 놈이 굳이 만들어서 사람 고민하게 만드나. 어떤 개 같은 놈이 인생이란 단어를 만들어서 꼭 인간이 뭘 이뤄야한다는 압박한다. 어차피 대부분은 꿈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자식에게 절대로 꿈을 꾸어라 말하지 않았다.


계속 아무 말 안 했더니 아내와 자식이 떠났다. 뭐라도 떠들어야 했던가? 앞대도 뒤 세대도 인생 모두 그럭저럭 이렇게 흐르는 것인가.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자신에게는 전혀 시간이 없는 것처럼 - 오늘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살라. 자신에게 부여되는 시간을 뜻하지 않은 선물처럼 생각하라고. 살아?


산다... 담배를 꺼내려고 포켓을 더듬다 깨달았다. 모든 마크를 제거하라고 했는데, 인생이 남은 거라고 이 하나, 언젠간 떼어야지 하다가 남겨둔 것. 당신 누구냐고 물을 때 대답하기 가장 편리했던 그것. 마지막으로 원사 계급장을 떼어 LST 갑판 저 멀리 던진다.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너무 나도, 그리운 사람...’



헬기는 바다를 향해 들어갔다가 유턴했다. 수송기는 방향전환이 사람 느끼기에 뭉뚝하지만 헬기는 1차적 물리로 온다. 수송기보다 더 직접적으로 밀린다. 한동안 길게 턴을 한 헬기가 다시 직선으로 날기 시작했다.


한두 번 약간의 턴이 있고 목표로 향할 거다. 조종석 중간에 있던 중대장이 뒤로 고개를 돌렸고, 팀원들은 중대장 표정을 주시한다. 중대장 검은 얼굴에 배시시 미소가 흐른다. 이제 북한 땅으로 들어간다는 거다.


그 미소는 돌이킬 수 없는 편도 티켓. 돌아오는 표는 없다. 누구나 안다. 모르는 게 미친놈이다. 엔진은 머리 위에서 폭주하고 격렬하게 흔들리는 헬기 안. 내-외부등 끄고 조종석 계기등만으로 서로를 알아본다. 앞에 앉은 김영생 중위의 검게 위장한 얼굴에 빨강과 흰색 계기등이 점처럼 날아와 박힌다. 몇 차례 야간강습 예행훈련을 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아나. 김중위가 문득 껌을 꺼내서 나눠준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굉음 때문에 잘 안 들렸고, 그러자 김중위가 추중사를 향해 몸을 다가가 군장에 의탁해 말한다.


“뭐라도 씹는 게 인간의 긴장해소에 좋다고 전투 심리학에 나와.”


추원배 중사가 듣고 응답한다.


“난 두 개!”


“왜!!!”


“9회말 2사 만루 1점 차, 마무리 투수!”


‘아하하.“


“앞에 이승엽이 이따만 배트를 들고 있고.”


잠시 생각하던 김중위가 소리쳤다.


“몸을 돌려서, 감독 면상에 강속구를 날려!”


그 말에 추중사 신중사 박하사가 하얗게 웃는다.


“짬밥 거꾸로 드셨나!”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저 아래 낮은 곳에서 펑펑 펑펑펑 소리가 울린다. 모든 대원이 창밖으로 아래를 내다보고 승무원이 기관총을 만지면서 중얼거린다.


“징그러운 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빙고!”



2중대는 노젓기를 멈췄다. 2중대가 아니라 2중대 일곱 명. 사방은 고요하고 중심 바다 물살이 네스 호의 괴물처럼 스르륵 꼬르륵 밀고 돈다. 중대장은 다시 GPS 찍고 나침반을 본다. 턱이 떨린다. 비명을 지를 뻔했다. 분명 동쪽을 수직으로 보고 가장 가까운 해안을 향해 한 시간은 저었건만, GPS 좌표로 보니 오히려 남서쪽으로 3km 이상 밀렸다. 몸으로 느꼈던 추진력은 구라였다. 중대장은 아무 행동도 안 하고 GPS를 연신 찍으며 계속 수정해야 했음을 깨닫는다.


‘이게 뭐지? 대체 뭐야...’


LST는 사라진지 오래고 2파로 진수된 4중대와 본부를 본 기억도 이미 저 너머로 사라졌다. 바닥을 보니 물이 찬다. 고무보트 바닥에 15cm 차서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물이 차는 속도가 문제다. 노를 저으면서 본인이 플라스틱 바가지로 계속 퍼냈지만 여전히 물은 똑같다. 낮아졌다고 생각해 잠시 방향정치에 신경 쓰다보면 또 차 있다. 해안까지 이제 5km. 아무 무전기도 응답하지 않는다.


“중대장님....”


물이 점차 들어 차, 자신을 부른 중대원 허벅지 중간까지 차 온다.


그때였다. 저~~~ 아주 먼 곳에서 미세하게 총소리가 들린다. 일곱 명 모두 해안이 어디인지 알았다. 중대장은 손목시계를 본다. 거리. 시간. 해안. 눈 흰자만 보이는 대원 여섯 명이 고개를 돌려 중대장을 응시한다. 노젓기를 중단하니 보트가 계속 돌아간다. 총소리 나는 곳이 보트 선미였다가 선수였다가를 반복한다. 정지해 보니 밀리는 속도가 엄청나다. 다시 보트 바닥을 본다. 중대장 팔이 떨린다.


“중대장님...”


중대장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숨이 멎는다. 모두 노를 젓느라 힘이 빠질 대로 빠졌고 지칠 대로 지쳤다. 훈련은 장난이다. 엄청난 추가 장비와 작계군장을 중간에 놓고 젓는 보트는 돌덩어리. 그리고 이건 노 젓기 보트가 아니라 선수가 45도 위로 선 무거운 모터장착용 보트. 페달링 보트보다 더 무겁고 노를 저어도 잘 안 나간다.


야시경을 내려 총소리 난 곳을 본다.


땅인지 뭔지 안 보인다.


그저 사방이 어둠 속에 평평하고 물 수평선에 아무 것도 없다. 달도 없다. 두려움. 익사. 체력과 체온이 떨어진 대원들 젖은 군복 소매가 미세하게 떨린다. 대원들이 하도 땀을 흘려 검었던 얼굴이 허옇게 벗겨지기 시작했다. 목숨 일곱. 무섭다. 중대장이 입을 열었다.


“모두... 군화 탈의!”


모두 말을 이해하고 성급히 지퍼 열고 줄을 풀어 군화를 보트 중간에 던진다. 양말까지 벗었다. 전투수영에서는 양말도 발차기에 진짜 엿 같다. 중대장도 재빨리 벗는다. 물이 더 찬다. 중대장은 모터보트 교육 때 배운 FM 조작요령 대로 수행하고 줄을 잡는다. 시동! 당긴다. 또 당긴다. 반응 없다. 모터는 식었다. 다시 덥혀지지 않는다. 손에서 줄을 놓는다.


떨린다. 계절 상관없다. 바다는 기본적으로... 차다. 여름에도 차다. 여름만 믿다가 해침에서 얼어 죽는다. 해수욕장만 따뜻하다고 착각할 뿐이다. 해변만 미지근한 거다. 한여름 청명한 날 뜨거운 태양 아래 바다 한가운데 물은 한 뼘만 따뜻하고 밑은 얼음장이다.


“군장에서 실탄 수류탄만 꺼내서 중간에 던져.”


보트가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자 중대장은 명령을 정정한다.


“실탄 수류탄만 꺼내고 군장과 물품 모두 물로 투척!!!”


첨벙 첨벙, 힘겹고 세밀하게 준비한 물품들이 모두 물로 들어간다. 한 번에 가라앉지 않고 부유하며 서서히 밑으로 돌며 사라진다. 얼마나 힘들게 준비한 거냐.


나침반 야광.


“좌현 노 담그고, 우현 저어.”


꼬르륵 꼬르륵 스윽 스윽 보트 선수가 총소리 넌 곳을 향해 섰다.


“우현 정지!”


여섯 명이 위장모를 벗어던졌다.


하반신까지 물이 차 흠뻑 젖었다.


중대장도 위장모를 벗어 던지고 하늘을 보며 성호를 그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보호하소서...’



“양현! 전력! 전진 앞으로...”




걷는다. 갈비뼈에 아픔이 온다. 군장을 덜었지만 그래도 무겁다. 쇄골에서 이어지는 고통. 옆구리에 AK 날창이 찌른 듯하다. 이대위님과 이중사님은 압록강에서 잘하고 있을까?... 운해의 바다, 봉우리의 바다, 끝도 없는 거미줄 능선, 나침반을 본다. 더욱 험한 산이 가려는 방향에 보인다. ‘역시, 올 때 길과 돌아갈 때 길은 달라...’ 노래를 부른다. 누가 듣겠는가. 부른다. 아버지가 부르던 노래. 자신을 이 길로 인도한 퇴역군인.


“사랑을 하기 위한, 체온은 약-해도, 사람을 받기 위한, 가슴은 뛰어요. 가슴을 잡아줘요 포-근히... 두 손도 꼬옥 잡아요. 그리고 말해 줘요,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왜 이 길을 왔는가. 왜 베레모를 썼으며

왜 싸늘하게 식은 전우를 내려 봐야 했는가.

왜 사람을 가늠자에서 넘겨야 했는가.

왜 북한의 봉우리들을 나 홀로 걷는가.


그저 하나로 버틴다. 그 거짓말.

불가를 현실로 실현할 수도 있는...

될 수 있다고 강하게 믿는 그,


... 안 되면 되게 하라.



장진호에나 들러볼까?...



저 앞에 갑자기 점들이 보인다.


수십 개. 보는 순간 당연히 안다.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 몸에 실선


같은 수직선... the Rifle...!



태운다. 나를... 하하하. 씨이발...



미래는 괴물이다. 괴물을 이기는 방법은,

내가 가장 무서운 괴물이 되는 것이다.



‘미소를 지으세요,


살며시...


두 눈도 꼭 감아요...‘




답을 갖고 수영해서 다시 돌아갈 건가?...

그럼 말하지. 우린 장비 때문에 수영으로

강을 건널 수는 없어. 배라고는 고무보트

몇 개 뿐이야. 장군에게 전하게...

오늘 밤에 간다고.


- 영화 '머나먼 다리' 폴란드 공수여단장.








[끝]


다음 주에 함경도의 별 [외전] 에필로그가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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