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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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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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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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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반사 굴절 회절 1

DUMMY

무전기에서 송신된 전파는

직접 상대 수신기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반사 굴절 회절되어

도달한다. 출력만 된다면...


시간은 7분을 초과하고 있다. 나타나지 않는다. 무전기 수신 메터만 뚫어져라 본다. 이 장면을 화가가 그린다면 암울한 두 남자의 그늘진 표정이 여백을 압도하는 그림이 될 것이다. 그림에 등만 나와도 압도적인 두 사람의 생각이 작은 방을 꽉 채우고 있다.


“얼마나 기다려?”

“몇 분 만 더 들어보죠.”

“호출 더 해?”

“다른 지역대 3분 전엔 놔야죠.”

“너무 길게 하지 마. 감청 당해.”


문상병은 계속 호출부호를 때렸으나 응답신호가 없다. 옆에서는 정병장이 체크리스판에 A4 공지를 끼우고 펜들 들고 있다. 문상병은 보다 자세하게 듣기 위해서 헤드폰을 왼쪽 귀에 걸치고 손으로 살짝 누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어느 순간부터 계속 되었고, 제법 지칠 만도 한데 둘은 포기하는 마음을 조금도 가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건 작전보고서이며 생명의 끈이며, 저 북에서 목숨 걸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김을 느낄 수 있는 건 이 교신 밖에 없다. 전문이 들어오면 한 자 한 자 절제된 절규를 보는 듯 숙연하다.


특수전사령부 정보통신단 작전상황 교신실. 여러 방에서 각 여단을 책임지는 장거리통신 상황실이 있고, 비상망 통신실 세 개가 추가로 운영되고 있다. 요즘 들어 비상망 교신이 많아졌다. 비상망은 전 여단 전 대대 공용 24시간 수신대기 망으로, 본인들 주파수로 하다가 교신이 안 터지면 일단 돌려보는 것이고, 정규 교신시간을 지킬 수 없을 때나, 항폭 등 긴급전문을 이 망으로 호출을 건다.


모든 게 완벽해도 교신이 안 될 때가 있다. 태양의 흑점과 태양풍도 그 정확한 이유 중 하나다. 지구 자기장이 변화하면 즉각 무선통신은 영향을 받고, 기상과 구름도 영향을 준다. 그 외에 북한 감청부대의 막가파식 혼신과 교란. 비슷한 모오스로 등장하는 북한군 위장 통사들. 그들 모오스 특징을 들어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전문을 먼저 입력하고 몇 초 만에 송신하는 디지털 송신기 모듈은 보급되었으나 여전히 애매하다.


북한의 작전제대가 디지털로 송신하는 것은 담당 수신기가 자동으로 수신하고, 담당자는 프린트가 출력될 때 확인만 하면 된다. 휘하로 내리는 전문도 일단 자동 송신기로 제 시간에 발신하고, 재래식 모오스로 교신 기능으로 이중 하달한다.


북을 향해 정면으로 길게 서 있는 능선에 안테나가 서고 교신실 임시막사는 후사면에 있다. 교신을 마친 무선병들은 능선 전면에서 저 멀리 북쪽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곤 한다. 교신 상대방들이 땀과 피를 흘리는 그 방향으로.


말이 방이지 보안상 높은 고지에 만든 조립식 건물에 두꺼운 천으로 칸을 나눈 정도. 한 여단을 담당하는 칸에 들어가면 침낭과 잡다한 생활용품과 1.5리터 물통이 뒹군다. 처음엔 이러지 않았다. 방들은 깨끗했고 중요한 시간이 아니면 가끔 비워두기도 했다.


지정교신은 거의 다 밤이라서 낮에는 자고 밤부터 새벽까지 대기했다. 처음에는 팀(중대) 통신이 비교적 교신시간을 지키는 편이었다. 1개 여단만 해도 정신이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팀 호출이 사라져갔고 이제 작계는 지역대 통신으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점차 이 전시 장거리통신은 세상에서 가장 구슬픈 로또가 되어 간다. 상대 통사들도 먼저 여단망으로 들어가 본 다음에 비상망으로 들어온다.


처음에는 이런 통신문을 받고 보내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보람도 느꼈다. 그러나 점차 통신단 부대원들은 하루 세 끼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특수전 전체 전황을 가장 빠르게 피부로 곳이 바로 이 통신단. 피해는 통신단에서 보기에 엄청났다. 침투부터 두절된 팀도 꽤 있었다.


평시에는 교신실에 1명이 들어가 전문을 주고받는데, 전시는 오탈자 하나로 중요한 보고에 오류가 생길 수 있어, 한 명이 전문을 받아 적고 다른 한 명이 수신지 내용이 동일한가 확인한 다음, 뒤쪽의 암호 해역실로 가져가면 거기서 내용이 나오고, 내용은 한 자도 틀림없이 사령부 작전과로 보낸다. 특히 근접항공지원이나 비상 항폭요청은 즉각 방을 나오면서 입으로 ‘긴급!’ 구령하고 통신장교에게 넘긴다.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내용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XX-X1-2-5. 팀장 담당관 전사. 현 4. 작전 지속.]

[중상 2. 재보급 및 부상자 후송요청. 혈장 포함 의료품 공수 요망.]

[5G. TO 남쪽 30km 강하. 목표타격일 이틀간 유예. 실종 6.]

[지역대 선임담당관 실종. 목표 반파. 도피탈출 중 전사 실종 5.]

[재보급 요청. TNT C4 60파운드. 뇌관 전/비전 20.]


[적 차량 40대 23번 국도 남하. 좌표 47685678에서 시속 60.]

[G(역대)장 실종. 3C가 G(휘권) 인수. 현 G 23.]

[11G 규합. 28. 6C 전원 실종. 식량 의료품 재보급 요청.]

[12C DZ 교전. 실종 포함 현 4. 11C와 연합 요청.]


문구는 축약되어 무엇을 빨리 ‘부탁합니다’... 이런 건 없다. 바람, 요망. 그 축약되고 간략한 언어 속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통신반에서는 자세한 추측이 불가능하다, 비어진 병력은 전사/실종/포로가 분명했다.


하루가 다르게 피해는 커지며 생존 숫자는 줄어갔고, 전혀 언급이 안 되는 중대들이 나타나고, 지역대 규합인원들은 너무 현격히 줄어간다. 그리고 결코 없으리라던 일들이 더 일어난다.


지역대가 통으로 증발되는 것. 지역대가 규합하면 팀 무전기들도 모이므로 오히려 통신은 안정적이 되어야 하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 다 전사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은거지 내습이나 가용 무전기들이 파괴된 것으로 추측한다.


애초부터 미군 특수전부대의 소형 위성무전기도 없이 작전을 하라는 게 무리였다. 고가 제품을 다 보급하기에 팀이 너무 많다. 병사들은 추이를 지켜보면서 예감이 오기 시작했다. 장비는 전시에 군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부실장비 방산비리 연루자는 모든 재산을 빼앗아 굶겨 죽여야 한다. 그 몇 명으로 인해 전시에 몇 백 몇 천 명이 죽을지 모른다.


[지역대 인원이 축소될수록, 지역대 통신이 증발될 확률이 높아진다.]


조립식 건물 밖으로 나온 통신단 대원들은 밤하늘 별을 보며 담배를 뿜는다. 끊은 사람 안 피우던 사람도 피우기 시작했다. 등화관제로 산 저 아래는 암흑. 문을 나올 때도 두꺼운 등화관제용 검은색 커튼 세 개를 통과해야하고, 고지 정상을 중심으로 사령부 본부대 병사들이 24시간 경계를 선다. 헬기 외에는 올라오기 어렵고 일부 구역은 암벽을 타야 한다.


사령부 다른 파트는 모르지만, 식당에서 어설픈 식단이라도 밥을 타 먹는 게 얼마나 호화로운지 몰랐다. 저기 넘어가 전파로 등장하는 미지의 중대 지역대는 대체 무엇을 먹고 어떻게 버티며 작전하고 있단 말인가. 며칠 식량을 꾸려 북으로 갔다.


흔히 하는 말로 AK로 부대 무장이 바뀌었나? 재보급은 통신단 병사들이 알 수 없다. 보안 때문에, 팀과 지역대로 송신되는 전문은 암호화되어 대원들은 숫자만 송신해 주고, 수신한 암호문도 해역실로 들어가면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은근히 소문이 돈다.


적 감청부대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간파당하면 그쪽에서 뭔가 점점 풀리기 시작한다. 암호의 완벽한 해독 이전에, 누가 누구에게 보내는가를 알게 되면 실마리가 풀린다. 팀과 지역대 난수표 역시 한계가 있다.


실마리를 생기면 상대가 깨닫기 시작하고, 왜 이 시간에 저런 긴 전문을 보낼까 고민하다 답을 얻으면 이쪽이 좆된다. 내용 해독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령부 통신단 무선병과 담당관들은 종종 무선병들의 대상 여단을 바꾼다.


감청하는 북쪽 상대들도 여단통신대와 사령부 통신단의 각 개인 통사의 특징을 연구한다. 모오스 부호 특정 숫자나 영문 신호의 한 글자, 예를 들어 ‘R' 같은 것을 칠 때, 미묘하게 돈과 쓰의 길이가 남들과 다른 걸 간파하고, 전문 구절을 넘어갈 때 쓰는 버릇 같은 것도 간파한다.


예를 들어, (편의상) R에서 쓰가 긴 사람을 ’쓰길이‘라고 쓰고, ’15일 목요일. 쓰길이 등장. 새벽 2시. 교신병 연구 중‘ 이렇게 메모한다. 이런 메모들이 모이면 분석하는 놈들이 규합하여 특징을 찾고, 거기서 뭔가 간파되면 우린 꼬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 긴 전문이 서로 오갔는데, 하루 이틀 뒤에, 다른 곳은 잠잠한데 황해북도 어디 도시가 습격당했다고 하면 의심이 가는 식이다. 이런 재래식 간파는 2차대전에서 많이 일어나, 병사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었다.


당연히 주파수는 계속 바꾼다. 동일 주파수와 호출부호로 자주 교신하면, 앞으로 나간 사람이 저격수 총에 맞았는데, 또 나가서 또 맞는 격이다. 기존 우리 부대 편제를 분석하고, 전체 팀이나 지역대를 구별해 차트를 만들고 의심되는 곳에 표기하기 시작한다. 간파를 당하면 당할수록 남은 제대의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간파된 팀이나 지역대를 제외하면 (남쪽의 전문을 수신한) 제대 추정 폭이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다.


종종 여단 통신대에 문의도 한다. 알 수 없는 이상한 걸 마구 모오스로 치는데, 아무래도 여단 통신대와 주고받던 장난 비슷한 식별 같아 보였다. 어느 여단은 이상한 것을 자꾸 서두에 쳐서 그 여단 통신대에 문의해보니, 중대/지역대 통사들과 교신할 때 같은 여단인지를 확인하는 모오스 욕설이었다.


이런 것들은 규정된 것도 아니고, 많은 무선교신을 통해 아주 오래전부터 습관적으로 중대/지역대 통신과 여단통신대들 사이에 형성된 묘한 식별방법이다. 그 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여러 부호가 혼신으로 섞여 들어와도 고참 무선병들은 구별해낸다. 고참이건 신참이건 무선교신은 많이 해봐야 안다. 모오스가 아무리 여러 개 섞여도 각각의 장비 특성상 피치(음정)가 약간씩 다르다. 모오스를 사용하는 부대가 많지 않다 보니 북한 어느 부대인가 줄기차게 감청하고 종종 치고 들어온다.


중대 통사들도 훈련으로 장거리 교신을 하다 보면 이런 기분이 든다.


‘이 혼신. 새끼들, 우리가 어디 부대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래도 이 모오스는 전 세계 선박이나 비행기나 최후 통신방법으로 설정된 곳이 여전히 많다. 대표적인 이유는 딱 하나. 저출력으로 아주 먼 거리에 신호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 보이스 통신은 출력량과 똑같이 강한 전원을 잡아먹는다. 사진으로 설명하면 모오스에 비해 보이스는 컷 당 화소가 엄청나게 크다. 아무리 팀 무전기 배터리가 충전되었다고 하더라도, 지형과 여건에 따라 감도는 통신단 대원들이 미칠 정도로 약하게 들어온다. 팀 무전기에는 고출력 기지무전기 소리가 바로 옆에서 오실레이터를 치는 것처럼 정말 또렷하게 들어온다.


통신단 대원들은 평시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었다. 평시 훈련은 작전제대 장거리 교신도 해당 여단통신대와 수행했고, 전술종합이나 나가야 사령부 교신이 들어왔다. 어떤 면에선 하급제대인 여단통신대에 능력 있는 무선병들이 많았다. 한 대대가 전술종합훈련을 나가면 여단통신대는 3-4주 동안 밤까지 벅찬 교신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고, 그걸 1년에 네 번 해야 한다.


특수전통신은 제대 지휘관의 훈련성과에 비중이 상당히 컸다. 특히나 독수리훈련의 경우는 목표타격이 실패해도 정보보고만 존나게 날리면 팀 평점이 더 높게 나오는 일도 발생했다. 이걸 아는 팀장이나 지역대장은 사소한 것만 봐도 정보보고 올리라고 난리다. 독수리 내내 통신 사수는 낮이나 밤이나 이동하다 야산이나 들판이나 안테나 펴고 여단과 사령부를 호출한다.


전시 특수전통신 기본개념은 기지국 24시간 대기다. 각 제대는 기본적인 교신 날짜와 시각이 정해져 있고 이를 준수하려고 한다. 24시간 망은 긴급 정보보고 때문이다. 적 기갑이나 보급점(로)에 대한 정보보고는 낮에도 들어온다. 아무리 상공 지상 레이더가 발달해도 사각은 있다.


교신시각에 교신과 긴급보고가 등장할 때는 좀 다르다. 교신시각에는 무선병들이 집중해 감도 0~1 밖에 안 되는 미세한 소리를 감별하며 귀를 세우나,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24시간 민감하게 수행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럴 경우는 아예 out 스피커를 좀 크게 켜놓고 대기한다. 레이더병보다 더 피곤할 수 있다. 해당 주파수망에 혼신이 극심할 경우는 정말 먹은 밥이 금방 쑥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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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반사 굴절 회절 3 +1 20.09.09 674 21 14쪽
67 반사 굴절 회절 2 20.09.08 674 22 15쪽
» 반사 굴절 회절 1 +1 20.09.07 739 22 14쪽
65 후미경계조 5 20.09.04 704 28 11쪽
64 후미경계조 4 20.09.03 689 24 9쪽
63 후미경계조 3 20.09.02 701 23 13쪽
62 후미경계조 2 20.09.01 715 22 13쪽
61 후미경계조 1 +5 20.08.31 784 24 11쪽
60 선처럼 가만히 누워 5 +3 20.08.28 798 24 12쪽
59 선처럼 가만히 누워 4 20.08.27 729 24 11쪽
58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20.08.26 732 24 11쪽
57 선처럼 가만히 누워 2 20.08.25 791 20 12쪽
56 선처럼 가만히 누워 1 20.08.24 866 27 11쪽
55 Rain 6 20.08.21 813 24 14쪽
54 Rain 5 20.08.20 759 24 11쪽
53 Rain 4 20.08.19 757 25 12쪽
52 Rain 3 +3 20.08.18 805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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