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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5.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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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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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Rain 3

DUMMY

당시 첨병조가 교전에 들어갔고 사방에 총알이 날고 수류탄이 터지고 있었기 때문에 도전선 파손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전기식을 이중으로 했고 이미 도화선에 점화한 상태에서 전기식을 눌렀었다, 그 비전기식은 문중사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터질 타이밍이 아니었다.


확인하러 나간 두 명도 비전기식 도화선의 길이를 계산할 때 옆에 있었기에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해서 들어간 것이다. 실전이 닥치니 폭파들은 비전기식을 불안해했다.


훈련에서는 항상 비에 젖지 않게 노력했고, 도화선을 수령하면 제조일자부터 확인하곤 했다. 그러나 전장에서는 이미 제조일자가 적힌 박스 포장이 없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도화선이 타다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타는 경우는 정말 위험했다. 비전기식 도화선에 대한 안전 대기시간이 정확히 존재하나 당시는 그럴 수 없었다. 최초 불발시 문중사가 확인하러 나가려고 했으나, 원사는 자기가 문제가 생긴 경우를 많이 봤고, 아마도 폭약 앞에 도전선을 고정시킨 말뚝이 문제 같다고 하며 나갔고, 최하사가 엄호로 뛰어나갔다.


폭발이 일어나고, 이를 같이 바라보던 타격조장이자 9중대장인 박대위가 퇴출하자고 고함을 질렀다. 조장인 박대위는 문중사와 한 명에게 엄호할 테니 먼저 뛰라고 했다. 어느 정도 후방으로 빠진 뒤에 둘은 박대위를 기다렸고, 상당히 늦게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다리와 복부에 총상을 입었는데, 문중사 입장에서는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그래서 같이 있던 동료에게 박대위를 조력해 먼저 올라가라고 하고 자신은 후위로 잠시 남았다.


그러나... 침투 퇴출 루트가 겹치는 곳임에도, 아무리 기다려도, 다른 퇴출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첨병조가 다른 곳으로 갔다가 판단하고 이동하려는 찰라, 저 멀리 와지선에서 교전이 보였다. 첨병조 아니면 지휘지원조였다. 적 화력과 총기 숫자는 월등했고 저러다 다 죽는 거 아닌가 불안했다.


문중사는 좀 더 평평하고 넓은 곳으로 나가 서서쏴로 그 쪽의 적 화점을 향해 조준경 단발로 최대한 조준해 사격했다. 주의를 끌려는 목적이었고, 사격에 몇 명이 맞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한 탄창을 갈기자 그 쪽 화점이 점차 문중사를 향해 응사하기 시작했다.


반응이 오자 문중사는 다시 한 탄창을 자동에 놓고 세 번에 나누어 수평으로 갈기며 기다란 총구섬광을 그쪽에 더욱 더 확실히 보여주고 산으로 뛰기 시작했다. 돌아서서 쏘기 시작하는 시점에 저쪽 아군 진영에서 RPG로 추정되는 것이 두어 발 적 화점을 향해 날아갔고, 문중사는 9중대 화기 진하사라고 생각했다. 겨를이 없었고 일단 뛰어야 했다.


그곳에서 세 번째로 도피탈출하는 것이기에 퇴출로는 확인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문득, 가까운 곳에 귀성 김기수 하사가 누인 자리를 본다. 인상은 찌푸려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경우가 생기면 반드시 찾아와서 확인하리라 마음먹고 산으로 뛰었다.


시야가 물기로 흐려졌지만 문중사는 남은 초콜릿 조각을 먹었다. 그리고 누웠다. 안구 옆으로 물기가 주욱 흘러 떨어진다. 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어둠이 내리던 시간에 눈을 떴고, 아주 단순한 생각을 했다.

‘작전을 지속한다. 여기서 다른 곳으로 도피탈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이 부대 안에서 영웅적이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 독수리훈련 때 연합사 통제관으로 갔다 왔던 최대위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어느 팀의 경우 1차 타격에서 [중대장 담당관 전사. 작전 지속.] 전문이 들어왔다.


그러자 다른 부대에서 온 통제관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거짓 보고라고 했다. 그 작은 팀에서 중대장과 선임하사가 전사해 결원이 되었는데 어떻게 작전을 지속하느냐는 거였다. 그로 인해 작은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최대위는 이것이 이상한 일도 과장한 일도 아니라고 했지만 상대들은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몇몇 지역대원들은 그 반대편의 이야기가 좀 이상하게 들렸다. 그럼 한두 명이 남아도 작전을 지속하지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특수전이란 기본적인 전술과 기술을 공통적으로 배우고 그 다음 주특기로 넘어간다. 소수 단위라 모든 것을 분권화할 수가 없다. 자대 팀으로 가면 주특기가 심화되기 때문에 주특기들이 각각을 맡지만, 타격에서 보통 가장 중요한 폭파의 경우, 팀 화기나 의무나 통신이라도 기본적으로 폭약을 다룰 줄 알고 어려운 회로구성이나 계산만 아니면 모아놓고 터트리는 건 다 한다. 중대장도 할 줄 안다.


흉내 내기 힘든 것은 대표적으로 통신과 의무 주특기였다. 모든 주특기가 구보 사격 행군 등 모든 것을 함께 한다. 이 개념을 잘 모르는 사람은, 통신이라고 하면 통신교육만 받은 사람으로 알고 - 의무라고 하면 의무학교를 나온 의무부사관으로 착각한다. 팀이 어느 정도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자기 혼자라고 해도 작전을 지속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각이며 그 외의 선택은 도피 밖에 없다.


다만, 특수전부대는 원래 인원이 적기에 피해로 몇 명을 잃으면 물리적인 전투력이 급격하게 하강하는 특징이 있다.


그 이후로 일어난 일들은 문중사가 감내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것이었다.


밤이면 문중사는 일단 산을 내려간다. 당시 남은 것은 실탄 2백 발 정도와 수류탄 두 발, 대검이 전부였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필요했다. 가장 필요로 한 것은 먹는 것과 수류탄이었다. 총을 쏘면 위치가 노출되지만 수류탄은 터져도 어디서 던졌는지 야간에 가늠이 안 된다.


조용하던 상태에서 상대가 느끼는 충격도 수류탄이 강했다. 처음으로 민가에게 먹을 것을 훔쳤지만, 사실 민가라고 딱히 무얼 얻을 수도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결론은 목표 군부대. 수도 없이 생쌀을 씹어 먹었고, 그 쌀을 얻기 위해 대검을 썼다. 감자 고구마 같은 이 먹는 것을 취득하는 것이 문중사 입장에서는 가장 창피하고 역겨웠다. 그 전에 만났던 귀성 쪽으로 가서 찾아보거나 다른 지역대 섹터로 찾아가볼 생각도 물론 했다. 그러나 자기 지역대처럼 숫자가 많이 줄었을 것이 분명하고, 소수라면 만날 확률도 고려해야 했다.


그렇게 3일이 흘렀을 때,


내려왔던 문중사는 문득 김기수 하사가 있던 자리가 떠올라 조용히 이동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군이 노출된 장소라서 천천히 조심스레 접근했는데, 문중사는 이를 악물게 하는 광경을 봤다.


적이 김기수를 가매장이라도 할 줄 알았다. 시신이란 피아를 떠나 기본적인 예의가 있고, 또한 감염 위험이 있어서라도 매장을 하게 된다. 문중사는 보았다. 매장은커녕, 팬티만 제외하고 군복은 완전히 벗겨갔고, 총검으로 찌른 자국이 있었다. 김하사는 그날 동이 트자마자 적 수색대에 발견된 것 같았고,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총검으로 찌른 것 같았다.


장면은 충격이었다. 그냥 군복을 입은 채로 거기 누워 있었다면 뭐랄 수 없겠지만, 군복을 벗겨가다니, 그 당시 김기수를 거기 놓고 갈 때는 군복에 특전조끼를 입고 대검도 있었다. 실탄만 수거하고 망자의 것을 그냥 두고 넷은 떠났다. 그것이 어떤 목적에 의해서 벗겨지고 노획되어갔는지는 모르나, 시신을 그냥 방치한 것은...


문중사는 그때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래, 사람 사는 곳에서 안 좋은 거 어려서부터 많이 봤지.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거 많이 봤어. 예의 차리다 뒤통수 맞는 그런 거. 그래. 그런 거지 뭐. 그런 거야. 전장에서 죄책감 따위는 없는 거야. 나도 하면 되지 뭐. 하지만... 이 팬티만 입은 꼴은 정말 못 보겠다 이 자식들들아. 청산이 빙빙 돌게 해주겠다. 나도 죽어봤자 이 꼴이라는 거 알았어. 대신, 쉽게는 안 끝난다. 다른 섹터로 안 간다. 난 여기서 한다... 우리 지역대 섹터는 내 거다.’


문중사는 최대한 김기수의 부패하는 몸을 가지런히 하고 나뭇가지를 부러트려 최대한 흙을 파서 임시로 묻었다. 시간이 상당히 걸렸고 말랐던 땀도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잠시 곁에 앉아 담배를 물고 흙더미에도 하나 꼽았다.


‘합천. 어머니 없이 자란 놈. 부후 00기 통신. 나는 서울. 어머니 플러스 아버지 없이 자란 놈. 부후 00기 폭파. 재경 갈 줄 알았다가 천마로 끌려 왔지. 내 모병관은 분명 귀성이었다니까. 만나서 반가웠다.’


그 장소를 떠나며 문중사 입에서 자연스럽게 말이 흘렀다.

"모욕이야. 모욕. 이건 모욕이야. 모욕..."


발길을 돌리며 문중사는 그저 떠오르는 노래를 아주 조용히 불렀다. 갑자기 마음 속에서 무거운 짐을 덜어버린 것 같이 홀가분했다. 그렇다. 살인은 살인이 아니라 전투다. 군인의 전투다. 죽이는 거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죄책감은 거북한 자기자신의 위로였다. 자신이 먼저 죽으면 상대가 죄책감 가질 거라고 생각이라도 기분이라도 좋게 내가 뒈지나? 상대의 불친절은 문중사 사고와 행동에 치외법권 같은 편안함을 선사했다.


문중사 본인은 몰랐지만 일대에서 그는 유명한 괴물이 되고 있었다. 그 하나 때문에 밤에 나돌아 다니는 사람이 없었으며, 북한군은 밤이나 낮이나 단독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절대로 불허했다. 매일 산에서 내려왔다.


문중사는 고독에 익숙해 있었다. 군에 오기 전에 항상 혼자 ‘밥 같지 않은’ 밥을 먹었고, 홀로 방에서 책을 읽었으며,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열악했던 푼돈마저 완전히 끊어져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 태어나서 생일은 미역국 먹다 우연히 두 번 발견했다. 생일 챙기는 사람들 보면 이해는 해도 납득은 안 된다. 결국 돈 때문에 철거 용역도 해봤다. 그러면서 체구는 점차 커갔고, 자신에게 힘이 생긴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가장 부러웠던 것은 부자도 아니오, 세련된 자동차도 아니오, 넓은 아파트도 아니오, 그저, 신혼부부가 변두리 식당에서 한두 살 먹은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사랑이라는 단어가 향기롭게 풍기는 그런 모습이었다. 특히나 부모가 무한한 관대함과 겸허와 애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그에게, 세상에 저런 거 존재하는 구나. 저런 게 있구나. 그런 충격 아닌 충격이었다.


돌아보면, 사회가 어떻다 무서워졌다 아무리 사건사고가 이상하게 많아도 대부분 가정은 부모와 자식들이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결핍이 무엇인가 깨달았다. 자신은 그런 걸 돈 받고 흉내를 내라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식을 낳는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섰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알고 있는 이성에 관한 것은 그저 어쩌다 한 번씩 초라한 본능적 자위가 전부였다. 그를 좋아하는 여자도 있었지만 이에 대처할 아무런 방법도 몰랐고, 결혼이란 자체는 상상할 수 없는 두려운 것이었다. 자기가 자식을 낳고 가정을 만든다는 건 너무 위험해보였다. 지극히 위험하며 한 여자와 자식의 인생을 망칠 거라 생각했다. 액체를 혼자 방출하는 초라함도 살아온 고독에 비하면 딱히 의미를 둘 정도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자신 안에 너무 큰 것이, 너무 딴딴한 것이 꽉 차 있음을 반면교사 깨달았다. 그 반대의 좋은 것을 보고 느끼지 않았다면 그 덩어리를 인식도 못할 것이었으나. 여하튼 그것이 암 덩어리처럼 자신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았다.


홀로된 존재.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존재. 굉장히 무감각한 존재.


소시오패스란 명칭을 들으면 저게 자신과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가 그런 냉혈한 살인마가 될 수도 있는 것인가, 자기 자신에게 불안했다. 어느 순간 자신이 통제력을 잃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다. 그걸 느껴봤기 때문이다.


철거 용역을 나갔을 때, 어느 순간 무섭게 사람들을 향해 날리고 깨트리는 자신을 봤다. 보이면서도 결코 자신에게 제동을 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24시간, 아니 몇 달도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부모는 이혼하고 각자 새로운 상대를 찾았다. 남들은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인 애정이 부모에게는 있는 것이라고. 그럼 새로운 가정에서 새로 낳은 지 자식들 처먹일 때 내 생각은 하는 건가? 정말 모든 부모는 공정하게 자식들을 사랑하나?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암 덩어리의 봇물이 터진 날을 문중사는 기억한다. 어찌어찌 해 얼굴을 까먹을 지경에서 어머니가 한번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또 그것을 보았다. 자기 자식에게 무한히 넓은 사랑의 눈으로 보는 그것. 그건 그가 아니라 어머니가 새 가정에서 출산해 데리고 나온 어린아이였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거야. 모든 진리와 감정도 다 상황 앞에서야. 똑같이 중요한 다른 것을 보고 싶어도, 볼 수밖에 없는 것만 보이는 거야. 사람은 자기 좋은 것을 보는 거야. 부모도 그냥 사람인 게야. 어머니도 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일 뿐이야. 그저 저 여자일 뿐이야. 저 여자도 자기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걸 보고 사는 것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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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후미경계조 3 20.09.02 695 23 13쪽
62 후미경계조 2 20.09.01 711 22 13쪽
61 후미경계조 1 +5 20.08.31 782 24 11쪽
60 선처럼 가만히 누워 5 +3 20.08.28 793 24 12쪽
59 선처럼 가만히 누워 4 20.08.27 724 24 11쪽
58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20.08.26 725 24 11쪽
57 선처럼 가만히 누워 2 20.08.25 786 20 12쪽
56 선처럼 가만히 누워 1 20.08.24 861 27 11쪽
55 Rain 6 20.08.21 807 24 14쪽
54 Rain 5 20.08.20 754 24 11쪽
53 Rain 4 20.08.19 753 25 12쪽
» Rain 3 +3 20.08.18 801 26 14쪽
51 Rain 2 20.08.17 860 24 14쪽
50 Rain 1 20.08.14 1,062 20 15쪽
49 덤블링 나이프 4 20.08.13 828 2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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