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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검은 백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0 01:20
최근연재일 :
2021.11.10 12:00
연재수 :
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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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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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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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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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47. 전투호흡 2

DUMMY

‘아이고 가슴이야.’

이제 꼼짝할 수 없다.

‘기가 막히네.’


이종인은 엎드린 상태, 박진은 오른쪽으로 나무에 기댄 자세. 이 자세로 움직이지 못한다. 이종인은 권총 잡은 손을 바닥에 편히 놓고 숨을 고른다. 박진은 AK를 가랑이 사이에 내리고 상황을 주시한다. 상대는 눈치챘다.


다만, 이런 무 월광의 컴컴한 산악에서 ‘내 착각은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할 거다. 너무 조용하고 컴컴해서 집중력이 자기 자신으로 들어갈 만한 시공간, 현실적이지가 않다. 초현실적이다. 하지만 상대와 달리 숨은 둘은 현실적인지 꽤 오래되었다. 죽음의 궁지는 오감을 미친 듯이 확장한다. 알아서 한다. 주인이 살아야 자신도 생각을 지속할 수 있으니까.


밤도 버리고 낮도 버린

새벽 4시.


박진과 이종인은 빠르게 걷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속도를 늦췄고, 그것은 조용한 덩어리처럼 다가왔다. 그 덩어리는 적게 봐도 덤프트럭 서너 개는 될 듯. 무겁고 살이 떨린다.


벌레 소리를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어느 순간, 너무 고요해졌다. 고요의 정도가 조금 지나치다. 사막이어야 마주할 침묵 같았다. 지금까지 경험보다 과하게 무겁다. 짐승이나산이 일부러 침묵하는 기분.


‘산 그림자에 아무것도 서려 있지 않은 것이 아니야.’


발걸음을 늦추면서 발 딛는 소리를 줄였고, 시선을 나누지 않았으나 박진과 이종인 공통으로 알았다.


‘차. 차. 차... 차.... 차.....’


최초에 소리가 있었다.


“어?”


아주 작아서 그냥 지나갈 소리일 수도 있었다.


저 왼쪽 앞에서 누가 자신도 모르게 낸 소리.


느낀 북조 2인.

상대 역시 느꼈는지를 모른다.


어쨌거나 고요하다.

미칠 정도로 고요하다.


앞서가던 박진이 숨어들면서 이종인이 지나쳐 오히려 앞이 돼버렸다.


“어?”에 이어 총 철커덕! 소리가 들렸고, 둘은 걸어가다 자세가 낮아지면서 천천히 쪼그려 앉았는데, 갑작스런 사격을 피하기위해 나무 뒤에 위치한다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둘은 숨이 막힌다.

손이 떨린다.


건너편은 말소리를 냈다는 것에 자책하는 것인지 더 조용해졌다.


둘은 기다린다.


‘죽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확실히 봤어? 못 봤어?’

‘차라리 먼저 쏴?’

‘아니 총구 섬광이 광고만 한다.’

‘일단 기다려.’


얼마지 않아 미세한 소음이 주변에 드러난다.


그 “어?” 소리 이후, 사방에서 “응?” “왜?” 그런 작은 소리가 연달아 들렸고, 땅에 놓았던 총을 들거나 자물쇠 돌리는 소리...


나무가 별로 없는 내리막 경사면. 거의 300도 모든 방향에서 그것이 들린다.


매복 속으로 들어왔다. 야간매복 속으로.


낮에 일대로 트럭을 타고 들어오는 병력을 관측하고, 병력의 거리와 방위각을 보고, 도로반대 편의 먼 산악을 향해 틀어 야간행군을 시작했다. 다른 날보다 꽤 속도를 냈다.


‘거리를 벌려라. 이건 차단선이다.’


돌아보면 조금씩 저 아래 불빛도 봤다. 떠나기 전에 상의했던 것도 그것이다.


[드디어 차단선이 다가왔다.]

저기만 하차한 것인가? 차단선의 일부겠지? 어디에 또 내려 어디로 갔을까? 어디서 어떻게 깔까?


이건 사실 방어자가 정말로 어려운 문제다. 모르는 사람들은 지도에 선을 긋고 ‘여기 이렇게 아군이 차단선을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1개 보병대대 보병연대 보병사단을 동원해서 산악에 말끔한 선처럼 차단선을 형성하는 건 엄청나게 어렵다. 지형이 그렇게 허락하지 않는다. 무조건, 계산보다 병력이 더 든다고 가정하고 있어야 한다. 1996년 강릉 앞바다에 북한의 침투용 잠수함이 좌초하면서 생긴 북한 작전조와 승조원의 사건.


이렇게 도망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부대는, 해보지 않고 경험할 수 없는 여러 가지를 알게 된다. 병력 전개에 대한 무수한 오점과 허술함과 소음, 아군 오발에 대한 두려움. 설마 내 앞으로 오겠냐는 안일함. 그리고, 작전일이 지속하면 오점은 더욱 늘어난다. 차단 병력의 적응과 경험도 늘어나지만 피로도 가중된다. 이러한 차단작전은 크게 봐서 24시간 경계다. 또 밤샘 경계와 이동이 반복된다. 잡을 때까지. 끝날 때까지.


그렇다. 산악에 깔게 되면 병사들은 보통처럼 먹지 못하고 ‘추위’가 시작된다. 강릉처럼 태백산맥 자락이라면 계곡이 여름부터 모포나 침낭 없이 힘들어진다. 찬 바람 불면 버티기 정말 힘들다. 북한은 초가을에만 들어서도 깊은 산이 영하로 떨어진다. 식사를 해결하는 것과 밤을 버티는 것.


피로가 쌓이면 보통 실수한다고 하는데, 반드시가 아니다. 피로는 누적되어도 병사들이 산에 적응하면 소리에 민감해진다.


소리! 소리는 곧 생과 사...


문제는 병사의 피로보다 지휘부의 피로다. 그들은 지도에 그린다. 지도를 토대로 본다. 그러다 가끔은 등고선을 정확히 못 본다. 그러다 차단선이 벌어지고 출렁인다. 그 출렁이 있었으나 이미 해가 졌다면? 그날은 끝난 거다. 차단선 매복선은 ‘이 시간부터 움직이는 것은 적. 무조건 던지고 쏴라.’ 기본.


그러므로 그날 밤 차단선 안에 내가 있다면, 그 차단선 투입을 낮부터 긴요하게 관찰하는 것이 생과 사.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이 정도면 뭐.’ (비정상)

‘몰라. 항상 유보계획.’ (정상)


[틈은 항상 있다.]


아무리 군단을 동원해 깔아도 틈은 있다. 비정규전 수행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틈이 많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느 대대장이나 연대장에게

‘여기서 여기까지 차단선을 깔아. 병력 충분하지?’


그래 보인다. 그래서 현장에 갔다. 그래서 차분히 소대 중대를 기본으로 적정한 거리를 벌려 깔기 시작했는데, 아뿔싸 200m가 빈다. 이럴 때 중대장이 대대장에게 차단선 조정을, 대대장이 연대장에게, 연대장이 사단장에게, 사단장이 군단장에게 전체적으로 차단선을 밀고 당겨서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보고할 수 있나? 작전선 자체가 완전히 밀린다. 게다가 이런 공백이 여러 곳에서 출렁인다면?


이제 밤이 오려는데 그걸 보고해서 연대 사단 군단에 조정을 요구하라고? 못 한다. 군대는 그게 힘든 거다.


고로, 각 제대에서 인원을 선발해 그 장소를 적당히 메우거나 할 것. 김신조 부대도 GOP 철책선 미군 섹터와 1사단 섹터가 물리는, 비교적 한산한 포인트를 뚫고 들어왔다. 니 구역도 아니고 내 구역도 아닌 상태로 대하는 미군과 1사단의 상황을 오랫동안 건너편에서 지켜본 거다.


그 중간 20~30m가 붕 떠 있었고, 거길 과감히 철조망을 절단기로 자르고 (안 잘린 것처럼 위장한 다음) 아주 빠르게 통과했다. 심지어 김신조 부대는 철책 통과 직후, 눈 내리고 얼어버린 임진강을 하얀 포를 뒤집어쓰고 그냥 걸어서 통과했다.


틈. 그 틈은 지그재그 불시에 드러난다.


“어?”에 이어 총을 들고 몸을 부비적거리는 소리가 끝나자 다시 무서운 고요가 왔는데, 침묵이 이상했다. 정말 기묘한 침묵. 뜻을 포함한 침묵. 뭔가 긴박하게 움직이나 소리만 안 들리는 침묵.


둘은, 저 상대들이 지금 수기로 대화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으나 소음이 없다. 억제하고 있다.


2군단 대성산 정찰대대?

통할 것 같지 않다. 매복은 분명히 야간이동금지 철칙.

분침이 새벽 4시를 지난다.

박과 이가 조금 믿을만한 것.


병사들이 매복지에서 좀 풀어질 시간이기도 하고, 그들이 분명히 가졌을 무전기가 얼마나 효율 좋고 전달력이 좋은가...?


당연히 FM 무전기.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산등성을 넘어가면 전파가 잘 안 잡힌다. 높은 산 깊은 계곡은 항상 이 문제를 겪는다. 바로 발포하지 않은 건, 아마도 주저할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아군인지 적군인지 서로 모른다. 밤에 움직이면 적. 하지만 자기들 아군 오발은 심각하다.


남에서 있던 일과 똑같다. 저들도 이 소리가 혹시... 근처에 자리를 잡은 다른 부대인지, 남조선 괴뢰인지 선뜻 평가를 못 하고 있다. 또한, 자연적인 소리인지 산중의 동물인지 모르는 거다. 동물도 침묵의 위험을 감지한다. 만약 쏘면, 근처에 다른 제대들도 일단 갈기고 무전기는 불이 난다.


감당하고 바로 당기는 거다.

“어”와 동시에 갈겨야 했다.

그 잠깐의 의아심과 공백이 시점을 놓쳤다.


만약 남에서 있던 사건처럼 나뭇잎 떨어지던 때라면 벌써 총알구멍으로 벌집이 됐을 거다.


이종인이 박진을 보려 천천히 고개를 돌렸는데, 그 순간, 경사면에 의해서 자신들 그림자가 ‘공제선에 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일단 안도했다.


하지만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여기서 죽어?’


눈치의 싸움이 매복 승패를 가른다.


이종인에게나 상대에게나 이상할 수 있는 건, 바로 백팩에 장착되었으나 위로 솟은 긴- 저격총 총열. 그 긴 총열이 비-자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냄새 없다. 모르겠다.

무수한 손가락들이 방아쇠에 얹혀 침묵하고 있다.


벌레 없다. 안 운다. 새소리 없다. 새는 멀리서도 우는데, 여기 뭐가 큰가? 좀 멀리서라도 우는 새가 없다. 새 자신의 생존에 이상이 생길만한 무거움이 그 거리까지 있다는 것이고, 여기 무척 많은 사람이 깔렸는지 모른다.


건너편, 상대들의 몸은 굳었고 판단은 민감한 상태.


혹시 같은 부대 매복 대원인데, 잠시 움직였다고 생각하나?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지휘관은 현재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직접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매복 차단선이 어떻게 깔렸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모르는 병사는 질문해야 한다. 아군을 쏘고 적군은 놓치는 어이없는 상황을 피하려면.


시간은 흐르나 움직일 수 없다. 동이 트면 죽는다. 이, 한 10m 거리에서 상대가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지형지물에 은폐한 상태에서 철수를 기다리면 된다. 하룻밤에 그 차단선에서 적을 못 잡으면, 다시 하룻밤 야간행군 거리를 상정해 재빨리 이동해야 잡는다. 공쳤다면 보다 멀리 차단선을 형성해야 한다. 그때는 ‘더 멀리 올라갔나?’ 생각이 들 정도로 멈춰서 맥이 풀리기를 기다려도 된다.


북한도 태백산맥의 영향을 받는다.


서로, 서쪽으로 산맥을 넘어 북조선 수도를 향해 갔으리라 생각 않는다. 남 아니면 북. 동쪽은 바다.


강릉에서 북한 정찰조는 틀림없이 이 전술을 썼다. ‘오리무중’을 노린다.

문제는 항상... 먹을 식량과 체력의 하강변수. 그때 정찰조는 남한의 군대가 머물렀던 자리에 다가가 버린 전투식량 봉지에서 밥풀도 떼먹었다. 만약 차단선의 남한군이 실수로 (혹은 귀찮아서) 뜯지 않은 전투식량 서너 개를 버렸다가 정찰조원들이 발견했다면 정말 큰일이 날 상황이 된다. 굶은 자에게 전투식량 하나는 순간 초인을 만든다.


‘헬기가 컸나 봐.’

‘기다린다고 해결될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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