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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백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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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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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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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1. 금야 밤바다 (3)

DUMMY

두 번째 보초교대가 왔을 때 유심히 관측했다. 다행히 앞의 방식과 숫자, 동일했다. 특이사항이 있을까 걱정하다 시름을 덜었다. 바로 앞 비포장도로에 차량도 한산하다. 뭐가 지나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북한은 밤에 차량이 없다. 어쩌다 하나 지나간다.


북한은 구역별로 등급처럼 주간통행 야간통행 규정이 있고, 야간에 운행하는 차량은 확실한 통행허가증이나 운송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전시 이야기가 아니다. 평시에 그렇다. 북한의 도로는 밤에 적막하다. 북한은 꽉 조여 움직일 수 없도록 각 지역을 서로 차단한다. 쯩이 있어도 경무관이나 보안원이 시비를 걸며 꼼짝없이 말을 들어야 한다. 밤에 차량이 운행되면 특별한 목적이라고 봐야 한다. 밤에 고속으로 차를 몰면 낮은 관직 계급이 아니다. 다른 경우라면 ‘비상’인 거다.


그러니 이런 해안선 (경계용) 도로에 차가 없다는 건, 넷에게 큰 위안이다.


‘엎드린 배가 축축하다. 이게 뭐였지? 언제였지? 아, 해안. 해상훈련. 그해 LST가 최소되자 대대장은 보트 침투 없이 근처 해안의 어떤 목표에 대한 타격훈련을 명령했지. 그런데 하하. 거기 너무 가난해. 뭐가 없어. 결국 동사무소 같은 걸 때렸나? 그때 축축한 소나무밭에서 배를 깔고 오래 기다린 기억만 나네. 한여름이니 모기는 회식하고. 그만하자. 태흔이가 옆에 있었어. 시계.’


TOT 30분 전.

‘내가 영화를 상상하나? 기대를 품어?’


문경주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스코프에서 얼굴을 떼고 엉뚱한 곳을 본다. 그리고 다시 스코프로 간다. 버릇.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것은 너무 집중하고 있으면 집중력이 더 물러진다. 저격으로 말하면 안 좋은 방법에 매달리다 실수가 일어난다.


그때 문경주는 ‘주의 환기’로 집중력을 확 풀어버렸다가 다시 서서히 들어간다. 그 버릇으로 일정한 향상을 봤다. 오랫동안 같은 장소 같은 자세로 기다려야 하는 저격수의 피로, 특히 눈의 피로를 털어버리는 자신의 습관이다.


팀 안에서 아직은 부각하지 못한 보직.

저격수.


“호흡이 딸려? 정문 찍고 와. 초시계 잰다. 뛰어 갓!”

십자로를 지나, 기구 격납고 지나, 정문 찍고 교장으로 선착순.

‘그게 바로 47 저격수 1.5km 선착순.’


47의 집체. 모든 저격수 훈련의 마지막 종합평가는 서로 모르고 한다. 시간은 뭉뚱하게 네 시간 정도 잡아놓고, 상대가 어디서 어디로 오는지 모르고, 교관 조교들이 고배율 쌍안경을 들고 계속 찾는다. 걸리면 빵점. 최고 종합훈련은 이틀간 숨고 참아야 하며, 표적은 단 몇 분 노출된다. 안 들리고 그 틈을 잡아 쏘지 않으면 실패.


교관 조교들은 꼽아 놓은 타깃을 전시하듯이 놔두지 않는다. 그 4시간 안에 타깃 표적은 30초 정도 다섯 번 노출시킨다. 그 안에 쏴고 적중시켜야 한다. 눈을 뗄 수가 없다. 바지에 오줌을 (끊어서) 지리면서도 스코프에서 눈을 떼서는 안 된다. 대상이 인간이면 어떤 행동이 나타날지 모르고, 난공불락의 목표도 순간 노출될 때가 있다. 그 순간까지 기다리고 기다린다.


문경주는 훈련된 관측수(서포터)이 없다. 교대로 목표를 감시하고 거리측정과 탄착점 확인과 조언. 하지만 그건 ‘일반 저격수’이고 특수전 저격수는 단독으로 식별 거리판단 조준 격발까지 혼자 해야 할 때가 있다.


문경주는 염두에 둔다. 총 4명을 단시간에 쏴서 적중시켜야 하는 상황을.

이제 다섯으로 늘었다. 아직 소음기 상태다.

양쪽 초소는 기립한 건축물이 있어 스코프로 금방 찾지만, 중간의 잠복초 1인은 머리가 보일랑말랑하다.


‘우측 초소의 2인을 확실히 적중시킬 수 있을까...’


소음기로 사격하면, 그 소음조차 등 뒤에서 오기에 잘 안 들리고 거리로 짧다. 금방 발화점을 찾지 못한다. 만약 쏴야 할 경우, 고함이나 사격을 못 하도록 바로, 완전히, 보내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잘 보이는 왼쪽의 초소는 (확실히 하려면) 머리를 적중시켜야 한다. 거리는 충분히 가깝다. 저격이라 할 거리도 아니다. 스코프 포인터에 걸리기만 하면 골통은 날아간다.


방법은 3중이다. 하나가 살아남았다면 선두로 나가는 박진이 K-7으로 확인사살. 보다 안정적인 방법은 성지연이 선두에서 중간 1인초를 무성으로 말끔히 제압하고, 안 들키고 바닷물에 입수하는 것. 총 안 쏘고 꿈에도 그린 퇴출을 바다로 하는 것.


이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질 확률은? 모른다. 시나리오는 시나리오다. 시나리오에서 벗어날 확률이 더 높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비 내리고 천둥 치기를 학수고대한다. 만약 그런 악천후라면 먼저 둘 정도 쏘고, 이동하면서 거리를 확 좁혀 옆 초소 남은 사람들을 정확히 보낼 수 있다. 이 거리에서 서서쏴 불안할 것도 없다. 무조건 머리. 머리가 가렸으면 심장.


‘다는 못 보낼 수 있어. K-7 엄호 필수.’


북한 해안에는 왜 이리 갈매기가 없냐.

여긴 없어도 다양하게 없어.

비둘기 갈매기, 여기선 다 잡아먹을 거다.

하긴 할아버지 말로는

옛날에 포장마차에서 참새구이도 있었다는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오면 아주 친숙한 동네일 거야.


아, 정말 문명으로 돌아가고 싶다.

시간 정말 안 가네.


15분.

박진이 군침을 삼키며 점등판 플래시를 든다. 이종인과 성지연이 모자를 벗어 플래시 양쪽으로 빛을 막는다. 필터에서 새나갈 빛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 양쪽 초소의 ‘친히 뒤돌아설 보초’를 향해 막으려 한다.

문경주는 스코프와 시계를 번갈아 보며 구령을 준비한다.


‘바람?’


남에서 북으로 분다.

우측의 소리가 좌측으로 날아가 잘 들린다.

‘그러면 왼쪽 초소부터. 1번. 머리. 조준.’

문경주가 잘 보이도록 손가락을 들어 왼쪽을 지시해서 고정했다가 내린다.


7분...


누군가 엎드린 상태에서 양손을 모아 합장한다.


4분...


문경주가 조용히 입을 연다.

“좌측 초. 1번. 조준 상태.”


“초탄에 가야 해. 쓰러지면 2탄 못 준다.”

“하이.”


2분...


모두, 조금씩 자세를 고쳐 잡는다.


30초...


시계를 보던 이종인,

“플랫. Go.”


박진이 플래시를 연속 점등한다.


다시 30초 뒤,

“플랫.”

신호 점등.


“플랫.”

마지막 신호 점멸.


박진은 플래시를 이종인에게 맡기고 무릎 꿇고 상체를 일으켜 야투를 주시한다.

숨소리만 들린다. 거칠다. 모두 거칠다.

모두 미간을 찡그리고 정지했다.


이종인의 턱이 떨린다.

“제기랄...”


영원. 쇼였던가.

우리의 마음일 뿐이었나.

입맛이 쓰다. 침이 쓰다.


그때였다. 갑작스런 소음 네 개. 이종인이 박진의 어깨를 움켜쥐고, 박진은 놀란다. 박진의 야간투시경으로는 안 오인다. 이종인의 정외선 조준경으로만 보인다.


“왜. 왜! 보여?”

이종인이 말이 없다.

모두 이종인을 본다.

“보이냐고.”


“왔다.”


탄식. 떨림. 속에서 무엇이 뜨겁고 거칠게 올라온다.

“왔어. 신호 식별. 우리 점등을 봤어.”


“진짜야? 줘봐.”

“가만. 가만. 그대로 있어.”


“건드리지 마. 신호 보잖아.”

“암구어 해요?”

드디어 이종인이 입을 연다.

“응. 7회 전송해. 30초 간격 두 번. 해.”


잠시 후.


“반응 와요?

“조용...”


그리고, 이종인이 눈을 떼고 돌아본다.

“직접 가야 한다.”


“뭐? 3번이야?”

“응.”


“접선이 안 나와?”

“없는 것 같다. 없다.”

“정확히 말해봐. 무슨 뜻이야?”

“비상신호야. 4번. 저 신호 안에는 직접 오라는 뜻도 있어. 기억해?”

“직접?”


박진이 결정한다.

“수영... 빨리 백팩 벗고 준비해.”

모두 일어난다.

“조용해! 경주야, 맞출 수 있겠어?”

“어디.”

“왼쪽 초소.”

“볼게요.”


백팩을 벗고 조끼를 벗는데, 박진이 성지연을 걱정스레 본다.

거리를 가늠할 수 없으나 적지 아니 멀다. 나머지 셋도 장담할 수 없다.


“가능. 표적 가능. 노출 상태.”

“경주, 너도 일단 군장 벗어.”

“예. 제가 왼쪽을 맞추면 출발하십쇼. 좌우. 최대한 해보고 따라가겠습니다.”

“일단 군장 해체.”


다급한, 그러나 소리를 죽이고...

자신들과 함께한 이 장비들. 이 군장들...

‘이거 다 벗어도 되는 거야? 마지막이야?’

‘다시 쓸 일 없는 거야?’


“벗은 거 위장할 생각 하지 마. 그냥 저 풀에 던져.”


문경주는 백팩과 조끼를 벗고 군화도 벗은 다음 다시 엎드려 스코프로.

나머지 셋은 긴 호흡... 박진은 K-7. 이종인은 무성권총. 성지연은 대검.


“석굴암. 구령하면 쏩니다.”

“하나. 둘. 셋....”


“어... 어?...”


박진이 갑자기 저격총 덮개를 잡고 옆으로 튼다.

놀라서 들리는 문경주의 시선.


“왜...”


박진이 야투경으로 전방에 고정되었다.

모두 렌즈를 전방으로 돌린다.

그러자 모두 정지.


녹색의 바다...

보통 스코프의 컴컴한 바다...


검은색들이 날고 있다. 기다란 검은 점.

배다. 배 서너 척 빠르게 밤바다를 달린다. 저 낮은 홀수선과 날카로운 모양은 어선이 아니다. 배들은 한 곳을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지그재그 맴돈다.


수영을 위해, 이제 살아 돌아간다는 벗어버린 군장. 안테나 성지연은 팬티에 소총을 등에 두르고 손에 칼을 쥐고 있다.


이종인은 계속 적외선으로 보고 있다.

“(신호) 더 없어?”

“없어.”

“내가 점멸해볼게. 반응을 봐.”


시도.


2분.


신호는 보이지 않고,

바라지 않았던 소리가 들린다.


꽈릉! 꽈릉!


바다가 울린다.


박진이 오른손을 빠르게 돌린다.

“군장 빨리... 다시 입고 준비. 빨리!”


박진. 이종인. 문경주. 성지연.

생각은 다르지 않고 동일하다.


‘이 정도면 됐다. 고맙다. 눈물 나도록 고맙다.’


모두 다시 정리하고 입고 준비한다.

급한 호흡소리에 누군가 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박진이 돌아보니 성지연 얼굴에 물기가 밑으로 죽죽.


“산으로.”

꼽았던 풀들을 던진다.

뛰어야 하니까.

부피가 커지면 바람을 몰고 다닌다.

수풀 위장은 정지했을 때나.

이동 때는 위장 부피가 늘어나면 소리 더 난다.


모두...

준비가 끝나자 박진을 바라본다.


박진이 이종인을 찍고, ‘선두.’

저 멀리 산을 찍는다. ‘방향.’

성지연이 손으로 자기 가슴을 찍고 엄지를 등 뒤로 넘긴다.

‘내가 후미!’


말은 하고 있지만, 준비는 하지만, 고개들이 자꾸 동해로 돌아간다.

뛰기 전...

고개를 돌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다.


섬광은 안 보인다.

폭발음은 계속 들린다.

바다의 폭음은 물 때문인지 무겁고 육중하다.


‘결정의 순간이 아니라, 결정이다. 더는 없다.’


박진은 처음 본다.

“이 개 같은 거.”

문경주의 분노.

옷과 장비를 다시 착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저격총으로 초소로의 조준을 풀지 않는다.


“안 돼. 안 돼.”


그러나, 생각보다 문경주 표정은 차분했다.

다만 이를 악물었다.

스코프에서 눈을 떼고 박진과 이종인을 본다.


“좀 죽이면 어때서.”

이종인이 어서 장비 착용하라고 몸을 민다.

“좀 죽이고 가면 어때서.”


일어서는 문경주 눈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안광.

닫히지 않는 입에서 숨을 거칠게 몰하쉬며,

이종인을 한번 보고는 장비를 챙긴다.


바다는 항상 추억뿐인가.

오직 지나가는 사람들의 낭만,

사는 사람에겐 울렁이는 고독.


넷의 몸과 군복에서 모래가 우수수 떨어진다.

누군가 몸을 흔들며 턴다.


“바다가 좋은 적이 없어. 젠장.”


고개를 돌리니 1/3을 반을 가린

산 그림자가 어서 오라 손짓한다.


내가 죽는 곳은 지옥이다.

그러하므로,

날 죽이려는 놈들도 지옥이어야 한다.


지옥에선 사살이 선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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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50. 육첩의 방 - II 21.05.27 422 15 12쪽
73 50. 육첩의 방 21.05.13 492 13 11쪽
72 49. 810 +1 21.04.28 513 16 13쪽
71 48. 1133이 진 자리 +3 21.04.14 569 17 13쪽
70 47. 전투호흡 3 21.03.31 492 18 14쪽
69 47. 전투호흡 2 +2 21.03.17 499 17 11쪽
68 47. 전투호흡 1 21.03.03 538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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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45. My Way 21.02.03 548 18 14쪽
65 44. 가위가 놓인 그 자리 21.01.20 557 15 11쪽
64 43. 1분 20초 그리고 이별 21.01.06 507 17 14쪽
63 42. 가을하늘 공활한데 20.12.23 504 18 12쪽
» 41. 금야 밤바다 (3) +2 20.12.09 576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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