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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검은 백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0 01:20
최근연재일 :
2021.11.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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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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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1. 도화선

DUMMY

“아, 나, 이거 씨발 진짜...”


똘폭이 그립다.

그 단순무식한 녀석이 하사 시절부터 개갈굼으로 배운 것. 똘폭 태흔이가 있으면 손쉽게 해결할 문제.


‘난 몰라. 뇌관에 도화선 연결 – 뇌관을 폭약에 꽂고- 도화선에 비전기식 격발기 연결. 물리는 곳에는 찝개가 필요하고, 그다음은 당겨서 점화. 점화기가 안 터지면 도화선 끝을 라이터 불로 조진다. 땡. 특수전 일반폭파 배운 거 이상 몰라. 난 화기니까.’


C4, TNT, 합이 14파운드. 폭약 다 못 가져왔다. 전기식 비전기식 뇌관들. 도화선에 연결해서 당기면 딱! 치익~ 불이 붙는 비전기식 점화기. 전기식 뇌관과 전기식 점화기도 가져는 왔다. 점화기를 아무리 살펴봐도 FUSE 숫자가 안 적혀 있다. 그 숫자는 연결 가능한 뇌관의 숫자이고, 그 뇌관 개수에 감당 가능한 전압/전류가 발생 된다는 용량이다. 전기식 점화기에 아무것도 없다. 장비의 모든 태그와 글자를 다 지워버린 거다.


‘전기식을 써봐? 복잡하네. 자신 없는데.’


그렇다. 종종 봤다. 전기식 불발. 공고 공대처럼 전압 전류 저항 다 배우는 것도 아니고, 전기기사들이 들고 다니는 측정기로 점화기 전압/전류를 찍어볼 수도 없다. 폭파. 폭파. 폭파! 돌렸는데 고요. 개미가 웃는다. 니미 시팔 소리가 뒤따르지. 그러면 폭파 사수 조수 상관없이 쌍으로 꼴통 소리.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대체로 사수가 꼴통.


일반상식 : 전기식 점화기의 메터로 바늘이 충분히 오르거나 ‘(콘덴서) 충전 완료’ 램프가 들어왔는데도 “폭파!” 구령 후 안 터지는 경우는, 전류는 높은데 전압이 낮거나, 전압은 높은데 전류가 낮거나 둘 중 하나, 그리고 전기가 흐르다가 저항(뇌관과 전선의 저항)이 강해서 전력이 소모되는 바람에 뇌관의 규정치에 해당하는 전류/전압이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는 점화기의 배터리를 교환해야 하고, 배터리를 안 쓰는 압전(piezoelectric)식은 정비창에서 분해 수리밖에 방법 없다.


이건 기억난다.

‘중요한 폭파라면, 적 목표물 폭파인데 전기식이 먹통 났을 때 다시 만지고 어쩔 시간 없다. 다시 들어가지 않기 위해 비전기식을 이중으로 연결하고, 기본은 전기식을 때렸을 때 폭파가 안 되면 비전기식을 점화한다. 만약 전기식으로 격발할 시간이 대충 정해지면 – 비전기식을 먼저 터트리고 (불을 붙이고) 기다렸다가 전기식 점화를 시도한다. 둘 다 안되면 목숨 걸고 다시 들어가던지. 다만 그것을 위해서 도화선을 길게 가져가야 한다. 하여간 목표 타격을 최대한 이중으로 하라!’


“통신이 화기보단 낫지 않냐?”

“아니죠 선배님. 화기는 같은 화약 아닙니까.”

“니가 해 봐. 나 잘 모르겠다.”


성지연 중사 머리가 지글지글한다. 특수전과정의 일반폭파 I과 급조폭약이 약간 들어간 II.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안다. 특수폭파 과목부터 폭파 주특기. 일반폭파에서 각 개인이 모두 실폭을 한 건 아니지만, 5인 1개조로 폭약과 뇌관을 결합하는 실습을 했다. 실 폭약이 아닌 물렁한 놈으로 기초회로를 구성해서 제작한 다음 조교의 점검과 채점을 받았다. 그리고 10명에 한명 꼴로 실 폭약 1파운드와 뇌관을 확인하고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실폭... 생각보다 어려운 과목은 아니다.


갑자기 충격이 온다.

성지연이 인상을 찡그린다.

‘에이... 씨, 전기식 못 쓰잖아! 도전선 안 가져왔어.’

문경주는 의무낭 가위로 수염을 자르고 있다.


“어후...”

“왜 그러십니까.”

“가위에 살이 찝혔어...”


“전기식 못 씁니다. 도전선 안 가져왔습니다.”

“뭐라고? 도전선을 안 가져와?”


전기식은 작업이 더 필요하다. 뇌관의 두 전선과 도전선 끝 두 가닥을 까서 전기선처럼 연결하고, 연결하는 데는 전기기사들이 하는 연결법이 두 가지 정도 있다. 그리고 두 전선이 쇼트가 안 나도록 절연 테이프를 감는다. 전기 쇼트(합선)이 나면 합선 부위가 타고 전기식 뇌관은 터지지 않는다. 뇌관 연결이 끝나면, 다시 도전선 반대편 끝을 전기식 점화기(+) (-) 단자에 물린다. 그리고 점화기 전류 체크하면서 램프가 어쩌고, 대기시간 어쩌고, 그다음이 폭파 구령이다.


“피 나네 이거. 아이 쓰려.”

“선배님. 이거!”

“화기가 뭘 아냐. 일반폭파 배운 거밖에 모르지. 너랑 똑같아.”

“하, 머리 복잡해. 짬밥으로 정리 좀 해주십쇼.”


“14파운드?”

“예.”


“7파운드씩 두 개 만들면.... 7파운드 너무 센 거 아냐?”

“쎄긴 쎄죠. 2파운드만 해도 지축이 흔들리는데.”


“3파운드 해도 한 20m는 아작이 날걸.”

“아닙니다. 이건 지뢰가 아니니까 파편이 없습니다.”


“그런가...”

“수류탄처럼 강철판에 갇혀 있어야 폭발력이 배가 되고 파편으로 더 조집니다.”


“너무 많나?”

“세 개로 나눠서 만듭니까?”


“복잡하게 하지 말고 그냥 두 개로 만들어. 세면 센 대로 좋은 거지 뭐.”

“그래서 어떻게. 뇌관.”


“폭약마다 다 뇌관을 꼽을 수는 없잖아. 뇌관은 두세 개 꼽아서 유폭을 시키면 되는데... 이게 말야. 폭파 순간이나 던졌을 때 떨어져 나가면 그 떡은 폭발이 안 될 수도 있어. 그러니까 결속이지. 묶을 거는 있어?”


“여기저기 끈으로다가...”


“그러지 말고. 4~5파운드를 넣을 주머니 없나? 넣고 묶으면 훨 나을 것 같은데.”


“이거. 이거. 의무낭 쓰면 되겠네.”

“그렇지. 하나 완료. 하나는 어떡하지?”

“그러니까 선배님. 유폭은 유폭인데, 비전기식 뇌관이 하나만 터져도 다 유폭 되요?”

“그건 모르겠는데.”


“일단 뭉쳐 있어야 유폭 가능성이 커지죠?”


“그렇지. 꽉 묶어야 해. 그러니까, 1파운드 폭약 덩어리에 꽂은 뇌관이 터지는 거야. 그러면 순간이기는 하나 다른 떡으로 폭력 폭압이 전달돼야 유폭이잖아. 제대로 안 묶으면 그 전달되는 잠깐의 시간에 몇 파운드가 날아갈까 봐 그러는 거지.”


“알았습니다.”


“적 포탄이 쌓인 곳에 폭약을 터트려 유폭을 유도해도, 탱크 안에 있는 포탄은 다 유폭되지만, 포탄 박스에다 떡을 붙여 터트리면 반은 공중으로 날아가 버려. 왜냐하면, 폭력이 먼저 나무상자를 뚫어야 하고, 이어서 포탄 금속케이스를 차례차례 뚫고 들어가 유폭시키는 시간들 사이에, 먼저 터지는 포탄 압력에 날아가 버린다고. 순간이지 붕~.”


“뇌관 하나로는 위험하죠?”


“음. 그런데 점화기로 여러 개를 격발할 수가 없잖아. 하나에 물리는 거 아냐?”


“아, 복잡하네. 그러니까 뇌관을 두세 개 동시에 터트려야 하는데. 일단 도화선 길이가 같아야 할 거 아닙니까. 그래야 동시에 터지죠. 하나가 안 터질 때 예비도 되고요.”


“아... 비전기식 불발 많이 나지.”


“비무장지대 돌파용인데, 라이터 켜서 도화선에 지를 수도 없고, 이 비전기식 점화기에 도화선을 물려서 점화시켜야 하는데... 도화선이 하나만 물리잖습니까. 이게 도폭선이면 그냥 묶기만 해도 폭발력이 전달돼 유폭인데,”


“비전기식 점화기 딱! 소리와 라이더 빛과 어느 게 더 위험하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게 더 인지가 되는지.”

“도폭선 없어???”

“없습니다.”


“어떻게 도폭선이 없어!!!”


“그 주머니 중 하나였나 봅니다. 군용색 주머니.”


“하... 생각이 짧았구나. 그 동그란 게 도전선 롤이었구나!”


“도화선은 전선 중간으로만 타잖습니까. 속으로. 비가 와도 안 꺼지게.”


“요즘 거의 다 그럴 거야.”

“제가 보기엔 비전기식 하나로 할 수밖에...”


“도화선을 매듭으로 묶으면 불씨가 전달 안 되나? 다른 도화선에?”


“될까요?”


“아니 봐봐. 도화선 다 타면 결국 재처럼 되잖아. 속으로 불은 타 들어가지만, 그 불이 먼저 진행하지만, 나중에는 겉피도 결국 타잖아.”


“생각하니까 그렇네요.”


“좋은 생각이 있다.”

“말씀하십쇼.”


“TNT만으로 한 묶음 만들어. TNT 셋, 아니 네 개 되지? 네 개로 하나 일단 만들어. 다른 묶음은 C4로 음...... 두세 개 묶어서 하나 만들어. 뇌관은 세 개씩 꼽아도 개수되냐?”


“남아요.”


“그럼 됐어. TNT 네 개를 한 뭉치로 꽉 묶어. 하... 네 개 너무 센 거 아냐?”


“그리고요.”


“다른 하나는 C4 포장지 뜯고 주물러서 떡으로 뭉쳐 만들어!”

“아. 아. 그거다! C4는 해결이다!”

“그렇게 떡으로 뭉치면 유폭 쉬울걸. C4가 남지?”

“네.”


“그것도 쓰는 거야. 외피를 뜯어서 떡으로 만들어 가지고 가다가. 반 파운드 정도 떼서 수류탄 몸에 감아서 던져. 되면 1파운드 감아버리는 거지. 그렇게 수류탄 투척하면 장난 아닐걸. 완전히 수류탄에 꽉 눌러서 압착하고, 대신 너무 멀리 던지면 안 돼. 땅에 충돌하면서 떨어져 나가거나 풀리면 꽝이니까. 너무 걱정 마라. 어지간하면 다 유폭된다.”


“대단합니다. 생각.”

“난 화기야.”


“이 전기식 다 어떻게 하죠.”

“묻자. 언제 파낼지 모르지만.”

“예. 알겠습니다.”


문경주가 손바닥으로 턱을 이리저리 쓰다듬으며 가위를 내민다.


“자, 너도 깎아.”

“거울 없어요?”

“없어.”

“저 좀 깎아주시면 안 됩니까?”

“아이~ 징그럽게.”

“저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불로 확 꼬사벌라... 먹고 해라.”


“비빔밥, 찬물에 많이 불었나?”

“ATT 때 해봤어. 조금만 기다렸다 먹자.”

“돌겠습니다. 먹고 싶어서.”


‘한 4파운드 묶어서. 적 GP 지하에다 처바르면 아주 곤죽이 나겠구만.’


“지연아, 철책까지 얼마 남았냐.”

“찍어보겠습니다.”


‘북조는 밥이나 제대로 먹나.’


“어림잡아 45입니다.”

“오케이. 밥 먹고, 해지고, 가는 만큼만 가보자.”


“이거, 올라왔던 루트와 너무 비슷한 거 아닙니까?”

“익숙한 걸 어쩌냐. 뭐가 있는지 다 아니까.”

“어느 때, 루트 변경 해야겠죠?”


‘무섭지만.’


“그렇지. 거길 어떻게 다시 넘어가.”


남조선 전투식량 비빔밥 봉투가 열리고.

눈앞에서 빛과 어둠이 교차한다.


사람들은 빛에서 어둠으로 변하는 걸 많이 본다. 반대로, 어둠에서 빛으로 변하는 걸 자주 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하루 두 번 빛과 어둠의 교차를 매일 봐야 한다면, 그것이 일상과는 동떨어져 너무 많이 반복되면, 꿈인지 현실인지, 내가 한 게 맞는지... 가끔은 자신을 의심한다.


꿈이라곤 할 수 없지. 손에 피를 묻혔는데. 꿈이라면 죽은 놈들이 서운하지.


우걱우걱 씹는다.

생살과 밥의 중간. 그리고 밥이 차갑다.


이제 닥치고 있다. 저 아래는 무엇이 기다리나. 아무래도 피로가 상당히 쌓였다. 현실과 비현실이 생각 속에서 뒤섞인다. 누워 눈을 감아도 숙면은 불가능하다.


‘좀 더 아래로 가면... 남으로 가면...’


거리. 네온사인. 맛집. 신형 핸드폰과 게임. 구글과 유튜브. 차가운 소주와 신곡. 하루가 멀다 쏟아져 나오는 보이그룹 걸그룹. 외우면 멀어지는 신곡. 외울만 하면 은퇴했는지 안 나온다. 상원사들은 10년 전 노래를 신곡이라고 열창한다.


SNS.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았다고 억지로 하는 인스타그램. 3년이면 노땅으로 밀린다. 하사들은 밀려 들어오고 중사들은 밀려 나가고. 사회의 일원임을 증명하고 싶지만, 어차피 군인은 군인. 군인은 따라가기 벅차다. 벅찼다. 사실 따라갈 필요도 없었다. 군인은 군인이 되는 순간부터 아저씨였다. 다만 개저씨는 아니다.


천리행군 중간. 표상사.

‘씹어. 삼켜. 안 넘어가도 한 톨 남기지 마. 밥맛이 없어도 꾸역꾸역 삼켜. 물은 너무 마시지 마. 퍼져. 물만 마시고 안 먹는 놈들이 있어. 지친다. 억지로 먹어라. 전투식량이라도 음식 버리면 죄받는다. 빨리빨리 안 먹어!’


‘갑자기 뭘 여기까지 나와.’


전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하강하며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 그날 왜 그러셨지? 사람이 느끼는 게 있나? 내가 죽는 건가?


가슴이 차갑게 전율한다.

‘가고 싶다. 쉬고 싶다.’


이럴 때는 단순하게...

먹고 생각하자.


표창. 까칠이 박진. 광교산 이종인. 띠따 백주현. 똘폭 강태흔.


가자.

가자고!


이유는 많지만,

하나는 기억하라.


우리를 배신한 놈들은 둘째로 치고,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된 건지 아무도 모르면 씨발 너무 서럽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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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도화선 21.06.10 420 14 13쪽
74 50. 육첩의 방 - II 21.05.27 428 16 12쪽
73 50. 육첩의 방 21.05.13 499 14 11쪽
72 49. 810 +1 21.04.28 520 17 13쪽
71 48. 1133이 진 자리 +3 21.04.14 576 18 13쪽
70 47. 전투호흡 3 21.03.31 497 19 14쪽
69 47. 전투호흡 2 +2 21.03.17 507 18 11쪽
68 47. 전투호흡 1 21.03.03 546 16 11쪽
67 46. 확인사살 (Confirm Kill) 21.02.17 509 15 12쪽
66 45. My Way 21.02.03 557 19 14쪽
65 44. 가위가 놓인 그 자리 21.01.20 563 16 11쪽
64 43. 1분 20초 그리고 이별 21.01.06 513 18 14쪽
63 42. 가을하늘 공활한데 20.12.23 510 19 12쪽
62 41. 금야 밤바다 (3) +2 20.12.09 583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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