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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백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0 01:20
최근연재일 :
2021.11.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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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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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45. My Way

DUMMY

모든 채소 야생 과일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야생은, 풀도 버섯도 나물도 자신이 살기 위해 진화했다. 풀은 인간을 먹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려고 살다 보니 그 모양과 성분이 되었고, 고대부터 인간이 문득 뜯어먹었는데 탈이 없었을 뿐이다. 인간이 탈이 나거나 먹고 죽은 것은 사람들이 안 뜯기 시작했다. 그 풀이 정상적인 먹이사슬의 시작이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여기서 ‘먹을 수 있다’는 사람 기준이다. 인간이 먹으면 큰 탈이 나지만 소나 염소가 먹는 풀이 있다. 생존교범에 ‘식용가능’이란 인간에게 식용 가능이란 뜻.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풀의 종류는 축소되었다. 중요한 몇 가지만 밭에 기르기 시작했다. 사실, 인간도 상당한 잡식성 동물이다. 육식 초식을 다 하는 동물은 많지 않을 것.


별의별 것을 다 먹는다.

인간은 먹고 죽는 것 빼고 다 먹는다.


손가락 한 마디 만한 야생과일 종류, 무슨 나무인지 기억이 안 난다. ‘식용가능’에서 본 기억이 없다. 생존교범이지 식물도감이 아니다. 같은 내용으로 군대 교범은 사회의 책보다 무척 간략하다.


나무는 자신의 씨를 뿌려 영속하기 위해 열매를 만들지, 인간 먹으라고 열매에 영양분을 집중시키지 않는다. 인간은 식물 자신들 번식의 노력을 따먹는 거다. 하도 당하다 보면, 몇천 년 몇억 년을 들여 나무가 점차 사라져 가면, 그들도 살기 위해 열매에 독을 심는다. 자신을 먹을 동물들에게 경고한다. 그 동물의 자손들도 DNA에 남겨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만든다. 동물은 안 가르쳐줘도 냄새로 못 먹을 것을 안다.


동물도 단 열매는 좋아한다. 냄새만 맡아도 침을 질질 흘린다.


책을 읽지 못하는 동물이라도 ‘이거 먹고 죽을 수 있다’ 본능으로 안다. 동물은 먹을 것과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동물에 본능적이다.


예전 기록을 보면, 주인과 가던 개가 산에서 얼룩덜룩한 범을 마주하자, 누워서 사지를 벌리고 누워서 오줌을 싸고 바들바들 떨었다는 이야기. 그 개는 범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들은 적도 없다. 모든 동물은 상대의 크기, 힘, 위험을 금방 안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구에 살아남았다.


인간 몸도 본능에 경고를 보낸다. 항상 조심하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건강을 위해 잘 들어두라고.


[탄수화물이 건강 최대의 적이다.]


어떤 중년 탤런트는 몇 년 동안 쌀을 안 먹었다고도 한다.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고 고기와 탄수화물을 피하라.]


이런 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닭가슴살의 소비자들. 그들은 그렇게 멋진 몸을 유지한다.


어려서 굶어본 중년 노년들이 성인병에 걸린다.

넘치게 먹어야 내일 덜 배고프다는 강박,

‘일단 먹어!’ 본능으로 성장한 사람들이다.

똥배가 나오는 걸 봐도 어릴 적 본능을 통제 못 한다.


오늘도 두 명이 으슥한 곳에 누워

남은 영양분을 간수한다.

가슴에 총을 안고

눈을 감고

소리만 들으면서 고요히...


영양분 중에서 인류 최대의 적이 지방과 탄수화물.

‘많이 봤지. 여기서. 식용유 한 숟갈이 사람 살린다. 여기는.’


지방과 탄수화물이 몸에 안 들어가면 힘이 빠진다. 고기는 고사하고 곡식이라도 배불리 먹고 싶다.


쌀. 쌀. 쌀밥.

중소형 마트에서 헐값에 쌓여 있던 쌀.

‘이번 가을 마지막 이벤트! 20kg, 3만 원!’


‘야 요즘, 무슨, 쌀을 20kg짜리를 사냐!’


‘탈북자가 그러더라. 하나원 나와서 일하다 첫 월급을 받고는, 이 돈으로 쌀 20kg 몇 개를 살 수 있나 계산했고, 너무 놀랐대. 30포대가 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북한은 돈보다 실물이거든. 그날 쌀 열 포대를 사서 (그것도 참고 참아서, 눈치가 보여 줄이고 줄여서) 집에 쌓아놓았더니 그날 밤 그렇게 행복하더래.’


‘공화국 물이 덜 빠진 상태셨구만.’


탄수화물?

방법은 있으나 여기서 구할 수가 없다. 민가를 털어야 하고, 턴다고 꼭 쌀이 보란 듯이 기디리고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누운 2인은 생각한다.

먹을 것을.


부사관 독신자 숙소에 보면, 호실 열 개에 하나는 먹다 남은 보충제 포대가 있다. 마음먹고 1~2kg짜리를 샀지만, 독신자 숙소에서 자는 날이 많지 않다 보니 방치되고, 버리는 사람이 종종 생긴다.


‘나 줘. 왜 버려.’

꿀꺽.


단백질 보충제를 물이나 우유에 타서 한 컵씩 먹으면 국가대표 신기록 나올 것 같다. 그걸 안 마시고 운동하면 살만 질겨지고 벌크는 커지지 않는다. 오히려 만성적인 근육피로에 시달리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매우 좋은 물질이다.


부대원들은 몸에 관심이 많지만, 음식물만으로 절대로 될 수 없는 몸을 안다. 한번 시작하면 다양한 보충제와 영양제가 있다. 마지막은 바늘로 ‘쥬스’을 몸에 때리는 사람들. 힘줄과 체지방률을 보면 의심된다. 그룬 사람들이 모든 걸 차단하고 식생활만 유지하면 벌크 금방 10~20kg 빠진다. 매일 고기 먹어도 보충제 벌크 유지 못 한다. 빠지면 조신해진다. 전에 비해 심각하게 약해진다. 그래서 못 끊는다.


기력이 떨어지면 의지도 미세하게 균열이 간다.

더 강해질 거라고?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고?

모르지. 편한 침대에서는 가능한지.


해가 중천에서 기울어진다.

굶을수록 밤에 너무 춥다.

이빨이 다다다닥 떨린다.


이건 아니다 싶어

뭐라도 하려고 둘은 돌아다녔다.


정체불명의 열매...


반으로 쪼개 입에 넣는다. - 일단 침으로 범벅해 맛을 본다. 쓴맛, 시린 맛 등등 판별 - 딱히 이상이 없으면 씹는다 - 씹으면서 다시 맛을 살핀다 - 이상이 없으면 삼킨다 - 20분을 기다리며 몸의 반응을 본다 - 피부에 열이 오르거나 발진이 나거나 속이 쓰린지 기다린다 - 이상이 없으면 반이 아니라 한 알을 넣고 씹어 먹고 - 다시 15분 기다린다. 그러다 괜찮으면 주기와 양을 늘인다.


“괜찮나.”

“뭐 딱히.”

“속에서 이상하지 않아?”

“별로.”

“그럼 나도 먹는다. 속이는 거 아니지?”

“씨... 미쳤어? 왜 그래.”


생존훈련을 하긴 했다. 음식물 보급을 중단하고 버티는 것. 하지만 생존훈련은 내륙전술훈련의 일부로, 길어야 며칠, 며칠 굶는 것으로 끝난다. 굶는 걸 참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나라 산에 생존을 위해 취득할 것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대원들은 한 달짜리 종합내륙전술훈련에서 두 가지 조건을 좋아한다.


존나 높고 깊은 산 + 가을.


민가가 가까워야 뭐라도 있다. 그래서 생존기간에 빈 륙색을 지고 민가 야채밭을 포복한다. 이것도 작전이다. 대대본부에게 걸리면 개쪽에다 대대장에게 중대장 깨진다.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건 경험한다. 갑자기 몸이 편해지면서 가벼워진다. 그게 오전 어후 다르다. 하루만 지나면 확연하다. 팔다리가 고무처럼 편하게 논다는 기분이 든다. 마지막 날 정도 되면 몸이 미세하게 뜨끈해지면서 몸에서 잡다한 걸 태운다는 기분이 든다. 하나는 배운다. 매끼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탄수화물을 멀리하라고? 산에서.


풀이라면 끓여서 독을 빼고 먹을 수도 있다.

반합이 없다. 북한군 말로 함구?

정말로... 반합은 군인들에게 기적의 장구류다. 없어보면 느낀다.


“어떻게? 지금 심각해. 먹어?”

“먹자.”


박진과 이종인은 진수를 든다. 옥수수 알갱이를 긁어놨다가 말라버린 것. 특전식량 봉지에 물과 같이 불려 수저를 든다.


“어떻게 농장에 감자가 없냐.”

“감자는 ‘협동’의 대상이 아닌가 보지 뭐”


그럭저럭 우겨넣고 눕는다. 이 보충된 에너지를 날리면 안 된다...


에어컨. 아이스 아메리카노.

예뻤지만 다시는 입고 다니지 말라고 침을 튀겼던 여친의 검은 나시.


명동. 치즈 닭갈비, 사각 얼음이 한주먹 들어간 콜라. 다시 디저트 카페. 브런치 하나 먹고 싶다고 조른다. 심지어 점원들도 상냥하고 예쁜 거리.


해상훈련 직후, 자신이 어디 수영장 인명구조원으로 여름 한 철 보낸 사람 같다.


‘저 인명구조원이 저 여자를 건져서 사귀게 됐나 봐.’


중국인 일본인들이 거리낌 없이 뒤섞이던 거리.


칭얼거림에 사준 마카롱 세트. 여름에 몸이 얼 정도로 시원한 가게들이 넘치고, 겨울에는 롱패딩 입고 고추장불고기 같은 가게들이 넘치고. 안에서는 비상에 영내 대기에 시국이 어떻다 저떻다 하지만 사회는 평온.


군대는 시국에 너무 민감하다. 비상인데 사회는 왜 이러지? 알아서 잘 돌아가는 분위기가 못내 서럽기까지 하다.


‘오빠도 좀 먹자.’


억지로 끌고 가서 부대찌개에 소주. 사람들은 김치찌개를 매일 먹어 그닥이지만, 군인들은제대로 된 사회 김치 사회 찌개에 소주를 먹고 싶고. 일과 후엔 치킨에 차가운 소주면 만족. 배달의 민족 안 쓴다.


‘어디요?’

‘부대.’

‘오케이 부대.’


심지어 이름도 안 묻는다.

부대 근처 상인들은 안다.

정문에 가면 알아서 추리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두 마리?’

‘두 마리.’

‘오케이.’


호프집에서 강냉이를 집어 먹는다. 호프 잔에 물방울이 흐르고, 난 또 강냉이를 집어 먹는다. 강냉이 오드득 오드득. 집어 먹는다... 왜 이렇게 이것을 집어먹는지 지구과학은 밝혀내지 못한다. 닭을 시켰는데 강냉이 너무 집어먹네. 그런데 표정이 왜 저러지? 오늘 왜 저러지? 내가 강냉이 먹는 게 싫은가? 말을 해봐. 치맥 싫어? 내가 너무 단순한가? 하긴, 국에 밥에 소주, 치맥. 모텔. 나도 참 분위기 없다. 나 잘 몰라. 말을 해봐.


‘오빠.’

또 시작이다.

어? 강냉이 어디 갔지?

누가 치웠지?

이런 씨...


‘아, 졸았구나.’


2인으로 줄어드니 불침번이 애매하다.

더 피곤해진다. 같이 누워서 청음만 교대로 하기로 했다.

대신 수풀 가지로 위장 지나칠 정도로 하고 눕는다.

먹은 게 없어서인지 종종 어지러운 기분도 든다.

군복이 계속 넓어졌다.

지금, 속옷에 스키복을 입은 것 같다.


손. 방아쇠. 사격 스위치 확인!

“휴...”


‘한때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내가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뭐가 되어 있네. 한때는 내가 군인 흉내만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 뭐가 돼 있어. 정확히 뭘 하고 있어. 아주 뚜렷해. 항상 생각했었지. 실전에서 이게 가능한가? 내가 할 수 있나?'

'웃기는 말. 완전히 준비된 훈련은 없다. 총은 나가고, 방아쇠는 당겨지고, 칼로 찌르면 들어간다. 훈련이나 체력단련보다 훨씬 단순한 거였다. 그냥 하면 되는 거다. 군인은 총과 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던 거다.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네. 단순하잖아. 난 뭐가 됐어. 난 하고 있어. 팀 담당관 한번 하고 싶었는데. 이제 거의 물 건너갔다고 봐야지?’


‘이상 유무.’

눈 감은 귀에 집중...

코 확인.

“흠. 흠. 음~~~”

‘안 골았다.’


슬며시 일어나 저격총 스코프를 열고 사방... 계곡. 산등성. 산길과 저 멀리 도로.

태양 볕이 뜨거워 짜증이 난다. 밤에 걷고 낮에 자다 보면 그 볕이 얼굴에 떨어져 뜨거운 꿈을 꾼다. 얼굴도 탄다.


이상한 현상.


이 자리에 누워 자는 꿈도 꾼다. 이 자리에 누워 자는데 여기서 자는 꿈을 꾼다. 가면이 가면을 지켜보는 것 같다.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꿈을 꾸는 순간


‘아, 곯아떨어지면 안 돼.’


꿈을 중단하고 다시 가면 상태를 유지한다. 몸이 천근만근. 또 걷기 시작하면 금방 가벼워진다. 진짜 천근만근은 몸에 기력이 남아 있을 때 피곤해야 그런 거다.


고무 인형이 돼가는 것 같다. 몸이 살짝 씩 흐느적거린다. 잠은 줄어들고 마음은 더욱더 민감해지고 먹고 마시는 것이 절실하다.


콜라. 오렌지 주스.


표정의 변화 없이,

스코프를 보다 옆 사람을 툭툭 친다.

옆 사람이 일어나고, 자연스레 쌍안경을 잡아 눈으로.

“10시 방향.”


이제 귀로 들어서 참고할 것이 없다. 장거리 무전기는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줬다. 라디오 청취법도 가르쳐 주고. 성지연이 통신이니 걱정할 거 없다.


“뭐야...”

10시 방향 저 아래. 저 아래...

산 저~~ 아래 트럭들이 보이고, 기백은 될 그림자들이 서성인다. 저게 군인이 아니면 무엇이 군인인가.


스코프를 본 박진이 손을 들어 ‘알았어!’ 하고는 다시 누워 눈을 감는다.

‘파인애플.’

이종인은 가슴을 만진다.

‘여기 있구나. 두렵지 않아.’

호흡을 주~~욱 공중으로 뺀다.


‘무슨 꿈을 꿨지?’


‘아! 난 이제 뭐가 됐어.’


To think, I killed a cat

Oh no, I did it my~~~~ way


표. 강. 백.

Rest & Peace


난 이제 뭐가 됐고,

앞으로도 뭐가 될 거다.

오늘도 내일도 뭐가 될 거다.


총이 말을 하고

칼이 속삭이겠지.


여기를 만져야 돼.


나의 내장.


주물럭주물럭


‘음, 살아있어.’


작가의말

사정상 2주에 한번 기고하며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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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50. 육첩의 방 21.05.13 499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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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48. 1133이 진 자리 +3 21.04.14 576 18 13쪽
70 47. 전투호흡 3 21.03.31 497 19 14쪽
69 47. 전투호흡 2 +2 21.03.17 507 18 11쪽
68 47. 전투호흡 1 21.03.03 546 16 11쪽
67 46. 확인사살 (Confirm Kill) 21.02.17 509 15 12쪽
» 45. My Way 21.02.03 557 19 14쪽
65 44. 가위가 놓인 그 자리 21.01.20 563 16 11쪽
64 43. 1분 20초 그리고 이별 21.01.06 513 18 14쪽
63 42. 가을하늘 공활한데 20.12.23 510 19 12쪽
62 41. 금야 밤바다 (3) +2 20.12.09 583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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