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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백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0 01:20
최근연재일 :
2021.11.10 12:00
연재수 :
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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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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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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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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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43. 1분 20초 그리고 이별

DUMMY

홀가분하다.

그런데 너무 홀가분하다.

너무 홀가분해서 쓸쓸하다.


자꾸 하늘의 달을 본다.


“얼마나 멀어졌을까.”

“하룻밤 지났으니까, 산악... 몰라도 25km?"


"이종인. 가는 애들 좀 일찍 풀어줄까?“


이종인은 박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실눈을 뜬다.

박진이 저격총에 눈길을 주자 이종인이 피식 웃는다.

“진짜로?”


“시간 없어. 내려가는 도중에 어디서 발각될 수도 있어. 우리도 추격당했잖아. 그러니까 거기 도달하기 전에도 한두 번 광고를 내주면 어떨까 이거지. 애들이 불안해.”


“뭐가 애야, 애가.”

“그렇다면 지금이 적기야. 저거 봐라. 가까워.”

박진이 못할 건 뭐냐고 하늘로 턱을 든다.


“일단 사이트 열어볼게.”


상공에는 오늘도 헬기와 정찰기가 조합.


‘진짜 뭐 알고 저러는 거야?’


서로 묻지 않아도, 저 항공수색은 누가 틀림없이 충고/코치했다. 밤에 잠시 들렀던 협동농장에 흔적이 ‘바로 그놈들’, 자신들이란 증거는 없다. 하지만, 정찰국에서 활동하다 문제가 생겨 급거 월북을 경험한 사람들은 분명히 안다. 남한 땅에서 쫓겨본 놈들이 많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반드시 ‘먹는걸’ 찾는다는 사실. 본능이 버티는 한계가 있다. 고립된 군인에게 전투식량 따위는 떨어지는 체력 못 막는다. 체력이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마라톤 선수 몸처럼 쭈욱 말라가다 하강점이 한번 걸린다. 복싱선수 체급 중량 정도.


‘그렇게 많습니까?’

‘많았지. 남한에 들렀다 올라간 간첩이나 군인이 한 5백 명은 넘을걸?’

‘정말로?’

‘왜 이래. 누적하면 천 단위일걸?’

‘놀랍네.’

‘그놈들이 문제지. 선수니까. 그런 놈들이 쫓아와. 어지간한 경보 저격 해상여단 여단장들이 정찰국 작전조나 공작원 출신이라니까.’


혹자는 말한다. 군인들은 필살의 정신력이 우위라고. 그건 과거 일본놈들이 한국인 돈도 안 주고 개죽 먹이면서 중노동에 내몰 때 하던 소리다. 정신력 역시 요만큼의 체력이라도 남아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 요만한 것 때문에 여러 군대 특수교육에서 퇴교된다. 퇴교된 사람들이 어디 다친 것이 아니라면 퇴교 며칠 뒤에 깨닫는다.


그 ‘요만큼’을 못 참고 나왔다는 것을. 며칠 지나니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다. 며칠에서 일주일 지나니 스트레스 확 풀리고 살 확 오르고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 훈련의 지옥이 갑자기 사라진다. 그래서 존나 쪽팔리다.


특부후 자퇴생도 비슷할 거다. 며칠만 지나면 48시간 회복법칙에 따라 몸이 풀리면서 기력이 회복된다. 죽을 것 같아서 나왔지만 안 죽는 거였다. 갑자기 몸에 힘이 넘치기 시작한다. 이상하지? 후유증이 한 달은 넘을 거라고 생각했나?


강릉무장공비 사건, 마지막 두 명의 호주머니를 보면, 자신들이 이 상태 이 체력으로 DMZ에 도달해 월북이 불가능한 걸 깨달았을 수도 있다. 결론은 무엇인가 : 정찰조 중에서 월북할 사람을 고르고 먹을 것과 장비를 몰아주고 둘이 남았을 수 있다. 한 명이면 부피도 가볍고 은밀성도 높아진다. 남은 둘은 월북자를 위한 후위대 개념으로 추적대에 싸움을 걸었을 가능성 크다.


여기 동종업 놈들은 그림을 그릴 것이다.


비무장지대 사고 난 곳 – 중간의 사고 - 신고를 했으면 GPS 낙하산 재보급 장소 – 공장(냇가의 백주현) - 협동농장 - 자로 대고 선을 그어 연결해본다. 그 중간선 안에 문경주와 성지연이 내려가고 있다. 아직은 확실한 그림이 안 그려지지? 애매하지?


“앞 유리 방탄 아냐?”

“말했잖아. 북한 거 모른다고.”


“꼭 헬기를 쏴야 돼?”

“멍청아. 지상 병력을 쏘면 위치가 바로 나오잖아. 거리 어때?”

“글쎄... 가깝게 돌아올 때 한 500.”


“저게 원을 그리며 올라오다 우리 정면으로 설 때...”

“당연하지 그럼. 바보로 알아?”

‘조장 말에 격조 좀 지켜 새꺄.“


“아... 내 실력으로 되는 거야?”

“실력은 개념으로 이겨내.”

“무슨 개념.”


“의미가 있잖아.”

“의미? 무슨 의미.”

“강릉 보복.”


“재밌네. 가만. 의탁 좀 찾자.”


이종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적당한 걸 찾았다. 팔뚝 굵기 나뭇가지 하나가 수평으로 가슴 높이에 온다. 이종인은 베스트를 벗어 정사각형으로 두텁게 접은 다음, 가지에 놓고 총을 얹는다. 남쪽을 향해 거총...


“진이 형. 시간 재봐.”

“돌 때?”

“밑으로 돌아서 다시 올라오다, 다시 서쪽으로 틀 때까지의 시간.”

“알았어.”


“다음 패스에 쏴볼 테니까. 형은 올라오다 서쪽으로 틀 때까지 남은 시간을 카운트 해.”

“알았어. 알아들었어.”


“어때? 스코프 포인트와 헬기 크기가.”


“올라오기 시작할 때는 포인터 점과 헬기가 똑같고. 서쪽으로 틀기 직전에 조종석 좌우로 나뉠 정도가 돼. 사람이 안 맞을 수도 있고. 쏘고 나면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헬기 몸통 뒤빡에 대고 조질게.”


“그렇지.”

“소음기 떼면 정확도가 좋지 않나...”

“집 팔아서 장사해? 우리도 살아야지. 총소리 들을 거리에 누가 있을지 몰라.”


박진은 손목시계를 눈높이로 올려 측정한다. 헬기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한 번에 몇백 미터씩 서에서 동으로 밀면서 진행하고, 높이 떠 있는 정찰기는 헬기에서 이상 징후를 알리면 하강해 자세히 보려고 하는 것 같다. 헬기가 자세히 보려고 내려왔다가는 지상 사격에 제대로 맞는다.


박진의 눈. 시계와 헬기. 번갈아. 눈이 번개가 튄다.


“약, 1분 20초.”

“오케이... 올라올 때 서쪽으로 틀기 30초 전부터 카운트해줘.”

“알았다니까.”


1분 20초면, 헬기는 약 5분 너비로 원을 그리고 있다.


“담배 줘봐.”

“자식이 아주 하인을 대하네. 사이트 흔들려! 심박수 올라가!”

“그건 과학이고, 저격은 사람 마음으로 쏘는 거야.”


불을 붙여서 이종인 입에 물려준다.

“아나, 빨아라.”

박진도 하나 물고 쌍안경으로 헬기를 주시한다.

“자, 이제 남쪽으로 내려간다...”


이종인은 사이트에서 눈을 떼고 잠시 허공을 본다. 역시 사이트를 오래 보면 눈의 피로, 그 피로도가 마음에 영향을 주면, 자칫, 찰라, 자신도 모르게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충’ ‘맞겠지’ 당긴다. 사격장 100-200 이런 사격은 오차가 약간이지만, 저격수는 단 한 발이라도 ‘되겠지 뭐’ 쏘면 사격실패다. 위치 탄로 나고 헬기로부터 사격을 받는다.


‘로켓도 달렸나?’


이종인은 호흡을 정리, 입을 가볍게 다물고 코로 숨 쉬기 시작, 호흡을 길게 길게 늘인다.


“서에서 동으로 간다. 곧 돈다. 호흡 천천히. 천천히.”


다시 사이트에 눈을 대고, 몸을 지긋이 가지를 향해 밀어 자세를 안착, 오른손으로 개머리판을 잡고 흔들어 어깨에 정확히 견착, 목을 틀면서 볼을 개머리판으로 지긋이.


“돌기 직전!”

“하이. 이제 나 말 안 해.”


호흡은 사라지고. 총도 사라지고. 목표만 남는다.


“돌았어...”


아무 생각 없다

아무 생각은 없고 헬기만

알아서 한다

알아서 하는 자신을 믿어라

총도 사람 생각할 필요 없다


“1분 경과. 나머지 30초.”


‘어이 재 사격자들. 힘드냐? 사선에 올라 조준하면 계급 없다. 가장 병신은 사격점수 때문에 고참들 성화에 쫄아서, 사선에 올라 조준하면서도 깨질까 봐 걱정하는 놈이다. 그래서 맞겠냐. 총알 들어 있다.


아무도 널 못 건드려. 일종의 자유야. 사선에 오르면 졸병하사란 건 없어. 자유다. 떠드는 놈들 멀리하고. 그냥 충실하게 쏴. 사격하기 전과 후를 연관시키면 자꾸 긴장되어 안 좋다. 평정을 찾아. 좋은 걸 생각해. 반드시 넘긴다고 미소를 지어. 몸에 힘준다고 안 맞아. 몸은 편하게 눈에는 독을. 옛날에 북한 사격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취소당했어. 수상 인터뷰에서 ’적의 심장을 쏘았습니다.‘ 그말 때문에. 정답이야. 저거 안 넘어가면 저게 널 쏜다. 죽는데 졸병 고참 어딨어. 1대 1. 아무도 없다. 모든 걸 부드럽게 진행해. 골로 보내. 보낼 때 차분한 게 프로니라.“


더 작아진 박진의 속삭임.


“30초 전. 구령한다. 하나... 둘...”


박진은 쌍안경에서 눈을 떼 시계와 이종인을 본다. 흔들림이 없다. 이제 시계만 본다. 박진은 안다. 당기는 걸 재촉하면 안 된다. 못 쏘면 다음 패스에 쏘면 된다. 사수 건드리는 거 아니다.


“... 열여섯. 열다섯.”


박진 생각은 이번에 잘 안 들어오는 것 같다. 헬기가 측면으로 틀면 몸통을 커지지만, 조종석을 노리고 있다. 헬기가 겉은 커도, 옆에서 몸통을 쏘면 2/3는 총알이 그림자에 들어가도 허당이다. 정면이 효력사에 유리하다. 테일로터 맞추는 건 영화이거나 조준 실패에서 오는 운이다. 헬기 중간 탑승칸은 거의 허당이다.


자칫하면 문짝만 뚫고 관통해 반대편 허공으로 나간다. 그래서 헬기는 밑에서 쏘는 것도 유효하다. 연료통이나 탑승자가 맞을 확률이 높은데, 대한민국 헬기들은 미군의 영향을 받아 기본 (밑에서 쏘는 걸 막는) 기본 장갑과 조종사 좌석 방탄판이 있다. 연료통도 밑바닥은 방탄 기능으로 제작한다. 북한? 저게 빨라야 1970년대 모델 아냐?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 모델.

“다섯!... 넷...”


박진은 다음 패스를 기약하며 시계 보기를 중단하고 고개를 든다.


그때였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찔!


퍽쿵!

사격 충격이 온다. 소음기가 달렸어도 굵직한 탄의 화약 충격파는 동일하다. 소리 없이 그것이 터지니 박진이 놀라서 주춤.


이어서 이종인이 총구를 오른쪽으로 조금씩 틀면서 볼트액션 손잡이를 젖히며 쏘고, 젖히고 쏘고, 계속 쏜다. 2탄. 3탄 4탄. 5탄...


“사격 끝.”


이종인은 조준경으로 헬기를 조준하며 쫓아가고, 박진도 쌍안경으로 직승기를 따라간다.

‘징후. 징후.’


“에이 씨, 뭐 별론데?”


헬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안면 유리 방탄에 튕긴 건가.

하나도 안 들어간 건가.


“어... 어...”


동에서 서로 날던 헬기가 비틀!


“어, 어디 들어갔어!!!”


헬기가 왼쪽으로 기울면서, 원 그리기를 그만두고 남서쪽을 향해 방향을 튼다. 연기 같은 건 없다. 다만 약간씩 고도가 떨어지는 기분...


“어떠냐.”

“장담하건데 다섯 발 전부 들어갔어.”

“진짜야?”


이종인이 총을 내린다.


“아 진짜 무식하게. 저격총은 다 1km는 맞추기 위해 제작하는 거야. 1km도 권총표적지에는 다 들어가. 문제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방에 제압하는가의 문제지. 이 거리면 어차피 다 들어가는 거야. 어디에 맞냐가 문제지.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이게 무슨 총인지 몰라?”


연기는 안 나지면 분명히 고도가 떨어지고 있다.


“추락은 모르겠네.”

“추락하면 kill이라 좋겠지만, 오래 날다가 떨어지면 좋지.”

“뭔 소리야. 떨어지면 떨어져야지.”


“밑에서 누가 쐈다는 걸 알아야지! 북한 상부가 알아야지! 대공사격에 맞았다고 무전기로 보고를 하던가. 누가 맞았다 죽었다 비행장까지 날아가서 사실을 알려야지. 헬기를 맞춘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경주와 지연이가 편해지라고 쏜 거 아냐. 제트기를 이 총으로 다섯 발 맞추면 추락이 가능하지만, 헬기는 그 정도는 아냐. 빈 공간이 많아서. 일단 충분히 떠 있었으니, 무전으로 보고했을 거야. 씨발 이제 추락해서 뒈지든 말던.”


“오케. 가자. 이제부터 존나 쫓아온다.”


탄피 다섯 개를 풀밭에 모아 널따란 돌로 눌러 은익하고,


“왜 감춰. 뭐 어때서.”


“우리가 남으로 가는지 북으로 가는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헬기가 사격받은 곳에서 더 북쪽에서 우리가 발견되어야지.”


저격총을 백팩에 찍찍이로 달아 닫고, 박진이 AK 들고 선두, 이종인은 다시 권총. 출발. 능선길을 걸어가다가, 권총의 자물쇠를 확인한 이종인이 남쪽을 향해 권총을 든다.


‘경주야 지연아 잘 가. 멀리 안 나간다.’


거리가 멀어진다.


이종인 어깨의

무전기가 울린다.


[훅. 훅.]


뭐지?


[하나둘 둘둘 셋둘 넷둘. 까칠. 광교. 단결. 안녕히.]


‘뭘 봤나? 멀 건데? 전파 통달거리도?’

‘너희 어디 높은 정상에서 시도해봤구나.’


이종인은 무전기를 입에 댄다.


[완료. 경주. 지연. 살아서 보자. 교신 끝. 대기!]


박진. “버려!”


이종인이

무전기와 배터리를 분리해

멀리 수풀을 향해 던진다.


어떤 끈이

마지막 남은 어떤 가느다란 끈이,

정말로 끊어지는 기분이 든다.


헤어질 때도 이렇지 않았는데.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지원. 매산리. 공수. 특수전. 전입.

산. 바다. 여름. 겨울. 내륙전술. 천리.

대대. 지역대. 팀. 작전계획.

홍소령. 표상사.

강태흔. 백주현.

멀어지는 둘과 둘.


하나는 남으로 하나는 북으로.


목매어 외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F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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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50. 육첩의 방 21.05.13 499 14 11쪽
72 49. 810 +1 21.04.28 520 17 13쪽
71 48. 1133이 진 자리 +3 21.04.14 577 18 13쪽
70 47. 전투호흡 3 21.03.31 497 19 14쪽
69 47. 전투호흡 2 +2 21.03.17 507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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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45. My Way 21.02.03 557 1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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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1분 20초 그리고 이별 21.01.06 515 18 14쪽
63 42. 가을하늘 공활한데 20.12.23 512 19 12쪽
62 41. 금야 밤바다 (3) +2 20.12.09 583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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