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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백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0 01:20
최근연재일 :
2021.11.10 12:00
연재수 :
79 회
조회수 :
66,680
추천수 :
1,629
글자수 :
403,656

작성
20.12.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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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2. 가을하늘 공활한데

DUMMY

이제 박진은 넷으로 늘어났다.

도플갱어처럼 모두 똑같아졌다.


하나도 빠지지 않고,

눈동자가 아래위 눈꺼풀에 걸리지 않고 동그랗게 뜬다.

눈이 또렷해졌으나 담고 있는 감정은 사라진다.


이제 꾸미는 말은 서로에게 소용이 없다.


떠날 줄 알았던 산으로 다시 들어왔다. 예전에, 산악에 게릴라 베이스, 다시 말해 훈련상 산에 숨어서 자고 먹을 곳을 만들 때, 가장 가까운 비포장도로, 트럭이 지나갈 수 있는 길에서 보통 한 시간 오를 거리를 정했다. 그게 작계의 전술이라나. 하지만 알지. 민가가 가까우면 꼭 무슨 일이 벌어진다. 채소나 과일이라도 따 먹었다가 국방부에 전화하고 난리 나는.


훈련도 힘들지만 물 뜨고 반합 닦고 쌀 물 하러 내려갔다 올라가는 것이 지겹고 지겨웠다. 그걸 누가 하나. 하사가 하지. 특수부대, 특수전부대, 물 뜨고 설거지와 밥 국의 물 보러 하산했다 등산!


그러나 여기 와보니, 한 시간 가지고 안 된다. 한 시간이면 주민들이 나무를 해오는 거리 한계선까지 되고, 민가의 화목 한계선은 숨을 곳이 없다. 풀이라도 길면 모르는데, 풀도 소를 먹이는지 죄다 쳐 간다. 폭우 수해가 나면 그냥 무너질 것 같은 산들. 정말 ‘산 깊은 곳’이 아니면 불안하다. 지금 비트 파고 숨을 입장도 아니다.


모였다.

심각하다.

아니, 허탈도 아니고 허전? 하다.


박진이 다소 길게 말을 했고,

마지막에,.. 한 마디를 단다.

“바꾸어도 된다. 내가 의심스러우면.”


이종인은 고개를 숙였고 성지연은 문경주를 본다.

이제 꾸미는 말은 서로에게 소용이 없다.


“난 반대합니다.”

성지연이 의사를 밝힌다.

“정확히 말해봐. 방향이야?”

“아뇨. 두 조로 갈라지는 거.”


“지연아. 어차피, 어차피 갈라져. 우릴 가만히 놔두겠냐.”


다음 시선이 모인 문경주도 입을 연다.


“저는 두 조로 나뉘는 것이 전술적으로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분산될 겁니다. 비교함녀, 넷은 좀 무겁습니다. 이대로 가다가 1개 연대도 올라오고 사단이 올라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래위 남과 북으로 뛰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하고 더 안전하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같은 방향으로 뛰면서, 어디서 만나기로 약속하는 분산 재집결이 어떨까 합니다. 일단, 군장 더 줄여야 합니다. 이 백팩에서 물건 더 빼야합니다. 그런데 이중사님과는 말 하신 겁니까?”


“했다. 결정할 수도 있었지만, 선택을 준다.”


“축구 졌냐? 인상 펴자. 펴.”

누구라 할 것 없이 땅이 꺼져라, 한숨이 나온다.

모두의 생각은 같다.

‘이제 정말 방법이 없나? 이제 도보로 가? 나누어서?’


“너무 분노하지 말자. 국방부도 시도는 했어. 자, 반대하는 사람.”

성지연 혼자 들었다.

아무도 없자 성지연은 시선을 하늘로 든다.


“지연아, 과반이 넘었다.”


“팀장님. 결정하십시오.”

“뭔 팀장이냐. 조장이지.”

“박중사님. 결정하십시오. 따르겠습니다.”


박진이 박지연에게 얼굴 돌려 보라고 손짓한다.


“지연아. 내 말 들어라. 지금부터 우린 두 조로 나뉜다. 나와 이종인은 북으로 올라가, 우리끼리 이미 상의한 어느 지역을 공격할 것이다. 혹시 모르니, 너희들은 모르는 것으로 해두자. 이제 경주와 지연이는 남쪽으로 간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 성지연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마크를 오려낸 너덜거리는 장갑이 초라하다.

보풀이 부슬부슬 올라와, 고생 많았던 장갑.


누가 옳은 걸까. 누가 더 안전하고 누가 더 위험한가.

모른다. 일반적으로는 남쪽이 위험할 수 있다.


성지연이 불규칙한 호흡을 하고,

꺼억 꺼억, 입에서 기다란 침이 나오고,

누구라 할 것 없이 수염에서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진다.


“확실히 지금 결정해. 남조 북조 바꿔?”


문경주는 더는 안 되겠다 싶은지, 강한 어조로 입을 연다.


“박중사임. 결정했으면 하십쇼. 남조 북조 결정 끝. 누가 더 위험하고 누가 더 위험한지는 각 조가 해봐야 압니다. 그리고 우리가 머리를 굴려서 어느 것이 더 편할까 생각하는 이 장면이 정말 마음에 안 듭니다. 기분 안 좋습니다. 그냥 가시죠. 전 됐습니다. 군말 없습니다. 따져 봤자 꽝입니다. 머리 굴리다 먼저 죽습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틀리지 않다.

북으로 가는 사람과

남으로 가는 사람.


“감정으로 흔들릴 때가 아니다. 모든 건 전술이다. 너희는 우리 공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로 내려가며 안된다. 우리가 때리기 전까지 참아라. 뭔가 징후가 보일 거다.”


“징후?”

“남으로 가면 갈수록 깔려 있는 병력이 더 클 거다.”


“지연이, 대답을 해!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자, 전술 토의!”

갑자기 박진이 정상이고 나머지가 이상했다는 기분이다.


“어이, 정신 차리고 이 지도를 봐. 여기. 너희는 네 개 도로가 잘 보이는 이 지점으로 가서 도로를 감시하며 납작 엎드려 있다가, 북으로 차량들이 엄청나게 올라가거든, 그것을 신호로 남하를 시작해라. 그러니까 지금부터 남하할 때는 속도를 내지 말고 도로가 보이는 고산을 따라 최대한 안전에 유의하며 내려가라. 우리가 치고, 도로들에 이상 징후가 나타날 거다. 우린 최소 3일, 가능하다면 일주일간 끌겠다. 그 안에 너희가 성공해야 한다. DMZ 남방한계선에 살아서 도달하는 것이 명령이다. 수행한다.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는요?”

“일주일이 지나면 우리도 두만강 돌파를 시도한다.”


“그냥 가시지, 뭐 그렇게 복잡하게 하십니까.”


“아니, 경주 말대로 정확히 하자. 남조가 주공 북조가 조공, 조공은 양동이다. 그 이유는, 북한 애들 입장에서 생각을 해봐. 어떻게 생각하겠어? 얘들 상식은 아마 비무장지대 돌파를 생각할 거야. 그러니 조공이자 양동이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이상한 것도 아냐. 먹을 것도 없이 저 높은 산을 타고 국경까지 가서 강을 봐? 그래. 어차피 일주일은 봐야 하는 거야. 이건 군말이 없도록. 하여, 주공은 절대로 교전하지 마라.”


이종인이 나선다.

“자, 병기를 바꿔야 돼. 저격총은 우리에게 넘기고.”


“그래서 실탄 수 물어본 겁니까?”


“그만하고. 비무장지대 부근을 위해 경주가 K-7, 지연이는 무성권총을 받아. 저격총과 지연이 AK는 우리에게 넘긴다. 당연히 실탄도 몽땅. 수류탄은 적당히 평균으로 분배하고. 경주는 부무장 권총도 넘기고. 수류탄은 양쪽 공평하게. 경주는 나에게 저격에 관해서 유의사항을 알려줘. 거리측정기 넘기고, 오늘 저녁 해가 지면 갈라져 출발한다.”


“오늘?”


박진이 나뭇가지로 가운데를 톡톡 치며 셋을 차례로 본다.


“경고하는데, 경주와 지연이... 내려가다 딴짓하지 마. 무리한 거 하지 마. 교전하지 마. 무조건 피해. 그 나머지는 알아서 배운 대로, 걱정마라. 우리도 목숨 걸고 중국으로 탈출한다. 얕을 데는 여자도 건넌다. 압록강 초입 신의주 부근이라도 바지로 부의 만들어서 충분히 급조도하 한다. 서운함 미안함 그런 거 없다. 이건 양동작전이다. 알았어?”


“예.”

“목표는 네 명 모두 탈출해 성공해 부대에서 만나는 거다.”

“예.”


“목표는 무조건 달성되어야 한다. 자력에 의한 복귀도 군인의 임무이자 부대의 임무다. 도망이 아니라 임무다. 이해해?”


“에.”

“너도 대답해!”

“예!”


“우리가 희생한다는 껍죽거리는 소리 마라. 너희는 차량들이 유난히 북으로 가는 걸 보기 전까지, 모든 곳이 DMZ라고 생각하고 매 발 신중하게 남하해라. 특히 발목 간수 잘해. 접찔리기만 해도 좆 된다. 혹시나 살상을 피할 수 없으면, 1년에 안에 못 발견하도록 극히 신경을 써서 은익하고 가라. 이상. 질질 짜지 마.”

이종인은 공장 공격 때 버리고 온 북한 돈이 아쉽다.


“우리는 북조. 너희는 남조.”

“알겠습니다.”

“문경주. 니가 남조 조장이다.”


박진이 마무리를 짓는다.

“초정리 광천수에서 목욕하러 만나자.”


제대한다는 가정하에, 이종인은 예술 쪽 일을 하고 싶었고, 박진은 남의 밑에서 일 못 한다, 시장통에서 장사나 해야겠다고 말하곤 했다. 문경주는 경찰특공대나 경찰 특채를 말하곤 했고, 성지연은 대학에 복학할 생각이었다. 막내인 똘폭 강태흔은 소방공무원을 꿈꾸었고, 띠따 백주현은 자영업이란 말 외에 딱히 하지 않았다. 표상사는 아무도 들은 적이 없다. 그것이 본인들이 생각하는 인생이었다.


장기자도 ‘나도 나가면...’ 생각한다.


2년마다 계속 젊어지는 지휘관들을 보면 정체된 기분이 든다.


어쩌면 뭘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해 들어왔다. 수영선수였던 사람이 스쿠버에서 퇴교되는 게 군대다. 특수전학교에서 하는 말대로 어찌 보면 평범한 사람들이다.


[너희가 특별해서 특수작전을 하는 게 아니라, 특수작전을 하기 위해 훈련된 특별한 경우일 뿐이다. 그러니 꼴깝 떨고 까불지 마라. 겸손하고 성실하게 훈련을 받아라. 참아라. 계속 참아라. 그러다 보면 너희가 특수해질 수도 있다. 힘들고 참아야 할 때 생각해라. 특수함과 상관없이 너희는 게릴라다! 너희는 우리가 양성하는 새끼 게릴라다!]


특수한 사람들은 아니어도, 특수한 환경을 어차피 만날 운명의 부대.


“자부심을 가져. 지금까지 버틴 것도 대단한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우린 대단했어. 임무의 마지막만 잘하면 금상첨화다. 우린 충분히 잘했다. 난 자랑스럽다. 그리고 미안한데, 좀 이상하긴 한데, 나 신자 아니다! 기도하면 안 되겠냐?”


모두 놀란다.

그렇다고 고개를 안 끄덕일 수도 없었다.


“눈을 감는 건 알아서 하고, 손 모아!”


뜻대로 하소서.

어찌 미물이 세상을 알리오.

뜻대로 하소서.

저 태양을 우리가 어떻게 못 하듯,

뜻대로 하소서.


“끌어모아 한 끼는 같이 해 먹고 가자.”


끼니. 낯설다.

끼니?

끼니라고 할 것도 없다.

된장국이면 호화로워 기절할 것 같다.


하지만 원래 많이 안 먹는 부대다.

‘아침을 거의 안 먹는 부대.’


사람들은 평범했다. 평범하게 들어왔고, 그렇게 사람들은 변해왔다. 다른 부대 모른다. 하사 중사는 아무것도 아닌 표면적인 계급. 다른 부대와 비교할 수 없게 단절된 문화에서 군 생활. 사실, 중사도 젊다. 어리다.


하지만 이제 어리다, 말할 수 없게도 되었다. 훈련한 대로 사람을 쏘고 베고 찔렀다. 살벌한 지뢰와 인간들의 천국 DMZ을 통과했고, 북한 땅 고산지대를 질주했고, 팀원이자 전우를 잃었으며, 북한 땅에 고립 단절되었다.


이제 돌파 복귀를 시도한다.

가능성은 제로에서 시작한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눈물만 흐른다...


둘씩, 둘씩, 산길에서 멀어진다.

문득 서로를 뒤돌아본다. 동시였다.

손을 흔든다.

마지막으로.


30m.

유효사거리는 적정했다.

눈물이 분별되지 않을 거리다.


오랜만에 만월이 휘영청.


북조는 담담히 돌아섰지만,

남조는 한 명이 한 명의 어깨를 감싸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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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가을하늘 공활한데 20.12.23 512 19 12쪽
62 41. 금야 밤바다 (3) +2 20.12.09 583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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