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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찜 님의 서재입니다.

병장 김꼴띠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뼈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2.06.10 18: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55
추천수 :
5
글자수 :
122,805

작성
22.06.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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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이사벨

DUMMY

이제 길은 외길이다.

꼼짝없이 천마산 정상으로 가는 선택밖에 없었다.

그들이 몰아가는 대로 그들의 전장으로 한 발짝씩 들어가고 있다.


“믄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기가?”

“뭔 걱정이야.

누나하고 아빠 같은 훌륭한 전사들이 있는데.”

“짜식, 그래도 사람 볼 줄은 안단 말이야.”


‘훌륭한 전사’를 대책이라고 내놓는 순길과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아롱이.

태평한 남매의 태평한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괜히 맘이 더 조급해진다.


“니, 지금 장난 놀 때가?”

“어디 팻감이 있겠지. 설마 돌 던질 일이야 있겠어?”

“야 팔각정! 저기 정상이지?”


앞서가던 아롱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정상이다!

원적산만큼이나 사랑하는 산.

늘 보던 산천초목과 도시의 야경.

저 아파트 층층의 사연을 알기 전에는 삶은 상식적이며, 균등하며, 늘 보아오던 것처럼 고요하다.

골짜기들이 품고 있는 음모를 알기 전에는 산은 평화롭고, 낯익으며, 당연한 듯 솟아있다.


차라리 마제봉이 있는 서쪽 코스를 타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 그 능선에서 실타래 같이 뒤엉킨 뱀 무더기, 하늘을 날아다니는 혼령(?), 발걸음조차 내딛지 못할 설국의 매복된 온갖 꼼수들을 목격했더라면, 사랑하는 등산로가 순결을 유린당하는 것처럼 마음이 저렸을 것이다.


‘저쪽 능선에는 그런 꼼수들이 절대로 없을 것이다.

아니다.

내가 발 딛는 순간 호구치고, 옆구리 붙이며, 벽을 두텁게 쌓을 것이다.’


“뭐 해. 안 가고?”


우리는 이제 내리막을 달렸다.

그리고 중구봉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길마재에 이르렀을 때였다.

홀리듯 내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천마산을 가로질러 길마재를 넘어가는 송전탑 때문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송전선을 타고 건넌다면 피고개까지 그저 갈 수 있을 텐데.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에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왜 전기구이 되고 싶어?”

“아부지, 아쉬워?”


아, 어쩌다 고압선을 그리워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는가.

어느덧 중구봉이 눈앞에 들어온다.


“쉬었다 가.”

“쉬기만 해?”

“아니. 마지막 만찬이 될지도 모르는데 먹어야지.”

“앗싸!”


중구봉은 계산동 쪽과 계양산, 천마산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세 갈래 길이다. 어느 쪽에서 공격이 오든 도주로가 확보되며 봉우리라 시야가 좋다는 점에서, 휴식을 취한다면 여기가 적당할 것 같다.


중구봉의 커다란 돌탑을 등지고 앉았다.

이제 800m만 내려서면 드디어 징매이고개다.

휴식을 취한다기보다 마음의 준비라도 해야 할 지점이었다.


하지만 저 태평한 남매는 전투식량을 꺼내, 먹을 준비를 하느라 800m 아래의 공포는 아득히 먼 나라 얘기처럼 신난 표정들이다.


나는 아롱과 순길이 식사를 하는 동안 경계를 위해 총을 들고, 특히 계양산에서 올라오는 길목 쪽을 주시하며 몸을 은폐하고 있었다.


- 탕! 탕! 탕! 타당! 탕! 탕! -


뒤쪽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방향을 바꿔 사격 자세를 취했다. 총소리는 골짜기마다 파고들어 여러 곳에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아빠, 아무도 안 올 거야. 밥이나 먹어.”


소리는 순길이 허공에 대고 발사한 권총 소리였다.

총소리가 안 간데없이 고루 퍼져나갔듯이, 사방의 적들은 모두 우리가 여기 있음을 인지했을 것이다.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경계의 기본을 모르는 아이다.


“니 미친나? 차라리 방송을 해라, 방송을!”

“어~~ 순돌. 멋쪄 멋쪄!”

“니는 와 이래 쌓노?”


아이들은 전쟁인지 게임인지를 헷갈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철없는 행동에 속이 탄다.


“대마를 몰아가는데 귀 싸움에 신경 쓸 리가 없지.”

“귀가 있으모 다 들었겄지!”

“아부지, 이거 어떻게 먹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남매.

전투를 앞두고 난데없는 총질로 위치를 노출 시키지 않나.

그것이 멋있다고 부추겨주질 않나.

그 와중에 전투식량의 취식법을 물어오다니.


“쓲아 무!”

“뭐?”

“섞어서 먹으라구.”

“오, 예!”


‘즉각취식형 전투식량’

이 와중에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니.

그래, 일단 먹고 보자.

하기야 자신들의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데, 거기서 목 좀 축인다고 채찍을 들진 않을 것이다.


‘과연 마지막 만찬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저 고개를 무사히 넘어 피고개산으로 진군을 이어갈 수 있을까?’

‘꿀떡. 밥은 왜 이렇게 달기만 한 거지?’


그들의 공격을 늘 회피만 해왔지 제대로 맞서 싸운 전투는 태권 병사들 외는 없었다. 우리는 생애 첫 실전 전투를 위해 중구봉에서 징매이고개로 하강을 시작했다.


전투식량을 해치우듯 800m 길은 금방 사라진다.

아마 두려움과 긴장감이 거리를 잠식해버렸겠지.

드디어 8차선 고갯길이 보인다.

여기는 과속하는 차량이 많아 평소에는 차량의 소음으로

가득한 곳이다.

하지만 달빛도 쓰러진 밤.

가끔 휑한 바람 소리는 호랑이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차량을 통제하고 수많은 병력이 양쪽 길목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을 상황인데 너무 고요하다.

이 정적은 폭풍전야를 앞에 두고 있는 정적이 맞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 고요는 꽤 훈련이 잘된 병력이 매복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처음 겪어보는 실전 폭풍전야는 낯설었고, 불안했고,

무서웠다.

적외선 망원경으로 맞은편 계양산을 훑었다.

아무도 없다.

계양산에 매복이 없다는 것은 생태터널 아래에 폭파

장치가 설치되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


“클레이모어!”

“요, 요게다?”

“어.”

“유효사거리가 백 미터도 안 된다. 거 아나?”

“상관없어.”


클레이모어(크레모아)는 700개의 쇠 구슬을 발사시키는 넓은 공격반경 때문에, 전방의 많은 적을 공격하기에 적합한 대인지뢰다.

하지만 유효사거리가 100m인 클레이모어로 보이지도 않는 적을 어쩌겠다는 건지. 스무 개의 클레이모어를 일렬로 위치시키고 유도선을 연결했다.


“누나 이사벨 내려놔.”

“왜? 시끄러울까 봐?”

“미니건과 탄약만 들고 계산동 쪽으로 이동.”


클레이모어 설치를 마친 순길이 낮은 목소리로 우리를 지휘했다. 계산동 방향으로는 제대로 된 길이 없었기에 덤불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나뭇가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100m 거리의 이동에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앞서 걷던 순길이 주먹을 쥐어 보인다.

우리는 이동을 멈추고 짐을 풀었다.

망원경으로 앞을 살폈다.

8차선 도로를 점령하여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병력이 적외선 망원경을 가득 채웠다.


진지는 첩첩이 쌓여 있었다.

맨 앞 열에는 K1 전차 6대가 양방향 길을 가득 메우고 배치되었으며. 두 번째 열에는. 열에는? ‘저게 뭐지?’

‘대전차 미사일 현궁 아닌가?’


놀랍다.

한 가족을 잡겠다고 군사쿠데타 수준의 태세를 갖추었다.

그냥 쿠데타를 일으켜도 무방할 것 같은데, 이들에겐

민주주의의 껍데기가 필요했던 것일까.

그리고 K1 전차를 앞에 배치하고, 대전차 미사일 현궁을 바로 뒤에 두다니.

멍청한 것들이 최첨단을 다루면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K1 전차와 현궁은 저렇게 짧은 거리에서도 유효타가

나올 수 있는 무기들인가. 공촌동 쪽에도 비슷한 배치가

있다고 본다면 자칫 서로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리를 징매이고개 생태터널로 몰아왔다면 계양산 기슭에 매복하여 화력을 생태터널로 집중하면 될 것 같은데, 준비 한 번 뻑적지근했다.


“병력의 80% 이상을 무력화 시켜야 돼.”

“80%?”

“그래야 공촌동 쪽 병력이 지원을 올 거야.”

“전차는 그냥 둬. 2열 현궁부터 뒤쪽 보병들에 집중해.

멈추면 안 돼. 실탄 모두 소비되면 이사벨 쪽으로 와.”


나는 M134미니건에 실탄을 연결했다.

아롱이 자리를 잡고 여지없이 미니건의 방아쇠를 당긴다.


-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

-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


미친 듯이 돌아가는 미니건의 화력에 현궁의 열은 거의 초토화 되었고, 보병들은 앞이 아닌 옆에서 날아드는 미니건의 탄환에 속수무책 쓰러져 갔다.

그들은 두려움이 입력된 복제품임이 명백했다.

미니건의 화력에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숨기 위해 진지의 반대편으로 달려가다 그대로 쓰러지고 만다.

이대로면 K1 전차를 제외하고 모든 병력을 무력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열, 다음 열.....


-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

-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


니가 김꼴띠든, 잔지챙이든, x든, 0.6x든, 사람이든, 사람과 똑같은 복제물이든, 이 공간에서는 권력의 따까리일 뿐이다.

어차피 사람을 위해서 살지 못할 권력의 아바타일 뿐이다.


- 지이잉이이이이잉 – 지징 - - 지이이이이이잉 -


전차들의 포신이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 휘이이이이이잉이이이이이이이잉 -


탄환을 다 소모한 미니건에서는 바람 소리만 쇳소리에 섞여 나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차를 향해 소총을 자동 연사로 갈기고, 순길이 있는 곳으로 뛰었다.


- 쾅! - - 쾅! - - 콰쾅! - - 콰가쾅! - - 쾅! - - 콰쾅! -


우리가 있던 자리에 K1 전차의 포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열 발은 터진 것 같은데, 저 정도면 우리가 서 있던 자리는 언덕이 구덩이로 바뀌었을 것이다.


- 다다다다 - - 두두두두 – 따다다다다 – 따다따다 -

- 슉슉 피빅 – 슈슈슉 – 피비빅 – 피빅 -


은폐하고 있었던 생존 병들이 K2C 소총을 여기저기서 뿜어댄다. 그 소리에 이어 산에는 총탄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가 우리의 바로 뒤쪽에서 음산하게 따라온다.


순길은 다 연결된 클레이모어의 유도선을 한곳에 모았다.


“이사벨, 내가 유도선을 너의 회로에 연결할 거야.

넌 시간관념이 철저한 종합가이드지?”

『물론입니다.』

“그러면, 3분마다 하나씩 유도선을 접지시킬 수 있겠어?”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멋쪄. 그게 숙녀분을 살리는 길이야.”

『기꺼이 임무를 완수할 것입니다, 숙녀님.』


우리는 이사벨을 바위 뒤 안전한 곳에 위치시켰다.

포탄의 공격에 대비해 클레이모어들도 배수로 뒤쪽으로 이동시켰다.


- 펑! -


포탄의 위치가 점점 우리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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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닌자 어쌔씬 22.05.30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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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호만전이궤도 22.05.26 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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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차이나타운 22.05.20 10 0 12쪽
7 신미양요 22.05.19 8 0 12쪽
6 류현진 +1 22.05.18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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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4구역 22.05.12 1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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