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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찜 님의 서재입니다.

병장 김꼴띠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뼈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2.06.10 18: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39
추천수 :
5
글자수 :
122,805

작성
22.06.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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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천마부대

DUMMY

“아부지, 갈빗대 괜찮겠어?”


나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만 끄덕였다.

이 와중에 나까지 짐이 되는 건 아닌지 아롱에게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순돌, 누나 목 졸라도 되니까, 꽉 붙잡고만 있어. 알았지?”

“어.”


그것도 불안했는지, 아롱은 순길을 업은 채, 등산용 로프로 포대기를 두르듯이 칭칭 감는다.

나와 박둘자가 없더라도 동생만큼은 꼭 지켜줄 것 같은 충실한 누이다.

흐뭇하다.


다시 전방을 향해 심호흡했다.

2분이다.

2분 안에 무사히 송전탑 두 개만 탈 수 있다면, 저 고개만 넘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의 무시무시한 전투를 비웃듯 건너뛰게 되는 것이다.


“순길아, 느그 누이 단단히 붙잡아라!”


나는 흑색 사무라이 닌자가 ‘에어짓주!’를 외치듯,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노파심의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빨리 가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힘차게 철탑을 밀어내고 허공에 다리를 던졌다.


- 지지징징징 쉬이이이잉~ -


처음에는 코펠 뚜껑의 여러 면이 송전선에 마찰 되었으나 곧 한 점으로 귀결되어 소리 또한 경쾌해졌다.

일단 출발이 되자 경사를 따라 빗물에 미끄러지듯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 속도라면 다음 송전탑까지 채 20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고 하나를 더 건넌다고 해도 2분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군대에서 배운 헬기 레펠 훈련처럼 두 다리를 앞으로 뻗어 직각으로 만들었다.

공기저항이 한결 덜하다.

안정된 진행에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행여 속도를 죽여버릴 수도 있고, 아롱이의 진행을 방해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단념했다.


벌써 첫 송전탑이 눈에 들어온다.

속도를 줄이기 위해 몸을 좌우로 비틀어 코펠 뚜껑과 송전선의 마찰을 만들었다.


- 치직! 치직! 치치치칙~~~ -


두 다리를 철탑에 선착하며 부드럽게 착지.

송전선을 갈아타기 위해 철탑 사이를 이동하면서 힐끗 뒤로 돌아본다.


“지이이이이이이이잉······”


아롱은 샷건의 방아쇠 부분을 양쪽으로 벌려 잡고 중간쯤을 건너고 있다. 순길의 무게가 더해진 만큼 속도는 더 빨라 보이며 마찰 소리는 더욱 경쾌하다.

고로 내가 빨리 다음 송전탑을 향해 출발을 서둘러야 했다. 코펠 뚜껑을 다음 송전선에 걸쳤다.

처음 코스보다 경간거리는 더 길어 보이나 시간상으로는 몇 초의 차이일 뿐이다.


문제는 경사도였다.

처음 코스는 산 중턱에서 아래로 내려왔기 때문에 충분한 기울기를 얻어 빠른 강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아래로 지나는 경인고속도로를 건너는 것이기 때문에 기울기가 그리 크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두 다리의 도움닫기에 더욱 유의하면서 힘차게 쇠기둥을 밀었다.

출발.

내가 도움닫기를 했을 때 아롱이 철탑에 착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디 두 사람의 무게를 굳건히 감당해 주길 바란다.


- 쉬이이이이이이잉~ -


나는 나대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임무를 수행한다.

발밑에는 경인고속도로가 펼쳐졌다.

차들은 정상(?) 운행 중이다. 저 복잡한 가정오거리의 굽이진 신호를 무시하고 아나지고개를 이렇게 단순하게 넘다니. 평생에 잊지 못할 풍광이다.


- 치이이이이잉 -


경인고속도로 상공에 접어들자 비가 그친다.

역시나 비는 원적산에서 우리의 전투력을 약화할 목적의

환경설정이었다.

문제는 비가 그치면서 송전선과의 마찰력이 강해져 속도가 줄고 있다는 것이었다. 100m 정도를 남겨둔 지점에서 속도는 티가 나게 줄더니 급기야 20m를 남겨두고 정지해버리고 만다.


- 치지지지지직직찍! -


다른 선택이 없다.

이제 코펠 뚜껑을 버리고 유격훈련의 ‘외줄타기’로 빨리 건너야 한다. 그래야 아롱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나 때문에 아롱이까지 20m 후방에 갇혀버린다면 우리 모두 송전선에 매달려 2분을 넘겨버릴지 모를 일이었다.


- 지이이이이이익 -

“흐억!”


뒤따르던 아롱이 가속 붙은 속력으로 나와 추돌하고 말았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아마 샷건의 잘 정제된 쇠는 코펠 뚜껑보다 마찰을 줄여주었을 것이며, 순길이의 무게까지 더해져 나보다 나은 가속을 얻었을 것이다.


그 추돌로 나는 10m를 더 전진했으며, 아롱이는 3m 뒤쯤에 매달려 있다.

코펠 뚜껑을 버리고 재빨리 양팔로 송전선에 매달렸다.

그리고 힘껏 반동을 주면서 한쪽 다리를 송전선에 걸었다.

유격훈련의 ‘외줄타기’를 통닭처럼 거꾸로 매달린 채 수행해야 했다.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받아본 사람들이라면 익숙한 자세였다.


영화에서 보듯이 엎드린 자세로 한 다리를 줄에 걸고 균형을 잡으며 건너는 멋진 자세는 숙련된 병사들만 가능하다.

처음에는 그 자세로 ‘외줄타기’를 시작하지만 이내 거꾸로 뒤집혀 소위 ‘통닭’이 되고 만다.

그래서 ‘외줄타기’가 끝나고 나면, ‘나는 통닭이다!’를 외치며 얼차려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앞뒤로 맨 배낭 때문에 ‘통닭’ 자세 말고는 달리 방법도 없었다. 속으로 ‘유격!유격!유격!유격!’의 장단을 맞추며 남은 10m를 먹어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 시간은 송전탑까지 갈 여분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만약 건너지 못한다면, 우리의 생물학적 삶의 남은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세 번 팔을 교차시킨다면 철탑의 기둥을 잡을 수 있을 거리를 남겨뒀다.


불현듯 아롱이가 떠올랐다.

순길이를 업은 채로는 통닭이든 그 반대 자세든 힘들 건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철탑을 잡고 일어서서 얼른 아이들 쪽을 보았다.

아롱이는 ‘외줄타기’도 ‘통닭’ 자세도 아니었다.


“헛, 둘! 헛, 둘! 헛, 둘! ··· ···”


그저 놀이터에 있는 구름사다리를 타듯 구령을 붙여가며 팔을 교차시켜 성큼성큼 남은 송전선을 먹어 들어온다.


일 초! 또 일 초! 더 일 초!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간다.

그 많은 일 초 중 단 한 번의 일 초라도 고압 전류와 함께할 시에는 정말로 통닭의 처지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타는 애간장과 달리 아롱은 헬스장에서 훈련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순길이를 업고 성공리에 임무를 마쳤다.


송전선 도하작전은 생각보다 시간상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송전탑을 중간 정도 내려왔을 때쯤에야 송전선에서 소리가 들렸다.


- 찌지지지지찌잉 -


순길이를 감을 때 썼던 등산용 로프가 송전선에 걸린 채 불에 타기 시작했다. 드디어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2분 14초.”


그렇게 2분이 안 되는 시간에 아나지고개를 넘으면서 우리는 원적산을 뒤로하고 천마산에 발을 디뎠다.


천마산!

말이 승천한 전설을 간직한 산.

그 전설답게 천마산의 등산로는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이 많다. 특히 마제봉에 올라 능선을 타고 천마산 정상으로 가는 코스는 걷기가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코스다.

하늘과 맞닿아 있어 아름다운 하늘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인천의 동과 서, 남과 북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동으로는 부평의 넓은 벌판을, 서로는 강화와 영종의 서해바다를 배치하고 있다.

주말에 이 능선을 한 번 타노라면, 그 주의 여독을 모두 날려버릴 만큼 천혜의 트레킹코스다.


그래서 궁금했다.

추악한 권력은 그 미적 공간을 어떻게 스케치해 놓았을까.

내가 사랑하는 바위와 탁 트인 풍광과 걸음이 저 알아서 가고자 하는 작은 오솔길은 어떤 식으로 배치되어 있을지.


“효성동 쪽은 군부댄데, 마제봉 쪽으로 길을 잡으까?”

“아니야. 부대 쪽으로 가야 돼.”

“아까 총알 다 썼붓다. 쟈들 우째 감당할라꼬?”

“위병소에 보초 두 명만 처리하면 돼.”


천마부대는 훈련이 힘들기로 유명한 부대다.

맨손으로 전투부대의 전투력을 살려놓는 건 우리에겐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위병소 두 맹을 처리한다캐도, 비상이라도 소집되모 우짤라꼬?”

“그래. 그건 좀 시끄럽지 않겠어?”

“걱정하지 마. 부대에 아무도 없을 거야.”

“뭐??”

“므시?”

“모두 가정오거리에 집결해 있을 거야. 우리를 지나가게 하고 싶었던 길목.”

“그래도 멧돼지들하고는 다르다. 쟈들은 총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그라고 상황뱅들도 맻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가정오거리는 여기서 가까워. 금방 들이닥칠 수도 있어.

그러니까 계획을 짜야지.”

“그냥 마제봉 쪽으로 가면 조용하지 않어?”


그렇게 말하는 누나를 보며 순길은 탄환이 떨어진 샷건을 땅바닥에 던졌다.

그렇다.

천마산이 문제가 아니었다. 천마산을 넘으면 계양산과 이어지는 징매이고개를 넘어야 한다.

우리는 가정오거리를 회피하고 예측 불가한 방법으로 아나지고개를 넘었다. 그렇다면 저들로서는 검단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목인 징매이고개에 모든 전투력을 집결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회피할 방법도 없는 징매이고개는 아마도 우리 여정의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충분한 무기가 필요했으며, 바로 옆에는

천마부대가 깃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부대를 털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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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간빙기 22.06.10 5 0 10쪽
23 노인은 없다 22.06.09 5 0 10쪽
22 사석 22.06.08 8 0 10쪽
21 이사벨 22.06.07 9 0 11쪽
20 대마 22.06.06 9 0 11쪽
19 병장 김꼴띠 22.06.03 9 0 12쪽
» 천마부대 22.06.02 15 0 10쪽
17 아나지 고개 22.06.01 7 0 12쪽
16 월하의 공동묘지 22.05.31 8 0 11쪽
15 닌자 어쌔씬 22.05.30 8 0 10쪽
14 한남정맥 22.05.27 8 0 15쪽
13 호만전이궤도 22.05.26 7 0 14쪽
12 0.6x 22.05.25 8 0 13쪽
11 18번홀 22.05.24 7 0 11쪽
10 백중사리 22.05.23 8 0 12쪽
9 양양 22.05.22 9 0 12쪽
8 차이나타운 22.05.20 8 0 12쪽
7 신미양요 22.05.19 7 0 12쪽
6 류현진 +1 22.05.18 8 1 11쪽
5 혼령 22.05.17 11 1 12쪽
4 목재단지 22.05.16 18 1 11쪽
3 이사벨 22.05.13 12 1 11쪽
2 제4구역 22.05.12 16 1 11쪽
1 파전에 정액을 쏟았습니까? 22.05.11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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