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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찜 님의 서재입니다.

병장 김꼴띠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뼈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2.06.10 18: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24
추천수 :
5
글자수 :
122,805

작성
22.05.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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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4구역

DUMMY

공사장 비계를 타고 내려가는 순길이 경이롭다.

골룸이 바위산을 타고 다니듯, 비계와 부직포를 활용하며 자유자재로 가벼운 몸을 층층이 옮겨간다. 배낭을 멘 채로....


‘아들에게 언제 저런 육체적 감성이 장착되었지?’


줄넘기만 해도 손목과 발목에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예약하게 만든 순길이었는데..

위기상황에 사람은 괴력을 발휘한다지만, 저건 괴력 뿐

아니라 ‘괴유연성’ 까지 부가되었다. 나의 육체적 전성기에도 불가능했던 유연도를 시연하며 하강하고 있다. 진짜 골룸이 되어버린 것일까.


통장여자가 초인종을 누른 이유는 모르겠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첫째, 인터폰에 나타난 것은 통장 혼자가 아니었으며, 만약 통장 무리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온 것이라면, 탈출의 마지막 기회마저 날릴 수 있다.

둘째, 그들의 시선을 계속 우리 현관에 묶어둔다면, 지금

감시에서 벗어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있다는 것을 표시하려 거실의 조명까지 켜두었다.


공사장 옆 4륜구동 애마가 반짝거린다.

주차된 차를 타기 위한 시뮬레이션.


-삐빅-


1. 일단, 차량 리모컨으로 문을 개방하고

2. 주위 동향을 살핀다.

3. 잽싸게 달려가 승차한다.

3. 최대한 빠르게 시동을 걸고,

4. 예열 과정 없이 바로 출발한다면


현재 골목의 희박한 인구분포로 보아 안전하게 ‘백마빌라’권역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안 돼. 만약 차량이 추적이라도 된다면 더 위험할 수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돼”

“대중?”

“일단 대로 건너 막창집 있지?”

“어.”

“뛰어서 골목으로 들어가야 돼.”

“막창집 골목으로 들어가자 이 말이제?

“기다려!”


뛰쳐나가려는 나를 붙드는 순길의 손.


“원적사거리와 백마장사거리의 신호주기는 2분30초로 동일 해. 각 신호는 30초 차이로 연동되어 있고, 청천동 방향 직 진 신호가 끝나고 10초 후면 진입차량들은 신호에 잡혀 대로엔 차량통행이 멈추게 돼.

고로, 7초 후 대로를 향해 뛰면 돼.”

“중앙분리대! 중앙분리대 뛰 넘을 수 있겄나?”

“지금이야, 뛰어!”


대로를 향해 달렸다.

뛰는 중에도 골목과 거리의 사람들을 살폈다.

마스크와 모자로 위장을 해서일까, 아직 우리를 의식하는 시선은 없는 것 같다.


골목에서 대로까지 7초가 걸렸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섭게 달리던 퇴근길 차량들은 우리가 도착했을 때, 정확하게 신호에 잡혀 통제되어 있었고, 우리는 멈춤 없이 8차선 중앙분리대를 향해 뛰었다.


하지만 1m가 넘는 분리대를 순길이 뛰어넘을 수 있을까...

원적사거리 좌회전 차량들이 턴을 마치고 우리를 향해 올라오고 있고, 백마장사거리 좌회전 차량들은 반대쪽 차선으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5초 남짓한 시간이면 우리를 막아 버릴 수 있다. 나는 순길을 안아 넘길 작정으로 속력을 낸다.

그 순간,


- 휘룽~~ -


중앙분리대에 두 손을 짚고 사뿐히 넘어간 순길이 오히려 나를 걱정스레 돌아본다.

키즈카페 트램펄린조차 힘들어하던 저 아이가 이 순간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나는 놀랄 겨를도 없이 허들을 하듯 가볍게 뛰어넘어 순길과 함께 막창집 골목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고, 거리는 다시 퇴근길 차량들의 속도전이 재개되었다.


골목을 한 번 꺾자, 대로변의 소란도, 막창집 불빛도 사라진 정적의 세상이다.

겨우 두 사람이 지나쳐갈 수 있을 것 같은 좁은 골목에, 전선줄이 치렁치렁 내려와 귀신처럼 어깨를 툭툭 친다.


- 푸휘이이잉잉잉~~~ -


소음이 사라진 어두운 골목의 바람소리는 폭풍처럼 거세게 귀를 때린다. 이런 곳이 우리 동네에 있었다니...


“지하철이 빠르지 않겄나?”

“지하철은 외통수라 공격이 올 경우 도피가 힘들어”

“그라믄?”

“24번 타고 동인천으로 가.”

“그카고?”

“동인천에서 45번, 아니다. 그건 부평 쪽에서 온 거니까, 16번으로 갈아타면 돼.”

“근데, 니 암기과목 싫타카면서 그런 거를 다 외우고 다니나?”

“외운 적 없어. 그냥 기어들어 온 거지.”


빛의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골목과 골목을 돌고 돈다.

아직 간판들이 덜렁거리며 붙어 있는 작은 시장골목.

햇볕 한 조각 들것 같지 않은 다닥다닥 붙은 주택가.

집이 허물어진 공터에 허연 비닐 조각들이 바람에 날려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 우당탕! 탕! 탕! 탕! 탕! 탕! -


어둠속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소리에 순길과 나는 빈집 대문간에 몸을 은폐시키고 밖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

- 푸휘이이잉잉잉~~~ -


익숙한 바람소리가 골목을 스친다.

경계태세를 취하고 전방을 보니 사람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손전등을 비춘 곳엔 한 무더기의 기왓장이 떨어져 있다.


“별 거 아니야.”

“뭐라꼬?”

“기왓장들은 서로 물려있어서 하나가 떨어지면 연쇄적으로 반응을 하는 거야. 여기 제4구역이잖아.”

“사, 사구역? 뭐.. 군사지역 같은 데가?”


짜식이 한심한 듯이 나를 쳐다본다.


“부평재개발 산곡 제4구역. 7호선 산곡역 역세권. 앞으로 부평 집값 상승을 주도할 랜드마크가 될 지역이야. 2년 전에 관리처분인가가 났고, 지금은 이주도 끝난 빈 동네지. 고로, 우리가 움직이기엔 그만인 곳이다, 이 말이야.”

“니, 간호학과 간다고 안 그랬나? 부동산학과로 바깠어?

우예 그런 걸 다 아노?”


놀랍다.

내가 세상일에 무심했던가.

아니면 우리 아들에게 무심했던가.

그래봐야 산곡동에 이리 깊은 골목이 있는 것도 놀랍다.


기왓장을 지르밟고, 골목을 가로막은 귀신같은 비닐장막을 벗겨내니 좁은 골목의 끝에 가로등 불빛이 나타난다.


“골목 입구에 있는 전봇대 뒤에 숨어 있다가 24번이 나타나면 잽싸게 타고 가면 돼.”

“그래, 그-”


‘-부릉- 부릉- 부릉------’


갑자기 오토바이가 코너를 돌아 골목을 들이닥치고, 우리는 치웠던 비닐을 다시 펼쳐 몸을 은폐시켰다.


‘부릉- 부릉- 부르릉---, 부릉, 부릉-’


“한 대, 두 대, 세 대... 여섯 대”


좁은 미로를 타듯이 끌듯이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오토바이의 크기도 골목에 딱 적당한 사이즈인 것으로 보아분명 우리를 타깃으로 삼아 기다리고 있었던 놈들인 것 같다. 아니라면, 이 빈 동네에 곡예를 하듯 저런 놀이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긴 했다.


발견한다고 해서 당해내지 못할 건 없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순간, 우리는 경찰에 신고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공권력과 싸워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배달 오토바이들이야.”

“먼 소리고? 배달하는 놈들이 귀신 사는 동네에 멀라꼬 올기고?”

“피크시간이야. 한 건당 최저 3,800원. 1키로 초과시마다 할증 되고. 하루 50건만 하면 월 600가능하고, 하루 100건 하는 배달인들도 있다고 들었어. 점심, 저녁시간은, 저 사람들에겐 시간이 아니라 돈이야. 사거리 신호에 2분 30초를 버리기 아까워 4구역을 이용하는 거야”

“배달하는 놈들이 흰 파카 옷도 맞춰 입고 다니나?”

“요즘 배달업체들 대형화 되는 추세야. 같은 회사겠지.”

“후~~. 모리겄다. 이기 꿈이가 생시가?”


- 짝! -


순길이 난데없이 점프를 하며 나의 따귀를 올려친다.

저 고사리 손에 맞아봐야 얼마나 아플까마는, 정신적 데미지는 상당하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용량이 부족하긴 하지만 비좁은 나의 뇌 속에도 ‘자식이 부모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명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기분 나뻐?”

“아들새끼라고 있는기...쯧”

“거봐. 이거 꿈 아니야.”


1. 비상시국이라 어쩔 수 없고

2. 대로변 차량들 소리에 마음도 급해졌고

3. 순길도 걸음을 재촉하는 바람에 오늘의 수모는

빈 골목에 그냥 두기로 하고 전봇대를 향해 발걸음

옮긴다.


“사거리 신호 받았어. 8초 뒤에 뛰어서 타면 돼.”


신호를 받은 24번 버스는 정류장에 정차를 하려 비상깜빡이를 켜고 차를 우측으로 붙이며 속력을 줄인다.


“육, 칠, 팔. 뛰어!”


순길과 나는 버스를 향해 뛰었고, 마침 버스문은 미리 열리고 있었으며, 2초쯤 후면 정확히 24번과 정류장에서 부킹 될 것이 확실했다. 중앙분리대를 향해 뛸 때처럼 멈춤 없이 앞문으로 오르기만 하면 첫 번째 미션은 무사히 성공하게 된다.


- 피지익~~ -


그냥 닫히는 버스의 문.


- 탕! 탕! 탕! 탕! 탕! 탕! -


버스의 꽁무니를 따라가며 두드려 보지만, 내리지도 태우지도 않고 그냥 출발한 버스는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최대의 가속으로 함봉산 고개를 향한다.


앞쪽 사람이 내리는 택시에 ‘빈 차’ 불빛이 들어온다.

순길과 나의 시선이 동시에 택시에 가 있었고, 우리는 택시를 향해 달렸다. 시간은 충분했다. 사람이 아직 내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 뿌르응~~~~~~ -


택시는 있는 힘을 다 짜내며 뒷문을 연 채, 미친놈처럼 바로 출발해 버린다. 뒤뚱이던 택시는 정차 중이던 트럭에 부딪히며 열린 문이 닫힌다.

영화도 아닌데 저런 난폭한 택시를 우리 동네 길가에서 보다니. 순길의 신호에 따라 우리는 재빨리 4구역으로 다시 들어갔다.


“사람들한테 못 느꼈어?”

“지들도 버스 땜에 열 받았겄지.”

“버스는 안 보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어.”

“그라모 저 사람들도 통장 지시 받은 사람들이가? 그냥 정류장에 버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아이고? 우리 통장이 사, 사구역까지 힘이 뻗치나?”

“몰라. 어떤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는 것 같애.”

“시, 시스템? 우짜지?”


‘-부릉- 부릉- 부릉------’

‘부릉- 부릉- 부르릉---, 부릉, 부릉-’


정확히 비닐이 펄럭이는 지점에서 오토바이들의 굉음이 골목을 울렸고, 우리도 같은 동작으로 비닐을 펼쳐 몸을 은폐시켰다.


오토바이들이 지나간 좁은 골목에 휘발유 매연이 가득하다.


“콜록콜록...”

“사륜구동!”

“차를 가져가잔 말이가?”

“현재로선 그 방법밖에 없어.”


우리는 다시 막창집 골목으로 가서 마지막 7초를 세고, 8차선 중앙분리대를 뛰어넘었으며, 구보와 매복을 번갈아가며 우리의 위수지역으로 안전하게 잠입했다.

하지만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골목입구의 신성빌라 주차장으로 얼른 숨었다.


* * *


하지만 우리의 대체 이동수단인 사륜구동이 통장과 동네사람들에게 꽁꽁 포위당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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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천마부대 22.06.02 14 0 10쪽
17 아나지 고개 22.06.01 7 0 12쪽
16 월하의 공동묘지 22.05.31 7 0 11쪽
15 닌자 어쌔씬 22.05.30 7 0 10쪽
14 한남정맥 22.05.27 7 0 15쪽
13 호만전이궤도 22.05.26 7 0 14쪽
12 0.6x 22.05.25 7 0 13쪽
11 18번홀 22.05.24 7 0 11쪽
10 백중사리 22.05.23 7 0 12쪽
9 양양 22.05.22 9 0 12쪽
8 차이나타운 22.05.20 7 0 12쪽
7 신미양요 22.05.19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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