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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찜 님의 서재입니다.

병장 김꼴띠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뼈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2.06.10 18: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32
추천수 :
5
글자수 :
122,805

작성
22.05.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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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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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혼령

DUMMY

목재단지.

두터운 방음벽으로 소리가 차단된 듯, 제4구역 같은 정적의 블록이다.

4구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습하고 퀴퀴한 하수구냄새 대신, 드문드문 가로등 불빛이 길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남동의 목재단지는 정말로 그 위상을 다 잃어버린 것일까. 향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원목 썩는 냄새 한 줌 없는 괴기스런 목제와 가구의 거리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빤타지 세상도 아이고 분위기 머 이래 싸하노?”

“세상은 이미 판타지로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만 빗자루 타고 다녔는지도 모르지.”

“니 머슨 말을 그리 습습하게 하노? 빗짜루가 므 어때서? 세상 깔끔시리 만들고 안 좋나 쯧.”

“이거 무슨 냄새야? 킁킁...

할머니 제사 때 나던 냄샌데”


킁킁킁.

코를 벌름거리며 차창을 타고 들어오는 냄새에 후각을 집중한다.


“향나무구마.”

“향나무? 목재단지에서 향나무도 취급해?”

“부자 망해도 3년 간다꼬, 목재단지 다 돼 가니께, 인자 향나무나 다듬는 갑지.”


이사벨의 화면이 다시 붉게 점멸하기 시작한다.

‘뚜- 뚜- 뚜- 뚜-!...’


“마, 이거 와이라노?”

『멧돼지 출현 구간입니다. 주의 하세요.』

- 피슉~~~~-


밤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목재단지를 파고든다.


- 텅! -


날카로운 소리의 종착지임을 알리는 뭉툭한 충돌 음이 4륜구동의 후드를 때린다.


- 피슉 피슉 피피피슈슈슉--- -


연속되는 소리들이 우리를 향해 쏟아진다.


“하살! 하살 나는 소리다!”


- 빠직! 퍽! 퍽! ······ -


수많은 화살들이 조수석과 뒷좌석 차창을 때려 하얗게 금이 간다.


“유리가 깨질 거 같애.”

“뒷자리 배낭 있제, 걸로 막아라!”


- 슈슈슈슈슈슈슉 - 퍼버버버퍽 - - 터더덩덩텅 -


조수석 방향에서 화살들이 쉴 새 없이 날아들어 차창이 깨지고 말았다.

깨진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온 화살로 뒷좌석 시트는 벌집이 되어간다.

순길이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배낭에도 고슴도치 등처럼 화살이 꽂혀가고 있다.

최대한 이 구역을 빨리 벗어날 수밖에 없다 부웅~~~.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속도를 높이려는 순간이었다.

앙칼진 사이렌을 울리며 골목에서 순찰차 한 대가 위험하게 튀어나온다.

또 우리를 도울 우군인가 싶어 잠시 마음이 놓이려는 찰나, 부족한 제동거리에 있는 우리의 진로를 가로막고 순찰차는 급정거해버린다.

하지만 뒤따라오던 과일 행상 트럭이 속력 그대로 순찰차를 들이받아 튕겨내는 바람에 순찰차와 트럭 사이의 공간으로 아슬아슬 목재단지를 빠져나갔다.


“아빠 좌회전!”


또 한 번 0.5초의 선택.

나는 본능적으로 핸들을 꺾었고, 그 결과 차는 도로 위를 미끄러지며 영화처럼 사뿐히 좌회전을 완성했고, 도로에는 형식적이나마 평화가 찾아왔다.


드문드문 차들이 통행하고 있고,

공장의 막연한 소음들이 대기를 채우고 있다.

두 소리가 섞이며 일상적인 한밤의 시가지를 표현하고 있다.

고로 목재단지 정적의 공포에서 벗어났음을 실감한다.


돌팔매질을 피해서 안전하게 석남제2고가를 타게 해준 경찰. 진로를 가로막아 활 세례 속에 우리를 고립시키려 한 경찰.

그 경찰을 밀어내고 우리의 진로를 만들어 준 과일 트럭.

알 수 없는 공식들이 도시 곳곳에 포진한 채 우리를 농락하고 있지만, 현재 표면적으로 도시는 평상을 보여주고 있다.


“차 세워.”

“므, 믈라꼬?”


순길이는 대답 대신 내리라는 수신호를 한다.

아마도 이사벨 때문인 듯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검을 들고 플라타너스의 널찍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순길이 손에 든 화살을 건네받아 냄새를 맡아보니 과연 향나무다.


“빌어묵을 짜슥들, 이 귀한 나무로 할 짓이 음서 이 짓을 하나.”

“우회전 하면 공구상가, 그 다음엔 철재상가야”

“????”

“철마산에서 산에 있는 돌멩이 날아왔지. 목재단지에서 나무로 만든 화살. 그렇다면, 공구상가나 철재상가에서는 쇳덩이나 총알이 날아올 수도 있어.”

“근데 그것들은 사람이가, 구신이가?”

“향나무 화살촉 봐. 어설픈 거 보면 사람이겠지.”

“오데로 가지? 여서는 갱인고속도로 몬탄다, 니 알제?”

“고속도로는 외통수라 안 돼. 인천의료원 쪽으로 가.”

“의료원? 오~ 그래. 그라고 이사베리 저거, 쌔리 뿌사뿌까? 지가 좌회전 하라캐서 했드마 이 꼴 났다 아이가!”

“아니야. 북항 쪽으로 갔으면 제철소를 지나야 돼.”

“해, 핸대제철? 그라모 쌔, 쌧물이..”

“테스트를 좀 해봐야겠어.”


* * *


차에 꽂힌 화살을 수거하고 보니 그 수가 수백 개다.

초등학생이 연필을 깎은 것처럼 일정치 않은 굴곡들로 화살촉을 만들었다. 궁사로서는 하수임이 틀림없으나 비 오듯 쏟아진 화살의 숫자나 차창을 박살 낸 파워는 현실적으로 대단한 공포임은 틀림없다.


“마, 이사베리!”

『말씀하세요.』

“니 여자야 남자야?”

『성별이 없습니다.』

“딸아 목소린데?”

『남자 목소리도 가능합니다.』


아나운서 톤의 느끼한 남성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몬 들어 주겄네. 고마, 하던대로 해라.”

『음성을 다시 변경합니다.』

“니, 남자가 여자 꼬실 때 하는 말이 머꼬?”

『이봐 영희, 우리~ 심심한 데 뽀뽀나 할까?』

“크쿡,,, 일마 이거, 완조히 칠공팔공이네, 칠공팔공!”

『칠.공.팔.공은 인식하지 못하는 단어입니다.』

“니, 내 노래 함 들어보고 알아 맞차봐.”

『영광입니다.』

“므야 므야 므야 므야 므야~

므야 므야 당신이 므야 제~발 날 내비리 두지 마~~

니 이 노래 아나?”

『등록되지 않은 노래입니다.』

“내가 발음을 튕가싸서 그런 거니?”

『아닙니다. 인지할 수 있습니다.』

“노래 자체를 알 수 음서? 이거 차암~ 맛난 노랜데 음...”

『신곡입니까?』

“아이다. 그라모 이거 함 들어바.

긋는 마을에 채진사댁에 딸이 셋있는데~, 그 중에스도 셋째따님이 젤로 예쁘다든데, 앗따 그냥반 호랑이라고 소문이나스~....”

『오래된 노래이긴 해도 경의를 표합니다.』

“오래 돼? 그라모 니가 아는 채신곡이 므야?”

『얼마 전 발표된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입니다.』

“푸하하하....스태지? 므~ 스태지? 내 군대 있을 때 들은 노래야. 니 군대 갔다 왔나?”

『복무는 하지 않았지만 정보는 있습니다.』

“그라모 세상 쫌 알겄구마.”

“이사벨, 한미연합훈련 명칭이 뭐지?”

『팀스피리트 훈련입니다, 올해부터 남북대화를 위해 중단되었습니다.』

“팀스피리트 훈련? 그러면 대통령은 김영삼?”

『그렇습니다.』

“팀스피릿트 훈련? 니 훈련 빠지는 방법 알아?”

『국군병원 의사소견서나 진단서가 있다면 훈련은 열외가 가능합니다.』

“그거 안 해도 임마, 선임하사한테 싸바싸바 하면 다 열외 대.”

『싸.바.싸.바.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갔다 와야 세상을 아는 기야.

마, 니 아직 마이 배아야 대.”

“고가 밑에 우회전이야.”

“즙수!”


순길이 사방을 경계하지만, 심야시간 간간이 달리는 차들 뿐 특이점은 없다.

목재단지의 소란 후 순길이 계획한 변칙적(남서방향이 아닌) 구간선택이 먹힌 것일까.

의료원 앞은 인적하나 없이 고요하다.

이 고요를 뚫고 공격해온들 병원의 재료들이란 주사기, 약병, 아니면 휠체어? 목발? 주사기를 든 간호사? 아니면 병원의 침대가 굴러서 따라 올려나?


“아빠, 밟아!”

“믄 일이고!”

“고가, 고가 위! 어서 밟아!”


이사벨의 화면이 다시 껌뻑거리기며 뚜-뚜-뚜 경고음을 내뱉기 시작한다.


“니 또 와 이카노?”

『고가 위 멧돼지 출현 주의하세요.』


장의차들이 굉음을 울리며 방축고가를 내려온다.

의료원으로 들어갈 차량이 아니다.

저 속력으로는 의료원 앞에서 우회전을 할 수 없을 테니까.

우리를 향하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며, 장의차들의 속도와 우리 차의 발진속도를 볼 때 추돌이 임박하다.


“인천의료원에 장례식장 있었어?”

“느그 할매 여서 장례 치랐다. 그런 거는 기억에 음서?”

“유치원 때 일을 어케 알아. 이러다 충돌할 것 같애.”


방축고가의 내리막 과속을 제대로 받은 장의버스들(몇 대인지는 모르겠다. 반대차선마저 점령한 채 역주행으로 내려오고 있으며 그 뒤에도 줄줄이 있는 것 같다)이 거의 추돌할 듯 4륜구동의 뒤를 쫓는다.

우리의 속도도 어지간히 붙었으므로 추돌한다 하더라도 전복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왼쪽 차로의 버스들이 함께 후면과 옆면을 동시에 압박한다면, 튕겨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며 오른쪽 가로수와 충돌은 필연적이다.

룸미러에는 거대한 버스가 무섭게 다가오며 확대된 사진처럼 점점 줌이 되어 비춰지고, 반대편 차로의 버스는 대가리가 이미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추돌이 임박했다.


- 끼익 끼끽 끼익 끽~~ -


무슨 일일까.

분명 급정거하는 소리다.

그것도 한 대 가 아닌 줄을 서서 오는 버스들이 한꺼번에 내는 중첩된 음이다.

대형 타이어의 마찰음들이 공룡의 포효처럼 거리를 울린다.

달려오는 속도에 브레이크가 잡힌 버스들은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화물칸에서 뭔가가 쏟아진다.


“아빠, 저거 시체 들어있는 관 아냐?”

“장의차에 그거밖에 더 있겄나?”


화물칸에서 쏟아진 관들이 아스팔트 바닥을 뒹굴며 뚜껑이 열린다.

관을 덮었던 빨갛고, 노란 관보가 거리를 뒤덮고, 뚜껑 열린 관에서 나온 하얀 한지들이 하늘하늘 날아오른다.


하늘하늘...

그 사이로 수의를 입은 시체들이 일어나고 있다.

한 구, 두 구, 세 구,.......

하나 둘씩 일어선 시신들이 머리를 감은 무명, 모시, 삼베를 벗겨내고 있다.


“송림오거리방향 좌회전!”

좌회전 하는 우리 차를 보더니 뛰기 시작하는 시신들, 아니 혼령들.


“가던 길 곱게 갈 일이지, 따라 오고 지랄이고!”

“아빠, 우리보다 빨라 어떡해?”

“뒤에 각궁 있제?”

“가, 까궁?”

“할 말이다, 할. 땡기서 쏘는 할.”

“활? 어, 그래.”

“목재단지 하살 하나 집어 바라.”


뒤따르는 혼령들과의 거리가 가까우므로 활쏘기의 자세나 거궁, 만작이 서툴러도 화살이 튕겨 나갈 정도의 힘으로 시위를 당길 수만 있다면 충분히 유효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줌손에 힘을 꽉 주야 된다.”

“줌손?”

“할을 쥔 손 말이다. 줌손 장지, 소지, 무맹지를 흘려 잡고 반바닥으로 꽉 버티라.”

“무맹?”

“어~~. 그냥 꽉 잡고 땡기 바.”


하지만 나의 근력에 맞춰진 강도의 활이다.

만작(화살을 시위에 걸고 최대한 당긴 상태)의 4분의1이 되기도 전에 순길의 힘없는 손이 시위를 놓치고 만다.

떨어진 화살은 차창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힘없이 시트에 떨어진다.


어느덧 내 옆에도 순간이동을 한 혼령 하나가 느껴진다.

손을 뻗어 화살 하나를 집었다.

허연 얼굴의 남자 혼령이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본다.

생전에 고생 한 번 안 했을 것 같은 넙데데한 얼굴.

더 살지 못한 쪄 든 욕망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래서 어쩌자고?’

‘당신의 못다 한 욕망에 내가 어떤 방해가 되었단 말이오?’

‘나에게 이 얄궂은 저주를 내리기 위해 상례도 저버리고 구천을 떠돈단 말이오?’


어찌하려는 걸까. 어찌하려는 걸까.

혼령들은 우리 부자를 도대체 어찌하려는 걸까.


하지만 그 결과를 알기가 무섭다.

내 삶의 전부가 귀신에 씐 것 같은 오늘 밤,

두려움이라고는 모르고 살았던 오왈수에게

이 혼령들은 통장 아줌마만큼이나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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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간빙기 22.06.10 4 0 10쪽
23 노인은 없다 22.06.09 5 0 10쪽
22 사석 22.06.08 8 0 10쪽
21 이사벨 22.06.07 9 0 11쪽
20 대마 22.06.06 8 0 11쪽
19 병장 김꼴띠 22.06.03 9 0 12쪽
18 천마부대 22.06.02 14 0 10쪽
17 아나지 고개 22.06.01 7 0 12쪽
16 월하의 공동묘지 22.05.31 7 0 11쪽
15 닌자 어쌔씬 22.05.30 8 0 10쪽
14 한남정맥 22.05.27 8 0 15쪽
13 호만전이궤도 22.05.26 7 0 14쪽
12 0.6x 22.05.25 8 0 13쪽
11 18번홀 22.05.24 7 0 11쪽
10 백중사리 22.05.23 8 0 12쪽
9 양양 22.05.22 9 0 12쪽
8 차이나타운 22.05.20 7 0 12쪽
7 신미양요 22.05.19 7 0 12쪽
6 류현진 +1 22.05.18 8 1 11쪽
» 혼령 22.05.17 11 1 12쪽
4 목재단지 22.05.16 17 1 11쪽
3 이사벨 22.05.13 12 1 11쪽
2 제4구역 22.05.12 16 1 11쪽
1 파전에 정액을 쏟았습니까? 22.05.11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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