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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찜 님의 서재입니다.

병장 김꼴띠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뼈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2.06.10 18: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37
추천수 :
5
글자수 :
122,805

작성
22.05.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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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파전에 정액을 쏟았습니까?

DUMMY

- 일몰시간까지 위수지역 벗어나지 마.

명심해, 야간작전이야!

통신 시 암구어 사용 유념하고 -


딸깍.


물어볼 틈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는 마누라 박둘자.

육군 중령으로 전역한 장인의 딸답게 한결같은 명령조의

말투로 가족들을 통제 또는 길들여 왔다.

늘 저런 식.

나의 두뇌 용량으로는 해독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모호하고 추상적인 말로 지시를 한다.


「일몰시간」


‘언제를 말하는 것인가? 일몰 후의 어느 즈음?’

‘일몰시간에 야간작전이라 덧붙여버리면 시간대의

스펙트럼은 무지하게 넓어진다.

일몰부터 일출 직전까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것은 왜인가?’


「위수지역」


‘위수지역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거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동? 아니면 우리 집?’


「통신 시 암구어 사용」


‘우리 가족들이 다 아는데,

가장인 나만 모르는 암구어가 있었나?’


이 모든 의문보다 나를 멀뚱하게 만드는 고뇌점은,

일몰시간과 위수지역을 지켜가면서 수행해야 할

작전 자체를 모른다는 것이다.


1.모호한 명령을 한다.

2.모호하므로 그 명령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다.

3.명령자는 그것을 빌미로 명령의 구체적인 내용을

읊어대며 피명령자를 압살한다.


명령이 수행되지 않았을 때, 피명령자를 잡아 족치는(?)

쾌감을 위한 박둘자의 화법이다.

결혼 20년이 넘어서야 그녀의 이런 의도를 알았다.

군대동기 철만이가 후임들에게 자주 쓰던 방법이었다.

얼차려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상급자의 기술.


148㎝, 36㎏.

가을 낙엽을 맞고도 뇌진탕이 올 것만 한치알 같은 여인이

193㎝, 110㎏ 거구의 멍청한 남자를 잡아 족칠 때는,

뇌 속에 도파민 분비가 꽤 활발할 것 같기도 하다.


그리하여 같은 호적을 두게 되면서부터 피명령자로서

꾸준히 족침을 당했고, 언제부터인가 박둘자의 ‘잡아족침’

중에는 욕이 첨부되고 있었다.

욕이라 함은 쌍욕을 말한다. 씨팔, 좆팔 등..


이쑤시개 같은 여자가 꼿꼿이 서서 내 단전쯤에서

욕지거리들로 나를 몰아붙일 때는 상당한 모멸감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사람이 어찌 이리 얼음 같을 수가...’


하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나의 뇌는 모멸감 따위를 그리 오래 저장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 오왈수가 호두껍데기 속 알맹이의 대체제로서 선택한 여인이 박둘자이다.

나를 완벽히 통제해 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고,

박둘자는 나의 머릿속에 넣고 다녀도 될 만큼 충분히

아담하고 똑똑했던 것이었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박둘자가 명령한 저 암호들을 해독해야 한다.

저 암호 속에 가족의 생사가 달렸다.


‘딩띠리리롱’


핸드폰이 문자가 도착했음을 통지한다.

박둘자로부터 통신일까 하여 잽싸게 핸드폰을 열어보지만.


- 발신번호 표시제한 -


‘문자를 보내는데도 이런 기능이 가능한가?’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게 되었으며, 너는 누구냐?’


그 내용은 이런 궁금증을 삭제시킬 만큼 얼토당토아니하다.


『파전에 정액을 쏟았습니까?』


‘이게 무슨 말이지?’

‘파전과 정액?’

‘파전과 정액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하나씩 생각하자.

파전 파전 파전 파전...


어젯밤, 남은 재료들로 간단히 먹는다고 파전을 먹긴

했는데, 그 파전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 막사(집)에서 파전 먹은 사실은 어찌 알고서,

‘발신번호표시제한’님은 이런 기별을 하는 것인가.

아침에 박둘자가 버린 음식물쓰레기에 남은 파전 조각들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음식물쓰레기까지 뒤져가며 우리 집을 감시하고

있단 말인데.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정액에 관한 강렬한

전파 한 가닥이 둔탁한 뇌를 쑤시고 들어온다.


쓰레기봉투!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린 헐어빠진 팬티 한 장.


‘팬티에 정액이 묻어있었나?’


그럴 수도 있다.

정액의 생산력은 팔도 사나이 누구에게도 진다는 생각을

안 하는 오왈수이며, 그런 나의 생산능력을 충분히

담보해주지 못하는 허약한 박둘자로 인하여, 일부 성질

급한 녀석들은 새벽을 틈타 독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파전과 정액을 연결하는 이유가 뭐지?’

‘음식물쓰레기와 생활쓰레기를 각각 뒤져서 분리수거를

무마시키는 의도가 뭐지?’

‘그것을 연결하여 그들에게 어떤 이득이 되는 거지?’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이 문자는 상당한 치욕이 될 것이며, 나 오왈수에게 도덕적 수치를 줄 의도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손가락으로 표 나지 않을 만큼 커튼을 젖힌다.

‘이게 일몰이야!’ 말해도 될 만큼, 해는 숨넘어갈 듯

원적산에 겨우 걸쳐 있다.

빌라 주변도 2시간 전과 달리 평온을 되찾은 모습이다.

경비아저씨는 낙엽을 쓸고, 보행 보조기를 끌고 다니는

노인 몇몇이 쌀쌀해진 날씨를 얘기하고, 노란 승합차에서는 유치원 아이가 내리고, 옆 라인 여자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린다.


다만,


설핏 우리 집을 올려다보는 4통장 여자의 표독스러운

눈빛만 제외한다면!

그 눈빛만 제외한다면!

모든 것들이 백마빌라 일상 됨의 나열이다.


눈빛.


- 저 눈빛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


그토록 친절했던 통장 여자의 눈빛이 변하면서부터, 빌라 사람들도 우리 가족을 향해 사주경계를 시작했다. 언젠가 인물값 할 거라고 박둘자가 누누이 강조한 여자였는데, 지금 어떤 식으로든 그 값을 하려는 것 같다.


어제부터 통장과 동네 사람들의 눈은 어떤 행동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소총의 조준간을 반자동에 맞추고 격발을 준비하는 것처럼, 충혈된 눈은 정확히 우리를 조준하며 다음 행동을 내포하고 있었다.


공격으로 옮기진 않았지만, 공격이 임박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물론 공격했다고 한들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전국체전 고등부 태권도 부산광역시 대표, 검도 5년, 3년의 종합격투기 경력까지 있는 나는 어떤 룰로 싸워도 일반인 스무 명 정도는 거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격의 대상이 내 가족이라면 경우가 달랐다.

내가 지켜야 하므로 박둘자의 암호를 뚫고 지금 행동해야 하는 것이었다.


‘통장 여자가 동네 사람들을 설득하여 모사를 꾸미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빌라만 벗어나면 괜찮아질까?’

‘아니면 우리 동네를 벗어나야 하는 걸까?’


‘이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을 마누라 박둘자를 찾아 연구소로 출발해야 하나?’

‘아이들이 있는 학교로 먼저 가야 하나?’


24평 썩은 빌라에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창밖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우리 가족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역모를 꿈꾸지 않았고, 다음 세자자리에 관심,

아니 지식조차 없는데 세상이 우리 가족을 ‘왕따’ 시키고

있는 이 기구한 시간 속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박둘자라면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해 나갈 작전이

수립되었을 텐데.


“아빠”


화들짝.

방문이 열리면서 ‘반지의 제왕’ 골룸을 닮은 아들 순길이

교복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나온다.


- 오왈수와 박둘자 -


아마도 이런 이름을 쓰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며,

이들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주민등록부에 등재되지 않을

이름들이다.


- 오아롱과 오순길 -


그 이름들이 낳은 자녀들이다.

이 이름들 또한 부모의 그것과 똑같은 처지가 되겠지.


아들을 골룸에 비교하는 부친이 있을까마는, 그렇게밖에

묘사할 수 없다는 게 이 부친의 슬픔이기도 하다.

박둘자를 닮아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이지만, 왜소한 덩치에 근육이라고는 없는 가는 팔다리, 운동 부족으로 배까지 살짝 나왔으며, 얼마 안 되는 머리숱은 이제 곧 스물이 되면 빠지기 시작하여 10년쯤 후엔 절대 반지를 찾을 우리 집 ‘골룸’은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도르의 검은 문으로 나를 데려갈 유일한 안내자, 박둘자의 대체무기다.

고로 나는 용량초과의 생각하기를 멈추어도 된다는 뜻이다.


“집에 있었더나?”

“지금 온 거야.”

“우째 왔어?”


손가락으로 자기 방의 창문을 가리킨다.


“5층 창문을 기 올라왔다꼬?”

“공사장”

“아!~~”


부직포로 가려진 바로 옆 공사장의 비계를 타고 올라온 것이었다. 형편없는 근력으로 5층이나 타고 올라왔으니 몰골이 엉망일 수밖에.

그렇다면 이후 우리의 탈출로도 당연히 공사장 비계였다.


폰의 전원을 켜고 어디론가, (아마 엄마겠지.)전화를 거는

순길. 받지 않는 모양인지 종료 버튼을 누른다.


“짐부터 싸.”

“므슨 짐?”

“아빠, 일단 흥분 좀 가라앉혀.”


순길의 ‘흥분’ 이라는 말에 어이없게도 ‘발신번호 표시제한’님의 ‘정액’이 전두엽을 스치며 나는 민망한 사타구니를

움켜쥐었다.


“내 흥분 안 했다 인마.”

“그럼 사투리는 왜 쓰는데!”


허걱.

‘그래. 멘탈 때문에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지만, 멘탈 때문에 가족을 위험에 빠뜨려선 안 된다. 침착하자.’


“그래. 짐은 어이해서 싸라는 거냔 말이더냐?”

“며칠 치 비상식량, 무기가 될 만한 것들, 피복, 방한 장비도 준비하는 게 좋아. 아빠 산에 갈 때처럼..”

“너희 모친께 연통을 넣어야 되지 않겠느냐?”

“송도로 가야 돼.”

“거기는 심려치 않아도 될-”

“-그 반대야!”


박둘자와의 대화에서도 세 번째 마디부터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래봐야 이길 재간도 없거니와 머리 좋은 것들은 다 계획이 있으니까.

배낭이나 싸면 된다. 이미 이골이 난 일이지만.

목검과 쌍절곤, 그리고 검도 대회 우승으로 받아 처박아 두었던 일본도, 저것까지 쓸 일이 있을까마는 장식으로 걸어두었던 각궁까지 챙겨 배낭의 양옆에 꽂았다.


우리는 배낭을 메고 아들 방의 창문으로 갔다.

공사장의 비계가 설치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5층 높이의 공포를 어찌 극복하고 올라왔을지 순길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작은 배낭을 멘 순길을 통으로 안아 창틀에 올리는 순간이었다.


‘딩동!’


순길과 나는 숨을 멈추고 침을 꼴딱 삼킨다.

아들을 그대로 내려놓고 뒤꿈치를 든 채 조용히 거실로 나갔다.

어두운 거실에 인터폰 화면이 어찌나 밝은지, 누가 조명을 들고 서 있는 것 같아 한 번 놀랐고, 흑백화면에 나타난 사람을 보고 뒤로 자빠질 듯 놀랐다.


‘통장 여자!’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가 화면 속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쳐다본다.

그 여자의 촉수가 스멀스멀 현관문 밑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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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닌자 어쌔씬 22.05.30 8 0 10쪽
14 한남정맥 22.05.27 8 0 15쪽
13 호만전이궤도 22.05.26 7 0 14쪽
12 0.6x 22.05.25 8 0 13쪽
11 18번홀 22.05.24 7 0 11쪽
10 백중사리 22.05.23 8 0 12쪽
9 양양 22.05.22 9 0 12쪽
8 차이나타운 22.05.20 8 0 12쪽
7 신미양요 22.05.19 7 0 12쪽
6 류현진 +1 22.05.18 8 1 11쪽
5 혼령 22.05.17 11 1 12쪽
4 목재단지 22.05.16 18 1 11쪽
3 이사벨 22.05.13 12 1 11쪽
2 제4구역 22.05.12 16 1 11쪽
» 파전에 정액을 쏟았습니까? 22.05.11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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