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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찜 님의 서재입니다.

병장 김꼴띠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뼈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2.06.10 18: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26
추천수 :
5
글자수 :
122,805

작성
22.05.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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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닌자 어쌔씬

DUMMY

“이사벨, 문학경기장에서 원적산까지 얼마나 걸렸어?”

『총 비행시간은 4분 3초가 소요되었으며, 2시간이 경과 되었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이해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4륜구동을 포기해야 했기에 배낭 두 개에 짐을 꾸렸다.

골프장에서 가져온 샌드위치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냉동식품을 제외한 인스턴트 음식 위주로 배낭을 채웠다.

T800으로부터 빼앗은 샷건 또한 일본도와 함께 배낭의 양 옆구리에 단단히 고정했다.


『이사벨은 72시간 사용이 가능한 태양열 충전방식의 자체 배터리를 겸비한 종합가이드입니다.』

“어쩌라고?”

“데리고 가라는 거 같은데?”

“야 때메 추적 당하는 거 아인가 모리겄다.”

『어떤 식으로든 고객님의 위치정보는 노출됩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렇습니다. 숙녀님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꼭 함께해야 합니다.』

“야, 니가 날 어떻게 보호할 건데?”

『작전을 제시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시되지 않은 정보를 이용하십시오, 숙녀님.』

“뭔 소리야?”

“가져가.”

“야, 너 배신하면 디질 줄 알어!”

『‘디진다’는 표현은 ‘새끼’라는 표현과 궁합이 매우 좋은 함의를 지닌 은어입니다.』

“욕 처 묵은께 좋아 죽겄나?”

『모욕적입니다. 말은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야 효과적인 소통 수단이 됩니다.』

“이 가시나! 므 주인?”

“푸하하하하하······. 알았어. 원한다면 한 번 쏴줄게. 너 썅년, 배신 때리면 뒈진다!”

『무척 찰지고 신선한 표현입니다, 숙녀님.』

“이사베리! 니 여자 좋아하고, 거 다가 또 밴태가? 히히히”

『경고합니다.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하시기 바랍니다.』

“품객? 회초리도 구해 주까? 히히히히”

『버전을 변환할 수도 있습니다.』

“버전? 바뀌면 어떻게 되는데?”

『욕설의 교환이 가능해집니다.』

“뭔 내비가 욕을 해?”

『OECD 회원 38개국의 욕설이 가능하며, 국내의 경우 지방별 욕설을 모두 구사할 수 있습니다.』

“문디 겉은 기, 하다하다 욕까지 할라꼬?”

“야, 이사벨. 함 해봐.”

『오왈수, 이 썩어 자빠질 숭칙한 놈아.』

“가시나, 지금 내한테 이라나?”

『알면 주둥이를 닫아라.』

“이기 미친나! 궁디 주 차삐까!”

『뭐라 시부리샀노. 아따, 참말로 환장 하겄소.』

“그만!”

“이기 먼저 시비 걸었다 안 카나!”

“그게 아냐!”


연안부두를 바라보던 순길이 두 손을 휘저으며 우리를 제지했다.


“뭔데?”


- 휘이이잉 휘이이잉~~ -


“바람!”

“지, 진짜네.”

“산꼭대기에 바람 부는 게 뭐 어때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송도의 갯벌에서도, 골프장에서도 한 점 없었던 바람이

어느새 우리의 머리카락을 날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기는 이제 정상적인 기압 차이로 순환되고 있다는 의미다.


“저기 봐.”


우리는 순길의 손가락을 따라 반대쪽 하늘을 보았다.


“다, 달 말이가?”

“그래, 달.”

“달 저거, 원래 뜨는 거 아냐?”


달이 나타났다.

보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믐이 되기에는 한참 남은 날짠데, 그동안 보이지 않던 달이 떴다.

그것은 지구의 자전 속도를 정상으로 회귀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하루 밤낮의 길이가 24시간이 되는 것이며,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인가.


바람이 분다는 것은, 다시는 패널 두 장으로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과거의 사실을 부정하는 의미지만, 달이 떴다는 것은 오늘 밤 우리는 긴 어둠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미래를 말하는 것이었다.


『소요 시간과 경과시간이 일치되었습니다.』


이 순간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자 하는 저 불손한(?) 이사벨을 어찌해야 할까. 오씨 가족의 진군에 자신을 포함하라는 이사벨의 애원은, 추적을 위해 설정해 놓은 구애 방식일까, 아니면 기계의 인간으로의 진화일까.


우리는 이사벨과 동행하기로 했다. 그간의 여정에서 구간마다 이사벨의 반응은 많은 참조가 되었으며, 또 이사벨이 없다고 하여 권력자가 자신의 시스템 안에 있는 우리의 위치정보를 파악 못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를 잡기 위해서라면 개라도 풀 것이다.


그리고 그간 정이 든 모양인지, 방해된다면 그때 폐기하자는 아롱의 강한 주장 때문에, 이사벨은 4륜구동에서 분리되어 배낭의 헤드에 고정되었다.


“니 인자, 처 씨부리싸모, 때리 뽀사뿐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이기 끝까지 기 오리네.”

『비 오는 날 먼지 날 때까지 처 맞을 육실헐 놈.』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야, 욕이 업그레이드가 안 됐어.

아부지, 나랑 바꿔서 메자.”

『이왕이면 다홍치마입니다.』


뒤통수에서 나를 욕하는 ‘저런 경을 칠 이사벨’을 달고 다닐 수는 없었으므로 아롱의 작은 배낭과 바꿔서 메기로 했다.

아롱이 앞장을 서고 순길이 아이처럼 뒤를 따른다.


나는 발길을 옮기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4륜구동이 원망스럽게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하지만 이 산이 늘 그래왔듯 저 원망도 사그라뜨릴 것이다.

찌그러진 보닛에 반사된 달빛도 어둠처럼 퀴퀴하다.

원적산의 쌓인 한(恨)처럼 4륜구동을 부려놓고, 우리는 한남정맥 제9구간 척추 위에 걸음을 올려놓았다.


* * *


“니, 뭐 알고 가는 기가?”

“언제 알고 간 적 있어?”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이 배제된 순길의 태연의 대답이었다.

저 젊은 청년에겐 이것이 일종의 게임처럼 각인된 것일까, 아니면 그간의 여정으로 위험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하지만 이 전투는 한 번의 패배도 용납될 수 없는 준엄한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 ‘GAME OVER’는 그야말로 영원한 끝이었으며, ‘다시 시작’할 버튼이 없는 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었다.


“아나지고개, 우째 넘을라 그라노?”


경인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아나지고개를 넘을 수 있는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장수산 나비공원을 거쳐 효성고가교를 넘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청천농장을 거쳐 가정오거리를 통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의 전술가인 순길이 아무 대책도 없이 무작정 나아가고 있었으며, 원적산 돌탑을 지나 이미 그 갈림길인 무등재에 다다르고 있었다.


“빨리 나와라!”


수신호로 우리의 걸음을 멈춰 세운 아롱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어둠을 찢었다.

시합을 앞둔 선수처럼 아롱의 촉각도 곤두서 있는 것 같다.

내 딸의 목소리가 이렇게도 낯설기는 처음이다.

나도 숨을 멈추고 어둠에 집중했다.


- 쉬익~ 쉬익~ 시시쉭~~~ -


바람을 타고 살기가 전해 온 곳은 장수산 방향이었다. 그런데 약간 혼란스럽다. 사람인 것 같기도, 짐승인 것 같기도, 혼재된 것 같기도 하다.

아롱이 배낭을 벗으며 전투준비를 하자, 살수들은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엉뚱하게도 산속에서 헬멧을 쓴 무사들이었다.

어둠 속이라 정확한 색깔의 구분이 어려웠지만, 손에 든 무기들은 모두 반짝반짝하는 황금색이었다.

각자 다른 색깔의 갑옷과 헬멧 같은 투구를 썼으며, 다른 무기를 들고 뿌연 달빛 아래 도열한 놈은 모두 넷.


“어, 저거 닌자들인데?”

“닌자? 니 가지고 놀던 장난감 말하는 기가?”

“어. 그런데 사부가 없네.”

“수염 난 영감탱이 말하나?”

“어.”


닌자들은 우리를 쉬운 상대로 판단한 것인지 헬멧을 벗었다. 모두 건장한 청년들이었으며 스타일도 각양각색이었다.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놈, 그 머리를 땋은 놈,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놈, 가장 인상적인 놈은 머리 가운데를 훤히 밀어버린 사무라이 스타일이었다. 머리 가운데로 비친 달빛이 양쪽의 모발과 어우러지면서 마치 일장기의 문양을 상상케 했다.


“얼라들 아이였나? 마이 커뿠네.”

“그래서 사부가 없는 건가?”

“즐마들 하산시키고 죽었는갑다.”

“뒈지기 싫으면 그냥 비켜라!”


여전히 낯선 위압감을 풍기는 아롱의 목소리가 들리자, 닌자들은 잽싸게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나도 배낭을 풀었다.


“아롱아, 니는 쉬라.”

“뭐?”

“낭만!”

“낭만?”

“낭만즉으로 보내주뿌자.”

“뭘 어쩌게?”


나는 배낭에 꽂아두었던 일본도를 뽑아 들었다.


“이기 왜놈들이 만든 기거든. 즐마들, 일본 아들이제?

인자, 본국으로 가라. 너머 나라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아이들이 아니어서 죄책감 없는 전투를 벌여도 될 것 같다. 갈비뼈의 통증이 우려되기는 한다. 하지만 골프채를 잡았을 때처럼, 양손에 전해오는 칼손잡이의 그립감은 그런 통증 따위는 잊어버릴 만큼 몸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되도록 칼을 쓰지 않을 것이다.

칼은 쓰러진 그들의 목을 칠 때만 상징적으로 쓸 것이다.


벌써 한 놈이 황금색 칼을 뽑아 들고 높이 날아올랐다.

나도 함께 뛰어올랐다.

빨간색 옷 색깔이 구분될 정도의 거리에서 반짝이는 칼이 얼굴 앞을 지나친다.

스피드는 수준급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짧은 리치로 내 목을 탐하다니.’


칼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긴 다리를 집어넣어 갈비뼈를 후려쳤다.


- 우두두둑! -


묵직한 격파감이 발끝에 전해온다.

갈비뼈가 부러져 내장을 관통했을 것이다. 살아 있어도 숨쉬기도 힘든 중태일 것이다. 빨간색 놈의 목을 베고 마무리하고 싶었으나, 곧바로 일어나 덤벼드는 바람에 황급히 물러섰다.


‘확실히 들어갔는데, 이건 뭐지?’


발차기의 충격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던 놈이 순식간에 벌떡 일어나 나를 공격하고 있다. 그새 무기도 쌍절곤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


어찌 된 일일까? 닌자가 혼령을 등에 업었나? 체력고갈로 내가 헛것이 보이는 건가. 닌자인지 헛것인지 알 수 없는 그 환영은 하여튼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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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노인은 없다 22.06.09 5 0 10쪽
22 사석 22.06.08 8 0 10쪽
21 이사벨 22.06.07 8 0 11쪽
20 대마 22.06.06 8 0 11쪽
19 병장 김꼴띠 22.06.03 9 0 12쪽
18 천마부대 22.06.02 14 0 10쪽
17 아나지 고개 22.06.01 7 0 12쪽
16 월하의 공동묘지 22.05.31 7 0 11쪽
» 닌자 어쌔씬 22.05.30 8 0 10쪽
14 한남정맥 22.05.27 7 0 15쪽
13 호만전이궤도 22.05.26 7 0 14쪽
12 0.6x 22.05.25 7 0 13쪽
11 18번홀 22.05.24 7 0 11쪽
10 백중사리 22.05.23 7 0 12쪽
9 양양 22.05.22 9 0 12쪽
8 차이나타운 22.05.20 7 0 12쪽
7 신미양요 22.05.19 7 0 12쪽
6 류현진 +1 22.05.18 8 1 11쪽
5 혼령 22.05.17 10 1 12쪽
4 목재단지 22.05.16 17 1 11쪽
3 이사벨 22.05.13 11 1 11쪽
2 제4구역 22.05.12 16 1 11쪽
1 파전에 정액을 쏟았습니까? 22.05.11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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