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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찜 님의 서재입니다.

병장 김꼴띠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뼈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2.06.10 18: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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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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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122,805

작성
22.05.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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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백중사리

DUMMY

- 우당탕 털컥 털컥! -


차는 처박히듯 갯벌로 곤두박질 쳤다.

4륜구동 이라지만, 서스펜션이나 타이어는 개조되지 않은

순정품이라 실전 오프로드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그 힘들다는 머드 오프로드를.


사실 이 차는 노후의 취미생활을 위해 마련했다. 새 차를 오프로드에 투입하는 것이 아깝기도 하고, 노후의 생활을 동경하는 급한 마음에 미리 장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10년이나 먼저 내 삶의 오프로드가 발생하는 바람에 차도, 나 자신도 아무 준비 없이 실전에 던져진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갯벌의 점착력이 강하다.

마치 여러 해 물을 만난 적 없는 땅처럼 차를 지탱하여,

네 바퀴는 갯벌 위로 거의 노출된 채 구동되고 있다.

어떤 조건들의 조합인지는 모르겠지만, 갯벌을 건너는 데는 절호의 상태다.


더욱 이상한 것은 갯벌로 들어서자 인천을 다 부숴놓을 것 같은 맥아더의 공격이 멈췄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바다에 난파된 것으로 인식되는 모양이다.


“차가 왜 이래?”

“바닥 상태도 이만하모 좋은데 와 이라노?”


앞으로 나가긴 하지만 차의 드리프트(좌우로 미끄러지는 현상)가 너무 심하다. 분명 4륜이 모두 작동하고 있고, 바닥은 타이어가 잠기지 않을 정도의 양생 상태인데, 높은 rpm에도 불구하고 속력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양양은?”


정신없는 포격 소리에 양양을 잊고 있었다.

자신의 시간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일까?

선루프에 얼굴을 내밀고 있어야 할 양양이 보이지 않는다.


“뒷좌석에 자세히 봐봐.”

“양양!”


시트 아래쪽에 쓰러져 있는 양양을 발견했다.

나는 얼른 뒷좌석으로 이동했다.


몸을 일으켜 한쪽 팔에 괴었다.

하지만 양양은 몸을 축 늘어뜨리고 미동이 없다.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오른쪽 관자놀이를 뚫고 들어간 동그란 상흔은 포탄의 파편이 아니라 소총으로 공격했다는 증거였다.


“조준사격을 한 것 같애.”

“조준? 낼로 안 싸고 와 양양을...?”

“조력자들에게 경고하는 거지.”

“갱고?”

“우리 도와준 사람들 있잖아. 경찰차, 과일트럭, 트레일러.

그 사람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거지.”

“우리를 쥑이는 기 이 사람들 목표 아이가?”

“적절한 명분을 만든 후에는 그리 하겠지.”

“양양은, 우리하고 똑 같은 진짜 사람이다. 나무토막이나 플라스틱이 아이라 말이다!”

“맥아더라는 한국전쟁의 영웅을 이용해서 중국인을 죽였어. 어떤 인간인지 외교력은 빵점이야.”


양양은 이렇게 우리의 조력자가 되지 말라는 메시지의 희생양이 되었다. 햇빛 같은 얼굴에 무슨 말이라도 할 것처럼 눈을 뜬 채.

포탄의 섬광이 비치던 커다란 눈동자에는 지켜주지 못한 비겁한 오왈수가 비치고 있다.


애틋함, 안쓰러움, 그리움, 가슴앓이, 후회.

이런 단어들의 느낌이 뭔지는 아는 바 없다.

다만, 내 품에서 축 늘어진 양양을 보고 있노라니 목울대가 뜨거워지고, 양양을 태우지 말았어야 했다는 결정의 착오가 한탄스럽다.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양양의 시간 속에 그녀가 있어야 했고, 우리의 시간 속에는 우리만 있어야 했다.


“오늘 백중사리잖아!”

“????”

“연중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백중사리 아홉 물이야.”

“그기 므 우쨌다고?”

“만조시간이 지났는데 물이 안 들잖아.”

“그, 그라네..”

“백중사리에 물이 안 든 적이 95년 몽산포에서 한 번 있긴 해. 하지만 차가 힘들어하는 것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므슨 소리고?”

“중력이 강하다는 뜻이고, 시간이 느려졌다는 뜻이지. 바다와 육지의 조건이 반대야.”

“뻘밭이 딴딴한 것도 그거 하고 상관있는 기가?”

“그런 거 같애.”


어쨌든 우리는 진격해야 한다.

양양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백중사리 9물 갯벌을 함락해야 한다.

양양을 뒷좌석에 고이 누이고 운전대를 잡았다.


느리지만 4륜구동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우리는 갯고랑 폭이 가장 좁은 아암2교와 3교의 중간쯤에 도달했다.

이제 두 개의 갯고랑을 지나 직선으로 약 200m 정도의 갯벌만 이겨내면 된다.


첫 번째 갯고랑.

거리는 3~4m 정도로 짧고 수심은 얕아 보인다.

하지만 저 얕은 고랑에, 또 어떤 숨겨진 조건들이 잠복하고 있을까. 나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꼴딱 삼켰다.

오프로드 동호회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지만, 좌우를 살펴도 이 포인트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차는 물을 튀기며 고랑으로 뛰어들었다.

최하점을 지났지만, 다행히 수심은 깊지 않다.

문제는 오르막을 탔을 때다.

불과 15° 정도의 경사도에도 불구하고, 차는 제방 둑을 오르는 것처럼 굉음을 내며 헛바퀴를 돌고 만다.

다시 후진하여 시도했지만 마찬가지다.

여기는 다른 중력권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뒤로 충분히 후진했다.

속력을 얻어 가속으로 도하를 시도하고자 함이다.

하지만 갯고랑을 이겨낼 만큼 충분한 속도도 어려웠고, 커져 버린 바퀴 자국에 더 힘들어질 뿐이었다.


“아빠, 저쪽 경사진 방향으로 후진해서 올라가.”

“그기 되겄나?”

“각도를 좀 더 부여해야 돼. 속도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지금 해봤다 아이가.”

“경사진 곳에서 내려와야 돼. 강한 중력에 기울기를 부여하면 가속도는 더 커질 거야.”


어렵사리, 어렵사리 후진으로 급경사의 둔덕을 올랐다.


“바퀴 자국 없는 방향으로 밟아!”


rpm을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순길의 말대로 차는 내리막을 타고 가속을 하기 시작하더니, 절벽을 내려가듯 통제를 잃어버린 것처럼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충분한 속도를 얻은 4륜구동은 분수 같은 물을 튀기며 가뿐히 갯고랑을 탈출했다.


갯고랑을 건넌 기쁨도 잠시 뒷좌석의 양양이 걱정되었다.

가속도의 충격에 그녀가 흐트러지지 않았을까. 무안한 마음에 룸미러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일에 관심 없이 무심하게 누워있을 뿐이었다.


첫 번째 갯고랑을 건넘으로써 우리는 섬 같은 곳에 들어온 형국이 되었다. 하나의 갯고랑을 더 건너야 육지를 만날 수 있다.

두 번째 갯고랑의 가장 짧고 얕은 포인트를 찾아 아암2교 쪽으로 올라갔다.


폭이 첫 번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넓다.

다행인 것은 갯고랑 앞에 둔덕이 형성돼 있다.

둔덕의 정상에 올라 밟으면 가속은 얻을 수 있겠으나, 그 가속으로 10m가 넘는 고랑을 박차고 나갈 수 있을까.

갯고랑을 확인하려 차에서 내린 순길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우리를 일부러 갯벌에 집어넣었다면 큰일이야.”

“므?”

“갯벌밖에 선택할 수 없도록 조건들을 만들었잖아.”

“글마들, 실수가 아이고 고의라 그 말이가?”

“만약 여기서 물이라도 들어, 뻘에 갇히면 우리는 자연사 하는 거야.”

“자, 자연사?”

“그들에게 최고의 명분이지. 갯벌에 들어간 부자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음에 이르다.”

“차 포기하고 그냥 가모 안 되겄나?”

“차 없이 언제 엄마한테까지 가?”


해 보는 수밖에 없다.

‘4륜구동 LOW’에 세팅이 되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가장 높은 갯벌의 둔덕으로 후진해 올랐다.

밟는다.

둔덕의 경사가 완만한 까닭에 아까의 가속에는 못 미치지만, 힘차게 갯벌을 쳐내며 전진한다.

드디어 양옆으로 폭포수처럼 물을 쳐내며 갯고랑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고랑의 중간쯤에서 가속도의 힘은 모두 소진되고, 여기서부터는 순수하게 4륜구동의 힘으로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르막이다.


핸들을 좌우로 꺾어가며 타이어가 빠지지 않게 일부러 드리프트를 만든다. 그런대로 조금씩 전진한다.

드디어 앞쪽 타이어가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이 마지막 한 바퀴만 해결되면 부서진 아암2교의 잔해들을 발판 삼아 무사히 제방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급해진 경사 때문에 바퀴는 계속 헛돌며 깊이 자국을 만든다.


“발판을 만들자.”

“후진해서 함 더 치뿌자.”

“마찬가지야. 문짝 뜯어!”


재능대에서 차창을 대신하기 위해 뜯어 붙인 문짝들로 타이어 발판을 마련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문짝을 뜯어 타이어 앞쪽에 단단히 고정했다.


- 부아앙!!!!! -


바퀴는 문짝을 순식간에 먹어 삼키고 1m도 못 가 다시 헛바퀴를 돌고 만다.


“순길아, 핸들 잡아라.”


갯벌에 처박힌 문짝들을 다시 건져 바퀴 앞에 설치했다.

순길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전진은 하지 못하고 문짝들만 뒤로 뱉어내 버리고 만다.


“무게를 줄여야 돼.”

“스페아 떼 내뿌까?”

“응··· ··· 양양도...”


스페어타이어를 떼 내었다.

그리고 굳어가는 양양을 안아 갯벌 높은 곳에 눕혔다.

치파오 치맛자락 틈 사이로 삐져나온 다리를 바람막이로 덮어주었다.


“밟아!”


효과는 있어 보인다. 50센티 정도 전진했다.

문짝들을 다시 옮겨 전진하기를 반복하여, 2m 정도만 더 올라가면 뒷바퀴가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짝들은 아까보다 더 깊이 갯벌에 박혔다.

그것들을 빼내느라 온몸에 땀이 쏟아진다.


“만조가 시작되고 있어!”


아암3교 아래로 물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계곡물이 흐르듯 속도가 너무 빠르다.

우리에게 얼마간의 시간이 주어진 것일까.

공구함에서 작키와 렌치를 꺼냈다.

작키를 고이고 렌치를 틈으로 집어넣어 갯벌에 박힌 문짝들을 겨우 분리하는데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물은 건너왔던 첫 번째 갯고랑을 완전히 덮어버리고, 우리를 향해 진격해오고 있다. 시간이 빨리 흐르고 있는 것일까.


“됐다”


나의 수신호에 순길이 차를 구동시켰다.

오를 듯 오를 듯 애를 태우며 차는 마지막 골을 넘지 못하고 헛바퀴를 돈다.


“고마 해라!”

“물 들어오는 거 안 보여? 50미터도 안 남았어!”

“순길아 잘 듣거라.”

“뭘?”

“혹시 내한테 믄 일이 생기드라도 신갱쓰지 말고, 느그 누나 태우로 가라. 느그 음마는 므슨 수라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막바로 시골 할매집으로 가라. 그게는 괜찮을 기다. 알았제?”

“무슨 소리야?”

“뻘에서 올라가드라도 멈추지 말고, 제방 보이제? 글로 바로 타고 올라야 된다. 내가 고함치모 힘껏 밟아라!”


나는 물로 들어갔다.

내가 뒤에서 푸시 한다면 마지막 골을 타고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허벅지쯤에서 물이 찰랑이고 있다.

생명을 잠식하고 있는 것 같은 갯물의 작은 소리는 공포다.

후방문짝에 두 손을 대고 자리를 잡았다.

이미 물은 이미 내 하체를 다 잠식하고 4륜구동의 배기구까지 막아버릴 태세로 밀려온다.

시간이 없다. 고함을 쳤다.


“순길아!”


물을 튀기며 차는 조금씩 전진했다.

그리고 어딘가에 막히는 기분이 드는 것으로 보아 마지막 한 바퀴가 남은 모양이었다.

세상을 다 들어 올릴 힘으로 4륜구동을 밀었다.

4륜구동을 미는 힘만큼 내 몸은 갯벌 속으로 박혀간다.

차가 나아간 거리만큼 몸은 진흙으로 들어간다.

처음엔 문짝을 밀다가 점점 아래쪽으로 손을 이동하여 범퍼의 맨 하단까지 옮겨가며 밀었다.

다행히 차는 마지막 골을 이겨내고 갯골을 벗어나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암2교의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를 발판으로 치고 올라 드디어 송도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4륜구동이 백중사리 9물 갯벌을 함락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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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나지 고개 22.06.01 7 0 12쪽
16 월하의 공동묘지 22.05.31 7 0 11쪽
15 닌자 어쌔씬 22.05.30 8 0 10쪽
14 한남정맥 22.05.27 7 0 15쪽
13 호만전이궤도 22.05.26 7 0 14쪽
12 0.6x 22.05.25 7 0 13쪽
11 18번홀 22.05.24 7 0 11쪽
» 백중사리 22.05.23 8 0 12쪽
9 양양 22.05.22 9 0 12쪽
8 차이나타운 22.05.20 7 0 12쪽
7 신미양요 22.05.19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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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혼령 22.05.17 1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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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사벨 22.05.13 11 1 11쪽
2 제4구역 22.05.12 1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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