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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찜 님의 서재입니다.

병장 김꼴띠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뼈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2.06.10 18: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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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2,805

작성
22.05.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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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x

DUMMY

과연 이 게임은 성립할 수 있을 것인가.


1. 심각한 정보의 불균형 속에서 아롱이를 픽업한다.

2. 인천의 끝에서 끝인 송도에서 검단까지 종단한다.

3. 박둘자를 구출하여 어떻게든 정상의 세계로 탈출한다.


막연한 추상의 세계에서 구체적이면서, 생과 사를 넘나들 사실적인 전술들을 발견하고, 창안해내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알파고에게 입력되지 않은 사상 최초의 묘수들을 두어 구간마다 승리를 챙길 수 있을 것인가.


“경비들이 나타났어.”


골프장 정문을 벗어날 즈음, 백미러에는 우리를 뒤쫓는 경비들의 모습이 비쳤다.


“우리 시간으로 약 30분.”

“삼쉬입분?”

“골프장 들어간 지 30분 만에 우리를 인지하고,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됐어.”


그러고 보면 골프장엔 그 흔한 송도 갯바람 한 점 없었고, 새 한 마리 지저귀지 않았다. 거기도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을 뿐 그냥 송도는 아니었다.


드디어 캠퍼스가 보인다.

순길이 폰을 들어 통화를 시도한다.


“아예 먹통이야. 통신시스템을 끊은 것 같애.”


그렇다면 아롱이가 넓은 학교의 어느 곳에 있을지 찾아야 한다. 기숙사, 체육관, 운동장, 강의실....


“이 상황에 학교를 다 뒤지고 다닐 수는 없어.”

“그라모 므 우짤라꼬?”

“누나가 나타날 곳에서 잠복하고 기다려야 돼.”

“그가 오덴데?”

“구내식당.”

“시, 식당?”

“점심을 거르진 않을 거야.”

“그거는 글치.”


누구보다 누나의 생리적 특성을 잘 아는 순길의 기가 막힌 추론이다. 태양의 위치로 보아 10시 30분에서 11시쯤.

좀 있으면 구내식당의 배식이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정문이 굳게 닫혔다. 정문이 닫혔다면 다른 출입구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해안가 쪽에서 뛰어넘자.”


우리는 학교를 돌아 맞은편 해안 솔찬공원 옆에 차를 세우고 캠퍼스의 울타리를 넘었다. 산책로의 정원을 지나 나무 그늘에 숨어 구내식당 건물의 동태를 살폈다.


오늘이 개교기념일이라도 되는가.

햇볕은 내리쬐고, 건물들은 그 빛으로 그늘을 만들 뿐, 캠퍼스는 무척 심심하다. 골프장과 마찬가지로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30분이야. 지금부터 30분 안에 누나를 픽업해서 떠나야 돼.”


우리는 식당 건물의 보수를 위해 설치해 놓은 컨테이너로 잠입했다. 컨테이너 안에도 공사 관련 장비들만 있을 뿐 사람은 없다. 그러나 컨테이너 창을 통해 본 구내식당에는 놀랍게도 배식을 받으려는 학생들로 붐볐다. 학교의 모든 학생을 식당에 모아 놓은 것 같다.


“저기, 누나다!”


순길이 가리킨 곳에 아롱이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아롱이가 앉은 테이블의 전후좌우 두 칸씩 아무도 없다.


‘대학교에도 일진이 있나?’


인천의 일진들이 다 덤벼도 감당할 수 있는 종합무술인 아롱이에 대한 예우로 저런 테이블 구도가 생겼나.

아니면 벌써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 반응을 눈치 못 챌 만큼 미련해서 그런 것일까.

하여튼 185cm, +73kg급 여자부 태권도 국가대표는 구내식당의 섬 한가운데서 위엄있게 오찬을 즐기고 있다.


“상관없어. 데리고 나가면 그만이야.”

“기다리 바라!”


나는 컨테이너를 나서려는 순길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이유가 어떻든 저 순간에 아롱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 대상이 가족이든, 일진이든, 교수님이든.

아롱이에게 본능을 해결하는 시간은 야생에서 새끼를 낳은 암사자보다 더한 위험을 내포한 순간이다. 어지간한 떠돌이 수사자 몇 정도는 불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아무리 급해도 기다려야 한다.

아마 세 코너의 메뉴를 순서대로 취식하고, 과일과 스낵코너까지 섭취가 끝난 후 식사를 마무리할 것이다.

저 엄청난 식사량을 배출해낼 만큼의 지독한 운동량을 소화하기 때문에 아롱이는 걸어 다니는 흉기나 다름없다.


식사하는 동안 아롱이에 대한 참고사항을 공지하겠다.

때는 아롱이가 대학교 1학년이었다. 대학이라는 곳에 가서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내가 그랬듯 아롱이가 연애 따위를 할 것이라고는 우리 가족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연애를 못 해서가 아니라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아롱이 또한 ‘딱’하면 ‘딱’할 정도의 수준급 외모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모든 에너지를 운동에 쏟아부었다. 주 종목인 태권도 외에도 주짓수, 권투, 육상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으며, 그 덕분에 아롱이는 사춘기의 방황을 경험할 겨를도 없이, 모든 삶의 의미를 운동에서 찾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친구라는 개념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박둘자와 나는 그 ‘남자친구’가 남자인 친구(요즘 표현으로 남자 사람)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남자인 친구와 주말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가끔은 외박을 하기 위해 뻔한 거짓말을 하기도 하였다.


무척 궁금했다.

아롱이의 운동시간을 양보해 낼 수 있는 그 ‘남자친구’가.

박둘자와 나는 갖은 연애관을 들이대며 연애는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덕분에 드디어 분식집에서 첫 만남을 갖기로 약속했다. 남자친구가 떡볶이와 어묵을 좋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에 미리 떡볶이집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지만, 서비스로 준 어묵 국물이 다 식도록 둘은 나타나지 않았다.


‘요즘 애들 약속 개념이란 쯧..’


물 한 잔을 마시는 순간 가게 출입문이 어두워지며 아롱이가 분식집을 들어섰다. 낯선 가방을 어깨에 메고 혼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왜 혼자냐는 눈빛을 보내던 그때, 아롱이는 뒤춤에 숨겨둔 자그마한 남자아이를 우리 앞에 꺼내 놓았다. 이때의 적절한 표현이 ‘허걱’.


그 남학생은 과연 아롱이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할 정도의 왜소한 몸에 흘러내리는 안경테를 걷어 올리는 습관을 지닌 친구였다. 아롱이가 든 가방은 허약한 그 친구가 병원에서 받은 약들을 넣어둔 가방이었다.


이 커플의 성립 방정식은 뻔하다.

아마도 그 남자친구는 골룸 같은 동생 순길이가 그러듯 아롱이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 것이 분명했다.

마치 박둘자와 나의 구성을 남녀를 바꾸어 놓은 조합이었다. 그래서 박둘자도 나도 이 가당치 않은 커플의 성립에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도 여느 커플들처럼 영화를 본다거나, 커플링을 하고 커플티를 맞춰 입고, 가끔은 집에 와서 떡볶이를 해 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허약한 박둘자가 병가를 내 일찍 귀가하게 되었는데, 아롱이의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와 벌컥 방문을 열어버린 것이었다. 명령과 복종이 가훈처럼 기립해 있는 집에서 박둘자의 행동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행동이었고, 가족 중 누구도 그에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손대면 톡 하고 부러질 것 같은 그 남자친구도 엄연히 자신의 신체적 전성기에 있는 청년이었고, 두 청춘남녀는 본능을 해결하는 중이었다.

설마 이 시간에 누가 오겠냐 하는 생각으로.


본능.

명령과 복종이 제대로 관철되지 않는 영역이라는 것을 박둘자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황급히 문을 닫고 수습하려 했지만, 아롱이의 본능은 이미 심각한 침해를 받은 후였다.

야생이었다면, 떠돌이 수사자 무리는 아롱이라는 어미 사자에게 불알을 다 뜯겼을 것이다.


아롱이는 그날 엄마만 빼고 집안의 모든 집기 비품을 다 파괴했다. 하나도 빼지 않고 꼼꼼히.


‘어쩌면 저렇게 침착하게 분노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저리도 섬세하고 고요하게 화를 표출할 수 있을까’

박둘자의 증언으로는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까지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다고 한다.

침착한 아이.

덕분에 우리는 집값에 버금가는 복구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아롱이의 식사 시간에 두 칸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남학생들의 입장이 일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불알은 소중하니까.

하지만 과연 그 이유로 저런 괴상한 식문화가 캠퍼스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지금 우리를 가장 헷갈리게 하는 부분이다.


그나저나 수박 몇 조각과 포도 몇 송이만 처리하면 모든 흡입이 끝난다.

시간 됐다.

우리는 아롱이가 식판을 들고 일어나는 시점에 맞추어 컨테이너를 나와 식당 입구를 향해 뛰었다.

드디어 포만감에 느긋하게 걸어 나오는 아롱이와 마주했다.


“어! 아부지. 야, 오순돌! 니가 웬일로 왔어?”


아롱이는 사정도 모른 채 순길이를 잡고 헤드록을 걸어 장난을 친다.


“야 새끼야, 누나 보고 싶어서 왔냐?

아부지, 입시설명회 같은 거 하나?”


나는 아롱이를 인적이 없는 계단 아래로 데려가 그간의 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 못 믿는 것처럼 장난스레 들었다.


“아빠 입은 옷, 골프장 샵에 있던 거야. 못 보던 거잖아.”


아롱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엄마를 구출하러 가야 한다고 했더니, 심각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냅다 밖으로 뛰기 시작했다.


“누나! 누나!”


순길의 고함도 들리지 않는 듯 어디론가 뛰어간다.

이런 돌발상황을 예측 못 한 것은 잘못이지만,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는 이런 빠듯한 상황을 사실상 막기는 어렵다.


“정문 쪽이야. 뭐 해, 빨랑 잡아!”

“소용 음다. 몬 잡는다.”


그렇다.

같이 뛰어서는 잡을 수 없다. 마라톤 선수면 몰라도.

힘으로는 막아볼 수 있을지 몰라도, 스피드나 지구력으로 저 현역선수를 막아낼 수는 없다.


“일딴 차로 가자.”

“뭐 할려구?”


이 상황에 아롱이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첫째, 일단 아롱이보다 속도에서 빠른 4륜구동에 올라탄 후.


y = 0.6x


지구상에서 오직 나만이 풀 수 있는 일차함수. 아롱의 모친 박둘자의 샤프한 두뇌도 저 함수만큼은 해결하지 못한다.

아롱이의 행동 방향 y 값을 구하기 위해 먼저 내 생각(나라면 이 상황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x값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약 40% 지적 다운사이징(또는 감수분열? 뭐 어떻든)을 통해 아롱이의 행동을 앞질러 가서 막아야 한다.


키를 순길에게 던져주었다. 1초라도 아끼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어디로 가자고?”

“테크노파크역!”

“여기 지식정보단지역도 있는데?”

“막바로!”


순길이 또한 이 함수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저 함수는 지능이 뛰어난 사람이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자가 풀 수 있으므로. 0.6x에 가장 가까운 x인 나만이 함수값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송도의 잘 구획된 거리는 우리에게 충분한 속도를 보장해 주었고, 차 한 대 없는 거리에서 최고의 시간으로 테크노파크역에 도착했다.


“2번! 2번 출구로 드가자!”

“들어가자고?”

“시간 읎어.”


인도에 올라서서 2번 출구의 높은 턱을 넘어 가파른 계단을 타고 테크노파크역 안으로 4륜구동을 진입시켰다.

이미 백중사리 아홉 물 갯벌 체험을 한 우리로서는 마른 땅의 경사도를 부담하는 것은 우스운 것이었다.


개찰구 앞에 차를 세우고 얼른 승강장으로 뛰었다. 무릎관절이 버텨낼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성큼성큼 계단을 뛰어내렸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안전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저 튼튼한 안전문을 어떻게?’

어찌하긴 뭘. 달려온 속도로 그대로 들이받았다.

- 퉁 -

안전문에 약간의 손상을 준 채, 내 몸이 튕겨 쓰러졌다.

하지만 쓰러져 있을 시간이 없다.

얼른 일어나 다시 돌진했다.

- 퉁 -

안전문에 조금씩 균열이 발생한다.

다시. – 퉁 -

머리통이 들어갈 정도의 틈이 생겼다.

이제 몇 번만 충돌한다면 안전문을 부수고 선로로 내려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안전문과 함께 선로로 떨어지더라도 마지막 한 방에 끝내야 한다. 뒤로 충분히 물러났다.

그리고 돌격한다. 동시에 선로에 어떤 물체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늦은 건가? 이판사판. 달린다.


“으아아아아악!!!”

- 뿌직 쿵! -


빈 승강장에 안전문 부서지는 소리가 울린다.

문짝과 함께 선로로 떨어졌다. 충격에 몸이 쑤셔온다.

하지만 아파할 겨를도 없이 얼른 앞을 주시했다.

어둠 속의 지하철 선로로 사라지는 운동복.

분명 아롱이다.

한발 늦었다.

하지만 내가 x값을 정확히 구했다는 증거다.


아무리 고함쳐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거의 맹목적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 x의 특징이고, 하물며 0.6x야 말해 뭣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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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간빙기 22.06.10 4 0 10쪽
23 노인은 없다 22.06.09 5 0 10쪽
22 사석 22.06.08 8 0 10쪽
21 이사벨 22.06.07 9 0 11쪽
20 대마 22.06.06 8 0 11쪽
19 병장 김꼴띠 22.06.03 9 0 12쪽
18 천마부대 22.06.02 14 0 10쪽
17 아나지 고개 22.06.01 7 0 12쪽
16 월하의 공동묘지 22.05.31 7 0 11쪽
15 닌자 어쌔씬 22.05.30 8 0 10쪽
14 한남정맥 22.05.27 7 0 15쪽
13 호만전이궤도 22.05.26 7 0 14쪽
» 0.6x 22.05.25 8 0 13쪽
11 18번홀 22.05.24 7 0 11쪽
10 백중사리 22.05.23 8 0 12쪽
9 양양 22.05.22 9 0 12쪽
8 차이나타운 22.05.20 7 0 12쪽
7 신미양요 22.05.19 7 0 12쪽
6 류현진 +1 22.05.18 8 1 11쪽
5 혼령 22.05.17 10 1 12쪽
4 목재단지 22.05.16 1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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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4구역 22.05.12 16 1 11쪽
1 파전에 정액을 쏟았습니까? 22.05.11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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