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꿈을 희롱하는것. 희롱하여 꿈꾸게 하는것.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마린군
작품등록일 :
2024.01.22 20:31
최근연재일 :
2024.04.25 23:23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7,031
추천수 :
177
글자수 :
355,956

작성
24.04.16 23:01
조회
44
추천
1
글자
12쪽

55. 흑(黑)도 아니고 백(白)도 아니고 회(灰)도 아니고

DUMMY

흉흉한 분위기에 미쳐버리고 싶은 것은 파트장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홀 앞의 복도는 완전히 군섭과 경호팀의 공간이었다. 상황을 해결하고 중재를 해야 하는것이 자신의 일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설픈 말 한 마디만으로도 매서운 총알 세례를 받을 것만 같아서 도저히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군섭은 여전히 그 여성 직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육감이라는 녀석이 이 여자가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감 만으로는 부족했다. 무언가 확실한 물증이 필요했다. 확실하게 찾아낼 수만 있다면 제압하여 몸 수색을 하는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연히 파트장은 자신의 직원들을 지키기 위하여 저항을 할 것이고 혹시라도 증거물을 찾지 못하게 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군섭은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무현을 감시하고 도청하여 이득을 얻을 만한 자들, 혹은 그렇게 감시하며 뒤를 추척하여 무현을 제거하려고 할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득을 보는 백(白)의 사람들은 당연히 이번 무기도입과 관련된 푸에르타칼레 정부와 정부군이었고 반대인 흑(黑)의 위치에 서는 이들은 반군과 그들에 협조하는 인사들이었다. 너무나 선명한 흑과 백이었기에 어느쪽이던 일을 벌일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결론은 요원했다.


ㅡ Ambos volváis a vuestro trabajo.(두 사람 모두 각자의 업무로 복귀하세요.)


무거운 침묵속에서 입을 연 것은 파트장이었다. 있는 힘껏 용기를 낸 그는 일단 두 사람을 이곳에서 돌려보내려고 했다. 갈등의 원인이 사라지면 경호원들의 긴장도 한결 빠르게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줄곶 영어로 소통한 경호팀이었기에 그들이 스페인어를 모른다면 그녀에게 이 상황에 대한 나름의 불만도 전달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들려온 군섭의 스페인어에 파트장의 기대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ㅡ No. Sería mejor no hacer eso. Si te mueves, te dispararé de inmediato.(아니. 움직이지 않는게 좋을껍니다. 움직이면 바로 쏴 버릴테니까.)


군섭은 냉철하게 생각을 시작했다. 보통 호텔의 직원들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얻게 된 눈치라는 초능력 덕분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정말로 자신이 담당한 일만 하고 빠르게 현장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상과 또라이 같은 손님, 살벌하고 위험해 보이는 손님 근처에서 쓸데없는 호기심을 앞 세우다가는 다치고 깨져서 결국은 자신이 피를 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파트장도 근처가 아닌 먼 곳에서 지켜보기만 했었고 요리를 옮긴 남성직원도 할 일을 하면 재빨리 홀을 벗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치차를 가져온 여성 직원은 달랐다. 무언가의 이유가 있었으니 하지 말라는 사항을 어기면서 접근을 한 것이고 돌아가라는 경고에도 우물쭈물거리는 모습으로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파트장과 남성 직원은 어째서인지 여성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그녀가 하급자임이 분명했는데 직접적인 업무명령이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상급자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호텔을 소유한 메리어트 가문의 딸은 아닐테고 파트장이 그녀에게 약점을 잡혀서 그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 타이밍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한 것도 의심스러웠다. 지금껏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렇게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다른 언어의 사용은 서로간의 긴장을 강화한다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여성 직원이 실제로 파트장 보다 더 큰 권력, 또는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면 모든 상황이 납득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군섭은 한 가지의 가설을 세웠다. 그러자 육감이 보여준 징후들이 가설의 뒷받침이 되어갔다.


ㅡ 몸 수색을 하겠습니다. 남자 직원이 치차를 받아주시죠. 다시 말하지만 저항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차가운 시선 속에서 명확한 통보가 전달되었다. 파트장은 무어라 항변을 하려 했지만 천천히 움직이는 총구 앞에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체념과 같은 끄덕임에 남성 직원이 트레이를 넘겨 받고는 뒤쪽으로 물러났다.


군섭이 직접 여성 직원의 팔을 잡아 채 뒤로 꺾고 비틀자 악 하는 짧은 신음성과 함께 그녀가 팽그르 돌았고 빠르게 뒷무릎을 가격하여 중심을 흐트러 트리며 그녀를 바닥에 엎어트렸다. 넘어지는 여성 직원의 비명성보다 빠르게 군섭이 두 팔을 낚아채 양 다리로 누르고 한 팔로는 뒷통수를 잡아 완전히 제압하였다. 바닥에 제압 된 다음에도 그녀는 몸을 비틀며 저항을 했지만 이내 잠잠해 질 수밖에 없었다. 불을 뿜는 차가운 철이 조용히 그녀의 머리 위에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ㅡ Qué diablos estás diciendo que hice mal?(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거에요?)


ㅡ 그래, 그래. 계속 그렇게 모르는 척 하라고.


군섭의 손이 움직여 여성 직원의 몸을 훑기 시작했다. 입고있는 치마 유니폼 아래의 다리는 훤히 드러나 있었기에 굳이 손을 댈 필요는 없었다. 대신 묶어올린 머리카락 속을 꾹꾹 누르며 헤집는 것을 시작으로 목덜미나 겨드랑이, 등을 지나 허리를 향해 손이 이동하고 있었다. 강압적인 겉모습과 다르게 군섭의 속도 타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여성 직원이 멘탈을 수습하고 저항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여성의 몸에 직접 손을 써가며 몸 수색을 한 결과가 아무것도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ㅡ No toques más mi cuerpo! Voy a demandarte por agresión sexual!(더 이상 내 몸에 손대지 마요! 당신을 성폭행으로 고소해 버리겠어!)


수치심 때문인지 여성 직원은 용기를 내어 큰 목소리로 저항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저항은 무의미 했다. 군섭은 조금 전 머릿속으로 가설을 세운 이후부터 이 여성 직원을 일반인으로 보지 않았다. 그녀는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으며 위협적인 총구를 앞에 두고도 침착을 유지했다.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오른손은 허벅지에서 멀이 떨어지지 않았고 퀵 드로우를 위하여 엄지와 검지는 적절한 간격과 층을 이룬 채 벌어져 있었다. 거칠게 뒷무릎을 차이며 중심을 잃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낙법을 치며 몸을 비틀어 오른손을 보호했다. 군섭의 눈에 그녀는 경험이 모자랄 뿐 충분히 훈련받은 정보요원이었다.


지근척에 있던 차가운 총구 하나가 그녀의 머리에 거칠게 자리잡으며 허튼짓 말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그녀는 군섭을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군섭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그녀의 머리를 휘어잡아 힘으로 눌러버렸다.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서 군섭은 그녀의 귀에 있는 귀걸이가 아닌 작은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차갑게 굳어있던 얼굴에서 악당같은 비릿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ㅡ 삐빅! 스노우맨, 스노우맨. 여기는 산타.


ㅡ 말하라, 산타.


ㅡ 지금부터 제 2 화력조는 CRP(전투수색정찰 / Combat Reconnaissance Patrol)임무를 개시한다. 수색대상은 반경 1클릭 이내에 정차하고 있는 화물용 승합차량, 마스터 밴, 하드탑 윙바디, 푸드트럭이다. 해당 차량은 위장한 도, 감청 지원차량으로 현재 당 호텔내에 다양한 방식으로 잠입하여 프론티어와 히일러(Heeler)들에 대한 고도의 감청 및 정찰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대(對)전자전을 상정한 전파방해와 재밍이 임무의 주 목적이며 필요한 경우 목표차량을 직접 타격해도 좋다.


조금은 억지같은, 하지만 그 내용을 들어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사안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요원들도 군섭의 무전에 있는 힘껏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들이 보아온 군섭은 가벼운 마음으로 임무를 대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농담으로라도 함부로 전투임무를 할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투어 미션 자체의 교전수칙대로 최대한 교전을 회피하는 것이 그의 기조였기에 임무를 받은 스노우맨(누낸 요원 / Noonan)의 답신이 한 템포 느리게 도착한 것이 한켠으로는 이해가 갔다.


ㅡ 라져. 교전수칙은 어떻게 되는가?


ㅡ 직접적인 대인 교전은 적극 회피한다. 유력한 용의차량 발견시 타이어를 망가트려서 이동이 불가능하게 하라. 대물교전에 한하여 공격자유(Weapons Free)이다.


ㅡ 스노우맨, COPY. 임무개시 1분 전.


스노우맨의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하는 군섭의 무전에 요원들은 마지막 남아있던 방심을 날려버렸다. 이번 투어의 교전수칙은 선제공격을 받았을 경우에 한하여 자위적 공격이었다. 그리고 직접적인 타격이라는 단어를 군섭이 언급한 순간 경호팀은 공격권 행사를 결정한 것이었다.


시내의 한 복판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은 심각한 사항이었다. 치안이나 공권력의 문제는 뒤로 미루어 두고서라도 당사자, 특히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급격하게 나빠질 것이었다. 카르텔이나 갱단처럼 끝없이 막장을 달리는 이들이라면 몰라도 심할 경우 전국적인 공분을 끌어안을 수도 있었다. 군섭이 그런 상관관계를 모를리 없었다. 그렇지만 군섭은 일이 그렇게까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무현의 전략적 가치에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현을 바라보는 푸에르타칼레 정부가 매긴 가치였다. 과연 그가 정부군에 끝까지 우호적인지, 대통령과의 첫 접견서 부터 우그러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의지가 있는지 그들은 확인하고 싶을 것이 분명했다.


먼 발치에서 무현의 동선을 감시하고 그의 행보를 추적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행동이 친 정부군인지, 친 반군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안전 명목으로 그를 지키고 있는 경호팀의 존재와 활동영역이 그런 정보의 누출을 가능한 막고 있었으니 더욱 속이 탔다. 그 와중에 무기계약이라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이유로 군부의 많은 이들이 무현으로 위시되는 한국을 찾기 시작하였다. 무현의 가치가 오르면 오를수록 정부는 무현의 속내를 알고 싶었고 기어이 국가정보국(SENAIN)을 동원하여 감청을 시도하려 한 것이었다.


군섭도 처음에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높은 확률의 추측 뿐이었다. 명확한 물증이 없으면 단순한 민폐가 되고 꼬장이 되는 일이었기에 결정을 내리기까지 무척이나 힘든 내면의 싸움을 이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군섭은 푸에르타칼레가 측정하고 있는 무현의 가치에 걸어보기로 하였고 의심스러운 여성 직원을 타겟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녀의 귓속에서 완벽하게 숨은채 고이 자리잡고 있는 CIC(Complete In Canal) 인이어 리시버를 찾아낼 수 있었다.


물증을 찾아낸 군섭은 자신의 가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절대로 최악을 선택할 수 없는 푸에르타칼레의 정보기관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빚을 지워놓고 지난번의 소심한 복수를 되갚아 주기 위하여 상당히 재수없고 짜증나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군섭이 천천히 상체를 숙여 제압하고 있는 여성 직원, 아니, 여성 요원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하였다.


ㅡ 다 듣고 있는거 알고 있어. 그러니 이대로 시내를 난장판으 만들지 말지 빨리 결정하라고. La señoritas de SENAIN.(세나인의 아가씨들)




작가의말

살짝 멘탈이 나가있는 상태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수습하고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휴재공지 24.05.02 20 0 -
공지 [연재] 연재일정 안내(변동사항 안내) 24.01.22 113 0 -
공지 [연재] 나름작가 마린군 인사드립니다. 24.01.22 38 0 -
공지 [안내] 창작물의 허구에 대한 안내 24.01.22 104 0 -
61 61. 잘못된 판단, 올바른 결정, 나와서는 안될 결과 24.04.25 27 1 12쪽
60 60. 잘못된 판단, 올바른 결정, 나와서는 안될 결과 24.04.24 30 1 12쪽
59 59. 잘못된 판단, 올바른 결정, 나와서는 안될 결과 24.04.24 41 1 13쪽
58 58. 잘못된 판단, 올바른 결정, 나와서는 안될 결과 24.04.22 40 2 12쪽
57 57. 잘못된 판단, 올바른 결정, 나와서는 안될 결과 24.04.18 50 1 12쪽
56 56. 흑(黑)도 아니고 백(白)도 아니고 회(灰)도 아니고 24.04.17 48 0 14쪽
» 55. 흑(黑)도 아니고 백(白)도 아니고 회(灰)도 아니고 24.04.16 45 1 12쪽
54 54. 흑(黑)도 아니고 백(白)도 아니고 회(灰)도 아니고 24.04.16 53 2 14쪽
53 53. 흑(黑)도 아니고 백(白)도 아니고 회(灰)도 아니고 +2 24.04.08 58 4 12쪽
52 52. 흑(黑)도 아니고 백(白)도 아니고 회(灰)도 아니고 24.04.08 44 2 14쪽
51 51. 흑(黑)도 아니고 백(白)도 아니고 회(灰)도 아니고 24.04.04 63 2 12쪽
50 50. 흑(黑)도 아니고 백(白)도 아니고 회(灰)도 아니고 24.04.03 60 3 13쪽
49 49. 흑(黑)도 아니고 백(白)도 아니고 회(灰)도 아니고 24.04.03 65 2 12쪽
48 48. 키에로 골페아르(Quiero Golpear) 24.04.01 71 2 12쪽
47 47. 키에로 골페아르(Quiero Golpear) 24.03.28 75 4 12쪽
46 46. 키에로 골페아르(Quiero Golpear) 24.03.27 68 3 13쪽
45 45. 키에로 골페아르(Quiero Golpear) 24.03.26 71 4 13쪽
44 44. 키에로 골페아르(Quiero Golpear) 24.03.25 76 3 13쪽
43 43. 키에로 골페아르(Quiero Golpear) 24.03.22 80 4 13쪽
42 42. 키에로 골페아르(Quiero Golpear) 24.03.20 72 3 13쪽
41 41. 키에로 골페아르(Quiero Golpear) 24.03.19 77 4 14쪽
40 40. 키에로 골페아르(Quiero Golpear) 24.03.18 90 3 12쪽
39 39. 장기출장, 혹은 짧은 이민 24.03.14 84 4 12쪽
38 38. 장기출장, 혹은 짧은 이민 24.03.13 82 3 13쪽
37 37. 장기출장, 혹은 짧은 이민 24.03.12 86 2 12쪽
36 36. 장기출장, 혹은 짧은 이민 24.03.12 90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