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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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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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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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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4. 고통을 먹는 자 (33)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33.

위즈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많은 수의 유저들이 용병마법사들의 공격을 받아 궤멸될 위기에 몰려 있었다. 용병마법사들은 전부 높은 건물로 올라가 주문을 쏟아 붓는 중이고, 살아남은 안티 바하르칼 군은 건물 뒤에 숨어 간신히 숨만 돌리고 있다.

위즈 일행은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같은 꼴만 날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분명 건물 위쪽을 먼저 선점하고 있는 건 레미라 쪽이 아니었습니까?”

“저도 그렇게 듣긴 했습니다만……저렇게 어이없게 뺏길 줄이야.”

문제는 더 있었다. 건물 위에서 퍼붓는 공격이 이쪽으로도 날아오기 시작했다.

높은 건물은 그 자체로 감시탑이나 마찬가지의 역할을 했다. 거기 올라간 게 마법사였으니, 수시로 ‘탐색’을 사용해 주변의 적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위즈와 함께 온 사람들은 일단 뒤로 빠졌다. 거리가 멀었기 때문인지 더 이상 주문은 날아들지 않았다.

애초에 저들은 전투보다는 발목잡기를 위해 남겨진 듯해보였다.

“고작 10명을 상대 못해서 이지경이라니!”

“큰일이군요. 잇페인은 저들만 남겨놓고 더 깊숙이 들어간 것 같은데…….”

“일단 우회합시다.”

누군가 내놓은 의견대로 용병마법사들이 점거한 건물을 피해 움직인 위즈 일행은 곤란한 상황에 부딪쳤다. 그곳에는 골렘들과 소환된 스켈레톤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사람들을 보고도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가려고 하자 눈두덩에서 붉은 빛을 뿜으며 공격을 퍼부었다.

건물을 점거한 용병마법사와 같은 반응이다.

“장난감이랑 놀 시간 없다!”

전사들이 달려들어 공격을 퍼부었다. 골렘이라면 몰라도 언데드는 단일 개체로 강한 존재일 수 없다. 데스나이트 급이 나오면 모를까, 스켈레톤들은 몇 마리가 모여 있다고 해서 두려워할 존재는 아니다. 전사들은 일단 정해진 공략대로 성직자의 도움을 받아 스켈레톤부터 정리했다. 홀리 인챈트가 걸린 무기에 얻어맞은 스켈레톤은, 뼈가 가루가 되다시피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뒤이어 혼자 남은 골렘도 몸통에 박힌 마력의 결정을 파괴당해 바위조각이 되어버렸다.

“이제 지나갑시다!”

그때 쓰러뜨렸다고 생각한 골렘과 스켈레톤이 달그락거리며 다시 들러붙기 시작했다.

잘게 부스러진 뼛조각이 모여 다시 온전한 모습의 스켈레톤이 되었으며, 바위조각은 마력의 결정이 없는데도 스스로 움직여 골렘이 되었다.

일단 쓰러뜨리는 건 가능하지만, 다시 몸을 일으키는 소환물들.

이런 걸 여기에 배치한 의도는 뻔했다.

“소용없어요! 이 녀석들에게 재생 주문이 걸려 있어요! 애초부터 싸움이 목적이 아니라, 길막이로 세워둔 겁니다!”

“그것도 무한정 가능하진 않을 거 아닙니까?”

전사들이 달려들어 다시 초전박살을 내놨다. 부수고 재생하고, 또 부수고 재생하고. 그렇게 세 번을 반복하자 전사들은 질린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전투용이 아니라 해도, 이 녀석들은 체력게이지 대신 내구도만 달린 녀석들이다. 그 단단함은 공격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바위덩어리나 마찬가지인 골렘을 공격했기 때문에, 무기의 내구도 역시 상당히 깎여나갔다.

“다른 곳으로 갑시다! 설마하니 거기에도 이런 놈들이 있겠습니까?”

있었다.

요새가 자리한 중앙부로 통하는 길은, 작은 골목이라 해도 골렘이나 스켈레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자 길을 통한 이동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땅굴이라도 파지 않은 한 지나갈 수 없었다. 아니, 하나 더 있었다. 길을 무시하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유저하나가 지붕에 올랐다.

“일단 시도나 해봅시다.”

건물로 올라가 지붕과 지붕을 타고 이동하는 방법을 제안한 유저는, 얼마 뒤 용병마법사들에게 포착되었다.

매직 캐논이 날아들었고, 건물에 올라간 유저는 추락했다.

“크윽! 저놈들……반응속도가 빨라…….”

유저의 몸이 흐려지며 회색 연기가 폭 하고 피어올랐다. 그의 희생 덕분에, 지붕으로 가는 거야 말로 가장 위험한 길이라는 게 증명되었다. 이제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지원병이라고 들어왔는데 지나갈 수 없는 건 변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들어온 우리들마저 발이 묶였는데 이걸 어쩌죠?”

“지금 총수가 왜 안 오냐고 난리입니다.”

“헐……얼마나 피해를 입었는데요?”

“첫 격돌로 500명이 줄었다고 합니다.”

“적은요?”

“사망자 전무.”

예상했던 결과지만 바하르칼 병력의 사기적인 스펙을 다시 확인하니 분위기만 침울해졌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유저들이 머리를 맞댈 때, 위즈는 한구석에서 핏스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핏스톤의 특성상 땅과 동화된 상태로 활동할 수 있기에, 누가 보면 바닥을 기는 개미와 대화를 하는 걸로 보였다. 하지만 위즈는 그런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건 처리했어?”

『마력을 흡수해서 그냥 흙더미나 마찬가지다.』

지금 막 핏스톤은 잇페인이 남겨두고 간 골렘을 처리한 뒤였다.

성벽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잇페인이 쌓아둔 경사로를 통할 수밖에 없었다. 이쪽 성벽에는 문 같은 게 없었으므로, 넘어가고자 한다면 사다리를 대거나 밧줄을 걸어 타고 올라야 했다. 하지만 잇페인이 지나갔던 경사로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그곳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건 잇페인이 준비한 함정.

사람의 심리상 적의 수장인 잇페인이 지나간 길이니 안심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경사로를 지나는 순간, 길을 이루는 흙과 바위는 골렘이 되어 깨어나게 되어 있었다.

잇페인은 자신들의 뒤를 쫓아 움직일 안티 바하르칼 병력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레미라 성벽을 다 넘을 때까지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때는 이미 핏스톤이 마력을 쪽쪽 빨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마력결정이 핏스톤의 입속에 들어간 순간, 골렘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바위와 토사가 뭉친 경사로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게 지금 막 끝난 것이다.

“혹시 마력 결정을 부쉈어?”

『남겨두었다. 굳이 물리적으로 부술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네가 직접 마력을 불어 넣어서 골렘을 조종할 수 있겠어?”

『먹은 걸 다시 토해내란 얘기냐?』

“그건 미안한데, 지금 우리들 상황이 좋질 않아서 말이야.”

위즈는 용병마법사들이 중요 방어 거점을 차지한데다가, 골목길마다 길을 막는 소환수가 있어 나아가질 못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가능하긴 하다만……활동시간이 길진 않을 것이다.』

“얼마나?”

『5분정도가 한계다.』

핏스톤은 경사로를 이루는 흙과 돌들이, 마법적인 처리를 하지 않은 평범한 것들이라 불순물이 많다고 했다. 많은 불순물은 마력의 누수를 가져온다. 그만큼 마력을 많이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상관없어. 싸우는 게 목적이 아냐. 우리들이 돌파할 수 있게 길만 열어주면 돼.”

『알겠다. 골렘을 움직이려면 역시 5분 정도가 소요된다. 기다려다오.』

핏스톤이 사라지고, 위즈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안티 바하르칼 유저들은 지금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좋은 방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위즈는 그 속에 끼어들었다.

“실은 제 친구가 재미있는 생각을 해냈는데요…….”


◇◇◇◇◇◈◇◇◇◇◇◇◈◇◇◇◇◇◇◈◇◇◇◇◇


레미라에 주둔시킨 병력 2천 명 중에, 최전선에 내보낸 건 800명이었다. 게릴라전 비슷하게 운용할 생각으로 이만큼의 숫자를 뽑아낸 것이었다. 나머지는 레미라의 중심부에 새워진 요새를 지키기 위해 남아 있었다. 성벽보다 높은 건축물인 요새는, 수천의 병력을 대신할 만큼 견고했기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본래 수성이 공성보다 수월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게 뽑힌 800명은, 지금 줄고 줄어서 100명밖에 남지 않았다. 첫 격돌에서 500명의 손실이 발생했다. 레미라의 마법사가 차지하고 있던 건물 옥상에서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그 표적이 이 800명이었다.

아군이라 믿고 있던 자들에게서 공격받았기에, 미처 대처할 틈이 없었다. 처음엔 배신자가 있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다들 확실하게 알고 있다.

레미라의 마법사들은 제거되었고, 적군인 용병마법사들이 그 자리를 꿰차버렸다는 것을.

“어떻게 그 짧은 시간동안 그럴 수 있지?”

바하르칼 용병들은 막 들어온 참이었고, 플라즈마 공격을 받아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두 번째 공격만 퍼부으면 되었다.

혹시라도 도주할까봐 미리 함정을 깔아두었고, 은신을 배운 전사까지 대기했다.

누가 봐도 차려진 밥상이었다.

그런데 후방에서의 기습으로 인해, 건물에 배치된 레미라 마법사들이 죽어버렸다.

각종 주문과 마법진으로 보호받는 건물은, 마법사들에게는 안전한 곳일 터였다.

그런데 당해버렸다.

적이 중앙의 요새 방향에서 출현했기에, 유저들은 누군가 미리 들여보내줬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해가 안가는 게 있었다.

마법사가 아니니 자세한 건 몰라도, 더 오션에서 가장 탐지능력이 발군인 직업이 마법사란 건 누구나 안다. 레미라의 마법사들이 용병마법사가 접근할 때까지 몰랐을 리 없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걸까?

용병마법사들이 대단한 존재라고는 하나, 이렇게나 이치에 어긋날 정도의 먼치킨이라 여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용병마법사들이 두렵다.

쾅쾅!

연달아 주문에 맞은 건물의 흔들림이 더욱 심해졌다.

“이 건물도 오래 못 버티겠군.”

생존자들은 서둘러 옆 건물로 뛰었다. 그 과정에서 몇 명이 공격받아 회색 연기로 화했다.

“85명. 이쪽의 머릿수가 줄어드니까, 주문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지는 군.”

“이 건물이 무너지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이봐 지원은 아직이야?”

“우는 소리 하지 마. 요새 쪽은 상황이 더 안 좋을 거다.”

“제길……레미라가 좁아터진 섬만 아니었으면, 머릿수로 눌러버렸을 텐데!”

“어이어이. 머릿수로 누르다니……스스로 허접이라고 인정하지 마. 나까지 슬퍼지잖아!”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 건물이 크게 들썩거렸다.

“대들보가 날아갔군.”

이젠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하중을 견뎌내는 부분이 박살났으니, 이제 등을 기댄 이 건물도 곧 무너지리라. 유저들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싸우다 죽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도망만 치다가 끝나다니…….”

땅이 크게 울리며 건물이 부르르 떨었다. 방금 전의 진동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유저들은 이 흔들림이 건물과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뭐지?”

쿠우웅!

앉아 있는 자세로 엉덩이가 들썩일 만큼의 진동이 이어졌다. 유저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콰아앙! 후드드드!

저 멀리 건물 하나가 통째로 무너졌다. 기왓장이 하늘을 날고 흙먼지가 높이 솟았다.

뭔가가 건물을 통째로 부수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정확히 용병마법사들이 차지한 건물들을 향하고 있었다.

용병마법사들의 공격이 멎었다. 85인의 안티 바하르칼 유저들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잠시 후, 건물을 부수며 흙더미가 튀어나왔다.

흡사 격류에 떠밀린 것처럼 흙더미들은 끊임없이 밀려 나와 주변의 건물들을 에워쌌다.

용병마법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흙더미에 공격을 가했다.

프로즌 스피어가 날아가 흙더미를 얼렸고, 시퍼런 뇌전들이 쏟아져 얼어붙은 흙을 깨부쉈다.

살아남은 안티 바하르칼 유저들은 그런 용병마법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흙더미를 쏟아낸 자를 공격해야지, 흙더미 자체를 공격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그런 의문은 곧 해소되었다. 흙더미가 꿈틀거리더니 그 속에서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튀어나온 것이다. 뒤이어 손과 연결된 우람한 팔뚝과 어깨가 드러났다. 양 어깨 위로는 바위가 모여 완성된 울퉁불퉁한 머리통이 달려 있었다.

“골렘이다! 그것도 대형 골렘이야!”

지금 용병마법사들이 차지한 건물들은 5층 건물이었다. 그 건물을 내려다보는 골렘은 적어도 7층 건물 정도의 높이는 되어보였다. 작은 산만한 골렘이면 사실상 자이언트와 동급이라 봐도 좋았다. 유저들은 이만한 크기의 골렘을 만들어낼 만큼 뛰어난 마법사가 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없다. 레드 오션에서조차 그랬다.

골렘은 크게 만들수록 효율이 떨어지기에, 중형까지가 한계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상은 만들어봐야 일으키는 게 힘들었다.

그런 상식이 지금 눈앞에서 무시되고 있다.

비록 상반신뿐이지만, 온전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대형 골렘이 여기 있다.

“누군지 몰라도 대단하네.”

유저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갔다.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골렘은 흙더미 속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골렘의 키는 10층 건물만큼 늘어났다.

짧고 튼튼한 다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용병마법사들의 공격은 다리에 집중되었다. 골렘 제작에 가장 신경 쓰는 게 무게중심이다. 돌로 만들기 때문에, 그 하중을 견뎌낼 구조로 제작하는 것이다. 다리를 저리 짧게 만드는 건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용병마법사들은 일단 골렘의 발을 묶을 속셈이었다. 하지만 골렘은 생각보다 민첩하게 움직여 건물로 달려들었다. 양팔을 넓게 펼친 채 달려드는 골렘의 모습을 정면으로 본 자라면 누구나 비명을 지를 것이다.

더군다나 그 골렘이 썰렁한 조크까지 날린다면 더더욱.

『프리 허~그!』

용병마법사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골렘이 달려드는 일직선상의 건물에 있었다.

자리를 사수하면 납작한 육포가 될 것이고, 도망치면 빈틈이 생겨 안티 바하르칼 세력들이 드나들 틈을 제공하는 게 된다. 그러면 무슨 꼴을 당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상관인 잇페인은 항상 제물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리는 자이다.

“죽어! 죽어! 죽어!”

그의 손에서 매직 캐논이 튀어나왔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주문이, 골렘의 머리를 노렸다. 보통 마력의 결정은 머리나 몸통에 넣어두는 법이다. 용병마법사가 날린 매직캐논은 골렘의 머리를 절반가량 날려버렸다. 하지만 골렘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의 온전한 부분에서 돌가루가 떨어지며 입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움직였다. 입꼬리가 살짝 솟은 모양새가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하이파이브!』

골렘의 손이 건물의 옥상을 찍어 눌렀다.

“끄아아…….”

꾸웅!

건물이 통째로 와사삭 무너지면서 용병마법사의 비명소리가 묻혔다. 유저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프리허그니 하이파이브니 하는 엽기적인 행동을 하는 골렘은 그 압도적인 크기와 덩치로 건물 하나를 끝장내버렸다. 아마 저 건물의 용병마법사는 죽었을 것이다.

“일제 사격!”

동료하나가 순식간에 그렇게 사라지자, 용병마법사들의 공격이 골렘의 양옆을 때렸다.

공교롭게도 골렘이 부숴버린 건물은, 양 옆으로 늘어선 건물들의 한가운데였다. 주문이 화망을 형성하며 골렘의 몸을 깎아먹었다. 삽시간에 골렘의 양팔이 너덜거리며 떨어져나갔다.

“으음……덩치만 컸지 물렁살이구만.”

숨어 있던 안티 바하르칼 유저들은 입맛을 다셨다. 괴물 같은 크기라서 살짝 기대를 했었는데, 지금 보니 평범한 재료로 만들어져 내구도가 형편없었다.

“용병마법사들이 골렘을 상대하느라 정신없을 때 우린 빠져나가죠?”

“그게 좋겠군요.”

그런 그들을 막는 사람이 있었다.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다가온 유저였다. 그 유저는 자신의 그림자 속에서 쑥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지금 움직이면 안 돼요!”

이들을 제지한 유저는 위즈였다.

“당신은 누굽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개조차 못 내밀고 숨어 다니던 사람들이다. 갑자기 나타나 도망가지 말라고 말리는 위즈를 쉽게 믿어줄 리 없다. 위즈는 그들과 조금 거리를 두었다. 낯선 이를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섣불리 건드려 다치는 건 위즈도 원치 않았다.

“성벽을 넘어 진입한 사람입니다. 저 골렘은 제 친구가 조종하는 겁니다. 지금 가면 안 됩니다.”

“저걸 당신 친구가?”

경이로울 정도로 거대한 골렘을 올려다본 유저들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정말 아군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 적이라면 저 거대한 골렘으로 자신들을 그냥 깔아뭉개버리는 게 더 간단했다. 굳이 복잡하게 일을 꾸밀 이유가 없다.

“저 골렘이 곧 부서지게 생겼는데 이러고 있으란 말입니까? 골렘 다음엔 우리들 차례입니다.”

“그럴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용병마법사들은 산탄 공격을 받게 될 테니까요.”

“산탄?”

“지켜보시면 압니다.”

이제 거대한 골렘은 팔과 다리가 바스러져 몸통과 머리밖에 남지 않았다. 거대한 오뚝이처럼 변해버린 골렘이 느닷없이 껄껄 웃었다.

『제법이구나!』

골렘의 몸에서 뿌직뿌직 소리가 나면서 금이 갔다. 용병마법사들은 드디어 해치웠다며 좋아했지만, 골렘의 몸은 금방 무너져 내리진 않았다.

『나의 사랑을 받아라!』

이 말이 끝나자마자 골렘의 몸에서 환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귀가 먹먹해지는 꽝 소리와 함께 터져나갔다. 자갈크기로 나눠진 돌조각들이 방사형으로 넓게 퍼지며 날아갔다. 가까이에서 자갈세례를 받은 용병마법사들의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재빨리 배리어를 쳤지만, 방어할 수 있는 한도를 넘은 데미지가 가해지자 남은 건 몸뚱이 뿐이었다. 갑옷도 입지 않았으며, 육체를 단련하지 않는 마법사들은 너덜너덜한 고깃 조각이 되어 널브러졌다. 그들이 서 있던 건물 역시 벌집이 되어 넘어졌다.

“이, 이건!”

폭발이 끝나고 현장을 찾은 안티 바하르칼 유저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폭탄이 터진 것처럼 주변의 건물들이 죄다 무너져 있었다. 그나마 무너지지 않고 버틴 집들도 상태는 좋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구멍이 뚫려 내부가 훤히 드러나 있었고, 한쪽 벽면이 통째로 날아간 곳도 있었다.

위즈는 그런 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다들 멍청히 서있지 말고 아이템을 찾아요!”

“아이템?”

“용병마법사의 아이템 말입니다. 우리 쪽의 마법사에게 몰아주는 겁니다. 용병마법사와 비교해보면 안티 바하르칼의 마법사는 여전히 약합니다.”

“아!”

“뭐 그럽시다!”

기껏 찾아내서 남을 줘야 한다는 건 아까웠지만, 유저들은 순순히 위즈의 말에 따랐다.

레미라가 바하르칼에게 넘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레드 오션’을 하면서 뼈에 사무치도록 경험했다. 어차피 게임 초반이니 그리 값어치 있는 게 나올 리도 없다.

위즈는 건물의 잔해를 치우며 중얼거렸다.

“핏스톤……그것들 일단 모아서 이쪽으로…….”

이미 잔해 속에 파묻힌 아이템들은 핏스톤이 회수한 상태다. 핏스톤은 그것들을 찾기 쉽게 유저들 근처로 밀어주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마법진을 구성하던 핵들은 위즈의 인벤토리 속으로 들어갔다. 일단 이것들은 마력을 품고 있는 보석-엘리멘탈 스톤. 비록 소형이지만 이건 매우 희귀한 아이템이다. 나중에라도 쓸데가 있을 것 같아 챙겨둔 것이다.

‘뭣하면 핏스톤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사용해도 되겠지.’

나머지 아아템, 매직스틱과 반지 등등의 아이템들은, 안티 바하르칼의 마법사들에게 고루 분배되었다.

“더 찾아도 없는 것 같으니 이제 갑시다!”

위즈는 손을 털고 일어섰다.

기존의 120명에 구해낸 85명을 합해 205명.

이들만으로 잇페인 저지하는 건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숫자는 적었지만 잇페인의 꼬리를 물었다는 건 큰 이점이었다.


◇◇◇◇◇◈◇◇◇◇◇◇◈◇◇◇◇◇◇◈◇◇◇◇◇


“이것 참 재미있게 되었군.”

요새를 둘러싼 해자를 코앞에 둔 잇페인이 미소를 가득 물었다.

주변의 용병마법사들이 몸을 떨었다. 잇페인의 미소는 파충류가 웃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저런 미소를 지을 때는 꼭 무슨 일이 벌어진다. 그게 자신들에게 좋은 일일 리 없다.

“일단 병력을 뒤로 뺀다.”

“하지만…이제 본격적으로 요새를 공략할 수 있는데…….”

“감히 항명이냐?”

잇페인의 흰자가 검게 물들었다. 말대답을 한 용병마법사의 눈이 휙 돌아가더니 픽 쓰러졌다. 죽진 않았지만, 정신적인 타격을 받고 기절해버린 것이다.

“뒤로 뺀다.”

“시, 실시!”

용병마법사들은 군말하지 않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한발 앞서 그들을 이끄는 잇페인의 눈이 이글거렸다.

‘내 오랜 친구! 이렇게 다시 제 발로 굴러들어오다니……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겠다.’


◇◇◇◇◇◈◇◇◇◇◇◇◈◇◇◇◇◇◇◈◇◇◇◇◇


숫자가 늘어난 안티 바하르칼 병력과 움직이며 위즈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핏스톤이 곧 잇페인이 올 거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 내가 골렘을 움직일 때, 일부러 ‘프리 허그’니 ‘하이파이브’니 하는 말을 한 건 잇페인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300년 전 항마전쟁 당시, 난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인간들의 표현대로라면 맛이 가 있었지. 그렇지만 몇 가지는 기억난다. 난 거대한 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고, 근처의 인간들을 동족으로 착각했다. 거대한 몸으로 껴안고 손바닥으로 부딪치니……인간들은 그대로 몰살이었다. 그때 잇페인 녀석의 웃음소리를 난 잊을 수 없다.』

“끄응…….”

말하자면 핏스톤은 잇페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돌발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위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인벤토리에서 육포를 꺼내 씹으면서 천천히 뒤로 쳐졌다. 그렇게 거리를 벌리자마자 위즈는 핏스톤을 닦달했다.

“어쩌자고 일을 벌인 거야? 녀석은 중급 마법사야. 여기 있는 안티 바하르칼을 전부 몰살시킬 작정이야? 그렇게 되면 레미라도 끝장이야.”

『흥분하지 마라. 잇페인을 상대로 이길 방법이 있다.』

“뭔데?”

『엘리멘탈 스톤을 이용하는 것이다.』

“설마 폭주 시키라는 거야?”

『그건 하책이다.』

“그럼 어떡하라는 건데?”

『녀석은 내 심상세계에 침입할 것이다. 거기라면 힘의 차이는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넌 한번 승리한 적도 있지 않은가.』

“그거야 엉겁결에 그런 것이고. 심상세계가 정확히 뭔지도 잘 모른다고.”

『무엇을 두려워하나? 너도 나도 마음속의 성전이 있다.』


작가의말

연참 하루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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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 +3 14.04.17 1,765 33 21쪽
9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 +2 14.04.16 1,426 28 23쪽
92 4-(ED) +1 14.04.12 1,449 28 22쪽
91 4. 고통을 먹는 자 (38) +5 14.04.10 1,396 26 25쪽
90 4. 고통을 먹는 자 (37) +3 14.04.07 2,294 54 31쪽
89 4. 고통을 먹는 자 (36) +3 14.04.04 1,244 35 22쪽
88 4. 고통을 먹는 자 (35) +2 14.04.02 1,326 30 26쪽
87 4. 고통을 먹는 자 (34) +1 14.03.31 1,166 26 22쪽
» 4. 고통을 먹는 자 (33) +1 14.03.29 1,033 31 22쪽
85 4. 고통을 먹는 자 (32) +1 14.03.28 870 21 20쪽
84 4. 고통을 먹는 자 (31) +2 14.03.27 1,124 31 20쪽
83 4. 고통을 먹는 자 (30) +2 14.03.26 1,398 25 21쪽
82 4. 고통을 먹는 자 (29) +1 14.03.25 1,414 29 22쪽
81 4. 고통을 먹는 자 (28) +1 14.03.24 1,979 45 25쪽
80 4. 고통을 먹는 자 (27) +2 14.03.22 2,980 118 36쪽
79 4. 고통을 먹는 자 (26) +1 14.03.21 1,203 25 24쪽
78 4. 고통을 먹는 자 (25) +2 14.03.20 1,708 34 24쪽
77 4. 고통을 먹는 자 (24) +3 14.03.19 2,093 35 25쪽
76 4. 고통을 먹는 자 (23) +2 14.03.18 1,702 27 27쪽
75 4. 고통을 먹는 자 (22) +3 14.03.17 2,397 60 21쪽
74 4. 고통을 먹는 자 +21화 +2 14.03.17 1,603 29 13쪽
73 4. 고통을 먹는 자 (21) +2 14.03.15 1,260 30 16쪽
72 4. 고통을 먹는 자 +20화 +2 14.03.15 1,233 40 12쪽
71 4. 고통을 먹는 자 (20) +3 14.03.14 2,338 30 27쪽
70 4. 고통을 먹는 자 (19) +3 14.03.13 2,779 112 24쪽
69 4. 고통을 먹는 자 (18) +2 14.03.12 1,991 42 22쪽
68 4. 고통을 먹는 자 (17) 14.03.11 1,514 41 25쪽
67 4. 고통을 먹는 자 (16) +2 14.03.10 1,513 29 22쪽
66 4. 고통을 먹는 자 (15) +4 14.03.08 1,909 29 24쪽
65 4. 고통을 먹는 자 (14) +3 14.03.07 2,483 117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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