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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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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467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4.03.25 23:48
조회
1,413
추천
29
글자
22쪽

4. 고통을 먹는 자 (29)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29.

마법사들은 탐지를 통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협을 감지한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법. 하지만 중급을 넘어 고급에 가까워진 마법사는 미래의 일을 예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바하르칼의 침공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그 내용이 정확하지 못하며 단지 결과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레미라가 어떤 자들에게 유린당하는 지는 보이지 않고, 그저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만이 비춰지는 것이다. 이 같은 예언은 그간 꾸준히 언급되어왔다. 그래서 이들은 미지의 적에 대비하여 준비해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미완성이었다.

“따라서 저들이 상륙할 시기를 늦춰야 하네.”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 겁니까?”

“5시간 정도네. 하지만 그 전에 저들이 공격을 시작하겠지. 일단 우리가 준비한 것은 마법공학의 부산물이니까, 당연히 엄청난 마력이 필요하지 않겠나. 마법사라면 눈치 채고 말거네.”

“그래서 암살을 시도해야 하는 거로군요.”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위즈에게도 잘된 일이다. 섬에 상륙한 자들과 맞붙어 싸우는 정규전은, 어중간한 전투능력을 가진 무능력자에겐 벅차다. 컨트롤보다도 일반적인 공격력과 무기와 방어구의 성능만 믿고 싸워야 하는데, 위즈는 직업제한에 걸려서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손에 넣지 못했다. 직업제한이 걸려있지 않은 무기는 단검계열이나 몽둥이 정도인데, 단검은 짧아서 상대에게 닿기가 힘들다. 몽둥이의 경우는 공격력이 높을수록 무거워서 다루기 힘들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가벼운 나무 몽둥이를 들어야 했는데, 단단한 갑옷이나 방패를 뚫고 타격을 입히는 건 불가능했다. 유효타를 내지 못할 바에야 무기를 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 이것이 정규전을 꺼리는 이유다.

‘에켈 산에서 상대했던 노상강도들은 근접 공격에 취약했기에 그나마 파고들 틈이라도 있었다. 그 숫자가 수천이나 되었지만, 원래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자들이라, 내 서투른 칼질이 먹혔지. 하지만 지금 쳐들어오는 바하르칼 용병들은 근접전에 특화되어 있다.’

한 둘이라면 몰라도, 그런 자들이 바글거리는 전장에서 위즈가 살아남을 확률은 현저히 낮다. 궁술로 상대하려 해도, 설익은 위즈의 실력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이다.

‘소규모 전투라면 그나마 낫지. 화력의 강함보다도 집중이 관건이니까’

암살 자체가 기습의 묘를 살려야 하는 것이니, 위즈의 싸움방식과는 잘 어울렸다.

‘그리고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난 암살을 할 생각이었으니까.’


◇◇◇◇◇◈◇◇◇◇◇◇◈◇◇◇◇◇◇◈◇◇◇◇◇


레미라 방어선은 3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1차방어선은 가장 외곽에 해당하는 곳으로 안티 바하르칼 소속의 배들이었다. 먼저 해전을 걸어 발목을 묶는 게 1차 목적. 선상전투에 특화된 해적들의 경우 3분이면 배 하나를 완전히 털어버릴 수도 있었기에, 단순한 발목 묶기 정도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2차 방어선은 레미라 주변에 흩어진 작은 바위섬들이다. 그냥 바위에 삐죽 솟아난 바위섬들은, 그 경사가 높아서 오르기가 힘들었다. 이 바위섬들은 자연적인 첨탑과 같은 역할을 담장했다. 이러한 바위섬들에는 투석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1차 방어선에서 발목이 묶인 배들을 노리기 위해서이다.

이곳에 배치된 투석기들은 그랄누타이가 운용하던 거대 투석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크기가 작은 만큼 여러 대를 운용할 수 있었고, 연사력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기름항아리까지 날리는 게 가능했기에, 적들이 상륙하기 전 상당한 피해를 입히는 게 가능했다.

3차방어선은 레미라섬에 쳐 있는 성벽을 이용한 것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인 전면전이 벌어지게 된다.

4차방어선은 없었다. 본격적인 시가전이 있을 뿐이다.

위즈를 포함한 결사대는, 바하르칼이 3차 방어선을 돌파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지휘관을 잡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팀워크가 중요했다.

“일단 쾌속선은 가라앉히겠습니다. 이후는 각자 맡은 역할대로…….”

열 척에 나눠 타고 온 결사대들이 배에 구멍을 뚫었다.

암살대상들은 배에 타고 있다. 암살도 배에서 이루어진다. 침투경로는 바다였다.

배에 구멍을 뚫은 것은 결사대가 이곳에서 기다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조금이라도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게다가 결사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구성원은, 오직 유저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NPC들은 한번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고위 성직자가 나서서 살려주지 않는 한. 하지만 유저들은 그런 조건 없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부활한다. 단지 경험치와 레벨, 그리고 스탯이 깎여나갈 뿐이다. 다른 유저들은 이에 대한 보상을 이미 약속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위즈는 아직 그런 걸 받지 못했다.

‘내겐 세 갈래 운명의 길이라는 스킬이 있다. 설사 폭탄을 껴안고 자폭한다고 해도 한번은 되살아나지. 그렇다고는 해도 이건 불공평하잖아.’

게다가 그런 스킬이 있다는 건, 톨네스도 모를 터였다. 한마디로 위즈는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내보낸 것이다. 위즈는 그게 기분 나빴다.

하지만 이제 와서 톨네스의 멱살을 잡으러 갈수도 없다. 이미 배는 물에 잠겨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따지려거든 퀘스트를 마치고 볼일이다.

‘결사대는 10명으로 이루어진 10개조가 투입된다. 만약 내가 빠지면 우리 조는 절대적으로 불리해진다.’

위즈는 물속에 고개를 집어넣었다. 이 근방의 바다는 바하르칼의 배가 지나갈 포인트로 유력한 곳 중 하나다.

‘잠수한 채로 배가 오길 기다린다.’

배를 뚫기 위한 해체 기술을 가진 장인 유저 세 명. 그리고 공격자 들이 돌입해서 최대한 빨리 적들을 해치운다. 물론 암살조들이 진입했을 때에는, 안티 바하르칼의 배들이 들이 받은 상태일 것이다. 이때 발생할 혼란은 암살자의 존재를 숨겨줄 것이었다.

‘바하르칼의 중형함선은 모두 5척. 나머지는 단순히 병력 수송용 소형선박이다.’

레미라에서 예측한대로 정체불명의 선박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소형선박의 그림자가 떼 지어 머리 위를 지나갔다. 그 뒤를 거대한 선체가 따라갔다. 장인 유저가 망치와 정을 들고 배에 달라붙었다. 그가 망치를 휘두르자, 선체 밑에 대놓은 철판이 우그러들었다.


<해체 스킬을 보셨습니다.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자연적으로 터득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카피캣을 통해 해체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쉬운 스킬이라 그런지 단번에 터득해버렸군.’


====================================

[노멀스킬]/[액티브]

====================================

[해체:MX-LV.100] [LV.1-숙련도 00.00/100%]

기술자로서의 첫걸음. 당신의 호기심어린 손길이 부순 물건만큼, 사물에 대한 이해가 높아집니다. 경험이 미숙하여 크고 단순한 물건만 해체할 수 있습니다.

(연장을 사용하면 해체성공률 +20%)

====================================


‘잡 기술 같지만, 쓰기 나름이다. 지금처럼 무언가를 부수고 잠입하는 거라면 말이지.’

그렇게 구멍을 뚫은 장인이 공격자 역할의 유저들에게 손짓을 했다. 곧 구멍이 뚫릴 것이란 신호였다.

구구궁. 쩌억!

바하르칼의 함선이 흔들리며 물거품을 뿜어냈다. 안티 바하르칼의 배가 냅다 들이 받아버린 것이다. 그 흔들림에 맞춰 장인들이 최후의 한방을 때려 넣었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가 나며 단번에 구멍이 뻥 뚫렸다. 공격자 하나가 크리스털을 던져 넣었다. 흰색의 마력이 퍼져나가고 주변의 소음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공격자들은 즉시 구멍을 통해 배로 진입했다.

먼저 들어간 사람은 방패전사로서 특유의 뚝심으로 근처의 용병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바하르칼 용병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고함을 질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조금 전 던져 넣은 크리스털은 사일런스 필드가 담긴 아이템이었다. 마력을 주입한 뒤 던져 넣으면 40초 동안 주변의 소리가 차단되는 물건으로 1회용이었다. 40초는 잠입으로 인한 소란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위즈는 신발에 정령강화를 걸어서 도망치려던 용병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단검을 휘둘러 단숨에 용병의 목을 찔렀다.


<42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뒤쪽을 확인해 보니 일행들 역시 착실하게 용병들을 해치우고 있었다.

“일단 변장부터 합시다.”

뒤따라온 장인 유저가 루팅으로 얻은 용병들의 장비를 모아 손봤다. 즉석에서 부서진 곳을 고치고 기워내자, 겉보기엔 새것처럼 멀쩡해 보인다. 하지만 착용제한을 강제로 풀어버린 것이라, 실제 성능은 많이 떨어진 상태다. 이를테면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다.

위즈도 같은 장비를 지급받았다. 움직임에 불편함은 없다. 무기역시 착용제한을 풀어서 대폭 공격력이 감소했지만, 암살에 사용할 무기는 아니니 상관없다. 위즈는 조원들을 둘러보았다. 죽은 자들의 장비를 빼앗아 착용하니, 다들 영락없는 용병의 모습이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장인 유저들은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임시방편이라 해도 구멍을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 채고 타깃이 도망가지 않도록…….

이제 장인들은 다른 배들의 구멍을 뚫고 다닐 것이다. 이게 장인 유저들의 역할이었다.

여기부터는 공격자들끼리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위즈는 일단 자신이 잡은 유저와 같은 얼굴로 만들었다. 조원들에게는 변장 비슷한 거라고 얼버무렸기 때문에, 위즈를 보고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더 오션에는 특이한 스킬들이 많으니 그중 하나라고만 생각할 뿐이다.

“먼저 위즈님이 나가서 관심을 끄는 동안, 은신 스킬을 가진 분들이 달려들어 해치우는 거 알지요? 다들 준비 해주십시오.”

조장의 말에 따라 위즈는 일단 문을 열고 밖에 나왔다. 배 밑이라 그런지 배치된 인원이 얼마 없었다. 위즈는 꼼꼼하게 그들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기둥이나 화물에 가려진 사각지대를 먼저 찾았다. 일을 벌이려면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좋았다.

‘만사가 불여튼튼이지. 마력을 보는 눈!’


<‘마력을 보는 눈’이 시전 되었습니다. 초당 1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화물에 가려진 곳에서 희미하게 보랏빛 마력이 흘러나왔다. 다른 곳에는 그런 반응이 전혀 없었다. 위즈는 확실하게 확인해보기로 했다.

- 좌측기둥에 화물들을 밧줄로 고정시켜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용병마법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 조심하십시오.

갑판에서는 안티 바하르칼과 한창 전투중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배치된 인원은 적었지만, 만에 하나 마법사들이 떼로 모여 카드놀이라도 하고 있다면 잠입은 물 건너간다.

기둥의 뒤로 돌아가자 역시나 용병마법사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카드놀이를 위해 모인 게 아니다. 전투를 앞두고 명상을 하는 중이었다.

“응? 무슨 일이냐?”

위즈를 본 용병마법사 하나가 물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생각해둔 답이 있었다.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러고 있어도 되는지…….”

일부러 말꼬리를 흐리는 위즈. 용병마법사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미 싸우고 있는 중이니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용병마법사는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아직 상륙하기도 전이다. 굳이 네가 가지 않아도 우리가 수적으로 우세하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위즈는 뒤돌아서며 채팅을 날렸다.

- 숫자는 일곱. 다들 명상중입니다.

명상이란 일시적으로 마력의 회복을 돕는 행위. 따라서 명상 중에는 절대 마법을 쓰지 못한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이들은 긴장이 풀어져 있다.

- 지금이 기회입니다!

은신 중인 전사들이 공격을 퍼부었다. 은신 상태에서 들어간 공격이 백스탭 판정을 받아 줄줄이 치명타가 떴다. 급소를 당했기 때문에 모든 용병 마법사들은 이번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흔한 신음조차 없었다. 조원들 역시 평소 일격 필살을 노리는 승부사들이었다.

- 굿 잡! 다들 잘하셨습니다.

소리 없이 미소만 주고받은 조원들은 다시 은신상태에 들어갔다. 다시 위즈가 주변을 돌면서 으슥한 장소들을 골랐고, 나머지 적들도 같은 방식으로 해치웠다.

“배 밑창은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세 차례나 확인한 결과다. 위로 올라가기 전에 다들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버프를 걸었다. 그동안 위즈는 미리 다음 층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이미 위즈에게는 지도제작 스킬이 있었기 때문에 잠깐 살펴본 것만으로도 미니맵에 갱신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장소를 둘러본 것은 아니라 미니맵에 빠진 곳이 많았다.

‘지도로 뽑아낼 수 없지만, 대략적인 구조정도는 알아냈으니까.’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온 위즈는 무한의 서를 꺼내어, 위층의 구조를 그려주었다. 병력배치까지 표시하니 모두가 좋아했다.

갑판에 가까워질수록 전투의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싸움은 피해야 했다.

결사대의 목적은 지휘관을 잡는 것이지, 이 배의 모든 적을 섬멸하는 게 아니다. 배 밑창의 모든 적을 섬멸한 것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이곳에 폭발물을 설치해놓기 위해서이다. 그것만 아니라면 굳이 모두 죽일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위즈가 가져온 정보는, 지휘관의 암살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게 해주었다.

- 그럼 위즈님이 알려준 정보대로 움직입시다.

쓸데없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이번엔 전혀 은신을 사용하지 않았다. 위층엔 용병마법사들이 두 배나 많았다. 일반 용병들은 더 많았다. 다음 층은 마법사들의 밀도가 더 높았다. 싸우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온다.

- 여기에서부터 흩어집시다.

지휘관급의 용병이 있다면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위즈는 갑판이 아닌 이번 층에 남았다. 조원들 중에서 가장 전투력이 떨어지기에 취한 조치다. 위즈도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이쪽이 더 좋았다.

위즈는 마력을 보는 눈을 통해 대상을 물색했다. 바하르칼에서도 나름 고급 인력들이 지휘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니 암살할 타킷은 마법사일 가능성이 높다. 위즈는 배를 둘러보며 흘러나오는 마력의 색이 짙은 사람을 찾았다. 잠시 후 위즈는 심각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긴 곱슬머리를 치렁치렁 기른 남자가 지나쳐갔기 때문이다.

햇빛을 보지 못한 것처럼 창백한 피부에, 깡마른 팔 다리.

음울한 표정으로 대화하는 자는 잇페인이었다.

‘마력포의 폭발에 휘말려 죽은 게 아니었나?’

하지만 잘못 보았을 리 없다. 잇페인이 맞았다.

그제서야 위즈는 마력포가 폭발할 당시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았음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생각하지 못했는데, 명색이 중간보스를 잡았으면 이렇다 저렇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와야 정상이었다. 비로소 위즈는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잇페인은 중급마법사. 그것도 Lv.50 유저가 1,000명 이상일 때 등장하는 중간보스다. 자기가 쓰던 무기가 폭발했다고, 그것에 휘말려 죽을 수준이 아닌 거야.’

위즈는 즉시 조원들에게 잇페인의 존재를 알렸다. 하지만 대화에 응하는 조원들은 없었다. 다들 각자의 목표를 노리고 교전 중인 것 같았다. 벌써 사망한 자들도 있다.

‘그렇다는 건……이번에야 말로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건가.’

위즈는 잇페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당장 달려들어 공격한다면 배리어에 막힐 가능성이 100%다. 모자손에 담긴 스크롤을 이용해도 역부족일 것이다. 진짜 마법사를 상대하면서 스크롤로 싸우다니 말도 안 된다.

‘단발역전의 기술은 내게 없다. 하지만 잇페인의 틈을 만들 방법은 있어.’

위즈는 허리춤에 찬 용병의 검을 뽑아들고 달렸다. 일부러 요란하게 소리까지 질러주었다. 당연하게도 잇페인은 배리어를 쳐서 막아냈다.

“침입자인가?”

잇페인이 매직스틱을 휘두르자 프로즌 스피어가 튀어나왔다. 얼음창은 위즈의 몸을 꿰며 벽에 박혀버렸다. 위즈의 상체는 얼음창에 꿰뚫리자마자 급격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 상태에서 위즈는 전사의 기만을 사용했다.


<남은 체력의 절반을 소모해 전사의 기만을 사용합니다.>

<체력이 60 남았습니다. 위험합니다. 안전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세요.>


시야가 붉게 물들며 위즈는 빈사상태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아쿠에리언의 퀘스트를 깨면서 근성 스탯이 오른 위즈다. 빈사상태임에도 위즈는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팔을 들어올렸다가 내리기만 반복했다.

“내 주문을 맞고도 움직이다니……제법이구나.”


<‘전사의 기만’ 스킬 효과로 적의 빈틈이 발견되었습니다.>


잇페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잇페인의 몸 곳곳에 붉은 십자표식이 새겨졌다. 오직 위즈의 눈에만 보이는 표시. 그곳을 때리면 1.5배의 치명타가 터지고, 이렇게 해서 보스를 잡으면 부하들의 사기가 덤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게다가 저 십자표식들에 공격을 성공시키면 상태이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일부러 주문을 맞아준 탓인지, 잇페인의 몸에 떠오른 십자표식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았다. 그만큼 방심하고 있다는 뜻이다. 위즈와 가까워질수록 표식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위즈는 그중에서 하체를 노리기로 했다. 그것도 모르고 잇페인은 손을 뻗어 위즈의 턱을 들어올렸다. 시커먼 어둠이 잇페인의 손을 타고 흘러가 위즈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심상세계를 공략하려는 것이다.

그 순간 위즈는 힘차게 진각을 밟으며 잇페인의 사타구니를 올려 찼다.

잇페인의 몸이 한 뼘 높이로 들썩였다가 내려왔다. 잇페인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커허…….”


<적에게 남자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적에게 ‘상태이상-경직’이 발현됩니다. (10초)>


위즈는 얼음창을 부수고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잇페인의 목에 팔을 돌려 감으며 친근하게 속삭였다.

“우린 구면인데 알아보겠어?”

“크으응응윽!”

“이걸 보면 기억하려나?”

위즈는 심상세계에 들어온 어둠을 노리고 마음속의 성전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심상세계에서 쏟아져 나온 빛이, 단숨에 어둠을 태워버렸다.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위즈의 머리에 밝은 휘광이 둥글게 퍼져나갔다. 잇페인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컥컥 거렸다.

“이제 알겠어?”

“너, 넌!”

“응.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아. 반갑지? 이건 이별 선물.”

위즈는 잇페인의 목을 감은채로 모자손에 들어 있는 주문을 전량 쏟아 부었다. 윈드커터가 잇페인의 얼굴을 갈랐으며, 그 뒤를 플레임 플라워의 불씨가 따랐다. 잇페인의 머리는 활활 타오르며 떨어져 내렸다.


<잇페인 2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3800을 얻었습니다.>

<‘전함-페인킬러 2호’의 모든 적들이 3분간 패배감에 휩싸입니다.>

<패배감에 휩싸인 적들은 공격력과 방어력이 절반으로 깎이며, 각종 상태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낮아집니다.>


“잇페인이면 잇페인이지 2호는 또 뭐야?”

위즈는 죽은 잇페인의 몸에서 매직스틱과 반지를 루팅했다. 적어도 중간 보스가 사용하던 것이니 괜찮은 값에 팔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키던 위즈의 눈에 얼음창의 파편이 보였다. 문득 위즈는 프로즌 스피어를 참 많이도 얻어맞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섬에서 아쿠에리언들을 구할 때 고슴도치가 된 적이 있었고, 방금 전 잇페인에게도 당했다.

“얻어맞은 횟수가 제법 되는데, 어째서 이건 배울 수 없는 거지? 조건은 다 갖췄잖아.”

마법을 배우기 위한 조건은 세 가지.

‘카피캣’과 ‘마음속의 성전’. 그리고 ‘마력을 보는 눈’

헌데 다른 스킬들은 착착 배워나가는데, 마법만은 그렇지 않다.

“도무지 모르겠군. 마법을 배운다면 많은 도움이 될 텐데.”

아쉬움을 달래며 위즈는 갑판으로 걸어 나갔다. 위즈가 잇페인을 해치운 덕분에 바하르칼 용병들은 전부 상태 이상에 걸린 상태였다. 안티 바하르칼 세력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밀어 붙였다. 3분이 지나고도 바하르칼 용병의 상당수가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위즈가 잇페인의 죽음을 알리자마자 이들은 전원 항복했다. 바하르칼 용병들을 포박하자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바하르칼의 함선-페인킬러 2호를 나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와아! 우리가 해냈어!”

“나포라니! 배가 늘었다!”

바하르칼의 배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철저히 군용으로 건조되어서, 상선을 개조한 안티 바하르칼의 배보다 더 내구도가 높았다.

게다가 화공에 더 잘 버티는 옵션과, 적을 뒤쫓을 때 20%의 속도가 추가되는 기능도 있다. 유저들이 기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만큼 큰 전공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암살이 성공한 건 이 배에서 뿐이었다.

나머지 배들은 전부 암살에 실패했다. 또한 발목잡기에도 실패했다.

바하르칼의 배들은 안티 바하르칼의 배들을 밀쳐내고 레미라로 들어가는 중이다.

현재 바하르칼의 병력을 실은 작은 배들은, 2차 방어선을 강행 돌파하고 있었다. 바위섬에서 쏘아대는 불붙은 기름항아리들이 배를 태웠지만, 그에 아랑곳 않고 앞으로앞으로 전진만 했다.

그야말로 인해전술. 게다가 저 작은 배들은 점차 산개하여 레미라 섬을 아예 감싸고 있다.

“저렇게 작은 배라면 모래사장을 통해 침입할 수도 있어!”

분명한 것은 저 배들의 절반만 살아남아도, 최종방어선인 성벽에서의 전투가 힘들어질 거라는 점이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우리들도 레미라에 가야 합니다!”

유저들은 서둘러 배를 몰았다.


작가의말

연참 14일째......

슬슬 한계가 옵니다. 눈이 벅뻑해지는군요.

연참 무사히 마치면 맛난거라도 사먹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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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4. 고통을 먹는 자 (37) +3 14.04.07 2,294 54 31쪽
89 4. 고통을 먹는 자 (36) +3 14.04.04 1,244 35 22쪽
88 4. 고통을 먹는 자 (35) +2 14.04.02 1,326 30 26쪽
87 4. 고통을 먹는 자 (34) +1 14.03.31 1,166 26 22쪽
86 4. 고통을 먹는 자 (33) +1 14.03.29 1,032 31 22쪽
85 4. 고통을 먹는 자 (32) +1 14.03.28 870 21 20쪽
84 4. 고통을 먹는 자 (31) +2 14.03.27 1,124 31 20쪽
83 4. 고통을 먹는 자 (30) +2 14.03.26 1,398 25 21쪽
» 4. 고통을 먹는 자 (29) +1 14.03.25 1,414 29 22쪽
81 4. 고통을 먹는 자 (28) +1 14.03.24 1,979 45 25쪽
80 4. 고통을 먹는 자 (27) +2 14.03.22 2,980 118 36쪽
79 4. 고통을 먹는 자 (26) +1 14.03.21 1,203 25 24쪽
78 4. 고통을 먹는 자 (25) +2 14.03.20 1,708 34 24쪽
77 4. 고통을 먹는 자 (24) +3 14.03.19 2,093 35 25쪽
76 4. 고통을 먹는 자 (23) +2 14.03.18 1,702 27 27쪽
75 4. 고통을 먹는 자 (22) +3 14.03.17 2,397 60 21쪽
74 4. 고통을 먹는 자 +21화 +2 14.03.17 1,603 29 13쪽
73 4. 고통을 먹는 자 (21) +2 14.03.15 1,260 30 16쪽
72 4. 고통을 먹는 자 +20화 +2 14.03.15 1,233 40 12쪽
71 4. 고통을 먹는 자 (20) +3 14.03.14 2,338 30 27쪽
70 4. 고통을 먹는 자 (19) +3 14.03.13 2,779 112 24쪽
69 4. 고통을 먹는 자 (18) +2 14.03.12 1,991 42 22쪽
68 4. 고통을 먹는 자 (17) 14.03.11 1,514 41 25쪽
67 4. 고통을 먹는 자 (16) +2 14.03.10 1,513 29 22쪽
66 4. 고통을 먹는 자 (15) +4 14.03.08 1,908 29 24쪽
65 4. 고통을 먹는 자 (14) +3 14.03.07 2,482 117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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