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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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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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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1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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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4. 고통을 먹는 자 (24)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24.

거대한 돛을 단 중형함선이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뒤편에는 짙은 먹구름이 물러가고 있었다. 이 배는 폭풍을 예상하고 일찍 배를 띄웠기 때문에, 그다지 시달리진 않았다. 폭풍의 외곽을 아슬아슬하게 끼고 항해하는 신기를 부린 끝에 레미라를 지척에 두고 있었다.

“선장님 뒤편에서 배가 빠져나옵니다.”

“우리처럼 폭풍을 예지한 자들인가? 소속은 어디지?”

“그게……회색 돛을 달고 있을 뿐, 문장도 깃발도 달고 있지 않습니다.”

“설마 해적들인가? 일단 전투 준비!”

정체불명의 선박이 나타났다면 응당 내려지는 명령이었다. 마침 폭풍을 벗어난 뒤라 갑판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하나가 선장의 명령을 듣고 참견했다.

“그냥 회색 돛이라고 하셨습니까? 혹시 뱃머리를 두 개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네. 뱃머리에 길고 짧은 막대 같은 걸 두 개 달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바하르칼의 배입니다! 그것도 용병마법사를 태운 전투함!”

그 말과 동시에 뒤쪽에서 쏜 시뻘건 섬광이 돛을 관통했다. 돛은 금세 불길에 집어삼켜졌다.

“불부터 꺼라!”

“바하르칼의 습격이다!”

배에 타고 있는 자들은 다들 장비를 꼬나들고 배의 뒤편으로 갔다. 배의 뒷부분은 구조상 취약한 부분이다. 또한 방향전환에 필요한 키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꼬리를 잡힌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 배를 선회했다간 얻어맞을 면적만 더 넓어질 뿐이다. 이대로 거리를 충분히 벌려서 선회하는 게 가장 안전했다.

그동안은 방어에 주력해야만 했다.

이미 키를 노리는 마법이 날아들고 있었다. 키가 파손되면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일직선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돛을 태워먹은 것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마법사들은 매직스틱을 엇갈려 마력을 공명시켰다. 서로 다른 학파의 마력이었지만, 실전에서 손을 맞춰본 자들이었기에 이들의 마력은 금세 하나의 힘으로 거듭났다. 마법사들의 입에서 같은 시동어가 울렸다.

“reflect shield!"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시퍼런 기운이 부드럽게 펼쳐져, 배의 후미를 완전히 감쌌다. 범위가 커서 돛을 노리는 공격의 절반도 가로막혔다. reflect shield에 닿은 주문이 튕겨져 나가며, 바하르칼의 배에서 산발적인 폭발이 발생했다. 그렇지만 바하르칼의 배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피해를 입은 곳은 갑판들. 돛 하나를 잃은 이배에 비하면 아주 멀쩡하다.

유저하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최대한 거리를 벌려야 합니다. 진짜 공격이 들어올 겁니다.”

“reflect shield를 펼쳤으니 당분간은 괜찮아요!"

“아뇨! reflect shield로는 못 막아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배에 달린 저것 좀 보세요!”

배에는 돛과 밧줄을 연결하는 도르래가 무수히 달려 있다. 그건 뱃머리도 마찬가지라서, 여기 역시 삼각돛과 밧줄들이 어지러이 얽혀 있었다. 청새치처럼 튀어나온 뾰족한 돌기는 그걸 연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바하르칼의 배에는 그런 게 달려 있지 않은 뾰족한 돌기가 있었다. 원래의 기다란 뱃머리의 아래쪽에 달려 있는 것으로, 훨씬 짧으며 거무튀튀한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뾰족한 끝을 본 사람들은 그게 들이받는 용도로 제작된 ‘충파’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속도를 내서 배 째로 들이 받아버리면 구멍이 나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쪽은 아직 건재한 돛이 남아있다. 속도 역시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마침 불어준 순풍으로 인해 배는 날듯이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반면 막 폭풍 속에서 튀어나온 바라르칼의 배는 이제 막 속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조건이 비슷하다면, 앞선 쪽이 유리한 법.

사람들은 들이받는 공격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바하르칼의 배를 가리킨 유저는 답답하게 여겼다.

“저건 일반 함이 아니라고요! 용병마법사가 탄 바하르칼의 전투함은, 앞쪽에 마력을 응집해 쏘는 장치가 달려 있습니다. SF에 나오는 광선포 같은 거라고요!”

“뭐? 그런 건 듣지도 못했다고!”

“당연하죠! 이건 돈 받고 파는 정보인걸!”

“잠깐! 저놈들 배 밑에 검은 그림자가 있잖아! 저게 뭐야?”

폭풍의 영향권에서 멀어지자 파도는 잔잔해졌고, 먹구름대신 푸른 하늘이 반겼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게 보였다. 바하르칼의 배 밑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바다괴수가 도사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 실루엣의 앞에서부터 파문이 번져나갔다. 바다가 요동치면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바하르칼의 배 주변에 죽은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틀렸어! 쏜다!”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정전기를 일으키며 삐죽삐죽 솟았다. 마법사들이 펼친 reflect shield는 검은색 방전을 일으키며 일부가 부서져나갔다. 그 뒤를 진한 자주색의 빛줄기가 뚫고 지나갔다. 빛줄기가 노리는 곳은 갑판 위에 우뚝 서 있는 5개의 돛대. 일직선으로 날아간 빛은, 흔적도 없이 돛대를 증발시켜버렸다. 빛줄기가 유지된 건 고작 3초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진짜 레이저 포잖아!”

공격범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돛대의 끄트머리가 떨어지며 갑판을 부쉈다.


◇◇◇◇◇◈◇◇◇◇◇◇◈◇◇◇◇◇◇◈◇◇◇◇◇


바하르칼의 전투함은 탑승인원이 100명도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배가 폭이 좁고 길었으며, 양옆으로 훨씬 좁고 짧은 또 다른 선체가 강철구조물로 연결되어 있었다. 세 개의 배를 옆으로 나란히 연결한 듯한 구조는, 모자란 부력을 추가하고,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용된다. 이런 구조는 원시부족들의 작은 낚싯배에서 주로 나타난다.

단점은 공간 활용도가 낮다는 것이다.

갑판에 나와 있는 인원은 50명도 채 되지 않았고, 그들이 마력을 한데 모아 주문을 써봐야, 안티 바하르칼의 마법사들이 펼친 reflect shield는 뚫지 못한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경우다.

이 기형적인 바하르칼의 함선은, 실제로는 드러난 것보다 훨씬 컸다.

물속에 잠겨있는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은 폭이 60미터나 되고, 길이는 220미터에 달했다. 또한 5층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충분한 전투 병력을 실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고작 50여명이서 분전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이 배의 존재이유는 배의 앞부분에 달린 마력포에 있다. 그것을 작동시키려면 200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마력 패턴을 동조하고, 중급 마법사가 그것을 컨트롤해 증폭기에 연결해야 했다. 선체의 절반이 물속에 잠긴 것은, 이때 발생하는 열을 냉각하기 위해서이다.

핏스톤은 간단한 감상을 말했다.

『아주 똥을 싸는군.』

하지만 그 말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핏스톤은 끈적이는 액체를 뒤집어쓴 채 작은 철창 안에 있었다. 죄수가 지껄이는 말에 귀 기울일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고대유적을 얼마나 헤집었기에 이런 걸 가지고 있단 말인가.』

갈라진 암석의 틈새 속에서 붉은 빛이 연신 번뜩였다. 이 배에 장착된 증폭기와 마력을 한곳에 응집시키는 회로들은 핏스톤으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굳이 비슷한 것을 찾는다면, 그의 마스터였던 witch가 행했던 마력의 병렬연결 정도다. 하지만 그것도 이렇게나 효율이 높진 않다.

“본체는 피해전무! 돛대만 날렸습니다!”

“이유는?”

“파도 때문에 조준이 흐트러졌습니다!”

동 파이프를 타고서 보고가 들어왔다. 그것을 들은 중급 마법사가 명령했다.

“수정해라.”

“5도 아래로!”

그그그그긍!

기관음이 울리다가 무언가에 걸려 덜컹 멈췄다.

그러자 다시 마력을 모으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선투에 서있는 중급마법사는 길고 검은 곱슬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의 창백한 피부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마력을 통제하면서도 한손으로 엉뚱한 짓을 하는 여유를 부리는 건 일종의 과시다.

그걸 알면서도 핏스톤은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친 녀석.』

중급 마법사의 정체는 잇페인.

핏스톤을 무력화시키고 납치해온 인물이다.

“발사!”

자줏빛 정전기가 일면서 마력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후끈한 열기가 가득 차 배안은 한증막 같았다.

“명중인가?”

“명중입니다! 선체의 좌측이 홀수선 째로 증발했습니다!”

“부상한다.”

기묘한 부유감과 함께 배가 덜컹거렸다. 용병마법사들은 방수셔터를 열고 환기구를 열었다. 열기를 실은 공기가 밖으로 흩어져갔다. 잇페인은 핏스톤이 들어있는 작은 철창을 들고 갑판으로 나왔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배는 당당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마력포의 열기로 인해 주변은 연무로 가득 찼다. 그 속을 움직이는 바하르칼의 함선은 마치 유령선처럼 으스스한 데가 있었다.

바로 근처에 바라앉은 배의 잔해로 보이는 나뭇조각들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요동치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항해하는 기분이 어떤가?”

『언제부터 친했다고 달착지근하게 와 붙는 것이냐?』

“유머가 늘었군.”

핏스톤은 자신의 몸에 도포된 끈적대는 액체를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원래 재료에 납이 들어간 탓인지, 역겨운 단내가 코를 찌른다.

그 정체는 마법시약으로, 농도가 매우 짙어 이렇게 점성이 강한 것이었다.

“이젠 포기했나?”

『아니. 내 평생에 마스터는 한 분 뿐이다.』

“누가 굴복하라더냐? 대등한 관계를 맺자는 건 아닌가?”

잇페인은 손바닥을 뻗어 잇페인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에서 보랏빛 전류가 튀었다. 눈에 띨 정도로 강력한 마력의 발산 때문이다. 잇페인의 마력을 머금은 시약이 핏스톤을 공격했다. 순수한 마력 그 자체가 침투하며, 핏스톤의 내부를 헤집으려 했다. 핏스톤은 입을 꾹 다물고, 낯선 마력을 몰아내려 애썼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핏스톤은 에켈산에서 입은 피해 때문에, 마력 총량이 낮아졌다. 반면, 잇페인은 그동안 수련을 열심히 했는지 마력량이 높아졌다. 조금 전 마력포를 쏘고 나서도, 엄청난 양의 마력을 쏟아 붓는 잇페인이다. 핏스톤은 겨우겨우 막아내는 것만도 벅찼다.

원래대로라면, 핏스톤은 이 세계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다.

펫이란 주인의 존재가 사라지면, 고향인 마계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witch의 펫인 핏스톤이, 주인의 사후에도 이 세계에 남아 있는 건, 마스터의 배려 덕분이었다.

witch가 물려준 마력의 일부가, 핏스톤에게 남아 있었다.

이 세상에 없는 마스터를 대신해서…….

그런데 잇페인이 그 마력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네가 제단만 순순히 넘겨주었으면 이럴 필요는 없었지 않나?”

바로 이것 때문이다.

핏스톤 자체도 엄청난 마력 덩어리임에는 분명하다. 잇페인은 핏스톤의 마력을 이용해 어떤 주문을 발동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포기 하라고! 구질구질하게 죽은 년 그림자는 그만 쫒고, 네 고향 마계로 돌아가란 말이다!”

잇페인은 이를 악물며 더욱 많은 마력을 쏟아 부었다. 핏스톤의 몸을 이루는 단단한 암석이 붉게 달아올랐다. 잇페인의 공격에 당했던 상처에서는, 시커먼 마력이 새어나왔다.

이제 핏스톤은 잇페인의 도발에 반응조차 못했다.

“끈질긴 녀석!”

잇페인은 새로이 마법시약을 뿌려두었다. 이렇게 해두면 이미 불어넣은 마력이 잘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걸 씻어내지 않는 한, 핏스톤은 잇페인의 마력을 몰아낼 수 없다.

‘이럴 바에야 차라니…….’

가증스러운 잇페인의 마력이 점점 내부를 침식하고 있다. 핏스톤은 마력을 폭주시킬 생각을 했다. 지금 핏스톤의 몸에는 세 종류의 마력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주인인 witch가 남겨준 마력, 두 번째는 핏스톤 자신의 마력. 그리고 잇페인의 마력.

이 마력 개개의 총량은 소형 엘리멘탈 스톤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셋을 합치면, 중형 엘리멘탈 스톤 정도는 된다.

에켈 요새에서 일으킨 엘리멘탈 스톤 폭주는 대형에 가까웠다. 그것이 일으킨 폭발은 에켈 산의 한쪽을 평평하게 만들 정도였다.

핏스톤이 가진 마력으로 인위적인 폭발을 일으키면, 그때의 1/5 정도 위력은 될 것이다. 이 배를 통째로 날려버리기에 넘치고 남는다.

‘마스터……저는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핏스톤은 주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력을 휘돌리려 했다. 그때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배가 크게 요동쳤다.

“이게 무슨 일이지?”

용병마법사들이 놀라서 뱃전으로 몰려들었다. 다시금 배가 흔들렸다. 이유는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바위덩어리 때문이었다. 그것이 바다에 떨어지며 일으킨 물결이, 배를 거칠게 때린 것이다.

잇페인은 입술을 깨물며 뒤를 돌아보았다.

바위는 뒤쪽에서 날아들었다. 뒤쪽은 폭풍의 영향권.

어둠에 잠긴 바다는 간간히 번개가 내리쳤다. 그 속에 거대한 섬 같은 실루엣이 떠있었다.

이들이 지나온 길이다. 섬 같은 건 없었다.

있을 리 없는 섬이다.

핏스톤은 마력을 폭주시키려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희미하지만 그 ‘섬의 실루엣’에서 위즈의 마력이 느껴졌다.


◇◇◇◇◇◈◇◇◇◇◇◇◈◇◇◇◇◇◇◈◇◇◇◇◇


“저 배가 틀림없습니다.”

위즈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바하르칼의 배를 가리켰다.

“처음 보는 모습의 배로군.”

커다란 배가 작은 배를 얹고 있는 모습이었다. 달려 있는 돛대는 선체에 비해 작아서 제 구실을 할까 의문스러웠고, 근처엔 물안개가 깔려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하지만 위험한 존재입니다.”

“알고 있네. 조금 전의 마력 방출.”

바하르칼의 배는 마력포를 두 번이나 발사했다. 마침 위즈는 마력을 보는 눈을 켠 채였기에, 바다 너머가 선명한 자줏빛으로 물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위즈가 눈으로 볼 정도인데, 그랄누타이 같은 중급마법사가 모를 수는 없다.

그랄누타이는 용병마법사들과 같은 종류의 마력이라고 판단, 즉시 근처의 롱혼들을 모아 연결했다. 롱혼은 초대형함으로서, 서로를 연결하여 폭풍 속에서도 배가 뒤집히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섬에서 위즈가 용병마법사들에게 잡혀 제단에 오를 때 등장했던, 거대한 섬의 정체가 바로 롱혼의 집합체였다. 폭 30미터에 길이 500미터짜리 배들이 스무 척이나 모여들어 서로를 연결했으니,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섬과 같았다.

여기에 대형 투석기를 실어서 바위를 쏘아 보내니, 아직 대포가 등장하지 않은 더 오션에서 이보다 강력한 해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해적-레이스 단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저곳에 구할 친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나?”

“그렇습니다.”

그랄누타이는 손을 내저어 골렘들을 멈추게 했다. 바위를 나르던 소형 골렘들이 제자리에 앉았다.

“이대로 계속 쏘아 보내면 결국 배는 가라앉을 테지. 그러면 그 친구라는 자를 구하지 못할 테고, 결국 접현 밖에 답이 없겠군. 하지만 우리들은 바하르칼에 보복을 맹세한 자들이네. 자네 사정만을 봐줄 수도 없는 노릇이야. 그러니 딱 30분만 기다려 주겠네.”

“감사합니다!”

“닉스를 한척 내주겠네.”

착수음이 울리며 롱혼에 매어진 작은 배가 바다로 떨어졌다.

“저배는 원래 기름과 폭약을 싣는 무인선이네. 적에게 밀어붙여 자폭시키는 용도의 배지. 내구도 면에서는 프로미넌스보다 우월하니 걱정 말고 다녀오게.”

“할배. 나도 갈래요.”

귀상어가 나섰다. 칼을 두 자루나 차고, 가죽갑옷까지 차려입은 모습니다. 그랄누타이는 손녀를 말리지 않았다.

“빚은 빨리 갚을수록 좋지. 다녀 오거라.”

“따라와라.”

그랄누타이에게 목례하고 귀상어는 난간을 짚고 몸을 날렸다. 그대로 닉스에 올라탄 그녀는 철판으로 보강한 덮개를 뜯어냈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꺼낸 마법시약을 꺼내 안쪽에 들이부었다. 닉스의 선체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위즈도 서둘러 닉스에 올라탔다. 귀상어는 안쪽의 비좁은 공간을 가리켰다.

“일단 그 속에 들어가 있어.”

“하지만 이건 너무 좁은데…….”

“몸을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잖아? 어떻게든 해봐.”

위즈는 카무플라주로 몸집을 줄였다. 하지만 10살 어린애 수준으로 몸을 줄여도 겨우 들어갔다.

“들어서 알겠지만, 이배는 자폭용이다. 왕복이 불가능하단 말이지. 그러니 배에 너무 집착하진 마. 저기에 어떻게 들어갈지 생각은 해봤어?”

“전혀…….”

“그럼 내 방식을 따라. 저 배는 지나치게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무슨 기계장치를 싣고 있는지, 지나치게 배가 무거워. 그러니 배의 밑 부분이 단단할 거란 말이야?”

귀상어의 계획은 이랬다.

바하르칼의 배에서 가장 약해보이는 곳은, 배의 옆구리 부분이었다. 그녀의 검술로 그곳을 뜯어내고 진입하는 것. 거기에 그랄누타이가 계속 투석 공격을 가해 배에 데미지를 입힌다.

공격은 배의 뒤편에 집중될 테니, 그곳만 피해 움직이면 된다.

“그리고 이 배엔 폭발물 대신 특별한 걸 실어놓았어. 마법사들의 탐지스킬을 무력화 시켜줄 거야.”

배는 점점 속도가 올라 폭풍의 범위를 벗어나, 잔잔한 바다까지 치고 나왔다. 닉스의 존재르 발견한 용병마법사들이 주문을 날려대었다.

귀상어는 검을 휘둘러 주문들을 쉽게 튕겨내고 흘려보냈다. 애꿎은 수면을 때린 마법이 폭발하며 물보라를 뿌렸다. 수수하게 생긴 장검은 별다른 특색은 없었지만, 귀상어의 마력을 머금은 채 흩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건 마법검인가요?”

“아……마법은 골치 아프니까. 그냥 여기에 프로즌을 영구 부여했지. 아, 이제 배에서 뛰어내려.”

귀상어의 말에 위즈는 즉시 닉스에서 뛰어내렸다. 잠시 후 바하르칼의 배에 부딪친 닉스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위즈의 시야가 일렁거리며 일그러져갔다. 마력을 보는 눈을 켜둔 상태였는데, 희끄무레한 연기가 끼어들자 눈이 핑핑 돈다.

위즈는 다급히 마력을 보는 눈을 껐다.

“대체 저게 뭡니까?”

“할배의 신경통약.”

“네에?”

“농담이고. 저거 마법시약의 원재료에 살짝 장난을 쳐둔 거야. 마법사들이 마법을 쓰면 그 마력에 반응해서 달라붙어. 아주 잠깐이지만 주문들이 제멋대로 튀어나가게 되지.”

“얼마나 지속되는 겁니까?”

“길면 20분. 하지만 습기가 많으니까 실제로는 그보다 짧겠지. 한 15분이나 되려나?”

그 정도면 배에 올라타 일을 벌이기에 충분하다.

이미 연기를 쐰 마법사들이 당황하여 뛰어다니고 있었다. 거기에 그랄누타이가 투석 공격을 재개하자 대 혼란이 연출되었다.

“어째서 주문이 안 먹히는 거야?”

그 어떤 방어주문도 발동이 안 된다. 미묘하게 컨트롤이 엇나가 주문이 캔슬되는 상황에서, 마력을 공명시켜 reflect shield를 치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그렇다고 달아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위들은 대부분 배의 진로방향에 떨어지고 있었다. 투석 공격의 사거리가 훨씬 길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도망치면 가라앉혀버리겠다는 경고.

그 덕에 위즈와 귀상어는 무사히 배에 달라붙을 수 있었다.

“흐읍!”

물속에 몸이 잠긴 상태에서도 귀상어의 검은 빠른 궤적을 그리며 선체를 갈랐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마침 사람이 없는 식량창고였다.

“잘됐군. 일단 내가 놈들을 유인할 테니, 그 동안에 너는 네 친구를 구해.”

“괜찮겠어요?”

귀상어는 씨익 웃었다.

“여긴 바다 위다. 인간이 상어를 당해낼 성 싶나?”

그 말을 남기고 귀상어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얼마 뒤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귀상어가 지나치게 허둥거리며 사람들을 베어 넘기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멀어지자 위즈는 숨바꼭질-공을 사용했다. 일단 주변에 숨어 있는 용병마법사가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숨바꼭질-공을 사용했습니다.>

<6시 방향, 3M 거리에 한 명의 적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6시 방향이라면 바로 뒤다. 아니나 다를까 ‘헉’ 하는 소리가 뒤통수에 울렸다. 뒤를 돌아보니 바하르칼 용병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며 당황하고 있었다. 분명 은신을 했는데 그게 저절로 풀려버린 탓이었다.

위즈는 모자손을 까딱거렸다. 한줄기의 윈드커터가 날았다.

그랄누타이가 준비한 깜짝 선물은 마법의 컨트롤을 엇나가게 만든다. 그건 스크롤로 발동되는 주문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윈드커터 스크롤을 사용한 건, 적어도 무기를 꺼낼 시간은 벌어줄 거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시간 벌이는 필요 없었다.

“크헉!”

바하르칼 용병은 가슴에 상처를 입고 무너져 내렸다.


<48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어엉?”

빗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윈드커터가 정확히 명중했다. 의아해 하던 위즈는 구석에 놓인 밀가루 포대에 대고 윈드커터 스크롤을 사용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은 정확히 원하는 곳에 명중했다.

“스크롤은 먹힌다?”

위즈는 서둘러 스크롤을 모자손에 채워 넣었다. 이 배에 탄 용병마법사들은 지금 제대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스크롤을 이용해 마법을 쓰는 위즈는 다르다. 마법사가 아니기에 제대로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럼 마력을 보는 눈을 쓸 때는 왜 그랬지?”

위즈는 다시 마력을 보는 눈을 사용했다. 역시나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어른거리더니 눈이 핑핑 돈다.

“직접 내 몸에 사용하는 스킬이라서 그런 건가?”

마법에 가까운 몇몇 스킬, 화염돌격과 정령강화를 사용해보니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화염돌격은 쓸 수조차 없었고, 정령강화를 위해 불러낸 정령은 주변을 뱅뱅 돌기만 했다. 당연히 이 둘의 시너지 스킬인 코로나도 못쓴다.

결국 위즈가 쓸 수 있는 건 순수검술과, 모자손에 저장된 스크롤뿐이다.

“가만…….”

위즈는 창고 안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이곳에는 식재료만 저장되어 있는 게 아니었다. 퀴퀴한 약초냄새도 나고 있었다.

“숙련조합을 사용해보자!”

이미 필요한 조제 레시피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적을 상대할 방법만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무조건 독!”

. 위즈는 약초들을 뒤져서 입속에 집어넣고 우물거렸다. 그리고 스킬창의 레시피를 쭉 훑었다.


<베르디움을 맛보았습니다. 4급 마법시약에 사용됩니다.>

<오이케를 맛보았습니다. 요리와 5급 마법시약에 사용됩니다.>

.

.

.

하지만 다들 평범한 재료뿐이었다. 그때 위의 눈앞이 잠깐 붉게 물들더니 경고가 떠올랐다.


<중독되셨습니다.>

<1시간동안 독성을 억누릅니다. 서둘러 해독제를 드십시오.>

<스칸다르를 맛보았습니다. 2급 마법시약에 사용되며, 독성이 강합니다.>

<해당 약재를 이용해, 독 분말-‘스칸다르의 호흡’을 만들 수 있습니다.>


위즈는 이미 맹독이라는 스크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건 고작 데미지 1밖에 주지 못하는 독이다.

“이건 좀 다르겠지.”

위즈는 스칸다르라는 약재를 갈아 분말로 만든 뒤, 빈 포션병에 담아두었다. 그렇게 완성된 독 분말이 모두 20개. 아이템 설명을 보니 기가 막혔다.


====================================

[스칸다르의 호흡이 든 병 (사용아이템)]

맹독을 함유한 스칸다르를 잘 말려 가루를 낸 것입니다. 이것을 들이키면 타는 듯한 고통에 휩싸이며 눈이 멀게 됩니다.

[1초당 80의 데미지를 주며, 해독할 때까지 효과가 지속됩니다.]

[적용범위 반경 5미터]

====================================


위즈는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용병마법사들이 한군데 모여서, 커틀라스를 챙겨들고 있었다. 마법을 쓸 수 없으니 당장 그런 무기라도 사용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허공에 몇 번 휘둘러대는 모습을 보니, 평소 검술 연습 정도는 해둔 것 같았다.

이래저래 정공법으로 맞붙어봐야 위즈만 손해다.

위즈는 그들이 모여 있는 무기고 근처에, 스칸다르의 호흡을 2병 선물해주었다.

쨍그랑.

포션병이 깨지며 시커먼 가루가 흩날렸다. 그리고 열 명이나 되는 용병마법사들이 몸을 뒤틀며 쓰러졌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한 용병마법사들은 곧 숨을 거두었다.


<58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58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58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

.

.

“참 쉽네.”

“침입자다!”

독 가루를 용케 피한 5명의 용병마법사들이 커틀라스를 겨누었다. 위즈는 포션병을 흔들어보였다. 병 속 가득 담긴 검은 가루를 본 용병마법사들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 배에 탄 손님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

위즈는 바하르칼 용병에게서 빼앗은 커틀라스의 칼등으로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작가의말

연참 9일째인가요....

헷갈리네...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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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고통을 먹는 자 (24) +3 14.03.19 2,093 35 25쪽
76 4. 고통을 먹는 자 (23) +2 14.03.18 1,702 27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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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4. 고통을 먹는 자 +21화 +2 14.03.17 1,603 29 13쪽
73 4. 고통을 먹는 자 (21) +2 14.03.15 1,260 30 16쪽
72 4. 고통을 먹는 자 +20화 +2 14.03.15 1,233 40 12쪽
71 4. 고통을 먹는 자 (20) +3 14.03.14 2,338 30 27쪽
70 4. 고통을 먹는 자 (19) +3 14.03.13 2,779 112 24쪽
69 4. 고통을 먹는 자 (18) +2 14.03.12 1,991 4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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