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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din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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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din
작품등록일 :
2017.08.19 15:44
최근연재일 :
2019.03.10 20:19
연재수 :
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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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글자수 :
38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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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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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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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외전] 이 남자는 고자가 아닙니다.

DUMMY

<실라 - 세계수 마을에 버려진 고아>


“들어오십시오-”


자신의 집으로 세 사람을 초대한 실라는 안쪽을 살펴보는 안자영의 눈길에 쭈뼛거렸다. 크기는 넓지도 작지도 않은 보통의 사이즈였지만 워낙 관리를 하지 않아 삐걱대는 바닥들이 있었기 때문.


“몇 주간 비워둔 것 치고는 엄청 깔끔한데?”


“샤론님이 다른 엘프에게 청소를 부탁했던 모양입니다...그래도 꽤 허름한게 부끄럽네요.”


하지만 안자영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신경쓰지 말라 대답한다. 그야 현재 시각은 연회장에서의 거했던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온 새벽 2시. 집에 대한 감상을 가지기 보다 임예선의 등에 업혀 곯아떨어진 유소연을 눕힐 방이 더 궁금해야 정상이지 않을까.

계단을 올라 2층의 복도로 들어서자 네 개나 되는 방문을 발견할 수 있었고 실라가 그 중 하나의 문을 열자 꽤 넓은 크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혼자 산다고 들었는데- 굉장히 넓네?”


“그렇죠 예선. 혼자 살기엔 지나치게 넓습니다. ...이곳은 제가 쓰는 방입니다. 먼저 소연부터 침대에 눕혀드리죠-”


청소를 부탁받은 엘프가 침대 시트까지 깔끔하게 청소해두었는지 유소연이 눕는 그곳은 아주 쾌적해보였다.


“나도 소연이 옆에서 잠깐 잠들래~”


“그래라. 푹 자고 조금 있다 보자- 고생 많았어.”


얼마나 피곤하면 씻을 생각도 않고 그대로 유소연의 옆에 누워버리는 임예선. 그런 여인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인사하는 이는 안자영이었고 그답지 않은 모습에 그녀는 어둠 속에서 몰래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두 여인을 방에 들인 안자영과 실라. 방문을 닫고 그 옆 방으로 안자영을 안내해 들어간 실라는 방에 설치된 마법등불으로 방을 밝히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너 아직도 나에게 앙금이 남은게로구나 실라.”


“아, 아닙니다 자영 공! 부, 부끄럽게도 지금 새로 남은 방은 이런 창고 밖에 없어서···! 역시 제가 이 방에서 쉬겠습니다! 자영 공은 제 방을 쓰도록 하십시오.”


그 옆 방은 전혀 청소가 되지 않은 창고였던 것. 공간을 넓었지만 무슨 짐이 그리도 많은지 방의 절반 이상을 가득 매우고 쌓인 나무박스들과 수북히 쌓인 먼지들은 숨쉬기가 괴로울 정도였다. 이곳에 한 시간만 있어도 폐병으로 쓰러질 지 모른다고 판단한 안자영은 그대로 등을 돌려 나가버렸고 실라가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소개해준 방들에 비해 꽤 작네.”


“아담한게 좋았습니다. 넓으면 아침에 괜히 춥기만 하더군요. 자영 공은 이곳에서 쉬십시오~ 저는 아까 그 방으로···”


덥석- 휙!


“읏···!?”


벌렁.


하지만 실라는 자신의 말을 마치기 전에 팔목을 잡아끄는 남자에 의해 가죽 침대 위에 벌렁 쓰러져야 했다.


“거기서 쉬다가 다음날에 분명 쓰러진다고. 주인이 주인 방에서 쉬어야지 어딜가?”


“하, 하지만 그, 그그그, 그렇다고 자영 공과 같이 쉴 수는···”


“어쩔 수 없잖아. 추운 현관 앞으로 내쫓을 생각은 아니겠지? 귀빈으로 대접하기로 했으면서.”



“무, 물론입니다!”


“그럼 그냥 쉬자. ......설마하니 덮쳐질까 그런거야? 아무리 내가 남자라도 힘으로 널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없잖···커억!!”


철럭- 휘익!

퍼억! 철퍼덕!



안자영의 가벼운 말에 한쪽 눈썹이 꿈틀거린 실라는 자신이 걸치고 있던 플레이트를 벗어 그를 향해 던져버렸고 명치를 제대로 맞은 남자는 무거운 갑주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흥···! 씻고 오겠습니다.”


“.........아, 아아! 어, 응! .........”


빠르게 방문 너머로 사라지는 실라. 안자영은 순간 그녀의 말에 대답을 늦게 해버렸다. 아파서, 바닥에 부딪힌 등허리가 아파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심했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바로 실라의 모습. 플레이트 안쪽에 입은 부드러운 실크옷이 땀으로 젖어 그녀의 굴곡진 몸매를 그대로 내비치고 있었고 영 익숙하지 않은 모습에 순간 남자의 머리가 마비되어버린 것이다.


‘던스톤으로 다시 살아났을 때는...살필 경황이 아니어서 몰랐는데···’


목을 타고 뒤늦게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에 자신이 벌인 사태를 이해하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안자영! 자신이 살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다르게 이 집은 신발을 벗고 다니는 건물도 아니었으며 당연히 사람이 누울 장소는 이 가죽 침대 위 뿐. 결국 저 고혹적인 몸매의 엘프와 같은 침대에 누워야한다는 결론이 나왔으니 그야 당황스러울 것이다.


‘어, 어쩌지. 진짜 창고로 가야하나?! 고작 나라는 남자가 버틸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야!’


자신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안자영. 비록 이 세계에 와 이제까지 두 여인을 상대로 사고를 치지는 않았지만 게임을 하던 시절의 그는 성욕에 충실한 남자였다. 올 인 원이란 게임에도 분명히 인간의 성욕을 깨우게 만드는 성인 요소가 존재했고 그럴 때마다 그 남자는 게임을 끄고 ‘다른 무언가’를 즐겼던 것이 사실이다. 가뜩이나 길고 피로했던 여정길에서의 피로로 인해 쌓여버린 성욕이 과연 얌전히 있어줄 지. 안자영은 정말로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야 임마 안자영! 물론 실라가 말도 안되는 미녀에 매력덩어리이긴 하지만 NPC라고 NPC! 너란 남자가 지금껏 데이터 파일을 반찬으로 즐겼던 남자지만 절대로 저지르면 안될 대상이다! ...아니, 이거 지금 전혀 근거가 안되잖아···?! 데이터 파일로 즐겨왔는데 NPC로는 왜 안 돼! 게다가 사실 NPC가 아닌데...? 여기 실재하는 세상이잖아! 실라는......그저 다른 세계의 미녀일 뿐이고···’


덜컥.


“우와악!?”


“꺅! ............뭐, 뭡니까 갑자기!”


워낙 타이밍 안좋게 방문을 열고 돌아온 실라 때문에 비명을 질러버린 안자영. 그의 자기 암시가 자기 변명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아주 좋지 않은 순간에 돌아온 실라였다다.


“어, 어? 아니야. 뭘 그렇게 빨리 씻고 왔어···?”


“자영 공도 씻고 싶으실 거 아닙니까- ......그, 그래도 냄새 안나게 구석구석...제대로 씻었습니다···”


“그, 그래?! 어, 응. 고마워- 그, 금방 올게···”


기어이 그 남자는 다른 방도를 생각해내지 못하고 곧바로 몸을 씻은 뒤 그 방으로 돌아와버렸다.






스륵.


“...비좁진...않으십니까···”


“...응. 넌?”


“......떨어질 것도...같습니다.”


서로를 등지고 한 침대 위에 한 이불 속에 들어가버린 안자영과 실라. 벽에 붙어있는 침대의 안쪽을 안자영이, 그리고 실라가 바깥쪽에 누워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떨어질 것 같다고 대답해왔다. 남자가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해결은 어려우면서도 어렵지 않은 것.

서로의 등이 닿지 않게 거리를 두다보니 실라가 침대 끝자락에 불편하게 누운 것이었다.


“바보냐......안쪽으로 땡겨와···”


“......바보 아닙니다···”


스륵-


그에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몸을 움직여 그의 등과 밀착해버린 실라. 그녀는 남자의 등이 검을 사용하는 자신보다도 넓고 따듯하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10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둘 다 감은 눈으로 맘편히 잠들지 못하는 새벽.


“자영 공...? 벌써...잠드셨습니까?”


“...너 같으면 자겠냐···”


벌떡!


“그, 그렇죠?! 역시 제가 현관쪽으로 나가서···!”


“아, 아! 됐으니까 누워~!”


벌렁!


격하게 상체를 일으키는 실라에게 놀란 안자영이 팔을 뻗어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눕게 만든다. 그녀의 쇄골 부근을 밀어 넘어트린 남자의 팔은 천천히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실라는 자기도 모르게 그 팔을 양 손으로 잡아버렸다.


“시, 실라?”


“...아, 아! 죄송합니다......누군가와 함께 잠드는건...처음이라 그런지...무척이나 놓고 싶지가 않아서 그랬습니다···”


“...픽~ 그럼 잡고 자던가~ ......무겁진 않아?”


“항상 걸치고 다니는 플레이트 갑주가 배는 무겁습니다. 하지만......이건 이것대로 무겁군요.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말입니다.”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편해진 모양인지 크게 숨을 내뱉는 실라. 그에 그녀의 쇄골 위에 올라간 팔의 주인도 그 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까는...조금 놀랐습니다 자영 공. 예선에게...그렇게 다정할 수 있었는데 왜 그러지 않았습니까~?”


“응? ......장난칠 때 따로 있고, 가끔은 이런 모습도 나쁘진 않을까 해서. 왜- 안어울렸어?”


“풋...어울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순간 기분도 안좋았......아아- 죄송합니다 자영 공...!! 자, 장난입니다~!”


남자가 그대로 팔에 힘을 주자 곧바로 꼬리를 내려버리는 실라. 하지만 남자의 팔을 잡은 그녀의 손길은 더욱 강해졌다.


“처음...저와 만났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아아- 건달 시절의 실라?”


“거, 건달이라뇨! ......뭐, 잘못하긴 했습니다만. ......저는 ‘가족이 없습니다’. 세계수 마을에서 누군가가 던져주는 열매나 빵을 얻어먹으며 해맑게 뛰어다니는...거리의 고아였죠. 그래서 친한 이들이나 가족들이 다투는 광경에는...더욱 격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때의 일은 다시 한 번 사과를···”


“됐네요~ ......그런데 처음듣네. 실라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그럼 이 집은 뭐야?”


“장로 미르네님과 샤론님께서 저에게 주신 버려진 집입니다. 그 뿐 아니라 주기적으로 먹을 것과 기본적인 지식을 알려주신 두 분 덕에 세계수 마을에 필요한 엘프가 되었습니다. ......대부분 힘쓰는 일이어 이제는 지나치게 튼튼한 엘프로 불리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제대로 된 삶을 얻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 집은 넓고 쓸쓸하더군요.”


“킥~ 나랑은 정반대네. 나는 어머니랑 단둘이 이 방만한 지하에서 사는데~”


“그렇습니까...? 이전부터 자영 공이 살았던 세계에 대해서 자세히 듣고 싶었습니다만···”


“뭐...이야기하다보면 잠이 오겠지~? 어디부터 궁금해?”


남자가 그녀를 향해 살짝 몸을 돌리자 마주 몸을 돌리는 실라. 하지만 둘 다 어색하거나 불편한 기분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갑자기 물어온 부분에 대해선 남자가 살짝 당황할 뿐.


“아버지는...같이 안사셨던 겁니까?”


“아아......응! 아버지는 내가 성인이 되기 전에 행방불명 되셨거든. 그 때까지는 이 집보다 배는 넓은데 살았어~ 아버지 엄청 유능하셔서 돈 어마어마하게 버셨으니까. ......아버지가 행방불명 되시고 남은 자금으로 어머니랑 둘이 알콩달콩 살았지? 생활비 최대한 아껴가면서 아쉬운 부분이 많으셨을텐데 우리 어머니는 언제나···”


“자영 공···? 많이 보고싶으신 모양입니다···”


안자영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너무 두서 없는 말에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실라가 손을 뻗어 자신의 눈가를 닦아줌으로서 깨닫는 사실. 스스로가 울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응. 보고 싶어 많이. 내가 여기 와 있는 동안 어머니는 그 때와 같은 심정이실거 아니야. 그 때는 둘이라 괜찮았는데...지금은 혼자실거 아니야. 응...솔직히 말해서 걱정이 말이 아니지~?”


“자영 공이 강한 이유를...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 그래도 울지 마십시오- 정말 적응이 안됩니다.”


“잘못 본거야- 너 손에 묻은건 내 침이고···”


“......눈가에 왜 침을 묻히는 겁니까.”


조금의 웃음과 함께 분위기를 환기시킨 둘은 잠시 뒤 다시 이야기를 열어보려 서로를 마주보았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서로가 모르는 사이 얼굴이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아, 미...안···! 언제 이렇게 가까웠더라···!”


“......별로 싫으신 겁니까? 전......저는 괜찮습니다 자영···”


고개를 천장으로 향하며 고개를 멀리하려던 안자영은 그녀의 대답에 눈동자까지는 돌리지 못했다. 사슴과 같은 눈이 불안하다는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


“오늘이···지난다면......자영은 제게서 떠나실 것 아닙니까. 조금은...욕심을 부리게 해주십시오.”


“뭐, 뭐? 뭔가 말이 이상한데 실라-? 난 네 입장을 생각해서···”


하지만 남자는 자신이 하려던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얇고 부드러운 감촉. 뜨겁지만 너무나 작고 여린 살결이 자신의 아랫입술을 아주 짧게 간질인 것이다. 상대의 품 속으로 더욱 끌려들어가는 팔이 그녀가 어쩔 줄 몰라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고 안자영은 자신의 입술을 만지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아야 했다.


“시, 실라···”


“싫...으시겠지요. 처음 만났을 때는 감히 죽이려 들었고...바로 한다는 짓이 뒤를 밟는 미행이었으며...리자드맨들과의 전투에선 바보 같이 자영을 다치게 만들었던데다가···! 아무것도 모르고 플레임 웨폰의 필드에 뛰어들어...자결까지 해보였습니다. .........인간과 엘프와의 관계 때문에 자영과 두 친구분은 스카이 로드라는 말도 안되는 곳까지 달려야했고...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귀중한 것까지...버려야 했습니다. 모두 저 때문에.”


“.........”


“싫은게 당연할 겁니다···! 그래도......! 그래도 오늘 하루는...마지막으로...어리광을 받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자영...? 저는......이 실라는···”


기어이 실라라는 엘프는 유소연과 임예선이라는 여자를 제치고 그에게 진심 어린 고백을 남기고야만다. 눈물이 얼룩진 그녀의 눈에서는 솔직하고 투명한 빛이 어려나왔으며 받는 대상에게 있어 아주 큰 인상을 남기는 고백.


“자영을...사랑합니다. ......남은 제 생명...모두 바치고 싶을만큼···...당신을 사랑합니다, 자영···”


그녀의 눈은 깊게 감겼으며 다시 남자의 것에 닿은 그녀의 입술은 이전처럼 가벼운 접촉이 아니었다. 완전하게 맞물린 입술을 통해 서로의 체온이 너무도 뜨겁게 느껴졌고 닿아있는 시간 또한 잠깐이 아니었으니 서로의 숨이 막힐 때까지 계속되는 입맞춤.

그리고 남자의 양손은 이어 실라의 두 어깨를 부여잡아버렸다.






<유소연 - 엿보기 장인>


달빛이 아름답게 내리쬐는 실라의 정원. 엘프들이 자랑하는 관상용 식물들이 주위를 화사하게 자리하여 그 가운데 놓인 하나의 벤치를 돋보였으니 그곳에 앉은 키가 작은 여성은 엘프도, 이 세계의 인간도 아니었다.


“......후우~”


무심하게 대지를 아름답게 비치기만하는 달빛이 속상했던 것일까. 그녀의 아담한 입에서는 형식적인 한숨과도 비슷한 것이 흘러나왔지만, 정작 그녀의 속은 크게 상해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달빛에게도, 스스로의 못난 점에게도.


“결국...뺏겼네···바보 유소연···”


그 작은 이세계인은 바로 피로와 취기에 쓰러졌던 유소연. 하지만 그녀는 언제그랬냐는듯 임예선이 잠들기가 무섭게 조용히 일어나 정원 벤치에 앉은 것이다.

바로 방금. 실라의 방문 틈으로 보았던 하나의 장면을 생각하며 말이다.


“알고는 있었지......실라도 자영이에게 마음이 있는건...어떻게 저런 용기가 나는걸까···?”


수년 전에도,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남자를 향한 마음.


“GSR......자영이 정말로 몰랐던걸까···? 내가 일부러 자기 침낭에 들어온거···”


그 때 뿐 아니다. 집에서는 틈만 나면 혼자 있는 안자영의 옆으로 가 같이 있으려 했고 야영을 할 때면 괜시리 옆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고. 연회장에서도 일부러 취한척, 약한척 보여 안자영을 끌어들이려 했던 것이다. 다른 이가 본다면 바보 같기 그지 없는 반복일 뿐이지만 용기내기가 어려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

하지만 정작 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안자영의 입술을 빼앗은 것은 실라였다.


“누굴...탓하겠어...계속 바보짓만 했던 내가 바보지···실라가 싫은 것도 아니고···”


한 남자를 생각하자면 얄미울법도 했지만 유소연에게 있어서 실라는 그저 소중한 동료이자 마음을 다해 던스톤을 구하게 만들었던 엘프. 착하다면 착해 빠진 여자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녀의 마음은 갈갈이 찢어져가고 있었다.


“정말...힘이 안나......현실로 돌아가도...열심히 할게 있었던가~? 직장도 끝났고...자영이도 놓치고...돈만 벌면서 살아야하는걸까~? 여기서......그냥 여기서......”


어깨에 힘이 쭉 빠져가고 턱과 올라간 시선이 공허하게 하늘을 향하기 시작하는 유소연.


“잘하면 뭐해...착하단 소리듣고...머리 좋다는 소리듣고...일 잘한다는 소리 들어서 뭐하는데......! 결국...자영이...자영이 밖에 날 알아주는 사람 없었는데......자영이 마저 나한테서 돌아서면 난...난 정말 어쩌지......?”


그녀의 입술을 결국 일그러졌다. 아랫입술이 이 사이로 말려올라가고 입꼬리는 축 내려갔으며, 그 옆으로는 뺨을 타고 한 줄기의 눈물이 내리고 있었다.


‘왜!! 왜 내가......! 내가 가장 보답받지 못하는거야···?! 나도 열심히 했는데···! 나 잘했다며 칭찬해줬잖아 자영아......!! 그런데 왜···! 왜......실라의 옆으로 가버리는거야···’


외치고 싶었지만 속으로 외칠 수 밖에 없는 억울함. 자신이 해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감각이 너무도 괴롭고 힘들었던 그녀는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자영...이......바보···!”


하지만 곧 속에 있던 것들은 점차 입을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 말문이 트이자 유소연은 더욱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옆에 누군가 온지도 모르고 말이다.


“콱 죽어버려!!”


“네?!!”


“---꺄악--!! ............?”


그녀가 외쳐낸 의미에 옆자리를 방문한 이가 놀라고. 그 놀람에 놀라는 놀라운 광경. 심장을 졸인 유소연이 두 손을 고이 모아 허리를 숙이고 곧 고개를 돌리니 이곳에 있어선 안되는 인물이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상대를 알아보고 은밀하고 빠르게 눈물을 닦아내는 그녀.


“......왜...온거야?”


“너, 너무하네~ 그냥 뭐...잠 안오기도 하고...소연이 너 혼자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내가 나오는거...봤어···?”


“현관문 소리가 들리더라. 임예선인가 해서 그냥 슬쩍 확인만하고 들어가려 했는데, 너길래 놀라서 왔지?”


그 남자는 바로 안자영. 불과 1 ~ 2분 전까지만 해도 실라와 한 침대에 누워 입을 맞췄던 남자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으니 유소연 본인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오직 입맞춤하는 장면까지 밖에 보지 못했던 그녀.


‘...............조루증...인걸까?’


심지어 굉장히 실례되는 추측까지 그녀의 머릿속에서 난무하고 있는 상황!


“......소연아 혹시...나한테 화났어?”


“.........아니~ 자, 자영이가 잘못한게 어딨다고~ ......그냥 조금···그런데 진짜 왜...여기있는거야?”


그럼 도대체 자신에게 죽으라고 외친 이유는 뭐란 말인가. 남자는 그러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는 가운데에도 여자의 질문에 답해야했다.


“너, 너 걱정돼서 나왔다니까......? ............!! 소, 소연아? 너 울었어?!”


팟!



유소연은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자신이 숨기려했음에도 이제서야 자신이 울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남자. 그 사실에 이렇게나 당황하는 이유가 뭔지도 모르겠고 자신의 팔을 잡으며 가까이오는 이유도 모르겠으니까. 그저 실라와 깊게 맞춘 입술이 가까워지자 그녀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파악-


“이거 놔.”


그녀의 뿌리침은 힘이 실려있지 않았다. 그저 거절의 심정을 가득담았을 뿐. 하지만 그 뿌리침에 안자영은 팔을 크게 물렸다.


“소, 소연아···? 왜, 왜~ 무슨 일인데- 여, 여기서 혼자 이렇게 울고 있으니까 도저히···”


“그냥 들어가주면 안 돼···? 그냥 들어가서...다시...할 일 하면 되잖아···”


“......할 일?”


“아니면 벌써 끝난거니? ......그럼 자...너가 제일 피곤할거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의 그녀와 다른 모습에 심각한 불안함을 느낀 안자영. 여자의 호소에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않았고 결국 유소연은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안 가. 너가 잘 때까지 나도 안 잘래.”


“진짜 자영이 너...일부러 그러는 거지···?! 사람 그렇게 놀리니까 재밌어···!?”


점점 올라가는 그녀의 언성에 그는 점점 얼굴이 굳어갔고 여자는 더욱 말에 거침이 없어졌다.


“......이제 상관없잖아. 동료로...친구로 챙겨주고 싶은거면...개인적인 시간은 챙겨줄래···?”


“응...그러고 싶은데...지금은 왠지 아닌거 같아서.”


여자의 목소리는 크게 분을 토해내듯 크게 올라가기 시작했고 남자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자신이 없었는지 동시에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동시에 내뱉기 시작하는, 정신 없는 소란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너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러는데!!”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걸수도 있지만-”

“너 맨날 그랬어! 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는척 하면서!”

“나한테 화가나있는다고 생각해-”

“정작 힘들 때! 중요할 때는 내 생각 전혀 안해주잖아!”

“그게 솔직하게 보기 힘들거든-”

“그냥 머리 좋은 애! 도움 잘되고 이야기 잘 들어주니까!!”

“조금 참고...여유가 생기면...그 때 진중하게 이야기하려 했는데-”

“그냥 내가 편한거지?!! 너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거든!? 우리가 뭐...특별한 사이야!? 아니잖아!!”

“아무래도 지금 말하고 싶어졌어. 그러니까 들어줘.”

“그러니까 그냥 두라니까!!? 제발 자리 좀 비켜줘! 나 너 싫어!!”


“좋아해 소연아. 굉장히 많이 좋아해.”


“난 싫.........!! ......뭐...뭐···?”


결국 진 쪽은 분을 터트리던 쪽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을 터트려온 남자에게 말문이 막혀버리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되묻기만 하는 유소연.


“뭐라고...했어 자영...아···?”


“좋아한다고. ......유소연.”


“그, 그게...그 말이...정말 나오니···?! 방금 전까지만......! 실라랑...같이 자던...애가 할 말이니 그게···!! 나한테 정말...왜 그래···!”


“역시 본거구나?”


덥석-


그렇게 대답하며 자신의 손목을 잡는 안자영의 손길에 결국 멈췄던 울음이 터져버린 유소연. 그리고 남자의 목소리는 이어진다.


“안 잤어.”


“...............어어?”


“울지 말고 들어줘. 안 잤어- 녀석이 어리광을 받아달라 했지만 받아준 건 그것뿐이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이상 할 리가 없잖아.”


“그...그게......진짜...야···?”


“아니, 시간을 생각해봐! 너가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에서 몇 분이나 지났다고! ............잠깐만 소연이 너!? 벌써 다했냐는 말 뜻이 그거였어?!”


“보,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바보...야···!!”


팟!


그녀는 다시 한 번 남자의 손길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거절의 의사가 아닌 스스로의 눈물을 닦기 위해! 하지만 안자영은 그녀의 팔을 놓지 않았고 자신의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마. 내가 울게 만든거잖아...제발 울지 마.”


“......그럼...그냥 그러고 나와버린거야···?”


“응. 어깨를 붙잡고 제대로 진정시키느라 고생 좀 했지만, 소연이가 생각하는 짓은 절대 안했다니까?”


“바, 바보야···! 실라가 얼마나 울거라고 생각하고···!!”


할 말이 없어 그렇게라도 열을 토할 수 밖에 없었던 유소연. 허나 이어진 남자의 대답에는 아무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거절해야지! ......아직 고백도 못했는데.”


“............이제...했네···”


“대답은 못들었는걸?”


짖궂은 남자의 대답에 살짝 눈을 굴리던 여인은 잠시 뒤 허리를 곧게 세웠다. 자신을 진정시키려 자리에서 일어나 벤치 앞에 선 남자. 그에게 턱을 곧게 세우고 눈을 감으니 바보가 아니라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으리라.


와락-

번쩍!


“...꺄앗! 자, 자영아?!”


하지만 어째선지 유소연의 입술은 기다리던 감촉을 얻지 못했고 대신 격한 남자의 품이 자신을 번쩍 들어올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안자영의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격하게 두드리기도, 기대하게도 만든다.


“키스 끝날 때까지, 안 내려놓을거야-”


“...누구 숨 막혀 죽으라고···”


기어이 맞닿은 두 남녀의 입술. 서로가 서로를 생각해왔던만큼 그것은 길게 깊었다. 그저 입술의 감촉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것이 더욱 깊은 곳까지 입술을 비집고 들어가는 깊은 인사. 그러한 깊은 키스가 진정한 키스라면, 둘은 첫사랑을 대상으로 첫키스를 나누기 시작한 셈이다.

안자영의 힘이 다할때까지만 계속될 키스. 하지만 그의 힘은 그 가녀린 여인을 하루 안에 내려놓을만큼 연약한 것이 아니었다.


‘사랑해, 자영아-’


작가의말

시간의 경과에 따라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해,

[외전]을 [신 마도연합 (1)] 과 [신 마도연합 (2)] 사이에 넣습니다.


[신 마도연합 (2)]편은 이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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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세 기사의 이야기 19.03.10 54 0 11쪽
52 신대륙 마도연합 (2) 19.03.09 45 0 12쪽
51 신대륙 마도연합 19.03.08 46 0 12쪽
50 존속 전쟁 (4) 19.03.07 43 0 19쪽
49 존속 전쟁 (3) 18.05.31 80 0 15쪽
48 존속 전쟁 (2) 18.05.29 77 0 15쪽
47 존속 전쟁 18.02.26 142 0 8쪽
46 급변 18.01.09 144 0 16쪽
45 마물의 왕, 세상에 도래하는 어둠 17.12.28 128 0 12쪽
44 괴팍한 용의 둥지에서 17.12.16 139 0 16쪽
43 고요한 분노 17.12.06 145 0 18쪽
42 위대한 왕의 죽음 17.12.04 151 0 12쪽
41 구원자 가라사대 모두 뒤지라 17.11.28 138 0 13쪽
40 나이트 오브 던 (3) 17.11.21 145 0 13쪽
39 나이트 오브 던 (2) 17.11.20 161 0 14쪽
38 나이트 오브 던 (1) 17.11.16 152 1 12쪽
37 드워프 왕의 진노 17.11.05 156 1 19쪽
36 신 마도연합 (2) 17.11.04 162 2 18쪽
» [외전] 이 남자는 고자가 아닙니다. 17.11.02 175 2 26쪽
34 신 마도연합 (1) 17.11.01 166 1 22쪽
33 말리온 (2) 17.10.31 179 1 16쪽
32 말리온 (1) 17.10.30 166 1 16쪽
31 변이 언데드 17.10.29 171 1 16쪽
30 인간과 엘프의 시간 (2) 17.10.28 150 1 18쪽
29 인간과 엘프의 시간 (1) 17.10.28 176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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