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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개척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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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식약처문의
작품등록일 :
2020.08.12 20:28
최근연재일 :
2020.09.02 00:05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2,944
추천수 :
59
글자수 :
83,166

작성
20.08.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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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인간의 빛나는 지성을 위하여

DUMMY

"오늘 이자리에 모이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중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박사는 박수소리가 그치길 기다린 후 연설을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전. 우리가 알던 세상은 멸망했습니다. 모든 법과 기구는 기능을 잃었고, 그저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만이 전부인 세상이 돼버렸죠. 살인, 약탈, 강간. 여기 계신 모두가 겪어본 일이죠."


박사는 뻣뻣한 입술을 혀로 축이고 말을 이었다.


"약육강식, 사람들은 그런 매정한 세계가 아닌, 문명세계가 다시 찾아오길 바랬습니다.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낯선이에게 건네는 인사가 더 이상 총알이 아니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문명이 시작될 것이라고.

약자에 대한 작은 양보에서 시작해 뜻을 모은 사람들은, 우리들은! 드디어 청정도시 'NLC'를 세우게 됐습니다.

오늘은 'NLC'의 모든 전력을 책임질 발전소가 완공된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오늘은! 멸망했던 문명이 다시 태어나는 날입니다."


박사의 열띤 목소리는 청중들도 덩달아 흥분시켰다.


"찬란했던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죽어갔던 모든 이들을 추모하며 연설을 마치겠습니다."


강연장에 불이 꺼지고 추모곡이 흘렀나왔다.

박사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어두컴컴한 무대를 내려왔다.


다시 불이 켜지고, 이번엔 곡이 바뀌고 파티가 시작됐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춤추며 분위기가 점점 달아올랐다.

오직 박사만이 방에 들어가 혼자 와인 한잔을 조용히 비우고 있었다.



똑똑똑


"...들어오시게."


"죄송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한건 아닌지..?"


"아닐세. 편하게 얘기 하시게나."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20대 중반 정도의 청년이었다.


"간단한 인터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신문에 넣을 기사가 필요해서··· 언론의 박태석 기자입니다."


"...어디서 봤다 했더니, 자네는 혹시 내 학생이 아니였나?"


"네 맞습니다 박사님. 아카데미 5기 졸업생입니다."


"앉아서 얘기하시게."


태석은 박사가 뺀 의자에 앉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빼 탁자 위에 올려놨다.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30여분이 흘러갔다.


"마지막으로, 발전소에 붙은 'NCP'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게 됐나요?"


"New Civilization Power Station. 새로운 문명을 시작하는 발전소라는 뜻에서 짓게 됐네. 우리 도시의 이름과 일맥상통하는 이름이지."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태석은 필기한 노트를 덮고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곤 작은 종이뭉치를 꺼냈다.


"개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해보게."


"박사님께선 직접 설계도를 만드시고, 발전소의 건설 과정을 총 감독 하셨죠?"


"그렇지."


태석은 종이뭉치를 펴서 탁자 위에 올렸다.

종이는 박사가 그린 발전소의 설계도 였다.

수십개의 터빈과 기계들이 공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박사의 자랑스런 작품이었다.


"제가 조사해본 결과 박사님의 설계도대로라면 태양광 패널 수십 개와 터빈이 부족합니다. 현재도 이 부품들을 구할 수단은 전무합니다."


"..."


박사는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발전소를 완공할 수 있었나요?" 설계도가 잘못된 건가요? 아님 발전소가 미완공인 상태로..."


"발전소엔 문제가 없네."


박사가 말했다.

그는 자신의 빈 와인잔에 한가득 와인을 따랐다.


"자네는 무엇을 원하는건가? 진실을 알고 싶은건가, 아님 마음이 편해지고 싶은건가?"


"진실을 듣고 마음이 편해지고 싶습니다.


우문현답이었다.

하지만 박사의 마음엔 안드는지 피식 웃는소리가 났다.


"안타깝지만 그 두개는 공존할 수 없다네. 진실을 알면 자네 마음은 절대 편안하지 않을걸세. 그 뭣 같은 녹음기는 저리 치우게."


박사는 옷걸이에 걸어둔 자신의 모자를 챙겼다.


"따라오게.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박사는 책장을 양쪽으로 밀어 숨겨져있던 문을 열었다.

비밀문은 엘리베이터의 입구였고, 두사람은 지하로 내려갔다.


"자네는 '유글레나'가 뭔지 알겠지."


"...단세포 진핵생물, 엑스카바타···"


"그런 시시껄렁한 분류법 말고. 이 놀라운 생명체는 동물이면서, 동시에 식물의 능력도 가졌네. 바로 광합성 말일세."


박사가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자네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두가지 형태로 나뉜다는 걸 알고있겠지. 아카데미에서 배웠을게야."


"일반적인 형태, 모든 생명체에게 공격성을 띄는 좀비, 그리고 변종 녹색피부 좀비···"


"그렇다네. 사람이 좀비에게 물리면 5~10분 사이에 이성이 사라져 그저 배를 채운다는 욕구만 남은 일반형 좀비가 되고, 약 일주일간 에너지가 넘쳐나 뛰어다니다 힘이 다하면 흔히 아는 느려빠진 좀비가 된다네. 그에 비해 녹색 좀비는.."


"아침엔 누가 건들기 전엔 움직이지 않다가, 밤이되면 일반형보다 빠르게 움직이죠."


태석이 박사가 하려던 말을 가로챘다.


"도대체 어떤 힘이 녹색 좀비를 미쳐 날뛰게 했는지, 난 그 해답을 찾았다네."


<지하 1층입니다.>


"크르르···"


박사와 태석의 눈 앞에 실험대에 몸이 묶인 녹색 좀비가 나타났다.

태석은 놀라 뒤로 넘어질뻔 했다.


"조...좀비가!"


"녹색 좀비의 비밀은 바로 이 피부에 있었네.

이건 일종의 이끼라네."


"...이끼요?"


"왜 이 생각을 미쳐 못했었을까. 녹색은 언제나 광합성, 식물의 색이었는데.

좀비는 이 이끼들이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생체 에너지를 이용하면서 공생하고 있었던 거였네."


"그렇다면 아침에 움직이지 않던것은···"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지."


태석은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엘레베이터는 다시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발전소의 내부가 나타났다.

서로 맞물린채 움직이는 기어들.

어디로든 뻗어있는 긴 전선들.

그리고···


태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하 1층에서 봤던 좀비가 끝이 아니었다.

수십, 아니 수백마리의 녹색 좀비들이 전선으로 이어진 큰 챗바퀴 안에서 앞을 보며 달리고 있었다.


"마치 유글레나처럼, 광합성을 하는 동물. 이게 내 발전소의 부품일세."


태석은 수백개의 챗바퀴, 아니 발전기 중 낯익은 얼굴들을 찾아냈다.


"이 사람은···"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던 날, 법을 제정하며 처형당했던 죄수일세. 여기서 신 문명의 발전을 죽어서도 돕고있지."


"...맙소사.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태석은 박사를 돌아봤다.

그의 눈빛은 존경에서 어느새 경멸로 바뀌었다.


"좀비가 없는 청정도시, 라는건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군요. 거짓말에 속아서 도시로 들어온 사람들은요? 그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으신가요?"


"태석군. 이 태양광 발전은 전세계, 아니 전 우주를 통틀어서 가장 효율적인 장치일세. 말도 안된다···"


"그들도 감염되기 전엔, 사람이었습니다!"


태석이 박사의 말을 끊었다.


"죽여버려야 마땅한 괴물이 아니라, 불치병에 걸린 불쌍한 환자라고 말한건 박사님이셨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태석은 금방이라도 박사의 멱살을 잡으려다 털썩 주저앉았다.

박사는 태석의 손에 와인잔을 쥐어주고 와인을 반쯤 따랐다.


"딱 1년만 기다려주게.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나면, 그땐 내 모든 사실을 세상에 공개할걸세."


"지금과 그때가 다릅니까? 박사님이 저지른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한 행동은 없던걸로 되지 않겠지."


박사는 와인을 내려놓고 커다란 기계들을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그때가 되면 내 행동은 당연히 해야할 일, 정의가 될걸세. 아마 모든 사람들은 죽을때 좀비가 되어 도시의 발전을 돕는걸 국방의 의무라 생각하겠지."


"...아뇨. 박사님의 행동은 절대 정의가 아닙니다."


태석은 박사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박사는 미동도 하지않고 태석에게 말했다.


"난 이미 이 도시일세. 내 뜻이 도시, 이 나라 전체의 뜻이나 다름없단 말이야.

역사적으로 체제에 불만을 가진 자는 두가지 부류로 나뉘게 되지. 결국 체제에 순응하거나, 혁명을 일으켜 체제를 바꾸거나."


박사는 와인을 병째로 들이킨 후 말을 이었다.


"자네는 어떤가? 내가 죽으면, 자네는 오천명의 사람들을 먹여살릴 수 있나? 좀비를 이용한 발전이 아니라면 문명을 유지할 수 있나?"


태석의 총을 쥔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그에겐 자신이 없었다.


"자네는 어떤 부류인가?"


빛나는 박사의 눈을 쳐다보던 태석은 결국 총을 내렸다.


태석의 손에서 떨어진 와인잔이 금이 갔다.


"그래. 혁명을 일으키는 인재는 몇 안되네. 자네는 그런 부류는 아닌가보군."


"착각하지 마십쇼. 체제에 순응한게 아닙니다. 이 사실을 기사에 담아 사람들에게 알리겠습니다."


"누가 믿어줄것 같은가. 미친놈의 헛소리라고 무시당할테지."


"글쎄요."


태석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주머니에 있던 녹음기를 꺼냈다.


"누가 미친놈인지는 사람들이 알려줄겁니다."


"...자네는 더 좋은 세상에서 같이 살 수 있었는데. 안타깝구만."


태석은 박사를 무시하며 엘레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손에든 녹음기를 꼭 쥐고 버튼을 누르려 했다.




"커어어...억.."


박사의 품에서 발사된 총알이 태석의 목을 뚫고 엘리베이터 문에 박혔다.

문은 와인인지, 태석의 피인지 모를 붉은 액체로 물들었다.


"자네는 똑똑하네. 세뇌당하지 않는 법을 알고있지."


박사는 태석이 못 누른 엘레베이터 버튼을 대신 눌렀다.


"자네의 그 뛰어난 지성이, 자네를 죽인거네.

새로운 세상엔 자네같은 인재가 필요했지만···"


박사는 쓰러져 눈을 감는 태석의 손에 금이간 와인잔을 쥐어주었다.

그리곤 남아있는 와인을 전부 따라주었다.


"인간의 빛나는 지성을 위하여!"


박사는 태석을 뒤로 하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지만, 기사에 발전소 좀비에 대해 보도된 내용은 전혀 없었다.


작가의말

문명은 화가난 사람이 돌을 던지는 대신, 최초로 한마디 말을 내뱉었던 순간에 시작되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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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빛나는 지성을 위하여 20.08.16 80 2 10쪽
12 공포영화도 식후경 20.08.15 98 0 13쪽
11 어떤 이 의 살이오, 문명의 서막이니 20.08.14 125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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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누군가의 기록 (5) 20.08.14 98 2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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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누군가의 기록 (2) 20.08.12 190 6 7쪽
3 누군가의 기록 (1) 20.08.12 241 4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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