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기록 (2)
40일째
배탈이 났다.
1.5L 꽉 차있는 생수통에서 악취가 났지만 아까워서 마신게 원인인듯 하다.
옥상을 더럽히기 싫어서 난간 밖으로 해결하다 떨어질뻔했다.
(팁) 물을 절대로 입대고 마시지 말라. 침에 드글거리는 세균은 물을 독극물로 만든다.
현재 소지 물품
물통 한병 (나머지 한병은 오염됐다)
육포 한봉지
컵라면 세개
그외 잡것들
잠자리가 딱딱한 계단이라 그런지 어깨랑 목이 아팠다.
마침 건너편에 있는 가구집에 문이 열려있었다.
설마 좀비가 배게를 털어가진 않겠지.
스마트폰을 충전시켜놓고 창만 챙겨 계단으로 내려갔다.
건물 2층은 디자인 관련 작은 회사였다.
그젯밤 급하게 건물에 들어오느라 좀비를 다 처리하지 못하고 옥상과 2층 문만 닫았었다.
가구집에 가는길에 2층을 치워야겠다고 생각해 문을 시끄럽게 두드렸다.
예상대로 문 바로 앞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로만으로 예상했을때 두세마리 있는것 같았다.
창을 쥐고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열었다.
...
하나 둘 셋 넷...
일곱마리까지 센 뒤 미친듯이 계단을 내려왔다.
창으로 어떻게 해볼 숫자가 아니었다.
건물 밖으로 순식간에 뛰쳐 나간 후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근처엔 어제 떨어트린 좀비시체 세구밖에 없었다.
계단에서 쓰러지면서 느릿느릿 걸어오는 좀비들은 무려 열마리나 됐다.
열마리다!
건물에서 최대한 떼놓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며 유인했다.
좀비들은 특유의 악취를 풍기며 일렬로 따라왔다.
건물에서 꽤 멀어졌을때 가장 앞에 있는 놈의 머리를 창으로 찌르고 가구집으로 달려갔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잡히는 베개를 들고 건물로 뛰어가 1층 문을 잠궜다.
이제 이 건물은 통째로 내꺼다.
좀비들이 유리문을 긁어대며 그르렁거리길래 문틈으로 창을 넣어 한놈을 죽였다.
2층을 털기 전 혹시 못나온 좀비가 있나 확인하기 위해 문을 두드려 소리를 냈다.
다행히 좀비는 없었다.
책상을 뒤지다 직원휴게실 열쇠를 발견해 문을 열었다.
세상에나.
간식상자에 달랑 사탕 두개밖에 없었다.
직원들 책상에서는 컵라면을 찾았는데.
아마도 무지 가난한 회사였을것이다.
사탕 두개를 한입에 털어넣고 우물거리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해가 뜬 시간동안 충전했지만 겨우 24%였다.
아직 태양광 기술은 효율이 쓰레기였다.
일기를 쓰다가 또다시 배가 아파져 해결했다.
물을 끓여마시던가 해야지.
베개를 베고 누우니 편안했다.
내일은 이불도 가져와 깔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41일째
손이 떨려서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겪었다.
옥상에서 라면에 물을 붓고 캠핑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자동차의 굉음이 멀리서부터 들리기 시작하더니 곧 멋지게 생긴 스포츠카 한대가 보였다.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며 손을 흔드니 나를 발견하고 차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사람이다."
진짜 사람이었다.
한달만에 마주친 사람.
계단을 쏜살같이 내려갔다.
"어디로 가시던 길입니까?"
내가 물었다.
"구청에 보호소가 있다고 들었는데..."
"없어요. 거기서 나만 살아남았어요."
끔찍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 날로부터 일주일간 구청에 있는 민간인 보호소에서 살았었다.
아마 이들이 찾는 곳도 그곳이겠지.
남자 둘은 눈빛을 교환했다.
"저도 같이 다닐수 있을까요?"
"예.. 뭐.."
"그 창은 직접 만드신건가요?"
식칼 두자루를 막대기에 조잡하게 붙여놓은 내 창 말인가.
"그럼요."
"잠시 볼 수 있을까요?"
모자를 쓴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어쩐지 주기 싫었다.
창을 꼭 쥐고 등뒤로 숨겼다.
"내놔."
뚱뚱한 남자가 갑자기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모자 쓴 남자도 가세하여 마구잡이로 날 팼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발이 묶여 스포츠카에 실려있었다.
"야 씨발 라면밖에 없네."
"골라도 거지새끼를 골랐어."
내 물건을 다 털어갔다.
"야이 개새끼들아. 이거 풀어!"
모자쓴 남자가 똑 얼굴을 갈겼다.
"시끄러. 좀비 꼬이잖아."
내 뺨을 수십대를 휘갈기다 지쳤는지 운전석으로 가서 시동을 걸었다.
"...어디로 가는데? 식량 털어갔으면 됐지 난 왜 데려가는거야?"
"그야 좀비들 만나면 널 먹이로 주고 도망가려고 그러는거지."
뚱뚱한 남자가 내 창으로 날 툭툭 찌르며 말했다.
개새끼들.
차가 방지턱에 걸리자 덜컹거렸고 내 주머니에 쇠젓가락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멍청한 이 두놈들이 묶을때 주머니도 안뒤지고 그냥 묶었을 줄이야.
주머니에서 젓가락을 꺼내 조심스럽게 테이프를 찢었다.
"야. 근데 보호소가 부셔졌다면 총은 어디서 구하냐?"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파출소에 남는 총 한자루쯤은 있겠지."
"저거 뭐냐?"
뚱뚱한 남자가 앞에 있는 시커먼 연기를 가리켰다.
그건 연기가 아니었다.
수백마리의 좀비 떼였다.
"야 씨발 차돌려!"
"어어..!"
모자쓴 남자가 당황한듯 차가 크게 흔들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모자쓴 남자의 어깨에 젓가락을 찔렀다.
"악!!!"
차가 중심을 잃고 흔들리더니 전봇대를 박고 멈췄다.
나도 의자에 머리를 부딪혀서 정신을 잃었다.
그르렁거리는 소리에 눈을떴다.
"으아아아악!!!!"
모자쓴 남자의 팔이 좀비에게 뜯기고 있었다.
난 얼른 뚱뚱한 남자의 옆에 있는 내 창을 챙기고 차에서 내렸다.
"아아아악"
스포츠카 주변은 온통 좀비로 가득찼다.
뚱뚱한 남자의 비명소리도 함께 울려퍼졌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야한다.
안그러면...
씨발.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모자쓴 좀비기 자동차만큼 빠른속도로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문이 열린 건물에 달려갔다.
내생에 가장 운이 좋은 날이었다.
들어간 건물은 스크린 야구장이었다.
바닥에 늘어져있는 야구배트중 가장 무거워 보이는 놈을 집어들어 모자쓴 좀비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꿈틀거림이 없어질때까지 배트를 휘두르자 뚱뚱한 좀비가 배를 출렁거리며 뛰어왔다.
"이 개새끼!"
아까 맞은 화를 풀며 시원하게 머리를 날려주었다.
머리통을 일곱방쯤 내리쳤을때, 아까 봤던 수백마리의 좀비떼가 생각나 건물의 문을 닫았다.
책상을 가져와 문앞에 쌓아놓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쁜 새끼들."
다시는 사람보고 손을 흔들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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