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이야기
꼬마 이야기
사내는 빈 커피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네가 계속 설쳐대는 터에 그들이 네 존재를 알아차렸어. 교차로 악마로 취업해서 쏘다니니까 금방 들키잖아. 하지만 뭐 찾아내려면 그쪽도 한 참 걸릴 거야. 어느 차원으로 갔으니 알 수 없으니까."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였잖아. 지금에서야 나를 찾아온 것은 호루스가 움직였기 때문이지 않아?"
"어, 정답. 나도 명령을 받기 전에 이 차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도 없었어. 모노스 테리움이 움직였다니까 그래서 알게 된 거지."
"네필림은 납치된 거야?"
"아니 제 발로 따라갔다고 하더라고."
"멍청한 놈! 무슨 말에 혹해 근거지?"
"그 녀석은 소중한 패인데 선수를 당한 거지. 지켜 보고 있는 놈이 쥐도 새도 모르게 소멸했거든."
"지켜봐? 우리 네필림을 모두 지켜 보고 있었나?"
"아니, 특별 관리는 그놈뿐이었어. 누구든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금단의 열매였거든."
"인제 와서 나는 왜 찾아온 거야?"
"말했잖아. 놈의 뒤를 캐는 데는 딱 좋은 능력을 갖춘 게 너라고."
"내 특기가 차원 이동이라고?"
"응, 원하는 차원을 마음대로 들락날락 할 수 있는 능력이지."
'네필림으로서의 특기가 차원 이동이었나? 이걸 왜 언노운은 숨기고 있었을까? 이렇게 허무하게 밝혀질걸.'
"이제 뭘 하든 네 마음이지만 네 목표가 차원의 구멍을 막는 일이라면 우리 말을 새겨듣는 편이 좋을 거야. 그건 뭔가 모를 거대한 음모의 한가운데니까. 보라고! 칠죄종마저 숨죽이게 만드는 일이란 거지. 더욱이 끔찍할 정도의 그것들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이건 폭풍이 오기 전에 고요함과 같지 않아? 우리는 그 폭풍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하게 불어올 거로 생각해."
꼬마가 기지개를 켰다.
"이 친구는 이제 다 한 거고 내 차례인 건가?"
녀석은 접시에 붙어 있는 요구르트 찌꺼기를 혀로 게걸스럽게 핥아 댔다.
"쩝. 우리 동네도 살기 좋은 동네가 돼야 하는데 이런 걸 여기서만 맛볼 수 있다니."
"지친다. 지쳐. 머리가 어질해."
"그럴 만도 하지. 자 어디서부터 시작 해볼까?"
녀석은 앙증맞은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알고 싶은 것이 뭐야? 내 지식은 너의 물음에 대해서만 근사한 답을 주게 되어 있어."
"기브 앤 테이크?"
"당연하지. 근데 벌써 기브 했으니 반드시 테이크 해야 하는 상황이야."
"너희 셋 다?"
"고렇지. 분에 넘치는 걸 받았거든."
"누구에게?"
"어휴. 우리가 어느 교단 소속이란 걸 잊은 건 아니겠지?"
"나와 관계도 없는 피의 교단이 왜 자꾸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거지?"
"네가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주인이 반기지 그럼 도둑이 반기랴?"
"그렇게 지식이 많다면 가면을 찾을 방법을 말해봐."
"자식아 가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면을 찾기 위한 여정이 중요한 거지. 가면은 덤이야."
"그럼 굳이 가면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없네. 난 단지 내 본신을 찾기 위해 가면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응, 그것도 맞아. 가면을 이용하면 내 본신에 접근할 수 있지. 거기에 얽히고설킨 악마들이 한둘이 아니야. 루시퍼의 명령을 받고 네 본신을 업고 튄 놈이 루치페르였지 아마. 꼭 한 마리만 얽혀 있는 것은 아니지."
"그건 지름길이잖아? 그렇지?"
"응, 맞아 악마는 대가 없이 정보를 흘리진 않아. 모두 철저하게 득이 되는 일이 었기에 그렇게 행동한 거라고 보면 되지. 가면 세 개를 모으면 루치페르가 모습을 보일 거야. 그러도록 루시퍼님이 명령해 놓았으니까."
"자 그럼 가면은 누가 만든 거야? 가면의 목적은 무엇이지?"
"세상의 죄악을 가리는 거지. 각기 가면은 죄악과 공포와 믿음을 상징한다. 그건 너희를 만들기 전 저쪽 애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물건이야. 음, 어쩌면 실패작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 쓰임새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흰 것들을 타락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
"너희에게는 상관없고?"
"물론 우리에게도 좋지 않은 거지. 그걸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몇 명 안 돼. 제약이 걸려 있거든. 하지만 유일한 규격 외품인 너희들은 제약에 상관없이 가면을 이용할 수 있지."
"규격 외품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뭐야?"
"말 그대로 잖아! 누구도 원하지 않았는데 나타난 거야. 생각해 보라고 종이 전혀 다르면 자손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거야. 유전자 구조 자체가 다르니까. 악마와 날것 그대로의 천사는 절대 융합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봐 빛은 어둠을 물리지? 어둠은 빛을 절대로 삼킬 수 없어. 아주 작은 빛 하나라도 어둠 속에서는 빛이 나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 이치를 역행하는 존재가 너희들이야. 우리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지만, 저쪽 친구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더라. 급히 너희를 구제한다고 설쳐 댔지만, 저쪽에서 죽기 살기로 나오는 바람에 너희는 거의 다 처분되었고 중요한 몇 마리만 겨우 건져서 다른 외우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영혼만 빼내 초월체의 유배지로 날려 보냈고."
"초월체란 무얼 말하는 거지?"
"네가 알기 쉽게 설명한다면 너희와 같은 생명체다. 불멸이 아닌 필멸의 생명체이긴 한데 범우주적인 녀석들로 신의 힘을 뛰어넘는 엄청난 발전을 이룬 종족이다. 아마도 전 우주 통틀어 가장 완벽한 생명체이며 진화의 정점에 선 종족들이지. 그들은 육체와 정신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종족이야. 심지어 죽음마저도 통제하는 불가사의 한 놈들이지."
"쉽게 말해 우주에서 가장 선구자적인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그럼, 여기가 왜 유배지야?"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 마련이지? 여긴 그들의 감옥과 같은 곳이야. 인간의 특이한 형질 때문인데 아마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효율이 좋은 영혼의 그릇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란 종족이란 말이야. 그릇은 무얼 뜻하는지 알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게 그릇이잖아? 흰 것들도 담을 수 있고 우리는 물론 초월체의 영혼도 담을 수 있는 만능 그릇이라고. 왜 우리가 인간의 영혼을 기를 쓰고 모으는 건지 이해하겠지? 인간 영혼 하나만 손에 쥐어도 인간으로 따지면 금덩이 하나 주운 거나 마찬가지인 기쁨이란 거지."
"가만! 그럼 가면을 모으는 이유가 천사를 상대하기 위함인가?"
"아마도···. 네게 가장 소중한 무기가 되어 줄 거야. 흰 것을 상대하는 것 보다는 너를 보호하는 데 사용하는 거지. 사실 그 가면은 너와 아주 큰 관련이 있어. 그건 네가 세 개를 다 모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내 아버지는 누구지?"
"그런 질문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 왜냐하면 그분이 그걸 바라지 않으니까."
"루시퍼는 아니겠지?"
"절대로."
"그분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분도 게헤나에 있는가 보지?"
"아니 나 같은 존재는 감히 그분이 어디에 계시는지 절대 알수 없어. 크크크."
"내 존재를 처음 알아차린 것은 어머니다. 그녀는 누구지?"
"만인의 어머니라서 말이지. 꼭 네가 그분의 자식이라고 할 수는 없어. 네 몸은 이브의 것이며 네 영혼은 만마의 소유물이라고 정의되어 있으니까."
"네필림은 영혼이 없다고 들었는데?"
"없다는 표현 보다는 인간의 영혼과 달라서 그런 표현을 한 모양이네. 인간의 영혼이 담는 그릇이면 우리 같은 존재는 담기는 쪽이지. 너도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불멸로 살고 있잖아. 인간의 그릇은 씻어 버리면 그것에 담긴 모든 것이 세척돼. 전 생애는 포도주가 담긴 그릇이라면 이번 생애는 양고기가 담긴 그릇이 될 수도 있고 더러움의 오물이 담길 수도 아니면 찬란한 재화가 담길 수도 있고 진짜로 말이야. 인간의 영혼은 우주 만물을 모두 담을 수 있다고 그래서 더더욱 가치 있는 거지. 그러니까 다들 더 탐을 내는 거고. 흰 것들은 그것이 남용되지 않게 미친 듯이 지키려 하는 거지."
"어머니는 나를 어떻게 찾았지? 정확한 그분의 진명이 뭐지? 혹시나 했는데 이브는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그녀는 연옥에 있어서 아무도 손을 못 대. 그녀는 연옥의 여왕이야."
"내가 추측해 보건대 만인의 어머니라면 릴리스라고 봐야 하나?"
"아, 단어의 의미로 유추하면 릴리스님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좀 더 단계가 낮은 데몬의 어머니고 너와는 전혀 무관한 분이시다."
"왜 말해 주지 않는 거지?"
"역시 그분이 원치 않으니까."
"너도 모르지?"
"빙고. 눈치 빠르네. 난 분수를 아는 악마라고. 내 주제에 그런 비밀을 알고 있다면 이런 짓 따위 할 레벨이 아니겠지."
"짜식이 모른다면 모른다고 하지 둘러대기는···."
"대화는 철학적으로 하는 것이 재미있는 거야. 상대의 심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그런 묘미가 있는 거지."
"천사는 왜 차원이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는 거지?"
"칠죄종이 그걸 너더러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거잖아. 그런데 서로 눈치 보고 있었어. 물론 손을 먼저 쓴 쪽은 바알님이시고 너를 교차로 악마로 만들어서 다른 차원으로 보내 흰 것들에게 네 존재를 알렸어.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기다리고 있는 거야."
"···. 하. 이놈의 새끼들 다 내 머리 위에서 놀고 있었네."
"킥킥킥. 셀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온 분들이다. 넌 그런 분들 손톱 밑에 때보다 못한 놈이야."
"파리 교단은 그렇다 치고 피의 교단은 왜 내게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거지? 아스모데를 시켜서 내게 왜 권능을 준 거지?"
"당연히 교단의 수장이 하는 생각을 우리가 뒤에서 왈가왈부할 수는 없어. 우리는 그냥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장기판 위의 말일 뿐이니까. 하지만 오늘을 네게 뭐든 말하라고 해서···. 내가 아는 범위 내로 말하자면 역시나 게헤나에서 기득권을 가지기 위해서지. 넌 만마의 소유물이니까 그렇게 제정된 일종의 규율을 적절히 이용한다고나 할까?"
"그런 규율은 누가 정한 거야?"
"루시퍼님이랑 최초의 네필림을 만든 그분 둘이서 정한 거야."
"다시 초월체라는 존재들에 관한 질문인데 그놈들 영이 인간의 몸에 빙의되어 유배지 생활을 한다는 거지? 그럼 그 초월체라는 자칭 우주 최강이라는 그놈들은 천사와 너희의 대립에 개입하지 않는 거야? 네가 그 정도라고 하면 너희 존재에 개입하고도 남을 정도잖아?"
"에, 그렇긴 하지. 하지만 결이 달라. 정확히 말해 제 삼의 세력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그들도 우리 일에 간섭하지 않듯이 우리도 그들 일에 절대 간섭하지 않아. 흰 것들도 마찬가지고. 뭐 속된 말을 빌리자면 흰 것들의 창조주도 초월체 출신이라는 말이 있어.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 사족을 덧붙이자면 근거 없는 소문은 없다 정도일까? 하하."
"좋아 다시 이쪽으로 돌아와서 질문하지. 지금 이 행성에 인간을 왜 이따위로 만든 거지?"
"우리가? 말도 안 되지? 야 생각해봐. 풍선에 구멍이 나서 바람이 빠지는데 그걸 막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라고 풍선 안의 바람이 계속 뿜어 나오고 있어. 우리는 그걸 막을 방법을 찾느라 이십 년째 고생 중이라고."
"이십 년은 무슨 여긴 이백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
"그건 너희와 움직이는 시간이 달라서 그러지. 이십 년이라고 표현한 것은 네가 이해하기 쉬우라고 하는 말이고 너희 시간은 빛의 속도가 기준이지만 우리나 흰 것의 시간 기준은 타키온 입자란 말이지. 빛과 타키온은 움직이는 속도가 달라서 시간의 괴리가 일어나는 거야. 칠죄종이 너를 주시하는 것도 전 우주 통틀어 너만이 타키온 입자에 관여할 수 있는 특기를 지녔으니까. 물론 본신을 찾아야 그 힘을 가용할 수 있겠지만. 아니지 엄밀히 말하면 한 놈이 더 있어. 빛의 시간에 간섭할 수 있는 네필림이 한 명 더 있지. 그놈을 모노스 테리움이 데리고 갔어. 그놈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게헤나에도 영향이 미친다고 그러니 칠죄종이 다시 수억만 년 만에 회합 장소로 나오는 거고."
"우리는 참 재미있는 세상에 살고 있구나."
"또 묻고 싶은 거 있음 말해봐."
"내 질문에 뭐든 거짓 없이 답하는 거지?"
"기브 앤 테이크에서 이미 기브를 했으니 당연한 거다. 모르는 것 빼고 알고 있는 것은 다 말해 주라고 했거든."
"인간 수확장 하나 찾고 있는데···."
"바르타무스가 속았다고 길길이 날뛰던데 그 감당 어찌하려고?"
"천사의 기원은 이미 주었다."
"반쪽짜리 말이지?"
"완전체라고 녀석이 먼저 말하지 않았어. 하권은 단달리온이 가지고 있으니까. 그건 정당한 거래였어."
"넌 기브 앤 테이크의 기브를 어겼어."
"난 상권을 넘겨주었어. 녀석은 완전체라고 하지 않았고."
"맘몬의 탑에서 떨어진 애들 구하려고? 그 애들 어느 인간 수확장에 갇혀 있는지 바르타무스가 알고 있어. 아마 네가 찾으려 하는 것을 알고 이미 애들을 빼돌렸을 거야. 교차로 악마는 인간 수확장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관리하는 수확장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겠지."
"후. 녀석을 소환해 족쳐야 하나?"
"무슨 소리야? 기브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면 되는 거지. 아니면 또 다른 거래를 트거나. 바르타무스를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야. 특히 바르타무스는 지혜의 교단 소속이라고 그곳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곳이야. 단번에 재소한다고 난리 칠걸."
"아. 씨발 신경 쓰이네."
"그러게, 인간은 뭐 하러 구해? 그냥 잊어 버려."
"그네들 구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야. 나 자신의 무능함에 화가 나서 내 뜻대로 그들을 구해내야 직성이 풀릴 테니까."
"그럼 바르타무스에 거래를 걸어 기브 앤 테이크 그 간단한 원리만 이용하면 그 어떤 악마와도 거래할 수 있으니까. 심지어 오늘내일 죽이려는 적이라고 상관없지. 게헤나에서는 모든 법칙에 기브 앤 테이크가 일 순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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