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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쿡 님의 서재입니다.

내 머릿속 공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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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쿡
작품등록일 :
2024.01.15 10:31
최근연재일 :
2024.04.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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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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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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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랭커가 되다(3)

DUMMY

따각. 따각. 오늘따라 발소리가 크게 울린다.

평소보다 훨씬 고요한 느낌. 차분하게 내려앉은 밤공기를 가르며 한가연은 씩씩하게 집을 향하고 있었다.


“으··· 오늘따라 너무 조용하네.”


그래도 사람 한둘은 꼭 마주치던 골목길.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이 없다.

달빛은 구름에 가렸는지 희미한 가로등 불빛 외엔 어둠뿐인 길.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고개를 흔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응?”


멀리 어둠 속에 희끄무레한 게 있었다. 건물의 그림자 사이로 언뜻 비추는 그건 사람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뭐, 뭐야···”


사람인가. 그렇다기엔 조금 작아 보이는데.

잠시 멈춰 서서 보고 있으니 어둠에 적응된 눈에 희미한 교복의 형태가 보였다.


“어린 학생인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멀찍이 떨어져 길을 통과하려 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교복의 형태와 자그마한 체구가 눈에 띄었다. 아직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인 듯싶었다.


‘울고 있는데··· 어쩌지?’


밝은 대낮이었다면 다가가 말을 걸고 다독여 주었겠지만.

뭔가 께름칙했다.

탁. 탁. 탁. 모르는 척 학생을 지나치려는 그때.


“왜··· 그냥 가요?”


“···네?”


화들짝 놀라 뒤돌아 보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아이의 앳된 얼굴이 보였다.


“울고 있잖아요. 근데 왜 그냥 지나가요?”


“아, 아··· 몰랐어요. 괜찮아요? 무슨 일 있어요?”


“늦었어요. 내 루틴인데. 와서 다독여줬어야 하는데··· 왜··· 왜!!!”


“······?!”


목덜미를 파고드는 작은 손바닥이 느껴진다.

목이 꽉 죄여오며 숨이 막히고, 눈앞이 흔들거렸다.


“컥··· 컥··· 제···”


살려달라고 소리쳐보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설마 그 살인범인가. 여대생을 노린다는 연쇄 살인범에 대한 짤막한 기사가 머리를 스쳤다.


‘나··· 나는··· 죽기 싫어···”


발버둥 치는 몸에 힘이 빠진다. 이대로 죽는···


퍽! 털썩.


“허억···.헉···.후우······”


한가연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며 눈앞의 상황을 살폈다.

내 목을 잡아 비틀던 어린 학생이 쓰러져 있었고, 그 앞을 가로막은 건장한 남성의 등판이 보였다.


“누··· 누구······”


***


“후우···”


믿을 수가 없다. 나는 귓가에 파고드는 여성의 목소리에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눈앞의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로스의 반지를 사용해 은신상태로 한가연의 뒤를 따랐다.

며칠 따라다니면 범죄현장을 발견하고 연쇄살인범을 잡을 수 있으리란 판단이었다.


판단은 맞았다. 연쇄 살인범을 찾아냈으니까.

다만 그 연쇄살인마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란 게 문제였을뿐.


“이···주원.”


화랑 탐험대의 마스코트 같은 귀엽고 활달한 아이가. 다재다능하고, 뭐든지 잘하던 그 똑똑하고 똑부러지던 아이가. 대체 왜 여성의 목을 움켜쥐고 있던 걸까.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잠시 뇌에 과부하가 왔는지 머리가 멍하다. 눈앞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지 못해 인지부조화가 온 것 같았다.


“······태오형.”


“주원아.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태오형이 여긴 어쩐 일이에요?”


“아니. 여기서 뭐 하고 있던 거야? 말해봐. 혹시 무슨 저주라도 당한 거야? 아니면 게이트 부작용 중에 하나인가? 혹시 치료받던 게 있었어? 약 먹는 게 있었다던가···”


다급하게 말이 튀어나온다.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태오형. 나는 병이 있어요.”


“그래. 병, 병이구나. 무슨 병이야? 그래서 게이트국에서 관리받던 거구나?”


“사람을 죽이는 걸 참지 못하는 병이에요. 2주에 한 명 정도는 죽여야 하는데, 저번에 걸려서 한 달 넘게 못 죽였어요. 그래서 미칠 것 같아요. 이런 기분을 알아요?”


“······뭐라는 거야. 이주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말해. 지금 무슨 말하는 거야?”


“형도 알잖아요. 아니까 온 거잖아요! 이건 내 책임이 아니에요. 이런 충동이 드는 걸 어떡해요. 그냥 자꾸 치밀어 오르는데. 배가 고픈 것처럼. 잠이 오는 것처럼. 그렇게 찾아오는 걸 어떻게 해요? 이렇게 태어난 걸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인정해야 한다. 이주원은 연쇄살인마가 맞다. 지난 삶에선 끝까지 발각되지 않았던 그 무도하고 흉악한 연쇄 살인마.

그래서였나. 어린 나이에 이렇게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면서 이후에 이름이 남지 않았던 이유가.


“··· 게이트 관리국 소속의 탐험가에겐 범죄 행위에 대한 즉각 체포 권한이 있지. 이주원. 순순히 따라와라.”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내가 왜요?”


이주원의 양손이 빛을 머금었다. 급격한 마력의 집중으로 주변의 공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후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는 공간확장용 벨트에서 3단계 결계 생성기를 꺼냈다.

손목에 찬 ‘게이트워치’ 를 눌러 긴급 구조 신호를 보냈고, 가슴 언저리에 달린 카메라로 상황이 잘 찍히고 있는지도 확인했다.

모두 랭커가 되며 지급받은 물품들이었다.


“주원아. 너 좀 맞자.”


결계 생성기로 대상을 지정하자 나와 이주원을 둘러싸고 거대한 막이 생겨났다. 막 안쪽 공간은 외부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었다.


“형. 내가 형한테 질 것 같아요?”


쿠궁! 벼락이 날아든다. 피할 새도 없이 빛무리가 몸을 강타했다.

몸을 꿰뚫은 번개에 몸이 잠시 마비된 순간 이주원의 날카로운 단검이 눈동자를 정확히 찔러왔다.

깡! 눈동자에 닿은 단검이 뒤로 튕겨나갔다.


“빠르네.”


평소보다 훨씬 빠른 몸놀림이다. 아니, 빙하 리치를 잡을 때 한번 시야에서 놓쳤었던 그 움직임이려나.

나는 가로스의 반지를 활성화해 회피력을 극대화했다. 동시에 육체의 움직임을 일깨우며 그동안 훈련했던 감각을 곤두세웠다.


휙. 쉬익. 툭. 이주원의 공격이 눈에 익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왼쪽 가슴을 찌르는 단검을 맨손으로 낚아채자 이주원은 미련 없이 단검을 버리고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콰광!! 손에 쥔 단검이 폭발했다.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폭발이었다.


“이런 젠장···”


윗도리가 전부 날아갔다. 옷이 자꾸 찢어지는 게 불편해 비싼 돈을 들여 제작한 바지는 다행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형. 진짜 튼튼하네요?”


“내가 어디 다치는 거 본 적 있어? 딱 한 대만 맞고 가자.”


“싫어요. 맞는 거 딱 질색인데.”


이주원의 몸이 투명해지더니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가 가진 초보적인 탐색 마법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고등급의 은신이었다.

여기서 같이 은신을 쓰면 꽤 재밌는 상황이 펼쳐지겠지만.


퍽. 퍽. 나는 날아오는 마법을 맨 몸으로 맞았다.

땅바닥이 물컹해지며 몸을 빨아들였다. 나는 발바닥에 마력을 집중하고는 물컹한

바닥을 짚고 멀리 벗어났다.

아주 기본적인 경신법(輕身法)이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배울 땐 그냥 잡기술을 배운다는 생각이었는데. 역시 팀장님의 말은 다 듣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된다.


“그게 뭐예요? 형 그런거 못했잖아요.”


“요즘 수련 중이야. 팀장님한테 배웠다.”


“하··· 대충 파묻어두고 튀려고 했는데, 귀찮아졌네.”


“어디로 튀려고? 갈 곳은 있고?”


“당연히 게이트국으로 가야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하하하. 아니, 태오형. 진짜 모르는 거예요, 아님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무슨 소리야?”


나는 짐작 가는 게 있었지만 잠자코 물었다. 이주원의 입으로 직접 답을 듣고 싶었다.


“임한수 국장도 알고 있어요. 내 상태. 그냥 두는 거예요. 쓸모가 있으니까.”


“그래? 그럼 가서 확인해 보면 되겠지. 얌전히 한 대만 맞자.”


나는 다리에 힘을 모았다. 김어수에게 배운 [신속] 마법을 걸고, 온몸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탁. 가벼운 소리와 함께 바닥을 박찬 나는 모습을 드러낸 이주원의 코앞까지 한달음에 다가갔다.


쾅! 이주원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자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이주원의 몸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분신체였나. 이런 기술도 있는 줄은 몰랐는데.


“형. 왜 이렇게 빨라졌어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빨리 강해질 수가 있는 건가요?”


이주원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눈에 보이는데 집착하지 않기 위해

두 눈을 감고는 오로지 주변의 마력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말 좀 해봐요. 어떻게 이렇···!”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서북쪽으로 8m 지점.

감각이 포착한 순간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달려든 내 주먹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로질렀다.


퍼억! 무언가 손에 걸렸다. 손맛이 제법 좋았다.


“커억··· 어떻게···”


한참을 튕겨나가던 이주원이 결계벽에 부딪혀 멈추고는 피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형. 대체 숨겨둔 기술이 몇 개나 있는 거예요?”


스윽. 입가의 피를 닦은 이주원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주원의 주위로 붉은 아지랑이가 넘실거렸다.

그리고.


툭. 이주원은 품에서 거대한 가위를 꺼내 들었다. 1.5미터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가위였다.

핏기를 잔뜩 머금은 가위를 보는 순간. 나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게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혁명가 마원. 그게 너였나.’


스스로를 혁명가라 지칭하는 존재들. 하나같이 괴랄한 능력을 자랑하던 상위 랭커들. 그들 중에서도 잔혹함으로 크게 이름을 날린 게 ‘마원’이었다.

이주원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내가 모르던 이름으로 살고 있었던 것일 뿐.


“이것까지 꺼내게 만들다니. 귀찮게 하네요. 형.”


“그거면 자를 수 있겠어?”


“하하하. 아뇨. 형은 너무 단단해서 안될 것 같아요. 진짜 튼튼한 몸이네요. 어떤 마정을 집어먹었으려나~”


“그래. 인정해야겠다. 넌 연쇄살인마가 맞아.”


“맞아요. 나는 살인마입니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만 노리는 살인마요. 하하하하”


이주원은 크게 웃다가 갑자기 뒤를 돌더니 가위로 결계에 가위질을 시작했다.

끼긱. 끼기긱. 쇠창살을 비트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우···”


나는 다시 경신법을 이용해 몸을 가볍게 하고 이주원의 뒤로 순식간에 날아가 주먹을 내질렀다.

이주원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로 주먹을 가볍게 피해냈다.

쾅 소리와 함께 결계에 박힌 주먹을 따라 기다란 선이 그어졌다. 결계가 깨지고 있었다.


“너···!”


“탐색 능력은 영 신통찮던데. 한번 잘 잡아봐요.”


무너지는 결계를 배경으로 투명해지는 이주원의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면 놓칠게 뻔해 보였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결계는 시간을 끌기 위한 용도였을 뿐이니까.


[데미그로의 포승줄]. [번뇌하는 마탄]. [최상급 마비].


깨진 유리처럼 조각조각 떨어지는 결계 바깥에서 수많은 기술들이 날아와 이주원을 감쌌다.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을 가진 거대한 줄이 이주원을 감싸고 조였다.

푸르고 노란 마력덩어리가 이주원을 포위하듯 날아와 파고들었다.

튼튼한 줄에 묶인 채 마비된 이주원은 처음으로 웃음을 멈췄다.


“고생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턴 저희가 맡겠습니다.”


포승줄의 끝을 잡고 선 건 게이트 관리국의 이기후였다.

그 뒤로는 임한수 국장을 비롯해 처음 보는 각성자들이 여럿 포진하고 있었다.

기업에서 보내온 각성자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왜 게이트 국이 먼저 와있는 걸까?


“여성분께 상황은 전달 들었습니다. 자세한 조사는 정보부에서 맡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아, 영상도 주시겠습니까?


“···여기요.”


나는 가슴부근에서 카메라를 해체해 게이트 국의 직원에게 전달했다.

카메라를 받아 든 이기후는 냉랭하게 축객령을 내렸다.


“오늘은 집에서 푹 쉬십시오. 전달 사항이 있다면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네.”


여전히 마비된 채로 소리도 내지 못하는 이주원을 바라보다가 나는 억지로 몸을 돌려 현장을 벗어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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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강릉(4) 24.04.02 37 0 12쪽
50 강릉(3) 24.04.01 37 0 12쪽
49 강릉(2) 24.03.29 42 0 12쪽
48 강릉(1) 24.03.28 47 0 12쪽
47 유월(逾越)(7) 24.03.27 50 0 13쪽
46 유월(逾越)(6) 24.03.26 46 1 13쪽
45 유월(逾越)(5) 24.03.22 55 0 13쪽
44 유월(逾越)(4) 24.03.21 54 0 12쪽
43 유월(逾越)(3) 24.03.20 61 0 13쪽
42 유월(逾越)(2) 24.03.19 60 0 15쪽
41 유월(逾越)(1) 24.03.18 68 1 13쪽
40 5번방의 괴생명체 24.03.15 70 0 15쪽
39 음모(2) 24.03.14 74 0 15쪽
38 음모(1) 24.03.13 71 0 16쪽
» 랭커가 되다(3) 24.03.12 74 0 13쪽
36 랭커가 되다(2) 24.03.11 75 0 13쪽
35 랭커가 되다(1) 24.03.08 77 1 12쪽
34 새천년(2) 24.03.07 87 0 14쪽
33 새천년(1) 24.03.06 82 1 13쪽
32 침식당한 학교(2) 24.03.05 87 1 14쪽
31 침식당한 학교(1) 24.03.04 89 0 14쪽
30 두 번째 게이트 탐험(6) 24.03.01 93 0 14쪽
29 두 번째 게이트 탐험(5) 24.02.29 98 1 14쪽
28 두 번째 게이트 탐험(4) 24.02.28 103 1 14쪽
27 두 번째 게이트 탐험(3) 24.02.27 102 0 13쪽
26 두 번째 게이트 탐험(2) 24.02.26 11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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