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실험 개시 14화 [그들의 이야기(1)](R)
앨리스와 현실세계(Alice and the Real World)의 첫 부 "꿈의 세상"편입니다.
[선영고등학교 회의실]
회의실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학생들에게는 일어난 일을 함구하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했으나, 일단은 응급실에 간 두 교사의 건강이 문제였다. 마냥 운동장에서 기다릴 수도 없는 것이기에, 그리고 지금은 병원에서 알아서 신경 쓰고 있을 것이었기에 부장급 교사들은 다들 회의실로 매 쉬는 시간마다 모이고 있었다.
일상적인 사고였으면 했다. 그 사고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사고가 터진 것은 꽤나 오래된 일이고, 그 사이에 선영고등학교에서 별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기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있었다.
젊은 선생님들에게는 그들이 이 학교에서의 근무를 시작하기 이전이기에 기억조차 없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그 일을 겪은 아이들 중 선영고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선생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당시에 이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를 하던 교사 중 남아있는 사람은 박병준 교감과 장형일 교장 뿐 이었다. 그나마 장형일 교장은 건강상의 문제로 장기병가 중이었다.
“일단 한기준 선생님은 깨어났다고 연락 왔습니다. 본인은 바로 퇴원하겠다고 한 것 같은데 병원에서 하루 정도 지켜보고 퇴원하는 것을 권유했다고 하더군요”
“다행이네요. 어떻게 된 건지는 알아보셨습니까?”
“일단 한진수 선생 말로는 사이렌 소리가 커서 수업에 방해가 될까봐 유형준 선생이 확인하려고 나갔던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벼락에 맞은 것 같다고 하네요. 본인이 왜 정신을 잃었는지는 모르겠다고 하는데, 아마 꽤나 놀래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이렌 소리. 박병준 교감이 알기로는 학교 교내에 사이렌이 울릴만한 모든 스피커는 이미 과거에 철거했다. 안보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공습경보 등을 발령하기 위한 스피커들인데, 오래되기도 오래됐고 지난번 사건 이후에 무엇인가 일련의 사고들과 연관성이 있어 보여 당시에 철거 후 학교 밖 골목 전신주에 위치한 사이렌을 사용하기로 구청과 합의를 봤었다. 소리가 교내로 들어올 수는 있었으나, 교내에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스피커는 없었다.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했지만 지난번 사건 때도 사이렌이 울렸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학교 교사들의 불면증이 시작되었었다.
선영고등학교는 그 이전까지만 해도 교내 체벌이 없었다. 자랑이었다. 다만 그 사건 때 사고가 터지면서 그러한 미담도 끊겼던 것이었다.
'설마'
이번에도 그런 일이 터질 것이라면, 사전에 막아야 했다.
“메신저로 각 교사들에게 학생 생활지도시 체벌은 금지, 그리고 덥고 비가 급히 쏟아지는 날씨에 학생 건강관리 유의사항 좀 보내주셔요. 선생님들 건강도 신경써주시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다른 사항은 없으신가요?”
“네, 고생 좀 해 주세요, 교무부장님”
다음 단계는 불면증이었다.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몰랐다. 한진수 선생과 유형준 선생이 이미 불면증을 겪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퇴근 후 병원으로 가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이야기-박병준의 기억]
며칠 째 비가 내렸다. 봄이나 가을에 내리는 비와 장맛비는 그 느낌이 달랐다. 쏟아지는 비는 별로 없으나 비로 세상을 담그려는 듯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내리는 일정량의 비. 농부들에게는 어느 정도 장마가 있어야 가을에 수확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장맛비는 가뜩이나 더위로 지친 몸에 기분까지 한껏 가라앉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가 계속해서 내릴 때면, 선영고등학교의 등굣길은 비로 생긴 작은 개울물을 피해가는 난코스다. 산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빗물은 결국 서로 모여 몇 군데의 작은 개울을 만들고 함께 땅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선영고등학교의 위치는 딱 그 중간에 있었다.
그 해 여름날, 탁민호와 계현중은 선영고등학교에서 2년째를 보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3년 과정에서 가장 선생님들과 친밀도가 올라가 있는 시기. 3학년은 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더욱 길겠지만, 입시로 인해 사실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 있을 뿐, 학창시절의 마지막은 사실상 2학년이다.
며칠 동안 작은 개울물들을 피해 올라간 학교. 차가 있는 시절도 아니고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다들 피로에 민감해진다. 그리고 이런 시기가 학생들에게나 교사들에게나 가장 주의해야 할 시기였다.
단순히 날씨 때문에, 그리고 시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몇몇 선생님들이 더위에 잠을 거의 못 잔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단순한 피로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피로는 아니었다.
일이 터지기 며칠 전, 작은 사고가 있었다. 아침 등굣길, 교사들은 학생들보다 30분 정도 먼저 출근을 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선생님 한 분이 개울물에 쓰러진 채로 학생에게 발견됐다.
개울물은 사람이 빠지거나 지나가기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가 절대 아니었다. ‘접시 물에 코 박고 죽는다’라는 말이 있는 것 같이, 그 날의 사고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 선생님은 죽지는 않았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인가 했으나, 사실 며칠간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해 쓰러졌던 것이었다.
사람이 피곤하면 잠을 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정신부터 무너지게 된다.
날씨 때문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처음에 잠을 자지 못했던 몇몇 선생님들은 단순히 수업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정도였다. 이틀이 지나니 수업 시간에 갑자기 화를 내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리고 또 이틀이 지나고 체벌을 하지 않던 선생님들도 체벌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뭔가 잘못되어 있었다. 병원에서는 피로 때문이라고 쉬라고 하는데, 쉬질 못 하는 상황. 해결 방법은 알았으나 그 방법이 통하지가 않았다.
매로 훈육을 하던 선생님들이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두려움이 점점 커져갈 때 쯤, 선생님 한 분이 아이 하나를 피가 터지도록 때려놓은 사건이 터져버린다. 문제는 단순히 불면증 및 과로로 인한 폭력성의 발현이 아니었다. 마치 인간 내부에 잠재돼 있는 동물적 폭력성.
다수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달려들어 간신히 이 교사를 아이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명이 아니었다. 하루 동안 총 세 번의 유사한 사고가 이어졌다.
자연적인 불면증으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오히려 이 문제는 문제가 아닐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었다. 딱 세 명의 교사만 영향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진정되기는커녕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 듯 했다.
양호실 침대에 누워있던 한 명은 양호실 창문에 의자를 집어던져 유리를 깨고 운동장으로 뛰어나왔다. 임시적으로 교장실에서 그날 있었던 학생체벌과 관련하여 교장과 면담을 갖고 있던 한 명은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교장이 어께를 다쳤다. 그리고 상태가 그나마 조금 진정되어 있어 교무실에 있던 한 명은 사라져버렸다.
사라져버린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명의 교사를 급한 대로 쓰지 않던 지하실에 구금했는데, 당시 지하실은 이런 저런 과거의 잡동사니들로 가득했기에 지하실의 정확한 크기나 목적을 아는 자는 없었다. 지금은 다 타버린 목조건물 시절 건축된 지하실이었기에 설계도도 없고 사실상 사용하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 둘도 사라졌다.
이쯤에서 과연 탁민호와 계형준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야 할 때가 되었다. 사실 탁민호와 계형준 자신들은 이 때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그들의 행적을 단순히 따라가 보자면, 그 때 그들은 운동장 구석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수업시간에 그들 둘이 운동장에서 멍하니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애초에 수 년 간 아무 문제없이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근무하던 교사들 몇이 왜 갑작스레 불면증에 시달렸는지, 그리고 그렇게 폭력적으로 변했는지를 물어봐야 하는데, 이는 아는 사람이 없다. 아니,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탁민호와 계형준은 알았으나 더 이상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무엇인가, 자신들의 사고의 범위를 넘어서는 존재를 만났다. 그 나무에서...
여기까지가 박병준 교감이 자신의 기억과 그 시기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의 진술서를 종합하여 머릿속에 기억했던 내용이었다.
그 해 여름, 세 명의 교사가 실종되는, 선영고등학교 역사상 가장 큰 사고가 있었다.
앨리스와 현실세계(Alice and the Real World)의 첫 부 "꿈의 세상"편입니다.
- 작가의말
과거이야기....
2016.08.30. 대화체 및 표현방식 일부수정(내용변경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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