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변수들 50화 [종말(3)]
앨리스와 현실세계(Alice and the Real World)의 첫 부 "꿈의 세상"편입니다.
[선영고등학교 지하실]
"저리 비켜!!!"
계현중이 기계를 막 땅바닥에 내던지려 하는 찰나에 진수가 옆쪽에서 그의 몸을 부둥켜 안았다. 쓰러져 있던 형준이 지하실 넓은 공간으로 나오며 진수의 시야에 다시 들어왔고, 그가 계현중을 보며 소리를 지르자 지척에 있던 진수가 먼저 달려간 것이었다.
"잠깐요! 기다려보세요!"
사실 진수도 왜 자신이 형준의 말을 들었는지는 몰랐다. 저 기계가 부숴지면 어떤 결과가 야기될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지금 계현중의 상태는 갑작스레 조금 이상해졌다.
박병준 교감이 탁민호와 유기준 모두 힘에 부칠 정도로 거칠게 몸싸움을 하며 기계에 다가가려고 하고 있었고, 기계 앞에서 자판을 치던 계현중은 박병준의 그런 모습에 당황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소란에 잠시 멍한 듯 보이더니 갑자기 기계를 집어들고 던지려고 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내려 놓으세요!"
"이거 놔!!!"
뭔가 이제까지의 이성적 모습과는 분명 달랐다. 탁민호와 유기준이 애를 먹고 있는 박병준 교감과 비슷했다.
"잠깐만요! 어.. 어?"
둘이 엉켜있느라 기계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형준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지만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었다. 그도 한차례 공격에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얼굴은 귀 부분에서 흘러나온 피로 이미 젖어있었다.
기계가 곧바로 계현중이 안면 위로 떨어졌다.
"아아악~~~~!!!"
-쿵-
계현중이 곧바로 얼굴을 움켜쥐며 넘어지고, 그와 실랑이를 벌이던 진수도 함께 쓰러졌다. 진수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계현중이 감싸쥔 양손 사이로 피가 상당히 많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계현중의 얼굴에 맞은 기계가 결국 땅 바닥에 떨어졌다. 다행이 크게 고장이 날 만큼 강하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형준이 곧바로 떨어진 기계를 주워들었다.
"다들 밖으로 나가요!!!"
이 소리만 지르고는 형준이 나가려는데 이제까지 빛이 닿지 않는 주변에만 머물던 형체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역시 그들은 셋이었고, 건강상태가 심히 좋지 않아 보이긴 했지만 사람이었다.
탁민호와 계현중, 그리고 박병준 교감은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과거사건 당시 실종됬던 세 명의 교사들.
이미 수 십 년이 지난 상황이었으나, 그들의 몸은 의외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많이 야위었지만 나이가 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옷은 이미 삭아 없어진 것인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이 실로 기이했다.
그들이 형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형준이 자신이 나가야 할 문을 보면서 뒷걸음질쳤다.
'셋이면... 무리인가? 그래도 어떻게든...'
"뚫고 가, 유형준 선생!!!"
형준의 바로 옆으로 누군가가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누군가가 어느새 그의 옆에 와서 어깨를 붙잡았다. 얼굴이 많이 다친듯한 계현중이었다. 탁민호와 유기준, 그리고 진수의 얼굴도 보였다.
그들의 눈앞에 노년의 박병준 교감이 이상행동을 보이는, 그리고 그들을 공격한 세 명의 사람들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그들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지 모르지만...
박병준 교감만으로 부족했다. 그는 지금 이들에게 미안했기에 혼자서 이겨보려 나섰으나 셋을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다른이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탁민호와 계현중이 곧바로 박병준 교감의 뒤를 따랐다.
"미안하오~!"
박병준 교감이 먼저 앞을 가로막은 자들에게 도달했다. 달려오며 부딛치는 힘과 속도로 밀어내려 했지만 너무 간단하게 막히는 듯 했다. 보기에는 오랜 세월을 보낸 자들이라 그리 강해 보이지 않더라도 그들은 일반 사람이 아니었다.
"민호야! 꼭 살아라!"
"할 얘기가 많은데, 끝나고 하자!"
곧이어 계현중과 탁민호도 그 몸싸움에 돌입했다. 계현중의 얼굴은 기계에 맞은 충격으로 피가 흘러내리는 중이라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모습이 흡사 야차와 같았다.
철옹성 같던 그 존재들의 사이로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이들이 그들을 부수지는 못했다. 그들은 강했다. 원래 보통의 사람들끼리 아무리 치고받고 싸운다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걱정도 같이 안고 싸우는 것이라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것을 고려하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틈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으아악~! 빠져 나가요! 어서!"
탁민호가 있는 힘껏 한쪽 방향으로 그들을 밀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 사이 틈으로 형준, 진수, 그리고 유기준까지 빠져나갔다.
입구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일단 문 앞에는 어느 누구도 없었다.
"나무! 그 나무같이 생긴거...헉..."
급하게 뛰어나오느라 다들 숨이찼다. 기계를 가슴팍에 꼭 안고있던 형준의 말에 진수나 유기준은 의아했다.
"무슨.. 나무요?"
"그건 왜 부수지 않은거에요?"
진수가 기계를 부수려는 계현중을 막긴 했지만 왜 형준이 그렇게 소리질렀는지는 몰랐다.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싶은 마음에 그냥 따랐던 것인데 계현중이 심하게 다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거 부수는게 그들이 원한 상황이야.. 후... 그 나무같은거.. 우리를 공간으로 보냈던거. 그걸 부숴야해"
형준이 말한 나무가 무엇인지는 알아냈다. 하지만 아직도 '왜'에 대한 답변이 없었다.
"그러니깐, 왜요? 왜 그 나무.."
-빠직...-
소름 끼치는 소리가 진수의 뒤에서 들렸다. 그의 말이 갑작스레 멈추더니 마치 번개에 맞아 쓰러지듯 잠시 경직되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뒤편으로 보이는 것은 아까까지 지하실 입구 앞에서 멈춰있던 아이들이었다.
"진수.. 읍.."
유기준이 형준의 목을 뒤에서 끌어당기며 반대편인 본관동 문으로 움직였다. 굉장히 빠른 움직임이었는데, 이는 형준이나 진수에 비해 지하실에서 큰 체력소모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좀 놔줘요"
"진수씨가 시간을 벌어줬어요. 빨리 해야 할 일을 하셔요"
'해야 할 일. 그래, 나무다. 그걸 부숴야 한다'
하지만 본관동 뒷문으로 들어온 그들 앞에 아이들이 또 있었다. 뚫고 가기에는 지금 형준과 유기준 두 명으로는 어려웠다. 그들의 진로가 전부 막혔다. 계단으로 급히 올라갔다. 뒤로는 아이들이 괴성을 내며 쫓아왔다.
이 계단은 위로만 향한 것이라 그 끝에는 옥상 뿐이 없었다. 도망가는 둘과 다수의 아이들의 발소리만이 학교에 울리고 있었다.
[인류재건연구소-미래]
"박사님, 오랜만에 뵙네요"
젊은 정장차림의 남성이 이 여성을 보고는 꼭 껴안으며 말했다. 그녀는 이미 환갑을 넘은 모습이었기에 남녀간의 포옹은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은 모자지간의 사이처럼 보였다.
"요즘 잘 나가고 있다면서? 바쁘신데 여기까진 또 무슨 일이야"
"가끔은 찾아뵈야죠. 고향인걸요"
운동으로 잘 다져진 남성의 다부진 체격은 정장의 핏으로도 숨길 수 없었다. 무슨 일을 하는 건지는 외모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주변에 더욱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 둘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인물 같았다.
"엄마... 보러 온 거니?"
그녀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이 남자가 이곳에 올 이유는 그것밖에 없었다. 단순히 엄마같은 그녀를 만나기 위함이었다면 밖에서 만났을 것이었다.
"네, 가끔이라도 와야죠. 언젠가는 돌아오실테고요. 아직 예전상태 그대로이신가요?"
"응, 아무래도 아직 그녀의 여행이 끝이 나질 않은 것 같아"
"오래되셨네요... 30?"
"넘었지. 네 나이가 35이니... 그 정도 됬겠구나. 같이 들어가자. 인사도 드리고"
둘은 조용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과거와 같이 이 시설에 삼엄한 경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언제나 이곳에 오면 기분이 이상해졌다.
제대로 사용한지 오래된 연구소의 복도는 어둠컴컴했다. 하지만 이는 전력량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벽에는 작은 돌기 모양의 발광체가 은은한 빛을 항상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습기도 어느정도 들어왔는지 벽이 눅눅했다. 비가 많이 오면 물도 새는 듯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복도를 지나고 가장 안쪽의 공간에는 그가 찾는 여자가 누워 있었다.
생명유지장치가 그녀의 몸을 견디게 해주고는 있었으나,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이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 같지 않았다.
그가 지켜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처음 그녀가 이 자리에 눕게 되는 30대 초반 여성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머니, 언제 돌아오십니까...'
앨리스와 현실세계(Alice and the Real World)의 첫 부 "꿈의 세상"편입니다.
- 작가의말
고갈.... 에너지 고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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