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실험 개시 16화 [과거와 현재의 영웅들(2)]
앨리스와 현실세계(Alice and the Real World)의 첫 부 "꿈의 세상"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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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율대학병원 응급실]
“유형준씨, 정신이 좀 드세요? 유형준씨. 알아들으시면 반응 좀 보여주세요”
응급실이 잠시 소란스럽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특별히 어떤 외부 자극에 반응도 보이지 않던 형준이 조용히 고개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유기준이 옥상에서 내려왔을 때 형준은 유기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었다. 유기준은 형준에게 다가가 의대 시절부터 항상 들고 다니던 라이트를 형준의 눈에 비추며 반응을 물어봤다.
“유형준 선생님 깨어나신 건가요?”
그리고 아직까지 바로 옆방에서 정신을 차리고 잠시 쉬고 있던 진수는 유기준의 목소리를 듣고 유형준이 누워있던 방으로 들어왔다. 이제까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던 형준이었기에 그가 깨어났다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진수는 도대체 형준이 보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제일 먼저 물어보고 싶었다.
“형준씨!”
미희가 급히 형준에게 달려왔다. 막 병원에 도착했던 미희는 응급실에서 형준의 위치를 물어보고 오는 중이었다. 형준의 방금 전 까지 상태를 미희는 아직 알지 못했다. 미희가 들었던 것은 형준이 벼락에 맞아 쓰려져 있던 것 같았다는 박병준 교감의 말 뿐이었다.
“어? 무슨 일이야?”
형준의 첫 마디는 자신이 잠든 곳과는 다른 장소에서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의 할 말과 비슷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가까이 있던 미희와 유기준, 그리고 진수를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이 유기준의 의사가운에 멈췄다.
“병원인가요?”
“네, 한율대학병원 응급실입니다. 유기준 당직의입니다. 정신이 조금 드세요?”
형준이 기억하는 내용은 조금 후에 물어봐도 괜찮았다. 진수와 마찬가지로 형준이 정신을 차렸다는 것이 중요했다.
“네. 제가 여기 왜 있는거죠?”
“환자분 학교에서 쓰러졌습니다. 팔은 좀 어떠세요? 통증은?”
형준이 천천히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부터 팔꿈치 위치까지 약간의 화끈거림이 있었다. 그리고 붉었다. 마치 무엇인가에 데인 것처럼 붉었다.
“어? 이거 왜 이래요? 아프지는 않아요”
“벼락이 떨어질 때 주변에 계셨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약간의 화상만 있고 별다른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형준씨 괜찮은 건가요? 화상은 심한 거 아녜요?”
미희는 그래도 형준이 더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꿈은 꿈일 뿐이었다. 일단은 형준의 어리둥절한 모습이 차라리 나았다. 겉의 상처는 치유될 것이었다.
“네, 오자마자 얼음으로 열기 빼주기도 했고, 빗속이라 열기가 안쪽까지 들어가진 않은 것 같습니다. 색깔도 시간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것 같네요”
“형, 괜찮아요?”
“어, 진수쌤. 괜찮아. 여기 왜 왔어?”
“네? 형, 아까 저 운동장에서 형 따라갔던 것 모르셨어요?”
형준은 진수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진수가 형준을 따라갔던 것이고, 간신히 형준을 찾았을 때 이미 형준은 무엇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에 형준이 손을 뻗는 순간 번개에 맞은 것과 같은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형준은 진수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진수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은 이 자리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환자분, 혹시 기억나는 것 있으세요? 빗속에서 쓰러지기 전 까지 상황이요”
지금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형준의 멍한 모습과 달리, 형준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지금은 이 앞에 있는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말하면 안 될 시기였다. 이 의사는 조금 기다려야 했다. 유기준 또한 형준이 본 것들 가운데에 있던 사람이었다. 이 사건의 한 가운데에...
“아니요. 빗속에서 사이렌 끄러 달려갔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 어떻게 제가 여기 앉아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유기준에게 알릴 때가 아니었다.
[한율대학병원 응급실 앞 복도]
탁민호 경위는 충격으로 정신이 없는 미희를 데리고 한율대학병원으로 들어왔다. 신고내용으로 보아 분명 응급실로 곧바로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주차한 뒤 바로 응급실로 왔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환자는 깨어난 것 같았다. 혹시라도 상태가 많이 좋지 않으면 어쩌나 싶기도 했지만, 따지자면 자신의 일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냥 조용히 병원을 나와 지구대로 복귀하면 될 일이었다.
환자는 어느 정도 곧바로 회복할 수 있을 상태인 것 같았다. 미희가 방에 들어가고탁민호는 방 입구 쪽에서 방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 때도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모여들었었다.
“왜 안들어... 어?”
복도 편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다가 멈칫했다. 탁민호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을 때 탁민호 또한 숨이 턱 막히는 듯 한 기분을 느꼈다. 눈앞에 매우 익숙한 얼굴을 가진 중년의 의사가 서 있었다. 하지만 탁민호의 눈에는 분명 학생의 얼굴로 보였다. 알아볼 수 있는 얼굴.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잊었던 얼굴과 이름에 대한 기억.
“계형준?”
“탁민호지?”
[한율대학병원 응급실 밖 공원]
비가 한 차례 쏟아지긴 했지만 여름의 햇볕은 뜨거웠다. 길게 오는 비가 아니라면 습도만 잔뜩 높아져 더 생활하기 힘든 날씨가 된다. 물이 흐를만한 곳들을 제외하고는 마치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았던 것 같은 모습의 땅바닥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치게 만들었다.
“몇 년 만이야, 이거?”
“글쎄... 졸업하고 동창회도 간 적이 없으니, 꽤 오래되긴 했네”
계형준과 탁민호 모두 동창회와는 거리가 먼 성격들은 아니었다. 그 일만 없었더라면 아마도 동창회의 주역들이 되었을 터인데, 그 일 이후로 선영고와는 담을 쌓고 지낸 수준이었다.
그리운 적도 많았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진정한 친구를 마지막으로 얻는 시기는 대게 고등학교 시절이란 것을 깨달으니깐. 하지만 그런 매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때의 기억이 너무 컸다. 잊어버리면 좋을 기억이 아니라 반드시 잊어야 하는 기억이라고까지 생각했었으니깐.
원래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대상은 인간의 사고로 이해가 가능한 정도를 넘어서는 것들이다. 영화나 책에 나오는 귀신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귀신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균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둘이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 또한 같은 이치였다.
“나이를 들기는 들었나. 그런데 이런데서 이렇게 만나게 되네, 우리 둘이”
“그러게 말이야... 성공했네. 의사면 살 만 하것다?”
“요즘은 그렇지도 않아. 순경에서 경위 올라왔으면 조금 지나고 서장 하고 퇴직할 수 있겠다”
그 이야기를 서로에게 숨길 필요는 없었다. 둘이 직접 함께 겪은 일이었고, 당시에도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서로의 눈빛을 통해 그 일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불편했다.
“기억.. 하지?”
“응...”
하나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만으로 충분했다.
“그 때 끝난 일이 아니었나봐”
“이제 다시 시작인거지. 이번에는 우리 둘만이 아닐 것 같아”
둘 뿐이 아니다. 탁민호는 계형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만히 생각했다. 그리고 이해했다. 세월이 지난만큼 그 일도 똑같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과 연결되어 버린 사람들도 지금 병실에 있었다. 그 때는 둘의 힘이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 일이 끝난 이후에 생겼던 궁금증도 풀 수 있을 것이었다. 이번에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앨리스와 현실세계(Alice and the Real World)의 첫 부 "꿈의 세상"편입니다.
- 작가의말
이제 시작입니다
“스팀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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