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1/2)
앨리스와 현실세계(Alice and the Real World)의 첫 부 "꿈의 세상"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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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고등학교]
학교에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다들 운동장과 급식실에서 깨어난 아이들과 교사들은 자신들이 왜 그 장소에 누워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이상하게도 대부분 그 현상에 큰 의문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뭐야.. 왜들 운동장에 나와있어!?"
한진수는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다가 갑자기 깨어난 사람처럼, 마치 몽유병 환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곳에서 정신을 차린 모습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다들 마찬가지 상황인 것 같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이 왜 모래투성이의 바닥에 누워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들어가! 얘들아, 얼른 들어가!"
그가 자신의 시계를 보았을 때 시간은 다섯 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 하교할 시간이었다. 정말 희안하게도 깨어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며 평소와 똑같이 본관동 건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꺅!!!!"
주차장 방향으로 들어가던 여학생들 몇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진수가 그리로 달려갈 때, 급식실 내부에서 몇몇 교사들도 비명소리를 듣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처음 보게 된 모습은 피, 상당히 많은 양의 피였다. 차 아래쪽으로 피가 흥건이 흘러나오는 상황이었는데 누구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여학생들도 흐른 핏자국만 보고 소리를 지른 것 같았다.
급식실에서 내려온 김중섭 교무부장이 핏자국 주변의 차량 사이를 살펴보다가 한진수에게 소리쳤다.
"한진수 선생! 얼른 119 연락해!"
그가 곧바로 119로 연락했다.
[탁민호]
'왜 내가 여기에 다시 온 거지?'
아이들 사이에 탁민호가 앉아 있었다. 운동장 한 가운데. 자신이 수 십 년 전 졸업한 고등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서 잠시 잠을 잔 것 일까..
졸업을 하고 학교에 돌아왔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학교이기에 굳이 다시 올 일이 없었다. 학교생활이 싫거나 했던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무엇인가 불편한, 또는 불안감이 느껴지는 그런 학교였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그런 기운을 느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이 무엇인가가 자신에게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자신이 이 곳에서 깨어난 것인지...
한쪽 편에서 젊은 남자교사 한 명이 아이들에게 교실로 돌아가라고 하고 있었다. 아직 상당히 젊어 보이는데 자신의 모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다니.. 시간이 흐르긴 했구나 생각을 했다.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역시 이 학교는 특유의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는 과거의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나는 외부인이잖아? 얼른 나가야겠네'
종종걸음으로 아이들 사이를 통과해 주차장을 지나 교문까지 나갔다. 거의 뛰다시피, 담벼락에 붙어 지나가느라 세월이 지나며 변한 학교의 흔적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갑자기 여학생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뒤를 살짝 보았더니 여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과는 관계가 없는 일일 것이라 생각하고는 곧바로 교문을 나왔다. 들고있던 휴대폰을 보니 전원이 꺼져 있었다.
'분명 아침에 충전을 해 둔 상태로 들고 나왔을 텐데.. 역시 이래서 폰은 자주 갈아야 하나보다'
지구대로 복귀를 해야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날짜가 몇일인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유기준]
"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유기준이 일어난 곳은 자신의 침대였다. 무엇인가 굉장히 좋지 않은 꿈을 꾼 기분이었다. 가끔 이렇게 악몽을 꿀 때도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별 생각없이 가슴팍을 만졌는데 뭔가 따끔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퇴근하고 옷도 갈아입기 전에 잠들었는지 병원에서 입고 나온 와이셔츠를 아직도 입은 상태였다.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고 따끔거렸던 가슴을 보니 왠 흉터가 가로로 길게 나 있었다. 자신이 이런 상처를 입은 적이 있었는지 잠시 생각하던 그는 이미 아문 상처라고 생각하고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한영지구대-탁민호]
"어디 갔었어!?"
지구대에 도착하자마자 들리는 지구대장의 호통소리에 나이에 맞지 않게 움찔한 탁민호 경위는 휴대폰부터 충전기에 연결했다.
"탁민호! 어디갔었냐니깐!?"
"네? 저.. 선영고에.."
"거기 다시 신고 들어왔어! 사망자 발생했다고. 가서 뭐하고 온 거야? 연락도 받지 않고?"
사망자.. 평소라면 경찰인 그라도 놀랐을 텐데 이상하리만큼 놀란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마치 이미 그러리란걸 예상했다는 것 처럼.. 자신 스스로도 뭔가 이상했으나, 어차피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일은 아니었다. 자신은 처리를 돕기만 하면 되는 직업이니..
"선영고로 다시 가면 됩니까?"
[선영재단 이사회]
"자, 그러면 1년 간 공석이었던 교감보직을 이제는 채워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그에 대한 안건으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아이들]
현규와 새민, 그리고 지연은 학교가 끝나고 동네 독서실 앞에서 만났다. 그들은 학교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모든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셋 뿐이었던 것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죽을 정도의 상태였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멀쩡히 다니는지 몰랐으나 더 이상한 것은 박병준 교감선생님에 대해 어느 누구도 기억하질 못한다는 것이었다.
유형준 선생님의 장례직장에는 아내분이 오지를 않았다. 신문에도 나온 이야기로 유형준 선생님이 학교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아내분도 실종상태라고 했다.
"한진수 선생님 만나뵜어, 지연아?"
새민이 먼저 지연에게 말을 꺼냈다. 아무도 학교에서는 신경쓰지 않고 모르는 것 같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다. 한진수 선생님은 뭔가 아시겠지 싶어 지연이 따로 여쭤보기로 했었다.
"응 뵙고 왔는데.."
"왜? 뭐라시는데?"
현규가 다그쳤다. 이해가 되지 않은 일이었고 사실 지금이 그 상황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게 현실이었다면 아마도 학교는 문을 닫지 않았을까.
"전혀 모르시는 것 같아. 내가 선생님께 박병준 교감선생님은 어디가신거냐고 여쭤봤거든.. 근데 그분이 누구시냐면서 의아하다는 표정이셨어"
셋은 말없이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거 결국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상황이네. 그 때 같이 다니던 사람들도 기억에서 지워지고.."
"응, 그런것 같아. 무서워.."
현규의 머리가 가장 치밀하고 빠르게 지금 상황을 계산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 정도로 없는 일이 되어버린 이상 자신들이 이 내용을 어디엔가 밝힌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믿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사실이 다르더라도 절대다수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여긴다면 사실이 거짓이 되는 것이다.
"이 일은 잊어버려.."
"무슨 말이야? 잊다니? 그걸 어떻게 잊어?"
새민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현규는 그 큰, 그리고 기이한 사고를 잊으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그러면 니가 우리 이야기를 믿어줄 사람을 찾던가.."
"그건.. 그래도.."
대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새민도 머리는 잊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나 마음이 그러하질 못했다. 좋아하는 선생님의 죽음까지 이 일과 관련되어 있는데 사실을 믿어줄 사람이 없었다.
"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었어. 지금도 없고.."
지연의 말이 사실이었다. 사실 벌써 세부적인 기억들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혹시 처음에 어떻게 그 일 시작된지 기억해?"
"처음에? 음.. 애들이 날뛰었나? 글쎄.. 급식실에서 난리났던 것 부터 기억나.."
새민과 지연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현규가 다시 말을 꺼냈다.
"어쩌면.. 우리도 다 잊어버릴지도 몰라. 자연스럽게.."
그의 목소리가 침울하게 들렸다. 기억을 잊는다는 것. 지나간 일들이 많아 기억이 뒤로 밀려 사라지는 것과는 달랐다. 그들은 이미 상당부분을 잊어가고 있는 중임을 깨달았다.
"내일이면.. 일 자체를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을지도.. 그렇게 되기로 결정된 일이라면.."
기분나쁜 소리였으나 지연과 새민도 어느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새민이 갑자기 밝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끼리 이래봤자 뭐해~ 일단 집 가서 한숨 자고 내일 이야기 하자고. 현규 말이 맞다면.. 내일 확인해보면 되지"
아이들은 적응이 빠르다.
앨리스와 현실세계(Alice and the Real World)의 첫 부 "꿈의 세상"편입니다.
- 작가의말
원래 에필로그 하나로 끝을 내려 했던 것인데;;
마지막화로 모두 끝났고 허무하다고 생각하실 듯 해서 급히 올립니다.
에필로그(2/2)까지 보시면 아주 약간은 덜 허무하지 않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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