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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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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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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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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_마른 우물 사건 2

DUMMY

우물이 마른 원인부터 찾았다. 태풍이 비를 뿌리고 지나갔으니, 흙탕물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말라버리다니.

분명 사람이 아닌 다른 힘이 막은 것이다.


아침밥을 앞에 두고 담아와 가온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이틀 동안 십여 명의 천사가 찾아왔으니 그만큼 사람이 죽었다는 뜻이다.


“피천귀의 소행일 거야. 고제국이 의심스러워. 어제 들었지? 독충과 독사를 뿌리고 갔다고.”

전쟁에 주로 파견되는 담아 다운 의견이었다.


천사가 인간세에 직접 관여할 수는 없어도 우회적으로 도울 수는 있었다. 지나치게 많은 희생이 있거나 너무 오래 전쟁이 계속되는 경우, 천사장의 인정하면 가능했다.


“신예국 내부의 문제일 수도 있어. 권력다툼은 또 얼마나 끔찍한지!”

가온은 다른 추리를 내놓았다.


사빈은 툇마루에 앉은 슬아와 마림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이방인이 신기한지 눈을 반짝이며 구경하고 있었다.


“얘들아, 우물이 왜 마른 줄 아니?”

사빈이 부르자 슬아가 기다렸다는 듯 쪼르르 다가왔다.


사빈의 귀에 손을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악마가 그랬대요.”


‘악마 같은 사람을 말하나?’

사빈은 초조한 마음을 누르고 슬아의 손을 잡았다.


“악마는 어디서 왔대?”

“땅 밑에서요.”


마림도 달려와 사빈 옆에 앉았다.

“하늘에서 떨어져서 땅속으로 숨었대요.”


아이들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어도 사빈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땅 밑.’


*


아궁이 앞에서 약을 달이느라 마고와 두 명의 천사는 땀을 뻘뻘 흘렸다.


“원천을 찾아갈 거야.”

사빈이 장작더미에 부채질하며 담아와 가온에게 눈짓했다.


“좋은 생각이야. 물은 땅 밑으로 흐르니까.”

담아의 말에 가온도 부채를 세게 흔들었다.


“꽤 멀겠지? 사빈은 내가 업어줄게.”

“우리 둘이 양쪽에서 잡고 가자. 오늘 밤에 끝내자고.”


사빈은 천사들이 걱정되어 부채질을 멈추었다.


“천사국의 심부름이 아니면 천력이 사라지잖아?”

“그 정도는 있어.”

담아는 소리를 낮추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들 주위는 쓰고 진한 약초 냄새로 가득했다. 불꽃을 들여다보며 눈을 비비는데 누군가 작은 꾸러미를 내려놓고 황급히 뛰어갔다.


가온이 보자기를 펼쳤다. 보리쌀 한 줌이 들어있었다.


그날 오전에는 선물 행렬이 이어졌다. 누구는 콩을, 누구는 장아찌를 놓고 갔다.

“여기 사람들은 뭔가 다른데?”


담아는 감동하여 두 손으로 보자기를 받쳐 들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 아이들의 영혼이 깨끗한가 봐.”


*


원천은 깊고 험한 골짜기에 숨어있었다. 사람의 걸음으로는 십여 일은 족히 걸릴 것이다.

깊은 밤이지만, 천사와 마고에게는 어둠이 길을 막지 못했다.


“사빈, 이런 기적을 만들어도 돼?”

샘을 찾다말고 담아가 걸음을 멈추었다.


“수명환은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 주잖아? 이건 다른 문제 같아. 인간세에 함부로 개입하면 어떤 벌을 받을지 몰라. 천력을 잃을 수도 있고, 설화옥에 봉인될 수도 있어.”


천사와 선사는 함부로 기적을 베풀지 못하고, 인간세에서 천력의 사용도 금지되었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 대부분이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기적을 바라기 때문이었다.


앉아서 기도만 하고, 왜 기적이 안 일어나냐고 오히려 원망한다. 그렇게 욕망과 한탄은 피천귀의 먹잇감이 된다.


“금기는 깨라고 있는 거야.”

가온이 방긋 웃었다.

그녀는 모험을 좋아하고 장난을 즐겨 이번에도 사빈이 어떻게 하나 기대하고 있었다.


“마고의 수명환은 달라. 그건 사람을 도우려고 만든 거라서.”

혼들이 내놓은 수명이므로 사람을 위해 쓸 수 있었다.


숨꼭지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을 살리는 힘이었다. 막힌 물길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마고가 땅 밑 물길도 찾아? 그런 술법도 배웠어?”

가온이 신기해하며 사빈을 바라보았다.


“내가 찾는 것이 아냐. 마고의 술법은 간절히 원하는 존재에게서 비롯돼. 소망이 없으면 술법을 쓸 수 없어.”


“알았다. 성읍 사람들이 물을 애타게 찾기 때문에 수명환도 물줄기를 찾는다, 이 말이지?”

담아가 사빈의 뒤를 바짝 따라왔다.


사빈이 손바닥으로 맑고 차가운 샘물을 떠올렸다. 마고의 반지가 하얗게 빛을 냈다.


그녀의 손안에서 한 줌의 물이 공처럼 모양을 갖추었다.


작은 공 모양의 샘물은 허공에서 몇 번 튀어 오르더니 길을 찾아냈다. 땅 밑 물줄기와 공명하며 땅 위를 낮게 날아갔다.


“가자. 우물로 이어지는 길이야.”

사빈은 담아와 가온의 도움으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커다란 물방울을 따라 빠르게 날았다.


“우물에서 가까운 샘물을 쓰면 되지, 왜 여기까지 와?”

“원천이 가장 순수하고 강해. 성읍 근처의 물은 사람들 때문에 힘을 잃었어. 그 자리에서만 맴돌 거야.”


날아가던 물방울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여기야. 여기부터 막혔어.”


담아와 가온도 그 자리에 멈추었다.

저 아래 탁한 기운이 땅 위의 공기까지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 속에 누가 무엇을 놓았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피천귀의 짓이군.”

담아가 혀를 끌끌 찼다.

“그 피천귀를 사람이 불렀어. 이 이상은 우리가 할 수 없어.”


사빈은 흙바닥에 손을 대고 땅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을 사람들이 애타게 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물길도 원래의 길을 찾고자 꿈틀댔다.


마고 사빈에게 그 간절함과 떨림이 전해졌다.


“물길을 풀어줘야 해.”

사빈은 품에서 수명환을 꺼냈다.


커다란 물방울에 수명환을 밀어 넣었다. 홍매색 수명환은 둥근 모양 그대로 물방울 한 가운데 자리 잡았다.


성읍의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다. 일천팔십 개의 숨꼭지들이 사람들의 염원을 받아 막힌 길을 뚫을 것이다.


그녀가 땅에 손을 대자 마고의 반지가 다시 빛을 뿜었다.

반지의 빛은 지하 결계에서 나오는 기운을 쫓아 땅 밑까지 가느다란 틈을 만들었다.


투명하고 깨끗한 물방울은 땅 밑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잠시 후 땅 밑에서 잔잔한 물소리가 들렸다. 물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우렁차게 물길을 뻗어나갔다.


*


“그래서, 우물에 물이 고였니?”

선아 대천사는 눈을 빛내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고샅공방 뒤뜰에는 여전히 고소한 음식 냄새가 맴돌았다.


“해 뜰 무렵 우물이 찼을 텐데, 꽃수 열쇠가 부르는 바람에 인사도 못 하고 왔어요.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슬아와 마림에게 인사도 하고.”


혼이 맑았던 아이들을 생각하니 지금도 사빈의 마음에 온기가 돌았다.


“마고가 천사보다 나아요. 그런 기적을 만들다니.”

담아가 사빈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저랑 가온은 며칠 더 머물렀는데요.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사빈도 반열님을 닮아 사람들 일에 열심이구나.”

선아 대천사는 쓸쓸하게 웃었다.

“반열님도 사람들을 많이 사랑하셨지.”


“그래도 그때 살아남은 부족은 선량하고 사려 깊어요.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요.”

담아는 선아를 위로하면서도 사빈을 바라보았다.

“그 성읍처럼요. 힘들어도 서로를 먼저 생각했거든요.”


“흑천님도 그러시더구나. 바른길을 가려 애쓰는 종족이니 헛된 희생이 아니었다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인간세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선아도 사빈을 보며 싱긋 웃었다.


“고마운 분이야.”

선아는 반열 대천사에 대해 말할 때면 늘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사빈은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려 했으나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 만나면 아버지를 알아볼까? 아주 먼 과거로 가야 볼 수 있겠지···.’


그녀가 생각에 빠져있자 선아는 짐짓 웃으며 담아에게 속삭였다.

“백하는 어떻다니?”


담아는 선아에게 바짝 다가가 앉았다.

“그게···. 아주 재미있어졌어요.”


담아는 사빈을 흘끗 바라보았다. 사빈은 여전히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었다.

“지난 그믐에 한얼과 둘이 삼도천에 있더라고요. 중천을 다녔다는데, 둘이 계속 같이 있던 거죠.”


“저런···.”

“더 흥미로운 건 한얼의 눈빛이에요. 눈빛이 달라졌어요.”

담아가 말을 멈추자 선아는 손을 까딱였다. 빨리 듣고 싶다는 신호였다.


“아주 다정하고, 엄청 달달해요. 북방흑천에서 우리와 있을 때랑은 전혀 달라요.”

“사빈이 곤란하겠구나.”


사빈은 자신의 이름을 듣고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다, 아무것도.”

선아가 웃자 담아도 짓궂은 표정으로 따라 웃었다.


“그럼, 난 바론 대천사에게 가봐야겠다. 아까부터 부르고 있어.”

선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혜존각에서도 등불이 잘 보인다니까.”


“다음에 또 만나자꾸나.”

선아는 짧은 인사만 남기고 사라졌다.


사빈은 아쉬움에 대천사가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참, 순백초는 아날빛숨에 갖다 놨어.”

담아가 사빈의 팔을 끌어당겼다.


“자! 등불 보러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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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계_마른 우물 사건 2 23.05.31 105 2 10쪽
29 천계_마른 우물 사건 1 23.05.30 123 2 14쪽
28 천계_얄리장터 열림날 23.05.30 124 2 13쪽
27 천계_혜존각 고운방 23.05.29 124 2 10쪽
26 천계_예사달 할머니 23.05.29 122 2 12쪽
25 천계_혼들의 암표 거래 23.05.28 144 2 13쪽
24 천계_얼음과 흙의 신경전 23.05.28 112 2 10쪽
23 천계_마음숲의 돌봄차사들 23.05.27 124 2 13쪽
22 그믐_삼도천의 뱃놀이 +2 23.05.25 134 3 12쪽
21 그믐_별빛바다의 고사목 23.05.25 132 3 12쪽
20 그믐_맑음고원 명부전 23.05.24 107 2 11쪽
19 그믐_중천의 붙박이 혼 23.05.24 131 2 11쪽
18 그믐_샘물을 찾아서 23.05.23 139 2 12쪽
17 그믐_새맘계곡의 비뢰수들 23.05.23 137 2 10쪽
16 그믐_중천에 들어서다 23.05.22 136 2 14쪽
15 천계_보호의 인 23.05.22 164 2 14쪽
14 천계_위즐증가의 손님 23.05.21 136 2 14쪽
13 천계_주인을 기다리는 유물 23.05.20 140 2 12쪽
12 천계_배웅문을 나서는 혼 23.05.19 132 2 12쪽
11 천계_새로운 인도자 +2 23.05.18 137 2 12쪽
10 천계_어리화가 피다 23.05.18 142 2 11쪽
9 천계_공방 거리와 이즈막광장 23.05.17 147 2 13쪽
8 천계_대명천 마음숲 23.05.17 152 2 13쪽
7 그믐_바림창고의 소장품 23.05.16 150 2 13쪽
6 그믐_지박령들이 돕다 +2 23.05.16 164 3 13쪽
5 그믐_호박벌 작가의 고뇌 23.05.15 160 3 11쪽
4 그믐_기린과 천마의 아이들 23.05.12 177 3 13쪽
3 그믐_한밤의 외출 23.05.11 200 3 12쪽
2 프롤로그 2_두 명의 스승 23.05.10 287 3 12쪽
1 프롤로그 1_중앙황천 다움성 +2 23.05.10 683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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