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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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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204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8.05 08:00
조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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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그믐_수명환의 활약

DUMMY

천사 가온이 눈을 빛낼 때는 조심해야 한다.

뜬금없이 백하인지 한얼인지를 묻다니, 무슨 말이야?


상산대감을 떠올리니 가슴 한쪽이 뭉근히 데워졌다. 이런 적이 없는데···. 이것도 배움의 결과인가?


천사 담아부터 마음숲의 차사들까지 한 마디씩 건네니, 생각하게 되잖아. 정말 그런 것처럼 여기고.


난 여전히 가슴이 묵직하고 답답한데. 목구멍에서 가슴 위쪽까지.


한얼은···. 예전에는 따끔거렸는데, 많이 나아졌다. 익숙해져서 그럴까.


가온은 눈을 빛내며 대답을 기다렸다.

대답을 꼭 해야 한다면···.


“예언 때문에 도움을 받으려면 아무래도 상산대감이 낫지 않을까?”


가온은 어리둥절해서 쳐다보다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런··· 것이 아니고. 하···. 예언 때문이라고?”


그녀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여러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으흥. 상산대감이라 이거지.”

가온은 내 작은 가방을 집어 들었다.


“누구든 상관없어. 정인이 정해지면 그 정표를 나눠 가져.”

“정표?”

“응. 내가 만든 아리 인형 줘봐.”


나는 가방에서 작은 아리 인형을 꺼냈다. 노랗고 작은 병아리 인형에 반쪽짜리 검은 한빛돌이 두 개, 눈처럼 박혀있다.


“이걸 갈라서 나눠 가져. 한빛돌을 하나씩 가지면 서로에게 가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아. 하하, 꽃수 열쇠에서 힌트를 얻었거든.”


“이, 이걸 자르라고? 애써 만든 거잖아?”

“자르다니? 봐봐. 실밥으로 막아놨지만, 이걸 빼면···.”


가온이 양쪽을 연결한 실을 뽑아내자 아리 인형이 두 쪽으로 나뉘었다.


“잘 봐. 이렇게 나누어 펼치면 하트 모양이 되도록 만들었거든. 누가?”

가온은 큰 소리로 웃었다.


“바로 내가! 오호호. 어때 기발하지?”


예쁜 아리 인형이 해괴한 모양이 되었지만, 바느질 솜씨가 늘었으니 인정해주지.

인형보다는 한빛돌을 나눠 갖는 것이 중요하니까.


선계에서만 나는 한빛돌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마음의 길이든, 그냥 길이든.


가온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뽑힌 실이 둥둥 떠올랐다.

실은 바늘구멍을 찾아 돌며 두 쪽으로 나뉜 아리 인형을 하나로 이어 나갔다.


물끄러미 움직이는 실을 바라보았다.

허공에 있는 누군가가 바느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도 바느질을 참 잘하셨는데···.’


그믐에 만난 어린 시절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나를 보고 언니라고 불렀지.

어머니가 아끼던 팔찌도 생각났다.


‘응? 그거 내가 만든 거잖아? 가온에게 주려고 만들었다가 백홍선원에···. 아버지한테?’

팔찌를 생각하니 어지러워졌다.


‘아버지가 청혼하면서 주셨다고···. 보물처럼 아끼던 팔찌가 그러니까···.’

그 팔찌는 지금 어디 있을까?


“가온,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

“뭘 잃어버렸는데?”

“어머니가 차고 있던 팔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가온은 팔짱을 끼고 으흠 소리를 냈다.


“인간세에 있다면 어떻게든 주인을 찾아올 거야. 나타나지 않는다면, 부서졌거나, 다른 사람을 주인으로 삼은 거야.”


“그렇구나···.”

너무 오래 앉아있었더니 힘이 없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눈앞이 핑글 돌더니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다. 몸이 옆으로 슬슬 미끄러졌다.


가온이 나를 눕혀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번에 돌아가면 무조건 쉬어. 아주 오래, 그냥 쭉. 다른 건 상산대에 맡기고. 차사님과 도우미도 있잖아.”


“괜찮아. 이 정도는.”

“그러다 마고가 아니게 되면 어쩌려고? 지금도 겨우 버티잖아.”


“중앙황제님이 보호의 인도 주셨어.”

“그래봐야 네 몸이 감당할 만큼의 천력이겠지.”


나도 불안했다.


다음 그믐에는 제대로 나올 수 있을까? 나왔다가 아무 일 없이 돌아갈 수 있을까?

이 몸에서 천력이 사라지면···. 그때는 내 몸이 가루가 될지도 몰라.


“내 혼도 영천옥으로 가겠지? 낙원이든 어디든··· 완전한 혼으로 사는 거야.”


“난 지금의 너도 좋아. 어떤 모습이든 네가 너라서 좋아.”

가온이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쥐었다.


*


천사의 보살핌을 받아서 그런가 아침이 되자 가뿐했다.


가온은 일찌감치 파라다이스 빌라로 돌아갔다.

‘주말이라 꼭 문을 열어야 해. 길 잃은 물건만큼 마음을 잃은 사람도 많이 오거든.’


나는 심장전문센터 일 층 로비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바나도 투명하게 모습을 바꾸어 내 옆에 앉았다.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 대화를 나누는 환자와 가족들로 로비는 시끌시끌했다.


빨래감이 담긴 수레가 내 앞을 지나가고 잠시 후 온결찬과 이로운이 보였다. 그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로 걸어왔다.


이로운은 역시 스케치북과 필통을 들고 있었다.


“시합은 오늘 오전까지예요. 이번에는 내가 더 많이 읽었을걸요?”

“결과는 열어봐야 알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헤에, 형은 연애하느라 바빴잖아요?”

이로운은 내 앞을 지나가면서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주인님, 꼬마가 그냥 가여라.”

“기억이 지워져서 그래.”


“그런 거여라?”

바나는 흥 콧소리를 냈다.

“시시하여라. 왈.”


나는 이로운이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어제와는 다른 기운이 스며 나왔다. 조금씩 수명환이 힘을 낼 것이다. 열흘이 지나기 전에 완전히 달라질 거다.


온결찬도 나가려다가 황급히 돌아섰다.

“아, 내 폰!”


나도 벌떡 일어섰다. 지금이 그에게 접근할 기회야.


그보다 한발 앞서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그가 몇 층으로 갈지는 알고 있다.


엘리베이터에 다른 사람이 몇 명 더 타서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미리 친해졌어야 하는데···. 이로운에게 신경 쓰느라 온결찬을 놓치고 있었어.’


4층에 닿자 온결찬은 빠르게 문을 나섰다.


나는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어떻게 말을 걸지? 무턱대고 살고 싶냐고 물을 수는 없고.


거리를 두고 따라가는데, 간호사실 앞을 지나던 온결찬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간호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왔다.


온결찬은 눈을 부릅뜨고 몸을 웅크렸다.

“아으윽!”

고통스러운 신음이 쏟아졌다.


그에게 달려가는데 무언가 발을 붙잡았다. 발부터 종아리가 딱딱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내려다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도 꿈인가?’


복도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온결찬을 에워쌌다.


몸을 움직이려고 힘을 주니 오히려 허벅지까지 굳는 것 같았다.


‘도와야 해. 수명환을 줘야 한다고!’

움직이려 이를 악물었다.


가방 안에 있던 수명환이 빠져나왔다.

홍매색 수명환은 둥둥 떠가며 온결찬을 향해 날아갔다.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투명한 바나만이 펄쩍펄쩍 수명환을 쫓아 뛰었다.


수명환은 그의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숨소리도 가라앉고 신음도 그쳤다.


‘수명환이 저절로 움직여?’

시험을 보지도 않았는데. 수명환이 직접 주인을 찾아가다니.


내 힘이 약해져서 마고의 반지가 직접 나섰구나. 어쨌든 제대로 수명환을 건넸어.


“결찬씨! 결찬씨! 정신이 들어요?”

간호사가 소리치자 온결찬이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괜찮아요. 잠깐 발작했나 봐요.”

온결찬은 힘겹게 일어섰다.

머리카락은 부스스 헝클어지고, 환자복도 구겨졌지만, 그의 미소에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데도 내 몸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허리까지 돌이 된 것 같았다.


“주인님, 왜 그러셔라? 수명환이 온결찬한테 갔어라.”

“바나, 나 지금 몸이 굳고 있어.”

“왕, 뭐시여라?”


바나는 내 주위를 돌며 크르릉거렸다.

코를 킁킁대고, 발을 헤집었지만, 아무것도 없는지 내 앞에 멈춰 섰다.


“없어라. 아무것도 없어라.”

“지금, 허리까지 딱딱해졌어.”


“주인님! 어떻게 하면 되어라? 왈왈!”

바나는 컹컹거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흘끗거렸다.

‘어떻게 하지?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선가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가거라. 네가 감당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제 낮에 들리던 소리였다. 꿈을 꾼 줄 알았는데, 꿈이 아니었나?

그 소리에 반응해 가방 속에서 꽃수 열쇠가 풀썩거렸다.


소리가 지나가고 몸이 후끈거렸다. 따뜻한 이불로 감싸는 느낌이었다.

딱딱해진 몸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나는 바닥으로 털썩 쓰러졌다.


“스승님!”

단가람이 조그맣게 나를 불렀다.

앙상한 팔로 나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의 손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바나가 몸을 키워 투명한 곰이 되었다. 바나에게 의지하니 제대로 설 수 있었다.


“어디 가시려고요?”

“마음숲. 이대로는 안 되겠어.”


단가람은 병동 입구까지 함께 내려왔다. 그는 목에 걸린 옥구슬을 만지작거렸다.


“스승님, 저 마음숲으로 갈 겁니다. 스승님 옆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습니다.”

“거기 가면 즉시 설화옥이야. 상산대가 벼르고 있거든.”


“잠깐이면 됩니다. 그다음에는 중천에서 기다리려고요.”

“왜 하필 중천? 영천옥도 있는데?”


단가람이 주름 깊은 눈으로 배시시 웃었다.

“영천옥에는 마고님이 갈 일이 없잖아요? 중천이라면 그믐이 아니라도 오실 거고요.”


“인연이 있으면 어디서든 만나겠지.”

나는 손을 흔들고 유리문을 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온통 먹구름으로 덮여있었다.

그믐 외출에서 닷새를 못 채우고 돌아가는 건 처음이다.


구름 속에서 문득 별이 하나 반짝였다.

붉은 별이 꼬리를 이끌며 곧장 내게로 떨어졌다.


눈앞에 붉은 구슬이 둥둥 떠올랐다. 그룹 갤럭시의 연주를 들으며 보았던 구름 덩어리였다.


붉고 투명한 구슬 안에 흰 구름이 꿈틀거렸다. 핏줄 같은 선도 보였다.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이것도 꿈인가?’

손을 뻗으니 구슬은 사라졌다.


그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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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천계_기록추적자 23.08.11 43 3 11쪽
119 천계_잉걸둥지에 이르다 23.08.11 41 3 11쪽
118 천계_얼음칼 아움 23.08.10 43 3 11쪽
117 천계_백하의 다짐 +2 23.08.09 48 3 12쪽
116 천계_바람길 연회 23.08.08 43 3 10쪽
115 천계_돌아온 온사랑 23.08.08 46 3 13쪽
114 천계_살아있는 환상 23.08.07 44 3 11쪽
113 천계_가시버시 축제 23.08.06 45 3 11쪽
» 그믐_수명환의 활약 23.08.05 46 3 11쪽
111 그믐_근원을 향한 환영 23.08.04 43 3 11쪽
110 그믐_그룹 갤럭시의 연주 23.08.03 43 3 10쪽
109 그믐_인연 연결자 +2 23.08.02 46 3 11쪽
108 그믐_숨은 후원자 +2 23.08.02 46 3 11쪽
107 그믐_외길과 산돌 23.08.01 42 3 12쪽
106 그믐_나무새가 찾는 주인 23.07.31 42 3 11쪽
105 그믐_하이브리드 인간 23.07.31 42 3 12쪽
104 그믐_사라남 종합병원 23.07.30 44 3 11쪽
103 예사달_몸은 없어도 마음이 있다 23.07.29 43 2 12쪽
102 예사달_다움성의 초대 23.07.29 43 4 11쪽
101 예사달_한얼이라 부르게 23.07.28 42 3 12쪽
100 예사달_신령수 동명 +2 23.07.28 45 3 11쪽
99 예사달_제자를 들이다 23.07.27 41 2 11쪽
98 예사달_빙천골 능금원 23.07.27 43 2 12쪽
97 예사달_불천수 전투 23.07.26 44 2 11쪽
96 예사달_다훤과 만나다 23.07.26 44 2 11쪽
95 예사달_경계의 떠돌이 23.07.25 44 2 11쪽
94 천계_남아있는 향기 23.07.25 42 2 12쪽
93 천계_동녘뜰 사빈재 23.07.24 43 2 11쪽
92 천계_다움성 온새미실 23.07.23 43 2 11쪽
91 천계_새로운 소식 23.07.22 4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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