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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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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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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61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7.28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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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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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예사달_신령수 동명

DUMMY

가림산 꼭대기에 뿌연 안개가 드리워졌다. 예사달의 부름에 이끌려 구름이 산꼭대기를 하얗게 가렸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신령한 결계가 찾아올 것이다.

예사달은 마당 한 편에 나무처럼 가만히 서서 결계의 주인을 기다렸다.


중앙황천에 왔음에도 소년이 아니라 중년 남자의 모습이었다.


“잠깐! 잠깐만!”

다훤이 헉헉거리며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결계 때문에 공간을 건너뛸 수 없으니 다리를 움직여야 했다.


“헉, 헉. 이게 뭔가. 또 어디 가려고!”

“아무 데도 가지 않네. 동명님이 여기로 올 테니까.”


“이 친구 보게. 그런 중요한 걸 알려주지도 않고.”

다훤은 흥분하여 뭉클거리는 안개구름을 바라보았다.


“동명님이 부른 건 난데 왜 자네가 여기 있나?”

예사달은 덤덤하게 마당 한 가운데만 바라보았다.


다훤이 발끈하여 그를 노려보았다.

“이리 섭섭할 데가! 나한테 이럴 수 있나? 빛나는 알만 해도 그래. 난 못 보고 자네만 보다니. 이제부터라도 꼭! 붙어 다녀야겠네.”


“사빈도 동녘뜰에 놔두고 왔는데, 왜 자네를 데리고 다니나. 그래야 한다면 제자를 데리고 다녀야지.”

예사달은 안개의 흐름을 지켜보다가 다훤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요즘은 왜 예언을 하지 않나?”

“아, 그거. 환시를 못 보아서···.”

다훤이 말끝을 흐렸다.


“자네로 인해 현실이 될까 봐 두려운가?”

예사달의 물음에 다훤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 때문에 결계가 깨지고 피천귀들이 달려들던 모습이 눈앞에 생생했다.


“자네가 환시를 보는 건, 준비하라는 수리마루의 배려일세. 자네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


안개 속에서 다른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이 세계는 끊임없이 흘러갈 거야. 천선계에 도움이 되면 그것도 좋지 아니한가.”

예사달은 휘적휘적 결계 속으로 들어섰다.


다훤은 뒤늦게 쿨렁거리는 결계 속으로 뛰어들었다.

“기다리게. 나도 동명님을 뵙고 싶다고!”


*


신령수 동명의 결계는 맑고 깨끗했다.

넓고 싱그러운 초록 숲이 끝도 없이 이어졌고, 그 사이를 투명한 강물이 천천히 흘렀다.


나뭇가지 사이로 그물코 같은 하늘이 비쳐 보였다.


새소리, 바람 소리, 사뿐히 내딛는 발소리까지 마치 선계의 숲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 평화로웠다.


가장 크고 높은 나무 앞에 서자 나뭇가지가 화사삭 흔들리며 예사달과 다훤을 환영했다.


‘공명이 맞았군.’

나무의 소리는 귀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울렸다. 심장 박동처럼 편안한 울림이었다.


예사달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동명 어르신. 오신다는 신호를 받고 기다렸습니다. 이 친구는 갑자기 튀어나왔습니다.”

“아니, 왜 저는 안 부르고 이 친구만 부르십니까?”


“안 불러도 잘 따라붙었구먼. 뭘 그러나? 하하하.”

나무가 웃느라 기둥이 꿈틀거렸다. 가지 끝에 매달린 이파리가 사사삭 소리를 냈다.


“앉아서 얘기하지.”

굵은 가지 두 개가 팔을 뻗듯 아래로 내려왔다.


예사달은 가지 끝에 가볍게 올라탔다. 다훤도 그를 따라 가지 위로 올라섰다.


나뭇가지는 두 천인을 나무 꼭대기까지 올려세웠다.

그곳에서는 결계의 숲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서방백천 선계의 향기와 기운이지만 선계와는 다른 힘이 느껴졌다.


“선계에서 수도만 했기에 모르는 게 많다네. 자네들에게 한 수 배우려고 불렀다네. 요즘 천선계의 일이 궁금하기도 하고.”


“저희가 배워야지요. 결계 속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요.”

예사달은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 감탄을 쏟아냈다.


“반열 대천사의 딸을 제자로 삼았다고?”

“어떻게 아십니까? 소문 참 빠르네요.”

“허허, 나도 지나는 길에 들었네. 제자를 키우는 재미가 어떤가?”


예사달은 사빈을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아릿했다. 기쁘기도 하고, 애틋하고, 혼자서도 잘 있는지 궁금해졌다.


“아직 부족합니다. 너무 가냘퍼서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지요. 제자를 들이니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허, 예사달 자네가 부족하다고?”

다훤이 나뭇가지에 몸을 기대고 편히 앉았다.


그는 신령수 결계를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넣으려는 듯 뚫어지게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막상 가르치려니 뒤죽박죽입니다. 이 친구 때문에 고생길을 걷습니다.”

예사달이 다훤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왜 걱정하는가?”

신령수 동명이 말하자 소리가 낮고 멀리 퍼져나갔다. 몸 안과 바깥 공기가 동시에 울렸다.


“예?”

“보고 싶은가?”


“동녘뜰에 혼자 남겨두고 왔거든요. 이번에는 생각보다 길어져서···.”

자신을 기다릴 사빈을 생각하니 예사달의 눈빛이 아득하게 깊어졌다.


“또 이러네. 또! 이 친구가 어떤지 아십니까? 세상에나, 잉걸둥지를 찾아낸 그 순간에도 사빈을 생각하며 빛글을 보냈다니까요.”

다훤은 팔짱을 끼고 혀를 쯧쯧거렸다.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사빈은 뭘 하고 있을까, 사빈에게 보여주고 싶다, 사빈이 좋아할까, 이런 말만 한다니까요.”


다훤이 또 다른 말을 찾는데 신령수 가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잉걸둥지라니?”

“회향미곡 끝에 숨겨진 생명의 알입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예사달은 자신들이 찾은 잉걸둥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회향미곡의 위치와 잉걸둥지의 모양, 그 존재를 아는 이들은 다섯 신제와 자신들 뿐임을.


“신제들과 연결된 힘의 정수일 수도 있고, 다음 신제가 되려고 기다리는 알인지도 모릅니다. 깨어날지 안 깨어날지도 모른다고 하니까요.”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정말 있을 줄은 몰랐구나.”

“어르신도 아셨습니까?”


“신제들은 생명의 알에서 태어났지. 알이 세 개였다. 하나는 천사의 알이었고. 그게 전부였을까 궁금했네.”


“그때 깨어나지 않고 남은 알일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다훤이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진실을 보지 못할 거네. 내가 아는 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설화옥을 만들었다는 것뿐.”


“아, 그래서···.”

다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하필 그곳에 설화옥을 만들었는지, 구태여 설화옥이 필요한지 늘 의아했었다.


“반계는 어떤가?”

“허공의 섬이 천계와 가까이 붙었습니다. 중앙황천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죠.”


“흠···.”

동명이 소리를 내자 가지 끝의 이파리들이 파르르 떨었다.


“마눙님과 이루님이 걱정이군. 잉걸둥지가 무엇이든 신력을 제대로 쓰려면 그곳에서 멀어지면 안 될 거야. 신제는 신이 아니거든. 맨 처음 생겨나 가장 늦게까지 머물 천인일 뿐이니.”


동명의 말에 예사달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래서 불천수까지?”


“말이 되는군. 괘씸하기는 하지만.”

다훤도 턱을 긁적거리며 콧소리를 냈다.

그 때문에 희생된 천인들이 얼마인데,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백하가 삼도천 수비대를 맡으면 좀 좋아? 왜 마음숲을 고집하는 거야?”

“그럴만한 이유가 있네.”

예사달은 허리를 세우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백하는 또 누구인가?”

“천인 엄장의 제자입니다. 빙천술의 후계자지요.”


“엄장의 일은 나도 들었네. 안타깝구먼. 그렇게 숨어지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나마 빙천술이 살아남았으니 다행입니다.”


예사달은 엄장의 제자에 대해 말하면서도 어느새 사빈이 궁금해졌다.

‘지금쯤 베껴쓰기를 마쳤으려나···.’


사빈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을 감았다 떴다.


“동명님이 묻지 않나? 뭔 생각을 하는 게야?”

다훤이 채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라고?”


“자네 혼자 빛나는 알을 보았다고, 내가 고자질했거든.”

다훤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차원의 틈에서 보았다고?”

“경계였는지 틈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알이라기보다 빛나는 기운 덩어리였습니다. 그 안에 다른 기운을 안고 있었지요.”


“그 알이 무언가 알려주었느냐?”

“반가워하는 것 같았는데, 곧 실망하더군요. 너는 내가 기다리는 자가 아니다. 그러고는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자리에서 또 소리가 들렸습니다. 언젠가 알게 될 거다. 네가 여기 온 이유를.”


예사달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라지긴 했지만, 분명 거기 그대로 있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거지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왜 나는 못 봤지? 나도 가장자리를 엄청나게 떠돌았는데?”

“그때 별밭을 지키는 선사도 같이 있었는데, 그는 아예 보지도 듣지도 못했어. 나한테 왜 그러냐고 묻더군.”


예사달은 나무 기둥에 손을 얹었다. 동명의 숨이 그대로 느껴졌다.

“다시 찾으려 할 때는 못 찾았습니다. 두 번 다시 못 보았지요.”


“보려고 하니 안 보이는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해야 보이는 것이 있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순간, 단서를 놓치지.”


“누구를 기다리는지 몰라도, 거기까지 갈 존재가 없으니 아주 오래 기다리겠군요.”

예사달은 빛나는 알의 정체가 궁금하면서도 그가 얼마나 오래 그곳에서 기다릴지 안타까웠다.


“나도 네 제자가 보고 싶구나. 사빈이라고?”

“예. 아주 귀여운 아이입니다.”

사빈을 생각하니 예사달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대천사 반열이 인간세에서 사람과 맺어질 줄은 몰랐구나.”

“뭘요? 천사장도 인간세 여인의 혼과···.”

예사달이 말하려 하자 다훤이 서둘러 손을 뻗었다.


“어허, 이 친구!”

“사랑의 열매를 맺을 줄은···.”


다훤은 우악스럽게 예사달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우, 아직도 덜 맞았구만.”


두 천인이 엎치락뒤치락거리니 동명이 크게 웃었다. 나무가 꿈틀거리자 가지 끝에 앉아있던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바람도 없는데 이파리가 흔들렸고, 가느다란 가지 끝이 마구 요동쳤다.

“하하하. 다훤아, 너도 이제 결심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예? 무슨 결심요?”

“북방흑제가 언제까지 천사장을 맡을 수는 없지 않나. 미틈오름 때 천인들이 많이 사라졌지. 할 수 없이 천사장까지 맡은 거니. 이제는 다른 이가 맡아야지.”


“그거 좋군. 네가 해라. 천사장.”

“무슨! 대천사가 여덟이나 있거든.”


“대천사들 하나씩 붙잡고 물어봐. 천사장하겠다고 할까?”

“그래. 그러니 나도 안 한다!”

다훤이 입을 삐죽거렸다.


동명이 나뭇가지를 움직여 그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이 따라오지. 문제는 끊임없이 생기고 어떻게든 풀어진다. 자네들이 해결책의 하나일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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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천계_기록추적자 23.08.11 43 3 11쪽
119 천계_잉걸둥지에 이르다 23.08.11 41 3 11쪽
118 천계_얼음칼 아움 23.08.10 43 3 11쪽
117 천계_백하의 다짐 +2 23.08.09 48 3 12쪽
116 천계_바람길 연회 23.08.08 43 3 10쪽
115 천계_돌아온 온사랑 23.08.08 46 3 13쪽
114 천계_살아있는 환상 23.08.07 45 3 11쪽
113 천계_가시버시 축제 23.08.06 45 3 11쪽
112 그믐_수명환의 활약 23.08.05 46 3 11쪽
111 그믐_근원을 향한 환영 23.08.04 43 3 11쪽
110 그믐_그룹 갤럭시의 연주 23.08.03 44 3 10쪽
109 그믐_인연 연결자 +2 23.08.02 46 3 11쪽
108 그믐_숨은 후원자 +2 23.08.02 46 3 11쪽
107 그믐_외길과 산돌 23.08.01 42 3 12쪽
106 그믐_나무새가 찾는 주인 23.07.31 42 3 11쪽
105 그믐_하이브리드 인간 23.07.31 43 3 12쪽
104 그믐_사라남 종합병원 23.07.30 44 3 11쪽
103 예사달_몸은 없어도 마음이 있다 23.07.29 43 2 12쪽
102 예사달_다움성의 초대 23.07.29 43 4 11쪽
101 예사달_한얼이라 부르게 23.07.28 42 3 12쪽
» 예사달_신령수 동명 +2 23.07.28 46 3 11쪽
99 예사달_제자를 들이다 23.07.27 42 2 11쪽
98 예사달_빙천골 능금원 23.07.27 44 2 12쪽
97 예사달_불천수 전투 23.07.26 45 2 11쪽
96 예사달_다훤과 만나다 23.07.26 45 2 11쪽
95 예사달_경계의 떠돌이 23.07.25 44 2 11쪽
94 천계_남아있는 향기 23.07.25 43 2 12쪽
93 천계_동녘뜰 사빈재 23.07.24 43 2 11쪽
92 천계_다움성 온새미실 23.07.23 44 2 11쪽
91 천계_새로운 소식 23.07.22 4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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