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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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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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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1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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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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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천계_폭풍 전야

DUMMY

깊은 밤, 혼알방의 모든 혼이 잠들었는데 위즐증가의 꼭대기 별실에만 불이 켜졌다.


그곳에서는 일 층의 무대도 보이지 않고, 다른 별실과 달리 꽃장식도 없었다. 천인들도 여간해서 찾지 않는 곳이었다.


중앙황제 현원은 별실 창문을 열고 이즈막광장을 내다보았다.


돌봄차사와 인도자의 혼례를 축하하기 위해 왔건만, 안타깝게도 여행을 떠난 다음이었다.


할 수 없이 선물만 남기기로 했는데, 두 쌍을 위한 선물이라 꽤 많았다. 그 많은 선물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별실에 손님이 없으니 그곳에 두기로 하고, 이왕 왔으니, 하루 머물다 가기로 했다.

위즐증가의 도우미들이 들은 바는 그러했다.


중앙황제가 왔으니 해담 대차사가 인사하러 오는 것도 당연했고, 상산대감이나 인도자 한얼이 찾아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현원은 창가에서 멀어져 안쪽 탁자로 다가갔다. 해담과 백하, 한얼이 앉아있었다.


“잠깐 사이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구려.”

현원이 자리에 앉자 백하가 그녀를 위해 차를 따랐다.


“사빈은 모르겠지?”

현원이 묻자 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수집가를 목격한 것도, 경고장이 온 것도 모릅니다.”

“잘했다. 사빈이 마음숲을 비워야 저들이 움직일 테니.”


“마음숲을 전쟁터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해담은 손바닥을 펴서 탁자 위를 훑었다.


그의 손길에 따라 호수와 들판의 풍경을 펼쳐졌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마음숲 주변의 모습이었다. 왼쪽 끝에 배웅문이 보였다.


탁자 위에 나타난 풍경은 중앙황천과 동방청천의 경계였다. 동방청천의 남쪽인 숲센계곡이 보였고, 그 아래 연곡호수와 황금들이 보였다.


중앙황천의 남쪽인 삼도천과 해날품곡이 탁자의 가운데 나타났다.


반계의 검은 장벽이 가장 아래였다. 한쪽은 해날품곡에, 다른 쪽은 황금들에 맞닿아있었다.


“연곡호수를 따라 아래로 유인하겠습니다.”

해담이 손가락으로 연곡호수를 지나 황금들을 가리켰다. 황금들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마음숲에 수집가가 숨어들었다더니 그건 어찌 되었소?”

“수색은 마쳤으나 소득이 없습니다. 은신처를 옮긴 것 같습니다. 상산대원들은 마음숲에 남을 겁니다.”


해담이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원래 계획은 마음숲의 수집가를 모두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경고장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한얼이 반계의 검은 장벽을 가리켰다.

“수집가들과 맞선 적이 있습니다. 천력으로 상대할 수는 있으나 그들도 귀력이 강합니다. 문제는 숫자입니다. 장벽에서 끊임없이 밀려 나오니까요.”


“그래도 끝은 있겠지.”

백하가 손가락으로 검은 장벽을 눌렀다.

“황금들에 결계를 치고 상대하시죠. 제가 장벽에서 나오는 후속 세력을 막겠습니다.”


“그럼 세 조로 나누어 가지.”

해담이 손짓하자 작은 병사들이 풍경 위로 솟아났다. 병사들은 해담의 손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음숲에는 상산대원의 반을 남긴다. 이미 들어와 있는 수집가를 상대해야지.”

“지휘는 부루에게 맡기시죠.”

백하의 조언에 해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숲센장벽과 반계 근처에 흩어져있는 수집가들을 황금들로 끌어들인다.”

“수집가를 끌어들인다라? 미끼가 필요하겠군요.”

현원이 연곡호수와 황금들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생각해두었습니다.”

백하가 손을 들었다.


“그들은 사람의 혼을 필요로 합니다. 반인으로 만들려는 거지요.”

“반인?”

해담이 묻자 백하는 탁자 위에 그려진 숲센장벽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영혼수집가입니다. 마음숲의 혼을 모두 가져가 반인으로 만들고, 반계까지 차지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저런!”

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눙과 이루가 그걸 내버려 둔다고?”


“그게···.”

백하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것도 반계의 술수가 아닐까 합니다.”


현원의 반응은 단호했다.

“아닐세. 마눙과 이루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아무래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네. 수집가를 통제 못 하는 무슨 사정이 있는 거야.”


“황제님! 반계에서 벌인 짓을 잊으셨습니까? 불천수에서 얼마나 많은 천인이 소멸했는지!”

백하가 주먹을 불끈 쥐자 한얼이 그의 팔을 툭 쳤다.


“잠깐! 저도 좀 이상합니다.”

한얼이 백하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숲센계곡에서 마눙님에 대한 얘기 들으셨죠? 대감의 말을 다시 생각하니 이상했습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마눙이 깨어나면 그들의 힘을 가져갈 거라고 하셨죠? 신제라지만 상처가 아주 커서 깨어나려면 아직 멀었다고요?”


백하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깨어나지 못하게 한다고···.”


“서두르게. 마눙과 이루에게 일이 생기면 피천귀와 수집가가 폭주할 테니. 그래서 방법이?”

현원이 빠르게 손짓했다.


“마음숲의 빈 혼알방을 갖고 나가는 겁니다. 그 안에 혼이 잠든 것처럼 꾸며야지요.”

백하의 말에 한얼이 눈을 반짝였다.


“아! 좋은 구실이 있습니다.”

한얼이 황금들이 있는 부분을 두드렸다.


“혼알방에서 죄를 지은 혼이라고 하면 됩니다. 욕심이 많고, 다른 혼을 자주 속여서 정화가 필요한 혼이라고 해두면 수집가들이 좋아할 겁니다. 딱 그들이 바라는 혼이거든요.”


“그런 혼이라면··· 정화가 필요하지. 연곡호수에 맑은 물이 나오니 특별히 갖고 나가는 걸로 하시죠. 이쪽은 운와에게 맡기면 됩니다.”

백하가 탁자 위에 나타난 연곡호수를 두드렸다.


해담도 연곡호수와 황금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이유라면 이쪽에 차사들이 가장 많아도 의심하지 않겠어. 다른 구역에서도 곧 도착할 거야.”


대차사의 말에 한얼이 해날품곡을 가리켰다.

“제가 이곳으로 가겠습니다. 반계에서 나오는 수집가들을 막겠습니다.”


“왜 자네인가? 내가 가겠네.”

백하가 한얼의 손을 치웠다.


“제가 맡을 일입니다.”

“예언대로라면 거기서 죽는다며?”


“스승님의 예언이니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남은 상산대원과 내가 가겠네. 수집가를 상대해봤으니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어.”

백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얼이 탁자를 탕 두드리며 소리쳤다.

“대감은 안 됩니다!”


둘러앉은 모두가 한얼을 바라보았다.

“대감은 사빈님을 지켜야죠!”


*


사빈은 위즐증가의 옥상정원에 내려앉았다. 현원이 부르기 전에 그녀가 먼저 찾아냈다.


현원은 정자에 앉아 느긋하게 정원을 바라보았다. 혼례를 축하하러 온 손님답게 자애로운 웃음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사빈을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내가 온 것을 어찌 알았누?”


사빈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저 이번 그믐에는 나가지 않겠어요.”


“왜 그러느냐? 인간세가 힘들어서?”

“다 알고 왔어요. 반계의 수집가를 상대로 싸운다고요.”


“저런.”

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마고를 빨리 찾지 못해서 마음숲이 틀어졌어요. 귀물씨앗이 들어오고, 피천귀와 수집가가 들어온 것도 제가 빌미를 준 거예요.”


사빈이 현원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저도 싸우겠어요.”


현원은 사빈의 손을 잡아 올렸다.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 한쪽 손을 잡았다.


“불안은 믿지 못하는 데서 오지. 우리를 못 믿니?”

“믿어요. 대차사님도, 상산대원들도 다 믿어요. 하지만 제가 어떻게 나가요?”


“마고는 마고의 일을 하면 된단다. 그들은 그믐을 노리고 움직일 테니까.”

“황제님!”


“수명환을 기다리는 사람은 어쩌고? 다음 마고가 인간세에 있다면서?”

현원은 사빈의 손을 다독였다.


“사빈아, 네가 여기 있으면 수집가들도 움직이지 않을 거다. 이번이 아니라도 다음, 다음이 아니면 그다음을 기다리겠지. 늦어질수록 더 치밀하게 준비할 테고.”


“그래도···.”

“어차피 일어날 일이다. 기다릴 필요 없어. 그러니 너는 네 일을 해라.”


“황제님···.”

사빈은 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현원의 손만 내려다보았다.


무엇보다 먼저 다음 마고를 찾아야 했다. 어디 숨었기에 이토록 깊은 시련을 주는가.

‘빨리 찾으면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올 수 있어.’


“사빈아, 그런 고민 말고, 마고를 넘겨준 다음 어디로 갈지나 정해보아라.”

“예? 이런 상황에서요?”


현원은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마음숲은 안전할 거고, 우리 중앙황천도 무사할 거다. 내가 있고, 차사들이 있는데 뭘 걱정하니?”


그녀는 사빈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네가 갈 곳도 준비해야지. 마고의 반지를 넘겨주면 어찌 될지 모르잖니? 시간이 많지 않아.”


현원은 사빈이 어떤 답을 할지 기대했다. 몇 가지 선택이 마련되어 있었다.


다른 마고들처럼 낙원으로 가는 것도 좋았다.

선아 대천사와 담아의 말대로 천사로 가도 문제없었다. 사빈은 대천사 반열의 피를 받았으니까.


인간세에서 차원의 문지기를 맡아도 잘 해낼 것이다. 그동안 인간세에서 단련한 마고의 실력이 있으니.


예사달을 따라 동녘뜰로 가도 괜찮았다. 중간자의 생을 마칠 때까지 거기 있다가 나중에 낙원으로 들어가도 된다.


현원은 가만히 사빈의 대답을 기다렸다.

심란할수록 전혀 다른 생각이 도움이 될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불안한 때에는.


사빈이 고개를 들었다.

“중천으로 가겠어요.”


“뭐? 중천?”

현원은 놀라 잡고 있던 사빈의 손을 놓쳤다.

“왜? 그런 생각을?”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기억 속에 남은 환영이 다시 생생하게 보였다.


해밀의 차원에서 온 음악이 보여준 환영들.

중천 전체가 괴로워하며 웅웅거렸다. 그 안의 혼들이, 비뢰수와 고사목이, 마른 땅이 신음하고 있었다.


“거기가 제가 갈 곳이에요.”


*


꽃수 열쇠는 어김없이 마고 사빈을 불렀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데도, 뒤돌아볼 틈도 주지 않고.


헝겊꽃은 시작과 끝을 표시할 뿐이다.

마고를 움직이는 힘은 꽃수 열쇠가 아니다. 중앙황천보다, 천선계보다 더 큰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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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그믐_마지막 주술 23.09.03 52 3 12쪽
149 그믐_달맞이 언덕의 뒷골목 +4 23.09.02 43 3 12쪽
» 천계_폭풍 전야 23.09.02 43 2 11쪽
147 천계_비밀회의 +2 23.09.01 42 3 11쪽
146 천계_신성한 땅의 흙 23.09.01 42 3 10쪽
145 천계_돌아오는 마음 23.08.31 42 2 12쪽
144 천계_움트는 비밀 23.08.31 44 3 11쪽
143 천계_신령수 동명 +2 23.08.30 42 3 11쪽
142 천계_두 번째 고백 23.08.30 43 3 12쪽
141 천계_숲센계곡 긔니초 23.08.29 42 2 11쪽
140 천계_반가운 할머니 +2 23.08.29 45 4 11쪽
139 천계_방법을 찾겠습니다 23.08.28 43 3 11쪽
138 천계_에밀레와 나토두 +2 23.08.27 43 3 12쪽
137 천계_떠나는 용희 23.08.26 41 4 11쪽
136 천계_기운을 훔친 대가 23.08.25 43 4 10쪽
135 천계_사라진 혼알방 +2 23.08.24 44 3 12쪽
134 그믐_빛나는 알과 만나다 23.08.23 43 3 8쪽
133 그믐_우주의 미아 +2 23.08.23 43 3 10쪽
132 그믐_소환 23.08.22 42 2 11쪽
131 그믐_대의각 앞마당 23.08.21 42 2 9쪽
130 그믐_증좌를 찾아내다 23.08.21 42 2 9쪽
129 그믐_형감어사 문휘수 23.08.20 43 2 11쪽
128 그믐_별사탕을 어찌 아는가 23.08.19 43 3 11쪽
127 그믐_사람의 눈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 23.08.18 43 3 11쪽
126 그믐_판정관 황민 23.08.17 41 2 11쪽
125 그믐_억울한 누명 23.08.16 43 3 11쪽
124 그믐_그들의 비밀 23.08.15 41 4 10쪽
123 그믐_전생을 기억하는 소녀 23.08.14 42 2 11쪽
122 그믐_영함산과 만선상단 23.08.13 41 3 11쪽
121 천계_공조 23.08.12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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