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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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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268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8.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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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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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9쪽

그믐_증좌를 찾아내다

DUMMY

움막은 비었어도 사람의 기운은 남아있었다. 검붉은 무사들과 같은 기운이었다.


“들어가지 마세요. 단서가 흐트러집니다.”

나는 우룡과 동범을 가로막았다.


“아무것도 없구만. 먼지만 잔뜩 쌓였어.”

“여기가 맞기는 하오?”

두 사람은 갸웃거렸지만, 확실했다.


“예. 분명 여기 있어요.”

마고의 기운이 아니라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동안 인간세에서 물건 찾고, 사람 구한 세월이 얼마인데.


문 앞에 서서 벽과 바닥, 천장을 둘러보았다.

사람의 기운이 서린 곳은 세 군데. 천장 오른쪽 구석, 입구 맞은편 벽, 왼쪽 창문 아래 바닥.


천장은 구멍이 뚫려 빛이 환하게 새어 들어왔다.

벽은 나무 위에 흙을 덧발랐다. 군데군데 흙이 떨어져 뼈처럼 나무가 드러났다.


나무판자가 깔린 바닥은 마른 흙과 먼지가 쌓였다. 발자국도 여기저기 찍혀있었다.


우룡과 동범은 실망한 얼굴로 움막 안을 기웃거렸다.


‘다음을 위해 설명해줘야지.’

별사탕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니 앞으로 별사탕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먼지도 중요하니까 함부로 발자국을 내면 안 돼요. 어사님을 기다리죠. 일단 벽부터 살펴봐요.”


밖으로 나와 바깥벽을 따라 걸었다.


“벽을 살펴본다며 어디 가시오?”


나는 창구멍으로 안쪽 벽을 가리켰다.

“저기 맞은편 벽을 보세요. 다른 벽보다 촘촘하죠? 저건 이중으로 세운 겁니다. 그 안에 공간이 있을 거예요.”


“과연···.”

동범이 맞은편 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흙벽에 손자국이 보이는군.”

“안에서는 자국이 잘 보이지 않아요. 빛이 비켜 들어야 보여요.”


나는 움막을 빙 둘러 걸었다.

“걸음 수를 세면 안쪽 공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알 수 있어요. 밖에서 세어 보고 안에서 세는 겁니다.”


문 앞으로 돌아왔을 때 문휘수와 바나가 찾아왔다.


우룡이 반갑게 그들을 맞았다.

“주술사님이 보통이 아닌데요. 전문 수사관입니다.”


“어사님이 오셨으니 바닥부터 살펴보죠.”

나는 문휘수가 먼저 들어가도록 문 옆에서 기다렸다.


“바나, 넌 망을 보고 있어.”

“알겠어라. 왕왕.”

바나는 움막으로 들어오는 숲길로 돌아갔다.


문휘수는 예리한 눈으로 벽과 천장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저쪽에만 발자국이 있군. 저 아래 숨겨놓았을 걸세.”


나는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닙니다. 일부러 만든 자국이에요.”


발자국이 찍힌 부근에 서서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는 일부러 자국을 남긴 거예요. 보세요. 모두 한 사람 것입니다.”


우룡이 발자국을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 것이 맞네요.”


“그럼, 바닥이 아니라 벽인가?”

동범이 흙에 묻은 손자국을 가리켰다.


“바닥부터 찾고, 벽으로 들어가죠. 벽부터 만지면 바닥을 지나치게 되니 그걸 노린 겁니다.”


나는 왼쪽 벽의 창구멍으로 다가갔다.

“여깁니다.”

“그건 어떻게 아는가?”


“비가 새니 다른 곳은 빗방울이 떨어진 흔적도 있고, 바람이 먼지를 쓸고 다녀요. 그런데 여기만 흙이 잘 덮여있어요.”


바닥의 흙을 털어내자 손을 넣을 만한 홈이 드러났다.


“제가 열겠습니다.”

동범이 바닥을 열자 흙과 먼지가 풀풀 날렸다.


나무판자 아래 두루마리와 서찰이 들어있었다. 우룡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 대단하네. 그냥 주술사가 아니었어.”


‘이 정도면 도움이 되겠지?’

한얼이자 별사탕의 일이잖아? 힘껏 도와야지, 암.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 문휘수를 돌아보았다. 그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린 별사탕도 그런 눈빛이었다. 단아루의 무대를 보며 황홀해하던.

꼭 저런 눈으로 내게 손뼉을 쳐주었는데···.


“벽은 나도 알겠소.”

동범이 흙벽의 손자국에 손을 갖다 댔다.


“그 옆이요. 안쪽에 손을 넣어보세요.”

“여기 있군.”

동범은 안쪽과 바깥쪽 틈 사이에서 서찰과 얇은 책자를 꺼냈다.


문휘수가 얇은 책자를 휘리릭 넘겨보았다.

이름과 나이, 지위가 쓰여있었다. 미사홀파의 추종자들일 것이다.


“한 군데 더 있습니다.”

“또 있단 말이오?”

문휘수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금방이라도 죽일 것 같더니 이제는 동무를 대하듯 친절해졌다. 나도 미소로 답했다.


“예. 천장에 비가 새는 곳이 많지만, 비가 들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나는 오른쪽 구석에 섰다.


“젖지 않게 송진을 입힌 종이나 보자기로 감쌉니다. 천장도 흙과 송진을 덧발랐죠.”


“그건 내가 하겠소.”

키가 큰 우룡이 들보 위에 손을 집어넣었다. 빳빳한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증좌도 찾았겠다, 나도 할 일이 남았다. 만선상단 사람들과 해령을 위해서.


나는 문휘수 앞에 서서 두손을 모았다.

“어사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가슴에 품고 있던 두루마리를 꺼냈다. 수레 밑에서 꺼낸 가짜 문서였다.

“구본성의 위판 신용무가 만든 가짜입니다.”


문휘수는 두루마리를 펼쳐보았다. 그의 눈썹 사이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성주의 아들도 한패라고?”


“위판이 구본성을 차지하려고 해요. 상단 사람들은 절대로 역도가 아닙니다.”

“알고 있소. 미사홀파가 대리자를 내세울 거라 추측했소.”


“꼭 풀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약속하겠소.”

문휘수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 한얼의 눈빛 그대로였다. 강렬하면서 힘이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다정한.


“증좌를 찾았으니 바로 움직이게. 미사홀파를 처리해야지.”

“예!”

우룡과 동범이 앞장서서 움막을 나갔다.


“영함산 전투는 구본성까지 전해지지 않았겠지?”

“예. 성안에서는 모를 겁니다.”


“지금 당장 성으로 가자.”

문휘수가 숲길로 들어서자 바나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갑자기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신용무가 두루마기를 숨기기 전에 했던 말.


“어사님!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뭔가?”

문휘수가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지원군이 밤에 온다고 했습니다. 성문 앞에서 암호를 대면 됩니다.”

“암호가 뭡니까?”

우룡이 물었다.


“먹구름은 지나갔다. 새로운 내일이 다가왔다. 이렇게 외치면 문을 열기로 했답니다.”

“음. 미사홀파인 척 들어가자는 말이군?”

문휘수가 으음 목을 가다듬었다.


“성안의 역도들도 안심하겠군요.”

동범이 주먹을 흔들었다.


“그들을 어떻게 구별하오?”

“신발에 보라색 실을 묶고 있습니다.”


나는 몇 걸음 떨어져서 문휘수를 마주 보고 섰다.

“저는 먼저 가야겠습니다. 증좌를 건네기로 했으니 하나만 주십시오.”


“증좌는 내줄 수 없네.”

문휘수의 대답은 단호했다.


“예? 그럼, 뭐라고···.”

“대신 이걸 주겠네.”

문휘수는 품에서 목패를 꺼냈다.


우룡이 어엇 소리를 냈다.

“어사님, 그것은···.”


“괜찮네. 중요한 단서를 찾게 해주었으니, 받아도 되네.”

“그래도···.”


문휘수는 내 손에 목패를 쥐여 주었다.

“신왕의 수하라는 표시요. 성주에게 보이면 당신을 믿을 거요.”


짙은 갈색의 목패는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기름이 잘 스며 매끈거렸다.

앞에는 용 두 마리가 엉켜서 하늘로 올라가고, 뒤에는 백선국 왕이 믿는 자라고 쓰여있었다.


“고맙습니다. 살릴 수 있겠어요.”

증좌를 찾았으니 남은 문제는 해령이었다.


‘지금이 아니라 다른 날에···.’

해령이 언제 죽든 황민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이 되겠지만.


*


영함산을 내려오자 바나가 끼깅거렸다.

“왕, 주인님, 인간세 사람을 도와도 되는 거여라?”


나는 목패를 쓰다듬었다.

“그들은 죄 없는 사람들을 속이고 괴롭혔어. 이 정도는 할 수 있거든? 난 선사도, 천사도 아니니까.”


천사나 선사는 인간세에 간섭하지 못해도, 마고는 할 수 있다.


‘해령을 구하러 가자!’

마음이 급해 뛰기 시작했다. 해지기 전에 판정관을 만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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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그믐_마지막 주술 23.09.03 52 3 12쪽
149 그믐_달맞이 언덕의 뒷골목 +4 23.09.02 43 3 12쪽
148 천계_폭풍 전야 23.09.02 43 2 11쪽
147 천계_비밀회의 +2 23.09.01 42 3 11쪽
146 천계_신성한 땅의 흙 23.09.01 43 3 10쪽
145 천계_돌아오는 마음 23.08.31 43 2 12쪽
144 천계_움트는 비밀 23.08.31 45 3 11쪽
143 천계_신령수 동명 +2 23.08.30 42 3 11쪽
142 천계_두 번째 고백 23.08.30 43 3 12쪽
141 천계_숲센계곡 긔니초 23.08.29 43 2 11쪽
140 천계_반가운 할머니 +2 23.08.29 45 4 11쪽
139 천계_방법을 찾겠습니다 23.08.28 43 3 11쪽
138 천계_에밀레와 나토두 +2 23.08.27 43 3 12쪽
137 천계_떠나는 용희 23.08.26 41 4 11쪽
136 천계_기운을 훔친 대가 23.08.25 44 4 10쪽
135 천계_사라진 혼알방 +2 23.08.24 44 3 12쪽
134 그믐_빛나는 알과 만나다 23.08.23 44 3 8쪽
133 그믐_우주의 미아 +2 23.08.23 43 3 10쪽
132 그믐_소환 23.08.22 43 2 11쪽
131 그믐_대의각 앞마당 23.08.21 42 2 9쪽
» 그믐_증좌를 찾아내다 23.08.21 43 2 9쪽
129 그믐_형감어사 문휘수 23.08.20 43 2 11쪽
128 그믐_별사탕을 어찌 아는가 23.08.19 43 3 11쪽
127 그믐_사람의 눈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 23.08.18 43 3 11쪽
126 그믐_판정관 황민 23.08.17 41 2 11쪽
125 그믐_억울한 누명 23.08.16 43 3 11쪽
124 그믐_그들의 비밀 23.08.15 42 4 10쪽
123 그믐_전생을 기억하는 소녀 23.08.14 43 2 11쪽
122 그믐_영함산과 만선상단 23.08.13 41 3 11쪽
121 천계_공조 23.08.12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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