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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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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243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8.2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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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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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0쪽

천계_기운을 훔친 대가

DUMMY

마음숲 북쪽, 혜존각이 자리한 그림터가 부산스러워졌다. 사빈과 한얼이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왔다.


그들은 혜존각 앞에 내려섰다가 작은 나무를 찾아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단가람이 죽어간다고요?”

“예. 인간세에서 만났는데, 매달리며 놓지 않더군요.”


“병원에서요?”

“아닙니다. 빌라에서···.”


한얼이 얼버무리자 사빈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파라다이스 빌라요?”


“예. 우연히 하륜님의 기운을 만났습니다. 그분 말씀을 듣고 더는 과거를 캐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보내야죠.”


사빈은 싱긋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요? 그럼, 재미있는 이야기는 나중에 해드리죠. 마음의 준비가 되면.”


“아, 여깁니다.”

한얼이 나무 위를 가리켰다.


그림터의 나무집이 모두 그렇듯 나뭇가지와 잎이 자연스레 얽혀 기둥과 벽이 되었다.


안쪽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사빈은 기척을 따라 구석으로 들어섰다.


단가람이 죽은 듯 누워있었다. 뼈와 껍질만 남은 듯 보였다.


“단가람!”

사빈은 단가람의 옆에 앉아 그의 손을 잡았다.


단가람이 힘들게 눈을 떴다.

“스승님···. 오셨군요. 스승님 옆에서 죽으려고요.”


“어디서 죽건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대명천에서 만날 거잖아?”

“예. 그래도 이렇게 보니 좋네요.”


“인간세 일은 잘 마무리했어?”

“회사도 다 정리했어요. 변호사도 있으니까요.”


단가람은 숨이 딸리는지 말을 멈추었다. 마른기침을 쏟으며 몸을 심하게 떨었다.


“천사님이 힘을 나눠주셨어요. 제 목걸이를 보더니···.”

단가람이 목에 걸린 옥구슬을 만지작거렸다.


“그분이··· 찾으신 거라고.”

그가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사빈은 그의 손등을 토닥였다. 비쩍 말라 뼈가 고스란히 만져졌다.

“구슬값 내놓으라고 하지 않아? 가온이 그냥 줄 리 없는데.”


“제가 치료비를···. 콜록.”

잔기침을 뱉으니 그의 가슴이 쿨럭거렸다.


“아, 그건 제가 압니다.”

한얼이 안쓰러워하며 사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심장병 환자들을 위해 치료비를 기부했습니다. 무슨 연주회 끝나고 전달하는데, 그때 가온님이 단가람을 알아보았답니다. 정확히는 이 목걸이를.”


한얼도 연녹색 옥구슬을 바라보았다. 흰 구름무늬가 하늘에 떠가듯 꿈틀거렸다.


단가람이 주머니를 뒤적여 편지를 꺼냈다.

“천사님이 주셨습니다. 스승님께 전해달라고요.”


급하게 휘갈겨 쓴 짧은 편지였다.


‘사빈, 언제 이런 제자를 들였어? 천계와 인간세를 오가는 사기꾼이라며?

옥구슬값은 안 받기로 했어.

환자들을 위해 거금도 냈고. 그동안 좋은 일도 했더만.


은서는 김치국의 열혈팬이 되었어. 기막힌 소설이 나올 거라나.


하도 스승을 찾기에 달숲으로 데려왔지. 대명천까지 올라갈 기력은 채워주려고.

딱 맞춰 인도자가 나타났네?


그 한얼 맞지? 너를 고민하게 하는? 다시 보니까 고민할만하네. 예전에는 영 아니었는데.

얼음대감도 좋고, 인도자도 좋고.


너의 첫 제자 잘 보내주고, 즐거운 고민 계속해.

참, 빌라에는 언제 올 거야? 네 자리는 늘 준비되어 있어.’


사빈은 편지를 접어 품에 넣었다.

“가온 천사랑 지내기 힘들었지? 너무 엉뚱하고 힘에 넘쳐서.”


단가람이 헛웃음을 뱉었다.

“조금···.”


“고생했어. 조금만 쉬어.”

사빈은 그의 손을 이불 아래 넣어주고 일어섰다.


싸늘한 바람이 휘이잉 불어왔다. 서릿발처럼 차고 날카로운 기운.


사빈은 곧 나타날 얼음대감에게서 단가람을 지키기 위해 바람을 막아섰다.

한얼도 지팡이를 잡고 그녀의 옆에 섰다.


백하는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들어왔다가 사빈을 발견하고 발을 멈추었다.

“사빈님···?”


“대감, 무슨 일인가요?”

“혼을 속인 사기꾼이오.”

“단가람은 많이 아픕니다.”


백하의 이마에 불끈 핏줄이 솟아올랐다.

“무슨 말이오? 지금 당장 설화옥으로 보내야 하오.”

“죄를 지었으나 이미 벌을 받았어요.”


“사빈님!”

백하가 소리를 질렀다.


“이 자가 그동안 한 짓을 다 잊었소? 혼들을 얼마나 속였는지 모른단 말이오?”


“스승님···.”

구석에서 단가람의 소리가 들렸다. 남아있던 기운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스승? 설마···, 이 자를 제자로 들였소?”

“예. 지금은 저의 제자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반인반천의 아픔을 천인이 알 리 없죠.”


사빈은 단가람 옆에 앉았다. 그녀는 뒤따라온 백하를 올려다보았다.


“단가람은 마음숲을 도왔어요. 한긋장벽에 생긴 구멍을 알려줬고요. 대감도 알잖아요? 반계에 대해 알려준 이가 바로 단가람이에요.”


백하는 이마가 불끈거렸으나 막상 그를 보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사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지난 그믐에도 절 도와줬어요. 혼을 속인 것은 잘못이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반인반천처럼 살지 못하게 되었죠. 수명도 다 채우지 못하고요.”


단가람은 손을 휘저어 사빈의 손을 찾았다.

“스승님, 인간세에 남은 재산을 모두 스승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난 필요 없어. 마음숲에서는 쓸모없잖아?”

“인간세에 있는 신성한 땅입니다. 좋은 일에 써주세요.”


사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어. 달숲에 있었으니 알지? 거기가 차원의 문이야. 가온도, 은서도 문지기들이야. 그들에게 맡기자.”


“스승님 말씀은 다 좋습니다.”

“옥구슬값으로는 너무 크잖아?”

사빈의 농담에 단가람이 허허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중천에서··· 기다리···.”

단가람의 손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툭 바닥에 떨어지며 눈을 감았다.


“단가람? 단가람!”

사빈이 이름을 부르는 사이 그의 몸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혼은? 혼은 어디 갔지?”

그가 있던 곳을 둘러보았으나 그의 혼은 보이지 않았다.


“사빈님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한얼이 밧줄을 던졌다.


밧줄 다술은 허공을 휘젓다가 한곳에 머물렀다. 밧줄을 잡아당기자 밧줄 끝에 반짝이는 빛이 서렸다가 사라졌다.


한얼은 밧줄을 둥글게 말아 쥐고 깃털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


사빈은 웅크리고 앉아 혼이 사라진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중천에서··· 만나자.”


중천이라고 읊조리니 그곳에서 보고 들은 소리가 되살아났다.

‘나 약속했는데···. 비뢰수와 고사목들과···.’


거기 있을 또 다른 혼이 생각났다.

‘황민의 혼은 중천에서 벗어났을까···.’


“미안하오. 이럴 줄은 몰랐소.”

백하는 사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대감은 대감의 일이 있으니까요.”

“아날빛숨까지 데려다주겠소.”


사빈은 대답 대신 백하를 올려다보았다.

“조금만···, 있다가 가지요.”


그녀는 단가람이 누워있던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스승도 없이 반인반천으로 사느라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이제는 있고 싶은 곳에 있을 수 있소. 원하는 시간을 살 테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백하는 그녀의 한숨이 엷어질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


사빈은 천천히 샛강을 따라 걸었다. 백하도 그녀의 옆에서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혼알방이 얼마나 없어졌나요?”

“적지는 않소.”

“누가 어떻게 가져갔는지는 알아냈나요?”

“아직은. 흔적도, 단서도 없소.”


“정말 수집가라면···. 방법이 없을 수도 있어요.”

“수집가?”


백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얼도 같은 말을 했는데?’


해날품곡에서 한얼을 공격하던 놈들은 피천귀가 아니었다. 몇 배는 강하고 교활했다.


‘영혼수집가들입니다. 피천귀는 사람의 욕망으로 힘을 얻지만, 수집가는 스스로 힘을 만듭니다. 사람의 영혼으로 새로운 영혼수집가도 만들고요.’


백하는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피천귀든, 수집가든 반계에서 부리는 계략이오. 반드시 찾아내겠소.”


사빈은 걸음을 멈추고 샛강을 바라보았다.


“금지된 차원의 수집가들은 사라졌다고 했어요. 지금 있는 것들은 사람이 스스로를 내놓은 거겠죠.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니, 천계에서 나설 수 없을 거예요.”


백하도 샛강과 그 위를 떠가는 휘나래를 바라보았다. 휘나래에 타고 있던 혼들이 사빈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사람이라면 동족을 늘리려 하겠군.”

“예. 피천귀와는 달리 스스로 힘을 얻고, 다른 수집가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수집가를 만들기 위해 혼알방과 혼을 가져간다? 말이 되는군. 허나 나갈 수 없을 텐데?”

“마음숲 어딘가 길이 있을 거예요. 마고의 힘이 약해지면서 틈이 생긴 거죠.”


“찾아내 모두 없애겠소. 감히 천계를 넘보다니!”


사빈은 백하의 하얀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마에서 코와 턱으로 이어지는 선이 수려하고 아름다웠다.


천인이기에 힘과 아름다움을 타고났으나, 천인이라고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다.


사빈은 샛강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제님이 그러셨지. 천인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고.’


다움성에 갔을 때 중앙황제 현원이 알려주었다.

‘천인이 대단한 힘이 있다고? 아니다. 자연의 기운을 잘 이용하는 것뿐이야. 천계에 태어나 천인이고, 선계에 사니까 선인이란다.’


온새미실에서 쓸쓸히 웃던 현원을 생각하니 마음이 스산했다.


“없애지 못한다면···.”

사빈이 중얼거렸다.


“조종하고 통제할 수는 있겠죠.”

“수집가를 어떻게?”


“천계에서는 할 수 없어도 그만한 힘을 가진 분이··· 있으니까요.”

사빈은 가만히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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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천계_폭풍 전야 23.09.02 43 2 11쪽
147 천계_비밀회의 +2 23.09.01 42 3 11쪽
146 천계_신성한 땅의 흙 23.09.01 42 3 10쪽
145 천계_돌아오는 마음 23.08.31 43 2 12쪽
144 천계_움트는 비밀 23.08.31 45 3 11쪽
143 천계_신령수 동명 +2 23.08.30 42 3 11쪽
142 천계_두 번째 고백 23.08.30 43 3 12쪽
141 천계_숲센계곡 긔니초 23.08.29 42 2 11쪽
140 천계_반가운 할머니 +2 23.08.29 45 4 11쪽
139 천계_방법을 찾겠습니다 23.08.28 43 3 11쪽
138 천계_에밀레와 나토두 +2 23.08.27 43 3 12쪽
137 천계_떠나는 용희 23.08.26 41 4 11쪽
» 천계_기운을 훔친 대가 23.08.25 44 4 10쪽
135 천계_사라진 혼알방 +2 23.08.24 44 3 12쪽
134 그믐_빛나는 알과 만나다 23.08.23 43 3 8쪽
133 그믐_우주의 미아 +2 23.08.23 43 3 10쪽
132 그믐_소환 23.08.22 42 2 11쪽
131 그믐_대의각 앞마당 23.08.21 42 2 9쪽
130 그믐_증좌를 찾아내다 23.08.21 42 2 9쪽
129 그믐_형감어사 문휘수 23.08.20 43 2 11쪽
128 그믐_별사탕을 어찌 아는가 23.08.19 43 3 11쪽
127 그믐_사람의 눈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 23.08.18 43 3 11쪽
126 그믐_판정관 황민 23.08.17 41 2 11쪽
125 그믐_억울한 누명 23.08.16 43 3 11쪽
124 그믐_그들의 비밀 23.08.15 41 4 10쪽
123 그믐_전생을 기억하는 소녀 23.08.14 42 2 11쪽
122 그믐_영함산과 만선상단 23.08.13 41 3 11쪽
121 천계_공조 23.08.12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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