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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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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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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1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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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3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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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천계_신령수 동명

DUMMY

늦은 밤, 사빈은 꿈에 빠져있었다.


모래와 작은 풀이 뒤섞여 자라는 푸른 사막이었다.

오두막도 네 개나 있었다. 삼 층과 이 층짜리 넓은 오두막에, 텃밭과 약초밭도 있었다.


그녀는 긔니초를 가꾸었다. 애기별꽃, 산뫼, 용발, 여러 가지 약초들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름드리나무가 그늘을 드리웠다. 하얀 나무에 노랑, 빨강, 초록빛 이파리가 어우러졌다.

그녀는 바구니에 선홍빛 나무 열매를 따 담았다.

‘고마워. 이번에도 열매가 아주 탐스럽구나.’


굵고 하얀 기둥을 쓰다듬었다.

‘신령수 덕분에 널 만난 거야. 동명님이 아니면 거기까지 못 갔어.’


그때 큰소리가 들렸다.

“사빈아!”


꿈속의 사빈이 뒤돌아보았다.


아롱재에 누워있는 사빈에게 꿈속의 그녀가 보였다. 분명 자신인데, 자신이 아니었다.

어딘가 달랐다. 천력도 가득 차 보였고, 눈빛도 맑았다.


왼손 검지에는 마고의 반지가 아니라 청록색 반지를 끼고 있었다.


‘저건 뭐지?’

사빈이 꿈속의 자신을 바라보는데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사빈아. 드디어 공간이 이어졌구나.”


사빈은 번쩍 눈을 떴다.

“누구세요?”


“나는 동명이다. 너를 기다렸다.”

“신령수 동명님?”


사빈은 서둘러 겉옷을 둘렀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신령수와 이어질지 모른다.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돼.”


바나는 문 옆에서 쌕쌕 코를 골며 잠들어있었다. 바나를 깨울 시간이 없었다.


“지금 갑니다.”

사빈은 창가로 다가갔다. 신령수의 결계가 아롱재의 벽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결계 속으로 뛰어들었다.

결계가 서서히 닫히는데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사빈님! 잠깐만요! 저도 같이요!”

나토두가 헐레벌떡 창문을 뛰어넘었다.


사빈이 나토두를 잡아끌었다.

“너도 깨어났구나. 다행이야.”


그들이 들어서자 결계가 완전히 닫혔다.


*


신령수의 결계는 여기 있으면서 저기에도 있었다. 마음숲에 있으면서도 다른 신성한 공간이었다.


나토두는 부스스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잠에서 막 깨어나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여기가 어디죠?”


“신령수 동명님의 결계. 오랫동안 만나고 싶었는데, 겨우 이어졌어.”

사빈은 키 큰 나무를 바라보았다.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높이에, 아날빛숨보다 크고 굵어 나무로 만든 성에 가까웠다.

“저거야. 신령수.”


사빈은 훌쩍 날아올랐다.


넓고 싱그러운 초록 숲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 사이를 투명한 강물이 천천히 흘렀다.

새소리, 바람 소리, 사뿐히 내딛는 발소리까지 마치 선계의 숲속을 나는 기분이었다.


“네가 사빈이구나.”

거대한 나무에서 웅웅 소리가 울렸다.


나뭇가지 두 개가 내려와 사빈과 나토두를 태우고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맨 꼭대기에서 멈추었다.


그곳에 서니 결계 안의 모든 곳이 내려다보였다. 지평선 끝까지 산과 계곡, 강과 호수가 펼쳐져 초록의 생명력이 가득했다.


“동명님, 뵙고 싶었어요.”

사빈이 나무 기둥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허허, 내가 기다렸단다. 너와 이어지기를.”

동명이 웃자 이파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토두가 나무를 쓰다듬으며 머리 위에서 발아래까지 몇 번이나 두리번거렸다.

“신령수의 결계요? 천인은 잘 모르던데요?”


“찾는 것이 아니다. 공명이 맞으면 그에게 나의 결계가 머무니까. 서로가 바라고, 시간의 힘과 공간의 기운이 맞아야 한단다.”


“지금이 그때인가요?”

“바로 그렇다.”

동명의 대답에 나토두는 호오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빈은 가지 끝에 앉았다.

“동명님, 다음 마고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그건 모르나 이것은 안다. 어리화가 검어졌다고 인연이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것.”

“하아···. 동명님도 애매한 답을 좋아하시네요. 천선계의 전통인가? 황제님도, 할머니도, 하륜 선위까지 모호하게 말한다니까요.”


그녀는 그네를 타듯 다리를 쭉 펴고 아래위로 흔들었다.

“있는데 없다는 둥, 보이나 보이지 않는다는 둥···.”


사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혼알방이 없어진 것도 아세요? 수집가들이 어디로 가져갔을까요?”

“그건 네가 찾아야 할 일이지.”


‘역시나···.’

사빈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직 한긋장벽 안에 있을 것 같은데···. 남쪽 다름샘이오. 그 아래일 거예요.”


“너는 못 갈 것 같구나.”

“왜요? 인간세에서도 지하동굴 헤맸는걸요?”


“백하가 들여보내지 않을 테니까.”

“어, 그건···.”

사빈이 얼버무리자 동명이 쿨럭거리며 웃었다. 그가 웃자 나뭇가지가 사사삭 흔들렸다.


“동명님, 혹시 반계와도 연결되나요? 마눙님과 이루님에게 할 말이 있어요.”

“반계에서는 나를 찾는 이가 없더구나.”


“마눙님이 많이 아픈 것 같던데···.”

사빈이 혀를 차자 나토두가 다가와 앉았다.


“마백북존 말씀이십니까? 천인들은 무척 싫어하던데요?”

“맞아. 마음숲에서는 말도 못 해. 하지만,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잖아?”

사빈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몰려왔다가 빠르게 흘러갔다. 구름이 지나간 자리에 맑고 푸른 하늘이 나타났다.


“동명님은 천선계의 일을 많이 아시죠?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요.”

“그건 네가 찾아야지. 너를 돕는 이들이 많으니···. 반계에서도 널 돕지 않느냐?”


“반계에서요?”

사빈은 꿈결처럼 자신을 부르던 소리를 떠올렸다.


“불천수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라온향이 있었으니 이루님 같은데···.”

“허허, 반계에 들어간 적도 있고, 아버지도 만나지 않았느냐?”

“그건 시간과 공간의 덫에 걸려서···.”


“네가 본 것일까, 그들이 보여준 것일까?”

“아···!”

사빈은 말문이 막혔다.


“선계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여기서는 보인단다. 그래도 중간자의 눈과는 다르지. 중간자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더구나. 그것을 찾으면 된단다.”


“다훤 아저씨는 왜 저를 중간자로 만들었을까요?”

“그 아이도 모를 거야. 왜, 어떻게. 그런 질문에는 답하지 못할 게야.”

“그럼, 수리마루님이 한 일인가요?”


사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나토두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러나 사빈은 그를 바라볼 여유도 없었다.


“그분도 가끔 인간세에 나오는 것 같지만, 보지 못했다. 지나간 흔적으로 추측할 뿐이지.”

“인간세에만 나가신다 이거죠?”

사빈은 소맷자락을 탁탁 털었다.


“동명님, 공간을 떠돌면서 하얀 나무와 붉은 구슬을 보셨어요?”

“나무와 구슬? 그런 건 못 봤지만···.”

동명은 가지 끝의 이파리를 흔들었다.


“이상한 기운은 느꼈다. 둥근 알 같은 기운이었는데···.”

“빛나는 알이요? 그건 다른 차원을 열었고요. 혹시 다른 건요?”


“글쎄다. 생각해보마.”

동명이 깊은 생각에 빠지는지 바람도 그치고 흔들리던 이파리도 멈추었다.


“무언가 있기는 있구나. 내게는 보이지 않으니 네가 직접 봐야겠구나.”

동명이 다른 가지 끝으로 사빈을 옮겼다.


“네가 찾는 것이 맞다면, 그것도 너를 기다릴 것이다. 간절히 바라거라. 네 소망에 반응해 나의 결계가 움직일 테니.”


사빈은 눈을 감고 나무와 구슬을 보았던 환영을 그대로 떠올렸다.


환영 속에서 나무는 하얗게 빛났다.

노란 잎은 붉어졌다가 푸른빛으로, 검은 잎이 되어 떨어지고 다시 노란 잎이 피어났다.


‘나는 너를 알아. 너는 라온나무야.’


붉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뿌옇게 흩어진 별 가루 구름이 둥실둥실 모여들어 여러 개의 구슬처럼 보였다.


동명의 가지가 사빈을 흔들었다.

“됐다. 너를 기다리는 것이 있구나.”


사빈이 눈을 뜨자 결계 밖에 하얀 나무가 서 있었다.

그러나 바우의 콘서트에서 보았던 환영과는 너무나 달랐다.


잎이 무성하고 하얗게 빛나는 나무가 아니라 비쩍 마른 나무였다. 색이 하얗다는 것만 빼면 전혀 아니었다.


“이게 아닌 데요. 이건 빛도 바래고···.”

“내게는 보이지 않는단다. 무언가 기운이 있을 뿐이야.”


사빈은 큼 목구멍을 울렸다.

‘환영이 잘못되었나? 하긴···, 여기 나무가 사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어디 또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하얀 나무에 손을 뻗었다. 나무는 스르르 그녀의 손을 타고 빨려들어 숨결 속에 머물렀다.


동명이 다른 공간도 열어주었다.

붉은 구름 덩어리가 있었지만, 동명에게는 붉은빛도 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사빈의 손에 닿자 구름도 그녀의 숨결로 들어섰다.


“아무것도 없는데 뭘 하신 거예요? 아까부터?”

나토두가 두리번거렸다.


“네게도 안 보이는구나. 중간자에게만 보이는 거란다.”

동명이 가지를 흔들었다.


“이런, 헤어질 때로구나. 다음에 다시 만나자꾸나.”

나뭇가지와 결계가 함께 쿨렁거렸다.


“그러면, 동명님···.”

사빈이 인사하려는데 그녀와 나토두는 이미 아롱재 창가에 서 있었다.


*


사빈은 숨결 속에 넣어두었던 하얀 나무와 붉은 구름 덩어리를 꺼내놓았다.


“이건 무엇입니까?”

나토두가 눈을 꿈뻑거렸다.


“이제 보여?”

“아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여기 오니까 보입니다.”


“이건 라온나무··· 일걸? 내가 본 건 잎도 무성하고, 꽃도 피었는데. 이건 비쩍 마르고 가지만 앙상해. 향기도 전혀 안 나고···.”

사빈은 나뭇가지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이름은 라온나무.”

라온나무는 공중에 뿌리를 내리고 똑바로 섰다.

뿌리도 가지와 모양이 비슷해 가느다란 막대기 양 끝으로 가지가 솟아난 듯 보였다.


붉은 구름 덩어리는 꾸물거리며 천장에 달라붙었다.

숨꼭지들이 사르락거리며 구름 주위로 몰려들었다. 새로운 숨꼭지인 줄 알고 환영하는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일단 가져왔고!”

사빈은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이렇게 공간을 연결하면 그믐이 아니어도 어디든 갈 수 있잖아? 그걸 왜 몰랐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수 동명님이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나토두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잘라 말하다니. 그래···. 마고는 할 수 없어.”

사빈은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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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천계_폭풍 전야 23.09.02 43 2 11쪽
147 천계_비밀회의 +2 23.09.01 42 3 11쪽
146 천계_신성한 땅의 흙 23.09.01 43 3 10쪽
145 천계_돌아오는 마음 23.08.31 43 2 12쪽
144 천계_움트는 비밀 23.08.31 45 3 11쪽
» 천계_신령수 동명 +2 23.08.30 43 3 11쪽
142 천계_두 번째 고백 23.08.30 43 3 12쪽
141 천계_숲센계곡 긔니초 23.08.29 43 2 11쪽
140 천계_반가운 할머니 +2 23.08.29 45 4 11쪽
139 천계_방법을 찾겠습니다 23.08.28 43 3 11쪽
138 천계_에밀레와 나토두 +2 23.08.27 43 3 12쪽
137 천계_떠나는 용희 23.08.26 41 4 11쪽
136 천계_기운을 훔친 대가 23.08.25 44 4 10쪽
135 천계_사라진 혼알방 +2 23.08.24 45 3 12쪽
134 그믐_빛나는 알과 만나다 23.08.23 44 3 8쪽
133 그믐_우주의 미아 +2 23.08.23 43 3 10쪽
132 그믐_소환 23.08.22 43 2 11쪽
131 그믐_대의각 앞마당 23.08.21 4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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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그믐_별사탕을 어찌 아는가 23.08.19 4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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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그믐_영함산과 만선상단 23.08.13 41 3 11쪽
121 천계_공조 23.08.12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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